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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녹색의 가치

등록 2020-07-04 13:47 수정 2020-07-10 06:09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선생님과 가까운 분들부터 나처럼 <녹색평론> 독자였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빛깔의 추모글이 계속 올라왔다. 그 글들을 통해 생전의 놀라운 일화를 알게 되고, 새삼 얼마나 많은 이가 선생님에게 깊은 존경과 애정을 품고 있었는지를 느낀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실천하는 지식인’. 진정 그 말을 붙일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더 평등하게, 더 민주적으로

김종철 선생님이 보여준 녹색의 가치가 왜 그렇게 힘이 있었는지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해본다. 물이 더러워지면 누가 가장 고통받는가. 공기가 더러워지면 누가 가장 고통받는가.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생수 산업으로 누가 돈을 버는가. 생존에 필요한 물을 돈을 내고 사서 마시는 구조에서 누가 가난해지는가. 공기청정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공기를 마시고 있는가. 김종철 선생님이 말하는 녹색은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게 했다.

인간이 태어나서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평등을 누릴 수 있기 위해 생태주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받아들 때마다 움찔했던 건 그 잡지에 가난, 생활, 공동체의 풍경이 당당하게 함께했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에 가장 전복적인 사상은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든 그 사회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분이 남긴 열 권이 넘는 저서도 우리 사회의 소중한 유산이지만, 그보다는 가장 밑바닥의 삶을 생태주의로 복원해 세상을 실제로 바꾸겠다는 구상, 그리하여 미래 문명의 전환까지 밀어붙였던 그 대담함. 그의 구상에 동의하는 이들이 실제로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가 우리 사회를 더 자유롭고, 더 평등하고, 더 민주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던 행동의 힘이 귀하게 남는다.

오늘날 생태주의는 어느 때보다 시대의 정신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의 삶과 만나야 한다는 방향은 잃어가는 듯하다.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의 저자이자 세계생태론을 주장하는 제이슨 W. 무어는 “21세기의 계급투쟁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적잖게 진전될 것이다. 식량이란 무엇인가? 자연이란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가 ‘환경주의’조차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가 어떻게 세련되게 만드는지를 목격해왔다. 이제 생태주의가 마주한 질문은 인간과 자연을 대립시키는 방식이 얼마나 매끄럽게 자본의 책임을 피해가는지,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생태주의가 의도치 않게 협조하는지를 묻게 될 것이다.

끝까지 전복적이었던 사상

기본소득 논의에 열심이셨던 김종철 선생님의 마지막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코로나19로 거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던 올해 봄, 마을버스를 타고 가던 중 작은 횟집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에 눈이 갔다. 물고기의 커다란 눈을 보며 가엽다는 생각을 하다 화들짝 놀랐다. 몇 주째 문을 닫고 임대료도 못 내고 있을 저 횟집 주인과 그 횟집에서 일하던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부터 생각하지 못한 건, 내가 여유로웠기 때문이 아닌가. 소설가 안재성 선생과 만난 자리에서 김종철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생태주의 사상은 이제 꽤 널리 확산되었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시대> 51호) 그의 사상이 어떻게 끝까지 전복적일 수 있었는지를 잊지 않는 것. <녹색평론> 독자로서 고인을 추모하는 법이다.

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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