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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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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그 이상 혹은 그 이하

애플워치 한국 출시 뒤 바글대는 스마트시계 시장 메시지·운동량 확인 편하지만 몇 년 지나면 뒤처질 기기를 비싼 가격으로 사야 할지 망설여지고
등록 2015-07-11 07:59 수정 2020-05-03 04:28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애플워치가 은근히 손목을 ‘툭툭’ 두드렸나보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이 손목에 찬 시계를 힐끗 보곤 “점심 약속 시간이 10분 남았다고 알려주는 알림이 왔다. 스케줄을 미리 알려줘 편리하다”고 설명했다. 왼 손목에 하얀색 애플워치를 차고 있었다. 스마트시계(시스템이 장착된 전자 손목시계)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중, 임 센터장은 스마트폰으로 오는 문자메시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스마트시계를 힐끗 볼 뿐 대화는 중간에 끊기지 않았다. 스마트시계는 스마트폰과 연동돼 카톡·문자·메일 내용 등을 화면을 통해 알려줄 수 있는 시계다.

“처음 손목에 찬 것은 ‘핏비트’라는 스마트밴드(팔찌)였다. 운동량을 체크해야겠다 싶어서 2년 전부터 차고 다녔다. 하루 걸음 수를 확인하면서 동기부여를 하려고 했다. 매일 1만 보 이상씩 걸으며 효과를 봤다. 핏비트를 업그레이드하려다 애플워치가 나온다기에 스마트시계로 바꿨다.”

운동량도 체크하고 메시지도 보고

그가 주로 이용하는 운동량 확인 기능은 스마트시계의 강점이다. 항상 손목에 차고 다니다보니 스마트시계는 사용자가 얼마나 걸었는지, 책상에서 몇 번 일어났는지, 하루 동안 소모한 칼로리는 얼마나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 데이터를 저장했다가 사용자에게 수치와 도표로 깔끔하게 보여준다. 때로는 사용자가 1시간 가까이 앉아 있는 것을 파악하고 ‘일어나라’는 신호까지 준다. 시계 뒤에 장착된 센서가 사용자의 심박 수 등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스마트워치와 떨어져 지내는 것은 잠들기 전 기기를 충전하기 위해 떼낼 때뿐이라고 임정욱 센터장은 말했다.

“시계로 쓰면서도 운동량, 문자메시지, 스케줄 확인이 편리하다. 예쁜 액세서리 같다는 느낌도 든다. 애플워치를 보면 애플이 시계의 본질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시계 시장이 열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시계의 기대주인 애플워치가 지난 6월26일 국내에 출시됐다. 올해 4월24일 미국·일본 등에서 먼저 출시됐고 국내에는 조금 늦게 들어왔다. 늦게 들어왔어도 애플이 만든 ‘신화’답게 소비자들은 제품을 사기 위해 출시일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섰다. 아이폰이 만든 거대한 스마트폰 시장처럼 애플이 스마트시계 시장을 확대시킬 수 있을까.

이전부터 스마트시계 시장은 있었다. 삼성전자 기어라이브·기어S, LG전자 G워치, 모토로라 모토360, 페블 등이 이미 소비자를 만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판매량은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대신 스마트밴드가 더 깊이 시장에 파고들고 있었다. 스마트밴드인 핏비트는 지난해 1천만 대 넘게 팔렸다. 중국 업체인 샤오미의 스마트밴드 미밴드도 국내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해외 직접구매에 나설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이들 스마트밴드는 스마트시계보다 가벼우면서도 운동량 측정뿐만 아니라 연동된 스마트폰에 전화가 오면 알려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기본적인 기능은 있으면서 가격이 저렴하니 많이 팔렸다. 스마트밴드의 장점을 맛본 사람들이 스마트시계로 옮겨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자책 업체인 리디북스 김상훈 홍보실장은 스마트밴드에 이어 스마트시계를 찬 경우다. 김 실장은 애플워치가 국내에 출시된 6월26일 곧바로 애플워치를 샀다. “기능적으로 본다면 스마트시계와 스마트밴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애플워치는 차고 다니면 기분이 좋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지적하는 부분은 ‘디테일’(작은 차이)에 있다.

“애플워치의 뒤에는 손목 피부와 닿는 센서가 있다. 시계를 헐렁하게 차더라도 그 센서는 피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일반 가전제품 업체라면 신경 쓰지 않을 부분을 애플은 디자인을 통해 신경 쓴다. 또 애플워치는 상황에 맞춰 사용자에게 신호를 준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 문자메시지가 오면 애플워치는 살살 피부를 건드려 신호를 준다. 크게 움직이면 자동으로 신호가 강해진다. 사용자를 배려한다.”

디테일이 열어젖힐 스마트시계 시장
서울 명동 애플 제품 체험 매장 ‘프리스비’에 진열된 애플워치. 스마트시계인 애플워치는 시간 뿐만 아니라 문자메시지, SNS, 운동량 측정 확인 등이 가능하다. ‘어른들의 IT 장난감’과 ‘혁신적인 시계’라는 평으로 갈린다. 정용일 기자

서울 명동 애플 제품 체험 매장 ‘프리스비’에 진열된 애플워치. 스마트시계인 애플워치는 시간 뿐만 아니라 문자메시지, SNS, 운동량 측정 확인 등이 가능하다. ‘어른들의 IT 장난감’과 ‘혁신적인 시계’라는 평으로 갈린다. 정용일 기자

이런 디테일은 손목시계를 거추장스럽게 여겼던 사람들에게도 손목에 뭘 찬다는 이물감을 줄어들게 한다.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아이폰처럼 애플워치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시계의 역사를 보면 스마트시계의 등장은 흥미롭다. 개인이 가지고 다니던 시계의 시작은 품속에 넣었던 회중시계였다. 회중시계를 꺼내보다가 시계는 손목 위로 올라왔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군인들에게 손목시계가 하나씩 채워졌고, 이는 손목시계가 대중화되는 발판이 됐다. 하지만 휴대전화와 스마트폰의 등장은 다시 손목에서 시계를 내려놓게 했다. 분초까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스마트폰이 있는데 굳이 손목시계까지 차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다시 회중시계(스마트폰)를 쓰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스마트시계의 등장은 이런 흐름을 멈추게 할 가능성이 있다. 젊은 세대들이 특히 손목시계를 차지 않는데, 스마트시계는 새로운 유행을 좇는 이들에게 적합한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애플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인 프리스비 쪽은 애플워치 출시 뒤 국내 구매 고객을 분석한 결과 “20~40대 젊은 남성들의 구매가 많았다”고 밝혔다.

전통적인 시계업계의 경계심은 아직 덜하다. 고가 브랜드인 ‘까르띠에’의 시계 마케팅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스마트시계가 저가 시계 시장엔 위협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특별한 경험을 원하거나 편리하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혁신적인 제품이지만, 많은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는 대중성 면에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스마트시계를 평했다.

남성패션잡지 의 신동헌 편집장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애플워치는 혁신적이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인 ‘스와치’가 처음 나왔을 때도 사람들은 스와치가 시계업계를 석권하리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엔 스위스 시계가 애플워치가 가진 혁신적인 면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스위스 시계산업협회는 올해 4월과 5월 스위스 시계 수출이 9%가량 급감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외신들은 스위스 시계 산업의 실적이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경제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고 보도했다.

신 편집장이 꼽는 애플워치의 강점은 많다. 현대사회에서 시계를 찬다는 것은 ‘누군가 내 시계 좀 알아봐줘’라는 목적이 담겨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애플워치는 보는 사람 누구나 무엇인지 물어본다. 시계를 보고 호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굉장한 강점이다.” 또 그는 디자인이 예쁘다고 평했다. “시곗줄을 고급스럽게 만든 것을 보고 놀라웠다. 소재도 좋고 시곗줄을 채우는 방식도 오래 고민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시곗줄을 바꾸는 것도 취미인데, 줄갈이를 드라이버 없이 손톱만으로도 가능하게 만들어 혁신적이다.”

시계가 아니라 이미지를 산다
애플워치 스포츠(왼쪽·43만9천원)와 삼성 기어S(32만7천원)의 크기를 비교해봤다. 스마트시계를 1년 넘게 사용한 이인묵 잡플래닛(직장인 기업평가 사이트) 홍보실장은 “스마트시계의 기능이 30만원 이하의 스마트밴드와 별 차이가 없다. 가격을 내리자니 디자인 수준이 떨어지고, 30만원 이상 가격으로 디자인 수준을 올리자니 기능 대비 가격이 너무 비싸지는 모순이 있다. 이를 해결해야 하는 게 스마트시계의 과제다”라고 평했다. 이완 기자

애플워치 스포츠(왼쪽·43만9천원)와 삼성 기어S(32만7천원)의 크기를 비교해봤다. 스마트시계를 1년 넘게 사용한 이인묵 잡플래닛(직장인 기업평가 사이트) 홍보실장은 “스마트시계의 기능이 30만원 이하의 스마트밴드와 별 차이가 없다. 가격을 내리자니 디자인 수준이 떨어지고, 30만원 이상 가격으로 디자인 수준을 올리자니 기능 대비 가격이 너무 비싸지는 모순이 있다. 이를 해결해야 하는 게 스마트시계의 과제다”라고 평했다. 이완 기자

애플이 성공한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을 내놓아서가 아니다. 소비자가 갈수록 손목시계를 멀리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스마트시계를 내놓을 필요가 없다. 애플은 고객을 분석하거나 경쟁자를 분석해 제품을 내놓지 않았다. “아이폰이 그 전형적인 예다. 이 제품이 나오기 전, 애플 임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스마트폰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만들기로 했다’고 잡스는 말했는데, 이는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 애덤 라신스키)

기업 ‘애플 제국’을 파헤친 책 을 보면 잡스의 철학을 이어받은 이들은 시장을 선도하는 것에 의미를 뒀다. 소비자들도 ‘앞서간다. 나는 혁신을 살 만큼 돈이 있다’는 이미지를 사고 싶어 앞다퉈 애플에 지갑을 열었다.

애플은 스마트시계가 패션 아이템이 되는 걸 꿈꾸는 것으로 보인다. 애플 디자인 총괄 수석 부사장 조너선 아이브는 지난 4월 애플워치를 출시하면서 “사상 유례없는 제품으로 구상,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원래 애플은 이런 회사였다. “애플은 선택권을 최소화해 어떤 고객이든(어떤 제품들이 있는지 전혀 모르더라도)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제품을 쉽게 찾도록 했다. 맞춤형 선택은 단순하다. 구입도 단순하다. 애플이 브랜드를 강화하는 방법은 이렇게 단순하다.”(, 켄 시걸)

그런데 애플은 아이폰과 달리 다양한 애플워치를 출시했다. 아이폰처럼 제품 하나만 내놓은 게 아니라, 애플워치 스포츠·애플워치·애플워치 에디션 등 세 종류를 내놨다. 게다가 각 제품별로 세분화했다. 애플워치의 경우 38mm와 42mm 크기, 시계끈에 따라 선택 사양이 20가지나 된다. 애플워치를 전자제품보다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대목이다.

애플워치가 스마트시계 시장을 본격적으로 열어젖힐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정보기술(IT) 관련 일을 하는 최준호씨는 “애플워치가 아이폰처럼 대중화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온갖 IT 업체가 밀집한 실리콘밸리에서는 애플워치를 차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만, 일반인들에게 스마트시계가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갈수록 화면이 커지고 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많이 보고 싶어 하고 많은 것을 하고 싶어 한다. 스마트시계는 손목에 차는 특성상 크기가 더 커질 수는 없다. 크고 무거운 것을 두 개나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스마트시계를 물려줄 수 있을까

스마트시계가 비싼 가격만큼 가치를 갖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애플워치의 가격은 43만9천원부터 시작한다. 애플 제품을 좋아하는 소비자에겐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지만, 시계를 차지 않던 이들이 지갑을 쉽게 열 만한 가격은 아니다.

더구나 수십만원짜리 손목시계는 세월이 흘러도 그렇게 유행을 타지 않는다. 디자인이 뒤처지더라도 세월의 흔적이 남는 시계가 가끔은 더 대우받기도 한다. 그러나 혁신적인 IT 제품은 기술의 발달을 항상 좇아야 한다. 몇 년 전에 나온 스마트폰을 계속 쓰기 어려운 이유다. 은근히 손목을 두드리는 스마트시계, 애플워치가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지갑을 열기 전에 합리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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