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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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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단식 2주 해보니…눈이 밥알처럼 내리는구나

‘공복친구들’ 108명과 함께 새해 단식 프로그램 참여… ‘간식 천국’ <한겨레21>이 ‘음식 지옥’, 2년 전과 달리 이번엔 지방이 빠져
등록 2024-01-19 08:08 수정 2024-01-24 13:55
작가 pvproductions 출처 Freepik

작가 pvproductions 출처 Freepik


<한겨레21>은 간식 천국, 김밥 나라였다. 마감날이 되면 동료들은 단체로 사온 김밥을 우걱우걱 씹으면서 우다다다 자판을 두드렸다. 오후가 되어 배가 꺼지면 피자, 치킨, 떡볶이 따위를 주문했다. 2024년 새해가 밝자마자 더욱 확실히 알게 됐다. <21>의 마감 지옥은 곧 음식 지옥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이 단식 체험기는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는 <21>에서 일하며 2주간 고통받은 어느 중년 노동자의 기록이 됐다.

2년 전, 새해를 맞아 단식 체험기를 신문에 썼다.(‘새해, 단식을 해봤다… 체지방률이 늘었다’ 참조) 홀로 2주간 단식한 끝에 체중은 3㎏ 빠졌고 복부 둘레는 5㎝ 줄었다. 단식 뒤 인바디 측정 결과는 별로였다. 1㎏ 넘게 근손실이 있었고, 체지방량은 그대로, 체지방률은 1.7% 증가했다. 단식 전엔 ‘경도비만’이었지만 단식 후엔 ‘비만’으로 나타났다. 단식을 반대하던 의사들은 그것 보라는 듯 운동 처방을 내렸다. 단식 체험기가 신문에 나가자마자 이번엔 독자들이 와글와글했다. 단식을 제대로 하지 않아 결과가 나쁘게 나온 거라고 나무랐다. 한국에 단식 지지자가 이렇게 많았나?

2023년 말이 되자 다시금 주체할 수 없이 살이 쪘다. 갱년기 여성의 체중 증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돈과 시간 그리고 의지력 정도 아닐까. 돈과 시간이 없다면 기댈 곳은 오로지 의지력뿐이다. 부랴부랴 단식을 결정했다. 편집장은 체험기를 쓰라고 했다.

단식 전 먹은 달콤한 것들.

단식 전 먹은 달콤한 것들.


전단식: 마음이 널뛰다

2023년 12월 말, 무려 108명이 참여하는 단식 단체대화방에 들어갔다. 이름하여 ‘공복친구들’. 도심 속 생태공동체 ‘전환마을은평’에서 10년째 하는 새해 단식 프로그램이다. 음식을 줄여가는 ‘전단식’(준비 단식) 3일, 생수와 효소물만 먹는 ‘본단식’ 3일 반, 음식량을 늘려가는 ‘후단식’(보식) 7일을 포함해 꼬박 2주 일정이다. 1인당 2만원의 참가비를 내는데, 필요한 곳에 전액 기부한다.(이번에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해 쓰였다.)

단식을 안내하는 ‘소란’ 유희정(농부·전환마을은평 대표)씨가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사전설명회를 열어 단식의 개념과 효과를 설명했다. 단식은 음식물을 끊어 장기를 쉬게 하고 몸의 독소를 빼내며 지방을 연소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공복친구들’은 단식 전날까지 원없이 먹어두려는 것 같았다. 나도 1월1일 떡국을 잔뜩 끓여 먹었고 6년 만에 최대 몸무게를 찍었다.

전단식 1일차, 가장 강렬했던 유혹.

전단식 1일차, 가장 강렬했던 유혹.


1월2일, 대망의 감식 첫날부터 모진 시험에 들었다. 오찬을 겸한 부서 신년회. 도시락으로 된장국과 현미밥 5분의 3 공기를 가져갔는데 눈앞에 홍어삼합, 달걀찜, 골뱅이숙회, 산낙지, 꼬막비빔밥 등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잘 참았지만 마지막 유혹은 너무도 강렬했다. 동료들이 식사 마무리로 해물라면을 시킨 것이다. 막걸리잔에 맹물을 가득 담아 꼴깍꼴깍 삼켰다. 오후부터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졌다. ‘브레인포그’였다.

감식 이틀째. 죽을 먹었다. 죽을 맛이었다. 소란은 “전체 단식 과정 중 오늘, 내일이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눈이 뻑뻑하고 힘이 없으며 두통이 시작됐고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소한 일에 분노가 솟구쳤지만 힘이 없어 화내지는 못했다. 동료들은 온종일 먹는 이야기를 했다. “마라탕, 마들렌, 꿔바로우” 등을 먹자고 했다.

감식 사흘째. 미음을 먹었다. 아니, 마셨다. 혀에 어마어마한 백태가 끼었다. 출판 담당이라 신간을 검토하는데 음식책이 눈에 띄었다. 편집장은 치킨을 시켰다. 평소 채식 위주로 먹기 때문에 치킨 냄새에도 꽤 초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식 중엔 다르네? 온몸이 아우성쳤다. 단톡방에 들어가 ‘공복친구들’에게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친구들은 어김없이 ‘파이팅!’을 외쳐줬다. 치킨을 뜯던 동료들은 마감 뒤에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해맑게 제안했고, 누군가 또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이 정도면 직장 내 괴롭힘 아닌가!

전단식 2일차.

전단식 2일차.


본단식: 단식의 이론과 경험

종교적 단식을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영적 고양감을 맛본다. 과학적으로는 ‘케톤’에 비밀이 있다. 케톤은 분해된 지방조직이 전환되는 물질로서 뇌, 근육, 간 등에서 포도당을 대체하는 원료가 된다. 탄수화물을 끊어 뇌의 주연료가 케톤으로 바뀌면 정서적 불안정이 사라지고 생각이 또렷해진다고 한다.

캐나다 신장 전문의 제이슨 펑은 <독소를 비우는 몸>에서 비만의 원인으로 과도한 인슐린 분비를 꼽았다. 이를 보면, 단식은 인슐린 분비를 낮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는 단식으로 체중 감소, 2형 당뇨병 개선, 체력 증강, 노화 지연, 심장 건강 향상 등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단식 중에 당이 떨어져 손발이 떨리고 땀이 난다고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실제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며.

하지만 내겐 그런 일이 벌어졌다. 2년 전 단식 때 몸이 벌벌 떨리는 저혈당 증세를 보였지만, 단식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몸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가짜 저혈당’이라고 했다. 과연 그런지 이번엔 혈당측정기를 2주간 팔뚝에 부착해 측정했다. 본단식 전날, 출근해서 일하는데 진땀이 나서 재보니 혈당측정앱에 새빨간 경고등이 들어왔다. 67㎎/dL(데시리터당밀리그램). 대한당뇨학회 자료를 보면, 혈당이 70㎎/dL 이하일 때 증상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즉시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서둘러 효소물을 마셨다. 30분 뒤 혈당은 94㎎/dL로 회복됐다. 그 뒤에도 이따금 혈당에 빨간불이 켜졌다. 단식 때 수시로 효소물을 마시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인 듯했다.

전단식 3일차 미음.

전단식 3일차 미음.


한국에서 건강단식 시작은 1980년대 일본의 니시 가쓰조(1884~1959)가 창안한 대체의학이 소개되면서다. 20~30년 전 새해를 맞아 엄격하게 실시하던 영성단식은 열악한 환경에서 인내로써 견뎌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된장차와 효소 등을 패키지로 한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생겼고, 시민단체가 건강증진을 위한 단식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단식인은 꼬불꼬불한 대장 사이에 낀 ‘숙변’을 제거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양의나 한의나 주류 의학에서는 숙변이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 또한 여러 차례의 단식 동안 숙변이 쏟아지는 것을 체험한 적이 없었다. 단식 때는 매일 제산제인 마그밀을 먹으면서 장을 비우는데, 여러 사람이 “(마그밀을 먹는 동안) 방귀를 뀌면 절대 안 된다, 지린다”고 경고했다. 나는 그런 적이 없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번엔 달랐다. 회의하다가 배가 아파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엄청난 악취와 함께 묽은 변이 쏟아졌다. 전날 장을 완전히 비웠다고 생각했기에, 이번에 쏟아진 찌꺼기는 숙변이라 할 도리밖에 없었다. 향수를 뿌리고 회의실에 다시 들어갔지만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단식 때마다 몸의 느낌이 달라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고, ‘공복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다.

후단식 6일차.

후단식 6일차.


후단식: 단순한 생활로 돌아가다

드디어 후단식 첫날. 단톡방에서는 몸의 안 좋은 곳이 개선되고 효과를 봤다는 ‘간증’이 이어졌다. 반면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이야기도 비슷하게 올라왔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 ‘공복친구들’은 “눈이 밥알처럼 내린다”고 말했다.

2022년 단식 일기에는 만둣가게 ‘편의방’에서 만든 생선만두를 먹고 싶다고 썼다. 그러나 이제는 단식이 끝나도 그 만두를 먹을 수 없다. 만두가게 주인은 주재료인 삼치를 구하기가 힘들고 설사 생선을 구하더라도 너무 비싸 만두를 빚을 수 없다고 했다. 기후위기 탓일 것이다. 새해 단식은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을 함께 던졌다. ‘공복친구들’은 단식 기간에 돈을 쓰지 않는 소비 단식과 무탄소배출을 위해 노력했고 머리카락과 몸에도 세제를 거의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단식 기간에 고요하고 편안한 생활을 했으며 식생활을 돌아봤다고 말했다.

단식을 끝낸 밥상.

단식을 끝낸 밥상.


미음, 묽은 죽, 된죽, 밥으로 점점 식단을 바꿔가며 보식이 끝났다. 단식 초기에 찾았던 보건소를 2주 만에 다시 방문해 인바디 검사를 했다. 측정 결과 체중은 총 3.2㎏ 줄었다. 2년 전엔 체지방률이 늘었지만 이번엔 체지방률이 33.7%에서 32.3%로 줄었다. 체지방량은 19.2㎏에서 17.7㎏으로 1.5㎏줄었다. 다만 골격근량도 20.1㎏에서 19.7㎏으로 0.4㎏ 함께 줄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근손실만 있었던 2년 전보다 성공적인 결과다.

단식 뒤 나흘간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었지만 채소 위주로 먹어선지 체중은 요요 현상 없이 유지되고 있다. 내 몸을 끝없이 돌보고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쩌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언명령 같아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1년에 한두 번, 전환의 삶을 고민하는 계기를 만드는 일은 중요한 것 같다. 이제 날이 풀리면 달리기를 해봐야겠다. 못 먹어도 고(go), 아니, 이제는 먹으면서 고다!

보건소에서 인바디 측정을 했다.

보건소에서 인바디 측정을 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단식으로 시작하는 지속 가능한 삶” 전환마을은평 유희정 대표

소란 유희정 제공

소란 유희정 제공


유희정(대화명 소란) 전환마을은평 대표는 10년 전부터 ‘공복친구들’과 함께하는 새해 단식을 이끌어왔다. 처음엔 15명 정도 참여한 단체대화방이었지만 이제는 매년 100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 모여 함께 새해맞이 단식을 한다.

소란은 노동운동, 여성운동을 하다가 성폭력 가해자 상담도 했다. 그사이 심신이 지쳐 생태공동체인 영국 남서부 토트네스 마을로 떠났다. 기후변화 위기 앞에 재앙을 막아보자는 생활운동인 ‘전환마을운동’을 펼치는 곳이었다. 귀국 뒤 소란은 서울 은평구에서 친구들과 텃밭을 일구고, 밥상을 차리고, 풀을 뜯어 효소를 담갔다. 자립적 경제공동체를 만들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고민하는 ‘퍼머컬처’ 운동과 생태철학을 바탕으로 한 전환운동을 벌였다.

“공동체에서 매년 농사지으니 풀을 뜯어 효소를 만들고, 몸에 좋은 것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2024년 모인 ‘공복친구들’ 108명도 대부분 전국에서 농사 기반으로 활동하는 분들이에요. 유기농 먹거리를 공급하는 농부, 활동가, 반농부 학자도 많고요.”

소란은 농사짓는 한편 허브와 약초의 약효를 연구하는 ‘허벌리스트’가 됐다. 흔한 풀이 가진 약효를 익히고,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공부했다. 2주 동안 단톡방에 쉼없이 올라오는 질문 하나하나에 소란은 성실히 답했다. 짜증이 날 법한데도 유머를 섞어 위로하고 안내하는 자애로운 단식 선생이었다.

“이 시기에 마음공부 한번 한다고 생각해요. 하하. 너무 단식을 신성시하며 압박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보다 느슨하게 하는 공동체 단식은 일상에서 몸의 감각을 익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요. 아기 돌보듯 자기 몸을 돌보고 살펴보는 2주간의 새해 단식을 통해 한 해 동안 살아가는 힘을 얻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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