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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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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리는 새해 소망

[당신]
등록 2011-01-06 07:19 수정 2020-05-02 19:26

지난 12월28일 이른 아침, 일렁이는 햇빛을 맞으며 항구로 들어와 그물에 걸린 도루묵을 떼어내는 어부 김진호(60)씨를 강원도 강릉 주문진항에서 만났다. 주문진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배를 탔다. 그동안 대부분의 새해를 배에서 맞이한 그로선 새해에 뜨는 첫 태양에 대한 감흥이 별다르지 않을 듯했지만, 그에게도 새해 첫 일출은 의미가 있었다.

“해 뜨기 전에 나가서 일하다 새해 첫 태양이 뜰 땐 저도 잠시 소원을 빕니다. 기억으로는 아마 해마다 그랬던 것 같은데…. 내용이라야 뭐 남들하고 똑같죠. 자식 잘되고, 건강하고, 고기 많이 잡아 돈 많이 벌게 해달라고 빕니다.”

1.49t짜리 소형 자망어선인 제2남진호를 몰고 인근 바다로 나가 도루묵과 오징어, 대구 등을 잡는 김씨는 이날 도루묵 300급(한 급은 20마리)을 잡았다. 도루묵이 끝물인 것을 감안하면 어획량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예전엔 철에 따라 나오는 고기가 딱딱 잘 잡혔는데, 요즘은 철 따라 올라오지도 않고 잘 잡히지도 않아요. 수온이 맞지 않아 고기가 못 사나 본데, 그래도 오늘은 잘 잡혀 다행이에요.”

2011년 1월1일에도 배를 탈 거냐고 묻자 웃으면서 대답한다.

“뱃사람이 1월1일에 노는 게 어딨어요? 풍랑주의보나 내리면 모를까. 뱃사람의 노는 날은 사람이 정하는 게 아니라 하늘이 정해주는 겁니다.”

하늘이 허락한다면 새해의 첫 일출도 김씨는 배에서 볼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그 태양을 보면서 새해 소망도 빌 것이다.

강릉=사진·글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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