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이래 지난 30여 년은 가히 ‘도요타의 시대’였다. 1·2차 오일쇼크가 휩쓸던 당시 높은 연비를 앞세운 ‘소형차’ 도요타는 미국의 빅3(GM·포드·크라이슬러)를 누르며 맹렬하게 미국 본토를 질주했다.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한 ‘일본주식회사’는 사실 도요타주식회사나 마찬가지였다. ‘품질의 도요타’를 배우려고 전세계에서 수많은 경영자, 기업체 임원, 노동조합 관계자, 학자들이 일본 도요타 공장을 방문했다. 도요타 시스템은,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 황금기를 열어젖힌 포드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대체할 새로운 생산체제로 부상했다.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이 도요타 시스템을 자국에 이식하려고 도요타를 배우고 본국에 도요타 합작공장을 마구 세웠다.
급발진 사고 몇 개월 뒤 왜 이제 와서…
그런 도요타 제국이 갑자기 ‘종말론’에 빠져들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자동차업체에서 리콜은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미 의회가 도요타 청문회를 준비하고, 일본 정부가 이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정치적 해석도 난무하고 있다. 품질 문제를 넘어 양국 간에 감정이 표출되는 양상이다. 사실 도요타는 지난해 10월 초 도요타 차량 바닥 매트가 가속페달에 끼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을 단행한 바 있다. 그 뒤 잠잠했는데, 지난 1월21일 가속페달 자체의 결함이 다시 부상하면서 거대한 리콜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도요타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결함을 외면하며 버텨오다가 더 큰 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차량 바닥 매트로 인한 급발진 사고가 일어난 지 몇개월 지난 뒤 이제 와서 왜 미국 온 나라가 도요타 문제로 들썩이는지 의문”이라고 고개를 갸웃한다. 미국 〈CNBC방송〉은 2월4일(현지시각) 홈페이지에 ‘도요타 주식이나 도요타 자동차를 사겠는가?’라는 제목의 긴급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도요타 주식 구입 의향까지 묻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도요타 차량 내 속도 조절 시스템의 오작동 유발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는 익명의 미국 교통 당국 관리의 말을 경쟁적으로 타전하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본차 때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노조도 한몫 거들고 있다. 은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캘리포니아 프리몬트 소재 도요타 공장의 폐쇄 문제를 이번 리콜 사태와 연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레이 라후드 미 교통부 장관은 아예 “미국 소비자들은 도요타 운행을 멈춰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일부 자동차 마니아들은 블로그에서 “도요타 경영진은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도요타 리콜 사태는 미 교통부의 압력에 의한 결과”라며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도요타 소비자의 안전은 미 교통 당국의 진짜 관심사가 아니고, 미국이 구제금융을 받은 빅3 자동차 판매량에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도요타 리콜 사태를 계속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은 “가속페달 결함을 보인 도요타 차는 300대 미만으로, 약간의 비용을 들여 수리를 하면 고칠 수 있는데도 미 행정부가 앞장서 즉각적인 대규모 리콜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GM, 오바마 정부가 대주주인 국영기업
도요타의 오랜 라이벌인 GM은 파산보호를 거치면서 이제 오바마 정부가 대주주인 국영기업이나 마찬가지다. 몰락하던 GM과 포드는 지금 도요타·렉서스 고객이던 사람이 차를 살 경우 최대 1천달러의 보조금을 주는 이벤트를 긴급 시행하고 있다.
톰 헨더슨 GM 대변인은 이런 말도 했다. “리콜과 판매 중단 사태가 벌어지면 소비자의 가장 큰 고민은 도요타 중고차의 가치다.” 중고차값이 떨어질 테니 빨리 팔고 다른 차를 사라는 얘기다. 사실 이번 도요타 리콜 사태의 핵심은 중고차값에 있다. 중고차값은 신차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변수다. 도요타에 대한 전방위 파상 공세가 지속되면 도요타 중고차값은 계속 떨어지고, 도요타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 공산이 크다. 도요타가 미국 본토를 질주하면서 결국 거인 GM이 쓰러졌는데, 이제 미 행정부와 언론들이 거인을 구하려고 도요타를 쓰러뜨리고 있는 것일까? 온갖 음모론이 떠도는 가운데 도요타 리콜 사태는 불행과 행복이 교차하는 점입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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