청년노동자 전태일이 1970년 11월13일 서울 평화시장 앞길에서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재단사로 일한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산화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는 분신 한 달 전에 전태일과 재단사 모임 ‘삼동회’가 평화시장 업주들에게 요구한 ‘근로조건 개선’ ‘노동조합 결성’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버텼다. 분신의 사회적 파장을 우려한 유신정권은 노조 결성을 인정했다. 이소선씨와 삼동회 회원들은 11월27일 조합원 560명이 가입한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청계피복노조) 결성대회를 열었다.
열사의 희생을 바탕으로 결성된 청계피복노조는 ‘1975년 노동시간 단축 요구 농성투쟁’ ‘1977년 임금인상 투쟁·연대투쟁’ 등을 펼쳤다. 1980년에는 전두환 주도의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하지만 1984년 노동조합을 복구하고 법외노조 활동을 계속했다. 이후 군부 정권의 탄압에 맞서 전태일 추모 행사와 ‘1985년 구로동맹파업’ ‘1986년 인천 5·3 운동’에 참여했다. 1988년 노조 합법화가 됐고, 1998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울의류노조로 통합됐다.
청계피복노조가 독재권력의 노동탄압에 맞서 싸웠던 순간을 기록한 사진들을 소장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공동기획으로 지면을 꾸렸다.
사진 박용수 사진가·경향신문(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박승화 기자
글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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