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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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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꿈나무] 업로드는 로또다

유튜브는 나랑 이 세상과의 정직한 ‘맞다이’
등록 2020-11-22 12:29 수정 2020-12-08 07:43

직장인의 대표 허언이 ‘퇴사한다’와 ‘유튜브 한다’라고 한다. 주변에서도 뭐 좀 잘한다 싶으면 “너 그걸로 유튜브 해봐!”라고 서로 격려 아닌 격려를 한다. 유튜브는 어느새 사표처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치명적인 무언가가 된 모양이다. 내 영상의 조회수
에 따라 칼같이 비례하는 수익이 통장에 꽂힌다. 이 단순명쾌한 거래. 누군가의 기준에 따라 발탁돼 섭외될 필요 없고, 상사나 다른 이에게 허락받을 필요도 없으며, 그저 자신이 요량껏 만든 콘텐츠에 따라 조회수라는 결과에 승복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계급장 다 떼고 나랑 이 세상과의 정직한 ‘맞다이’(?). 기존 사회가 정해놓은 인정 영역을 단숨에 뒤집어버릴 듯한 전복적 희망마저 깔렸다고 할까.

TV에 나온 모든 음식에 식용유를 뿌려 먹는 사람. 유튜브 화면 갈무리

TV에 나온 모든 음식에 식용유를 뿌려 먹는 사람. 유튜브 화면 갈무리

진짜 대단한데 자본주의가 인정해주지 않은 존재가 얼마나 많았던가. 이쑤시개로 만리장성을 만들었다거나, 식용유에 밥 말아 먹는다거나, 재능과 기행 사이를 오가는 특별함을 가진 이들. 직장인에게 유튜브가 현재 처지에서 탈출할 새 활로로 매력적이었다면, 이들에게 유튜브는 지금까지 일상을 유지하게 해줄 최초의 인정으로서 무게를 가진다. 이전엔 ‘등짝 스매싱’으로 표현되는 방구석 괴짜에 불과하거나 기성 미디어의 선택이 있어야 했지만, 이제 대중과의 직거래에 당당히 나설 수 있다. 집요하게 매달렸던 ‘덕질’, 탁월하긴 한데 그렇다고 어떤 생계로 삼을 수 없는 재능, 누구나 한 번쯤 쳐다보는 기행이 ‘돈’이 된다?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으로 환원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설명은 생략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특이함을 좇는 TV 프로그램 특성상) 방송 출연자가 유튜버인 경우가 많아졌다. 본인 채널에 대해 말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출연하지 않겠다고 하여 섭외가 무산되거나, ‘방송 잘 볼게요, 제 채널도 구독해주세요’ 하는 교환 요청(?)도 종종 나온다. 혹여 방송이 누군가의 채널 홍보용으로 쓰이면 안 되기에 사전에 유튜브 얘기를 나눠보는 건 필수 코스가 됐다. 들을수록 이쪽 현실도 참 녹록지 않다. 아무리 구독자가 몇천 명 될지라도 한 달 수입이 2만원쯤이 부지기수. 공들여 만든 ‘웰메이드 콘텐츠’라고 조회수를 보장받는 건 아니고, 반대로 ‘대체 왜?’ 이런 생각이 드는 영상이 거뜬히 몇백만을 찍기도 한다. 오죽하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간택’이란 말이 유행하겠는가. 새로운 생활 수단으로 마냥 숭상하기엔, 불안정하고도 기묘한 알고리즘이여.

그러나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가능성이 있다는 건 사람을 꿈꾸게 한다. 영상 딱 하나 제대로 터져서 언젠가 한 달에 100만원만 벌 수 있다면, 평생 그림 그리며 살고 싶다는 한 출연자는 말한다. “제가 매주 업로드하는 건, 매주 로또 사는 거랑 비슷한 거예요.” 앞으로도 유튜버 꿈나무는 늘어날 수밖에 없겠다. ‘신종 로또’는 계속 긁힐 테니까. 이들을 TV에 출연시키는 피디는 이 방송이 대단한 파급력을 가져오리라는 허황한 장담은 드리지 못하고, 최소한 그의 채널에 ‘TV 나왔어요’라는 소재 하나는 드리겠지 싶다. 완전히 새롭지만 또 대단히 새롭지도 않은 오늘, 우리는 그저 각자의 채널에 나름대로 사력을 다할 뿐이다.

언젠가 당신이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기 바라며 ‘좋아요’ 버튼으로 응원하는 수밖에.

정파리 방송사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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