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이 삼류 경제학자라고?

해외와 대중은 주목하지만 국내 학계는 무시하는 경제학자…
국가·시장·기업을 보는 그의 시각을 본격 토론할 수는 없나

“삼류 잡지 에디터가 무슨….”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과)에 대해 서울대의 한 교수가 던진 말이라고 한다. ‘삼류 잡지’란 장 교수가 한때 편집자로 활동했던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을 말한다. 이 논문집은 사회과학논문인용지수(SSCI) 3위 안에 들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경제 학술지로, ‘삼류 잡지’란 표현은 좀 심한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를 신문 칼럼을 통해 공개하면서 경제학자 정태인(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은 “유럽에서 유명 잡지의 편집자란 상상을 불허하는 권위”를 갖는다고 말한다. 이런 학술지를 ‘삼류 잡지’라 부르는 교수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인지, 뮈르달상(학자에 따라서는 노벨경제학상보다 더한 권위를 인정해준다고 함)을 받은 장하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직에 세 차례 지원해 모두 고배를 마신다. 미국 대학에서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을, 그것도 수리모형이나 계량경제학을 공부하고 와야 알아주는 국내 학계에, 유럽에서 제도주의 경제학을 한 장 교수는 뭘 해도 ‘삼류’로 보일지 모른다.

앨런 그린스펀과 맞짱 뜨는 연사

» 장하준 교수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교수와 대담하고 있다.한겨레 황석주

이렇듯 주류의 시각으론 대단치 않을지 모르나 장 교수는 이미 경제위기 시대의 ‘아이콘’으로 국내외에서 확실히 떠올랐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맞짱을 뜨는’ 연사로 세미나에 초청받고, 그런 세미나에는 청중이 몰려든다. 장 교수를 인터뷰하거나 칼럼 집필을 부탁하려는 언론사가 줄을 잇는다. 그의 신간 는 한글로 번역돼 나온 지 2주일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장 교수를 향한 이런 열기는 그가 우리의 답답한 가슴을 열어주는 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평소라면 읽지 않았을 인문서 가 출간 6개월여 만에 60만 부가 팔린 것을 ‘정의가 복원되길 갈구하는 사회심리’의 예후로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국 권위지 이 장 교수의 새 책과 관련해 에드 밀리밴드 신임 노동당수에게 “장 교수와 점심을 함께 하라”고 권했을 만큼, 경제를 보는 장 교수의 안목은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장 교수가 최근 몇 년간 펴낸 책에서, 그리고 강연과 세미나에서 일관되게 시도하는 것은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비판과 이의 해체다. 자유시장, 규제완화, 자유무역, 주주자본주의 등 1990년대 이후 우리가 듣고 믿었던 경제적 상식과 가치, 신념체계를 밑동에서부터 흔들려는 것이다. 대중적 영향력이 크기에 당연히 주류 경제학계의 반론이 있을 법하지만 잠잠하다. 장 교수가 이번에 낸 책에서 경제가 잘되려면 “시장주의 경제학자와는 종류가 다른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다소 자극적으로 썼는데도 반응은 마찬가지다.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이 지난해 말 출간된 이란 책과 최근의 동영상 인터뷰에서 한 장하준 비판이 그나마 본격적인 대응이다. 김 원장은 “장 교수는 아주 특이하게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이를 논거로 활용한다”며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사를 잘 배우지 않는다. 수학적 모형이랄지 추상적인 것을 배우는데…”라며 주류 경제학 쪽에서 대응을 잘 못하는 이유를 밝힌다.

사정이야 어쨌든 비판의 바람을 쐬지 않으면 이론은 도그마가 된다. 대중이 열중하는 사상은 그럴 위험이 더 높다. 사실 장 교수의 주장에 허점이 없어서 반론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 게다. 김정호 원장의 반박만 들어봐도 토론해볼 쟁점은 드러난다.

예를 들어 김 원장은 장 교수가 에서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한 시기는 관세율이 높고 보호주의가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된 기간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는 국제교역보다는 철도 발달 등으로 미국 국내 시장이 넓어지고 주(州) 간 관세가 없어진 것이 성장 동력이었다는 점을 보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또 장 교수는 “박정희 시대에 국가의 규제와 개입이 많았음에도 경제가 성장했다”며 국가 개입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박정희 시대는 오히려 정부가 주도해 이승만 시대에 존재하지 않던 외환시장·노동시장 등 시장을 만들고 작동되도록 한 특수한 기간이었다고 비판한다. 덩샤오핑 집권 시기 중국 정부의 주도권이 여전히 강했지만 마오쩌둥 생전에 비해 경제와 사회가 자유화된 것이 급속한 경제성장의 동력이 된 것과 비슷한 이치란 것이다.

주류 경제학이 풀지 못하는 질문들

대중은 새로운 해석을 갈구하며 심지어 ‘미네르바’를 찾아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은 대답하지 않고 있다. 옛것은 흔들리고 새로운 것은 아직 오지 않은 혼돈 속에서 현실은 종전과 다름없이 돌아가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서둘러 추진되고, 부자 감세 같은 정책도 강건하다. 국책연구원이나 대학에 포진한 이코노미스트들은 과거와 다르지 않은 패러다임으로 정책과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시장과 국가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기업은 또 어떻게 사회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좀더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어떤 성장과 분배 모델이 필요할까? 주류 경제학계가 장하준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 이젠 이런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래서 한겨레도 장하준 교수를 국제포럼에 초대했다. 12월15~16일 열리는 ‘2010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장 교수는 ‘다양화하는 기업과 국가관계’에 대해 강연하고 참석자와 토론할 예정이다(www.asiafutureforum.org 참조). 그의 강연이 논쟁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이봉현 한겨레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mail]

한겨레 주최 2010 아시아미래포럼
정부-기업 관계의 새 길을 묻는다

동아시아 기업의 새로운 길을 논의하고 제시하는 국제 콘퍼런스 ‘2010 아시아미래포럼: 동아시아 기업의 진화’가 12월15~16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다. 한겨레신문사가 앞으로 매년 개최하는 아시아미래포럼은 아시아가 당면한 주요 문제에 대해 아시아 대표 지성들의 해법을 듣고 토론하는 자리다.
2010년 첫 포럼에서는 한·중·일을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동아시아 기업의 미래에 대한 각자의 시각을 보여준다. 1980년대 일본 기업의 경영 특성과 성공 요인을 제시해 전세계 학계를 뒤흔든 석학 아오키 마사히코 교수(미국 스탠퍼드대)는 기조연설을 통해 기존 영미식 기업관을 뿌리째 바꿔놓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최근 출간한 저서 로 또 한 번 세계 지성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는 미래에 정부와 기업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동아시아 경제발전 경험을 토대로 진단한다. 양빈 교수(중국 칭화대)와 에바시 다카시 교수(일본 호세이대)는 각각 중국과 일본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분석한다.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아시아 전문가들과 함께 한·중·일 사회책임경영 우수기업을 뽑은 ‘동아시아 30’의 평가 내용과 결과도 이 자리에서 발표된다. ‘사회적 기업’ 세션에서는 다니모토 간지 교수(일본 히토쓰바시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이 대기업 및 외국 기관과의 파트너십 사례 등을 발표한다.
이번 포럼에는 특별연설과 강연도 마련된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동아시아에서 중소 벤처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제안한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는 일과 삶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알려준다. 문의 아시아미래포럼 사무국 070-7425-5237.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