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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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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살린 할머니들

인간과 일부 고래에서만 나타나는 폐경 현상에 대한 진화적 해석 ‘할머니 가설’
등록 2021-04-25 13:34 수정 2021-04-30 02:02
다음 웹툰 <퀴퀴한 일기>의 한 장면. 다음 웹툰 <퀴퀴한 일기> 화면 갈무리

다음 웹툰 <퀴퀴한 일기>의 한 장면. 다음 웹툰 <퀴퀴한 일기> 화면 갈무리

평소 즐겨 보던 다음 웹툰 <퀴퀴한 일기>의 이보람 작가가 출산으로 잠시 작품을 중단한 뒤, 다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일상툰답게 출산 이후 상황을 묘사한 웹툰이 올라왔는데, 그 첫마디가 ‘살려주십쇼…’였습니다. 쌍둥이를 얻은 작가의 절규에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우리 집 쌍둥이의 신생아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쌍둥이 부모의 절규 ‘살려주십쇼…’

갓 태어난 아기는 어른에겐 너무나 익숙한 세상의 규칙이나 생활 리듬 같은 건 알지 못하고, 설사 알아도 지킬 수 없기에 부모 혹은 양육자를 매우 당황시킵니다. 아기가 부모를 괴롭히는 건, 그럴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어서입니다. 일단 아기의 몸은 아주 작습니다. 2017년 업데이트된 ‘소아·청소년 성장도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생아의 평균 몸무게는 남아 3.3㎏/여아 3.2㎏으로 성인 몸무게의 수십분의 1에 불과하지요.

몸이 작기에 한번에 먹는 양이 적고 저장할 수 있는 양도 적습니다. 이 작은 몸은 맹렬하게 성장하는 중이기에 단위당 요구량이 절대 적지 않지요. 그러니 아기는 자주 먹습니다. 보통 신생아는 4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6~7번을 먹는다고 육아책에 나와 있지만, 실제는 2~3시간 간격으로 보채며 간격이 더 밭을 때도 많습니다. 게다가 아직은 스스로 우유병을 쥘 힘도, 누군가에게 매달릴 힘도 없기에, 누군가가 안아들고 먹여줘야 하며 심지어 먹이고 나서는 트림을 시켜줘야 합니다. 자주 먹으니 자주 배설할 테고, 그만큼 기저귀도 자주 갈아줘야 합니다. 게다가 쌍둥이라면?! 같은 과정을 두 번 반복하고 나면, 다시 텀(주기)이 돌아옵니다.

쌍둥이를 데리고 집에 온 날부터 녹초가 돼버렸습니다. 새벽에 깨어난 두 아이를 차례차례 먹이고 재우면, 큰아이를 깨워 유치원에 보낼 시간입니다. 여섯 살 아이가 혼자 등원 준비를 하기는 무리입니다. 아직 양육자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죠. 그렇게 정신없이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쌍둥이가 깨어나 다시 배고프다고, 혹은 어딘가 불편하다고 보챕니다. 그럼 또다시 아이들의 생물학적 요구에 부응하느라, 내 몸이 요구하는 소리는 무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도 나름 애썼지만, 당시 주말부부였던지라 주중에는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며칠 못 가 이대로는 제가 죽을 것 같아 베이비시터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대개의 베이비시터는 쌍둥이라 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때 구원자가 돼준 건, 감사하게도 저를 낳아주신 엄마였습니다(물론 엄마에게 베이비시터 비용은 드렸습니다). 저도 힘든 일을, 이젠 할머니가 된 엄마가 오롯이 감당하는 건 무리였죠. 그래도 엄마가 나서주셔서 일이 잘 풀렸습니다.

할머니가 한 아이를 맡아주니, 나머지 한 아이만 돌보는 조건으로 베이비시터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에게도 갑작스레 둘이나 생겨버린 동생들 때문에 엄청난 혼란을 겪던 큰아이를 돌아보고, 그동안 해오던 사회적 일(원고 작성과 대학 강의, 대중 강연)을 할 물리적 시간이 다시 생겼습니다. 물론 제 몸에서 요구하는 생물학적 휴식까지 충족할 시간은 쌍둥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유예됐지만,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습니다.

필자 역시 쌍둥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날부터 녹초가 됐다. 이은희 제공

필자 역시 쌍둥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날부터 녹초가 됐다. 이은희 제공

난자의 1%도 쓰지 않았는데 찾아오는 폐경

그제야 주변이 보였습니다. 제 또래 여성 가운데 여전히 사회적 ‘일’을 하는 동료들의 상당수는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자식은 부모가 키워야지, 이미 자식 키우느라 등골 빠지게 고생한 자기 부모에게 또 손을 벌리는 건 염치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제 일이 되고 나니 가장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건 역시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밖에 없더군요. ‘할머니 가설’이 이래서 나왔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은 미국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1926~2010)가 1957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제시됐습니다. 포유동물에게서 드물게 인간 여성에게 나타나는 폐경 현상에 대한 진화적 해석입니다. 쉽게 말하면, 생식의 짐에서 벗어난 할머니의 존재가 인류 집단의 존속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일정 나이가 지나면 아예 더 이상 번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진화적 특성이 고착됐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여성은 평균 49.3살쯤 월경이 중단됩니다(‘폐경(종설논문)’, 최희정·오한진, 대한가정의학회지 10권 3호, 2020). 2020년 기준 국내 여성의 평균수명이 86.4살인 것과 비교하면, 생물학적 수명의 40년 전에 생식능력이 중단되는 것입니다.

난자가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인간 여성의 난자는 이미 태아 시절 600만 개 이상이었던 것을 끊임없이 솎아내, 출생할 때 100만여 개, 사춘기에는 수만 개로 줄어듭니다. 한번 사정할 때 수천만~수억에 이르는 정자 수보다는 매우 적지만, 여성은 대개 월경주기 1회에 난자를 1개만 배란하므로 평생 배란해도 전체의 1%도 배란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인간 여성의 몸은 35년 내외로 배란한 뒤, 남아 있는 난자를 모두 폐기하고 배란 기능을 정지해버립니다.

이는 포유류에게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포유동물 암컷에게 생애주기가 끝나기 전에 생식능력 중단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 외에 범고래, 들쇠고래, 흑범고래 등 몇 종의 고래류에서만 관찰되는 드문 현상입니다. 임신·출산과 수유·양육의 책임을 거의 떠맡는 포유류의 암컷이 ‘더 이상 자손을 번식할 수 없는 시기’를 생애주기에 이토록 오랫동안 가지도록 인류 조상이 겪은 진화적 압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나이 들수록 양육 기간 늘리는 고래

이 질문의 실마리는 폐경이 일어나지 않는 다른 포유류의 습성을 관찰하면서 알아냈습니다. 어린 개체의 양육 기간이 긴 동물(고래류·영장류 등)일수록, 비록 어미는 죽을 때까지 생식력을 가지기는 하지만, 나이 들수록 새끼를 돌보는 기간이 더 길어집니다. 예를 들어 큰돌고래의 수명은 평균 40대 후반까지이며, 죽을 때까지 생식력을 가집니다. 큰돌고래 어미는 40대가 되면 마지막으로 낳은 새끼는 이전 형제자매보다 더 오랫동안, 그러니까 죽기 직전까지 젖을 먹이다가 독립시킨 뒤 죽음을 맞는 현상을 보입니다. 큰돌고래는 평균적으로 새끼 한 마리당 3~4년 동안 젖을 먹여 키우다가 독립시킵니다. 그런데 막둥이의 경우 보통은 5년, 심지어 8년 동안이나 젖을 먹인다는 거죠.

생물체의 몸은 나이 들수록 생물학적 기능이 떨어지지만, 임신과 출산과 수유에 필요한 에너지와 자원은 동일합니다. 새끼를 낳고 키우는 데 투여하는 모체의 기능이 떨어지면, 그런 상태의 어미에게서 태어나는 새끼는 이전의 손위 형제보다 작고 약하며 당연히 생존력이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미는 나이 든 이후에는 새끼를 더 낳기보다는, 이미 낳은 새끼의 양육 기간을 늘려서 새끼의 생존을 보장하려 최선을 다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보다 어미가 더 오래 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생물학적 모체가 임신과 출산과 수유를 이전만큼 제대로 할 수 없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요? 그런 때가 오면 새끼 낳는 행위는 번식과 유전자 존속이 아니라 어미와 새끼 모두를 한꺼번에 도태시켜 유전자를 단절시키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새끼를 독립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고, 친족이 집단을 이뤄 함께 사는 동물의 경우, 암컷이 어느 정도 나이 들면 스스로 생물학적 번식을 중단하고, 그렇게 아낀 에너지를 자기 피를 이은 자식들의 아이를 돌보는 데 투자하는 게 유전자 존속에서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 가설’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나이 든 포유류 암컷은 직접 아이를 낳기보다 생식을 중단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아이(주로 딸)가 낳은 손주를 돌보는 일이 집단을 든든하게 번성시키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사람에게도 이런 현상이 관찰됩니다. 젊은 여성과 나이 든 여성이 동시에 아이를 낳은 경우, 나이 든 여성이 낳은 아이일수록 생존율이 낮습니다. 그런데 두 여성이 혈연관계라면 어떨까요? 두 여성이 각각 힘든 임신과 출산을 겪어 두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것보다, 젊은 여성이 터울을 가지고 아이를 두 번 낳고 두 여성이 힘을 합쳐 양육하는 것이 아이의 생존을 훨씬 더 보장할 수 있습니다.

맞벌이하는 자식 부부를 위해 외할머니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맞벌이하는 자식 부부를 위해 외할머니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할머니의 존재는 ‘생존 돌봄’이다

처음 할머니 가설을 봤을 때, 여성에게 지나치게 기울어진 유전자 번식 부담을 더욱 고착하는 가설이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니 그 과정에 할머니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되더군요. 물론 지금이야 출산휴가, 육아휴직, 베이비시터, 어린이집, 긴급돌봄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좀 다르겠지만 오로지 서로밖에 없었던 선사시대에 할머니의 존재는 갓난아기의 생존을 좌지우지할 만큼 컸을 겁니다.

아이들은 이제 많이 컸고 더 이상 밀착 보살핌이 필요 없는 시기가 왔습니다. 아이들이 이만큼 무사하게 자란 데는 엄마인 저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아직은 먼일이지만, 이 아이들이 자라서 자기 아이를 낳고 보살필 나이가 됐을 때, 할머니로서 진화적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제 몸을 좀더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육아는 뭐니뭐니 해도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니까요.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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