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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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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편집본엔 없는 ‘브이로그의 매력’

쉽고 깔끔한 편집에서는 삭제되곤 하는 오묘한 결, 브이로그의 힘은 여기에
등록 2021-01-30 16:07 수정 2021-02-02 02:05
오원(O’WON)의 유튜브 화면 갈무리

오원(O’WON)의 유튜브 화면 갈무리

‘…망했다!’

촬영 분위기가 영 처참하다. 이렇게 된 이상 온 마음을 모아 마지막 희망을 건다. 편집. 편집만이 살길이다! 밋밋한 상황은 팍팍 쳐내고 여러 컴퓨터그래픽(CG)이나 자막으로 양념을 친다. 죽은 영상도 살려내는 편집의 기술은 심폐소생술이 따로 없다. 그런데 기껏 고생해서 편집해놨더니 오히려 원본이 낫다면? 이보다 좌절되는 상황이 있을까. 문제는 그런 일이 가끔 생긴다는 거다.

‘시티팝’을 좋아하는 20대 인터뷰 영상을 편집하는 날이었다. 이런 유행이 있다는 갈무리가 앞에 들어갔고, 이제 왜 좋아하는지 20대 당사자의 짤막한 한두 마디를 붙이면 됐다. 옛날 ‘코카콜라’ 광고를 좋아한다는 그는 거품경제 시절의 이미지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그와 대조적으로 침체한 자신의 처지가 주는 감상에 대해 두런두런 얘기했다. 살아본 적 없는 어떤 풍요로운 시대에 대한 그리움. 즐겁다가 슬프기도 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두루뭉술했지만, 동년배로서 공감되는 ‘느낌적 느낌’이 있어 잘 살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원본은 방송용으로 편집하기가 참으로 모호했다. 명쾌하게 탁 치고 빠져야 하는 자리였기에 결국 그 인터뷰는… 통으로 날아갔다. 대신 다른 인터뷰이의 ‘시티팝을 들으면 기분이 좋거든요!’ 정도의 발랄한 한두 마디가 덧붙고 말았다.

간결하거나 강렬하거나. 편집의 기본이다. 특히 TV 방송은 아는 사람만 아는 취향 저격이 아닌 불특정 시청자가 모두 이해할 수 있어야 하므로 더욱 그런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기준에 따르다보면 어쩐지 처음의 좋았던 느낌이 사라질 때가 있다. 쉽고 깔끔한 편집본에는 담지 못한 원본만의 오묘한 결들. 어쩌면 브이로그(영상 일기)를 보게 되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방송이 연예인이나 특별한 사람들의 강렬한 삶을 주로 관찰해왔다면, 유튜브에는 거의 모든 이들의 삶이 있다. 사소한 습관, 뭔가 쓸데없이 구매해서 드는 후회, 우연히 일어난 우스운 순간, 친밀한 사람과 주고받는 농담과 공상. TV에 담기는 아마 쉽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하고 심심한 순간들.

최근엔 누군가의 브이로그에서 식당 냅킨으로 나비 모양을 만들어 수저 받침대로 쓰는 장면(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휴지 위에 수저를 대면 그 또한 형광물질이 있어 안 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별수 없이 휴지를 깔았는데, 수저 받침대로 만들어 입 닿는 부분을 공중에 띄우는 방법이 있었다. 그걸 꿀팁이라고 만든 영상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한 장면이었다. 왠지 그런 소소한 것이 기억에 남아 요즘 식당에 가면 휴지 나비를 접고 있다. 누군가의 일상이 내 일상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꽤 흥미롭다. 반대로 내 일상의 어떤 면이 누군가에게 흘러갈 수 있을지도 궁금해진다.

‘전 국민 유튜버’라는 특이한 시대. 이에 따른 사회문제도 있을 테다. 개인적 이유로도 볼거리가 몇 개 없던 시대에 비해 방송사 피디로서 좋을 게 하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날려버리기 아까웠던 그 장면들, 두루뭉술한 말, 오묘한 표정, 각자의 삶에서 작지만 좋았던 면면이 각자의 손때를 거쳐 나온 걸 보고 있으면 꽤 멋지다고 느끼곤 한다. 그리고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실감한다. 모든 이의 삶이 편집할 수 없는 오묘하고도 흥미로운 원본이라는 사실 말이다.

정파리 방송사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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