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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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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방을 열고 당신의 집으로

혼자만의 방들로 이어진 미로를 빠져나와 맞이한 나의 ‘오픈 하우스’
등록 2018-08-07 07:15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반복해서 꾸는 꿈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꿈이다. 돌아가는 집은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알고 보면 어떻게든 이어져 있다. 비밀 통로가 있고 그 통로를 따라가면 이전 꿈에 등장했던 바로 그 집이 나온다. 조금씩 구조가 바뀌어 있기도 하고 장식이 달라져 있기도 하지만 나는 그곳이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과거의 어느 집 조각이 그곳에 있기도 하고 지난날의 집들이 자라듯 변형을 거쳐 나타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른 다리를 내놓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기도 하고 어린 내가 방구석에 누워 있기도 하다. 무서워서 가지 못했던 퀴퀴한 지하방과 깊고 어두운 바닥을 가진 화장실이 알고 보니 미처 발견되지 않은 멋지고 아늑한 장소임을 알게 된다. 이때 느끼는 건 행복의 감각이다. 그래, 나는 원래부터 알고 있었어. 집에는 이토록 좋은 곳이 숨겨져 있었음을.

집이 아니라 방이었다

좁고 갑갑한 통로를 헤매다가 어느새 다다르는, 천장이 앉은키를 넘기지 않는 다락방에는 얼굴을 알 수 없는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기도 하다. 그들은 이불보를 꿰매기도 하고 낮고 무한한 바닥을 채우는 뜨개질을 능숙한 손짓으로 이어가고 있다. 때로 그곳은 함께 어울릴 만한 아늑한 자리였다가 어느 날은 벗어나고 싶어 슬프고 답답한 공간이 된다. 그래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떠나는 곳이다.

미로처럼 얽힌 집을 돌고 돌아 끝도 없이 나타나는 새로운 방을 발견하기도 한다. 알고 있었으나 깜박 잊었던 방은 편안함과 안전함으로 나를 맞는다. 나는 그곳에 온전히 나를 숨길 수 있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것이다. 그 방들은 지치지 않고 다시 깨어나서 내게 문을 연다. 내가 문을 열기를 기다려준다. 방은 나를 지켜주고 방은 나를 품어준다. 방은 오래된 기억이자 감각이다. 이미 알고 있었으나 잊고 말았던, 하지만 돌아와서 나를 어김없이 안아주거나 돌아온 나를 품어주는.

꿈속의 나는 집의 탐험가이다. 방의 사냥꾼이기도 하다. 사라질 뻔한 방을 찾아서 집과 이어준다. 저 멀리 날아가버렸을 방을, 혹은 저 깊이 꺼져버렸을 방을 구출하듯 잡는다. 방과 나는 엄밀히 말하면 공생 관계이기도 하다. 방은 잊히면 사라진다. 방이 사라지면 나는 쉴 곳을 잃는다. 그러므로 찾아가서 문을 두드려야 한다. 열릴 때까지. 혹은 주문을 외워야 할 수도 있다. 방마다 자기만의 언어가 있고 암호가 있으므로 나는 주의 깊게 살피고 이해해야 한다. 느끼면 알 수 있는 것인데 이건 방을 앞에 두고서만 알 수 있으므로 내가 꿈속을 절박하게 헤매는 이유가 된다.

6년 전 받았던 첫 상담에서 상담자로부터 받은 질문이 얼마 전 떠올랐다. 행복한 상태를 떠올려보고 그걸 묘사해보라고 했다. 나는 눈을 감고 대답했다. 프랑스 남부 지방을 연상시키는 장소의 바닷가, 그곳의 집, 그리고 아늑한 방 안의 나를 이야기했다. 상담자는 다시 물었다. 함께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질문에 당황하는 나를 상담자는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는 대답했다. 혼자예요. 당연히. 누군가가 곁에 있으리란 게 애초에 떠오르지 않아요.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아요.

당신을 상상하지 않은 이유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어릴 적부터 안도와 위안은 혼자일 때 왔다. 혼자가 될 때, 온전히 나를 숨길 때,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을 때. 조인 숨을 탁 풀고 몸을 누르는 긴장을 벗고 스르르 나를 놓을 수 있는 순간. 아무도 나를 탓할 수 없고 비난할 수 없고 바라지 않는 때. 그러나 비로소 혼자만의 방을 가지게 되었을 때 깨달은 건 그 방에서조차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나를 꾸짖고 힐난하고 몰아가는 수많은 나와 동거 중이었다. 그들은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했고 언제 떠났다가 돌아올 줄 모르는 존재였다. 나는 나를 가장 아프게 비난하는 나와 더 친했다. 더 익숙했다. 나를 비난하는 자들에게 더 긴밀히 연결되었던 삶의 패턴처럼 그곳에서도 당연히 그랬다.

성장하고 내가 좀더 나를 잘 다루게 되었다고 느꼈을 때, 나는 내가 조금 대견해졌다. 대견스러운 나는 다음과 같은 나였다.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나. 관계로부터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는 나. 관계 때문에 아파하지 않고 관계 때문에 즐거울 수 있는 나. 관계를 통해 행복할 날을 떠올리지 않고도 지금 충분히 여기에서 기분 좋은 나. 첫사랑을 시작으로 만났던 연인들에게 느꼈던 불편하고도 때론 귀찮았던 순간은 그들이 내게 미래를 암시하는 이야기를 꺼낼 때였다. 한 남자가 말했다.

서희야, 우리가 나중에 같이 살게 되면 말이야. 집에 많은 사람을 초대하며 지내자.

싫어. 난 집에 누가 오는 게 싫어. 집은 혼자 있기 위

한 곳이야.

그렇다면 이층집을 구해서 2층에 너 혼자 있을 곳을 마련하고, 1층에서 사람들을 맞이하자.

아니. 1층이 소란하면 2층에서 쉴 수 없어서 안 돼. 집은 아무도 함부로 올 수 없는 곳이어야 해.

시작부터 그의 질문은 내게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내 집에 그를 상상한 적이 없었다. 나는 미래를 관계를 통해 꿈꾸지 않았다. 그건 너무 버겁고 힘든 상상이었다. 내게 미래를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지금을 대신 말했다. 지금 행복하고 지금 함께하자. 하지만 이제 와선 생각한다. 단절된 유리구슬 안과 같은 지금은 과연 온전한 지금이 될 수 있을까. 현재를 즐기고 지금을 누리라는 말 속 현재는 미래를 배제한 곳으로 기능해야 하는 걸까. 관계는 견뎌서는 안 되는 걸까. 즐겁지 않다면 벗어나고 버겁기 전에 떠나야 하는 걸까. 관계를 통한 미래는 어차피 불행해질 거라는 예감 속에, 나는 미래 혹은 더 큰 행복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린 건 아닐까. 이토록 무수한 나로 북적이는 나의 혼자 됨은 과연 내가 꿈꾸던 혼자 됨일까. 나는 함께하는 대신 나로 소란한 혼자를 견디는 건 아닐까.

카르페디엠의 노예

결혼을 결정했던 나는 외부 세계와 나를 차단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했다. 이전 관계들에서 자발적으로 멀어졌고 유배하듯 새로운 환경으로 나를 보냈다. 소통보다는 안전한 거리감으로 나의 공간을 보장받길 원하며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10년을 훌쩍 지나면서 그마저도 공허감에 뒤틀리기 시작했다. 5년 전 이혼의 과정을 시작하면서는 홀로서기, 혼자서도 당당한 삶에 관한 서적을 찾아 읽었다. 홀로 사는 삶에 힘을 북돋워주고자 했다. 너무 큰 힘이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관계에 연연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양 나를 몰아가기까지 했다. 함께 먹는 밥보다는 혼밥이, 함께 마시는 술보다는 혼술이, 함께 나누는 일보다는 홀로 하는 작업이 더 편하고 좋다고 강조하는 나를 곳곳에서 발견했다. 가정을 이루고 지냈던 지난 시간을 내게 맞지 않았던 시간이라고 부정하기도 했다.

‘독립적인 나’는 홀로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걸 지나, 관계로부터 뒷걸음쳤다. 달콤함만 가지면서 견디고 인내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당장의 조바심으로 현재를 망치기도 했다. 지금 여기서의 행복을 강박적으로 강조하며 불행해졌다. 나는 지금 당장 당신과 행복하지 않으므로 당신과의 관계는 폐기되어야 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상대를 나와 같은 리듬을 타야 한다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누구나 다른 속도와 다른 방식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지 못했다. 관계를 위해서라면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함에도, 내게는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 양 기다림을 허하지 않았다.

여유가 사라졌고 느긋함이 멀어졌다. 현재라는 창살 속의 노예와도 같았다. 달팽이처럼 현재를 지고 기어가는 나는, 지금 당장 홀연히 날아갈 듯 소리쳤다. “카르페디엠!” 그러나 외칠수록 불행해졌다. 외면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해진 불행의 느낌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지금을 누리고자 했으나 그럴 수 없어 바로 지금 불행하다고.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도움이 필요하다고.

지난달 나는 서울에 정기적으로 머물 공간을 마련했다. 평소에 따르고 좋아하던 선생님 집의 3층이 비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문자를 보냈다. 집에 가보지도 않고 바로 계약을 맺었다. 맨 처음 그 집을 방문하던 날의 오후는 뜨겁고 화창한 날이었다. 나는 불행의 느낌에 허덕이며 앞으로 살게 될 집을 찾았다.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매다가 저 멀리 골목 끝 문 앞에 서 계신 낯익은 모습이 손을 흔드는 걸 보았다.

그를 따라 들어선 1층 방은 천장이 낮고 아늑했다. 어느새 내 앞에는 시원한 차가 놓였고 곧이어 지방 곳곳에서 올라온 김치와 젓갈과 밑반찬과 그가 손수 끓인 육개장이 올라왔다. 나보다 나이 든 여자가 먹여주는 밥상은 왜 그리 달고 맛있는지, 온몸이 혀가 된 양 전부로 탐닉했다. 부엌을 지나 들어간 그의 방은 바닥에 앉기 좋은 곳이었다. 오랜만에 엉덩이를 대고 앉은 마루에는 온기가 어려 있었다. 올려다본 천장은 아늑한 높이로 떠 있었고, 마당의 잔디와 여름의 하늘과 풍성한 뭉게구름이 유리창 너머 가득했다.

나는 문득 알아버렸다. 집에 왔구나. 여기는 집이구나. 이곳은 나의 집이고 당신의 집이구나. 내 꿈속 그 집에는 어린 나와 엄마 아빠 말고는 거주자가 없었구나. 지난날의 연인도, 10여 년을 함께했던 전남편도 맞은 적이 없구나. 나는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혼자이길 꿈꾸며 방을 찾아헤매는 아이였구나.

나는 아이였구나

내 앞의 여자를 시선 가득 바라봤다. 그의 안내로 이제 세 여자가 각층을 차지하며 살 집을 구경했다. 며칠 뒤엔 세 여자가 모여 2층 여자가 만든 점심을 함께 먹었다. 몇 차례의 드나듦으로도 나는 스스럼없이 그들 집 문 앞에서 손을 들어 두드릴 수 있었다. 지난날로 무겁게 가라앉았던 꿈속 집도 이 집을 품어 안고 자라날 수 있을까, 희망을 품어내자 불행이 꿈틀했다. 관계의 상상 폭이 넓어지자 평안함이 찾아왔다.

안전은 나를 숨김으로써 얻어지지 않는다. 나는 숨을 방이 아니라 안전의 감각을 찾아 탐험했을 것이다. 이제는 방이 아닌 집을 열어 나누는 삶을 상상한다. 내 꿈속 집의 풍경도 달라지길 꿈꾼다. 나는 이제 고립된 현재 또는 숨을 방에 허덕이지 않는다. 상상과 맞닿은 희망으로 현재를 누리려 한다.

이서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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