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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글로벌리즘은 아직 멀다

딸 찾아 한국에 온 ‘만수르 아버지’ 이야기

<죽어야 사는 남자> 둘러싼 이슬람문화 희화화 논란
등록 2017-08-02 02:44 수정 2020-05-03 04:28
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 최민수는 중동 갑부가 된 중년 남자를 그린다. 드라마는 아랍 세계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을 강화한다. MBC <죽어야 사는 남자> 현장포토

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 최민수는 중동 갑부가 된 중년 남자를 그린다. 드라마는 아랍 세계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을 강화한다. MBC <죽어야 사는 남자> 현장포토

(MBC)는 중동의 부호가 된 한국인 남성이 35년 만에 딸을 찾아 한국에 오는 소동을 담은 코믹 드라마다. 오랜만에 출연한 최민수가 중동의 백작이자 로맨티시스트로 분해, 특유의 과장되고 느끼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슬람문화를 왜곡한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방송사는 SNS 계정을 통해 사과했지만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본질에서 빗나간 사과

드라마는 가상의 나라 보두안티아의 한국인 백작을 보여준다. 1979년 건설노동자로 중동에 간 장달구(최민수)는 그곳의 정변에 휘말린다. 총 들고 지켜낸 사람이 권좌에 오르자, 개국공신으로 인정받아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이 된다. 이후 럭셔리한 생활을 하던 중 공주와 결혼하라는 왕의 명령을 받는다. 왕이 명령을 거부하면 전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협박하자, 그는 한국에 딸이 있다는 핑계를 댄다. 35년간 아버지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온 딸을 데려오겠다며 한국에 온 장달구. 그의 딸 이지영A(강예원)는 남편과 구질구질한 일상을 살고, 사위(신성록)는 세련된 이지영B(이소연)와 바람을 피운다. 드라마는 두 이지영에 대한 혼선을 깔아놓은 채, 갑자기 나타난 부자 아버지의 돈 쓰는 광경을 코믹하게 담는다.

는 ‘갑자기 나타난 만수르 아버지’가 구질구질한 현실을 한 방에 해결해주면 좋겠다는 판타지를 가공 없이 드라마로 옮긴 것이다. 돈에 대한 원한, 부모덕·처가덕이 절대적 변수가 된 현실에 대한 푸념, ‘헬조선’을 탈출하려 꾸는 글로벌한 꿈 등이 드라마의 바닥에 흐른다. 한국인들끼리라면 드라마의 설정이 품은 빈궁하고 천박한 정서가 자조적일 뿐, 누구를 공격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드라마가 재현한 중동 및 이슬람 세계의 모습은 굉장히 왜곡됐다. 와인잔을 든 장달구나 강제결혼 명령도 어이없지만, 히잡 쓴 여인들이 비키니를 입고 등장하는 장면이나 코란을 펴놓은 테이블 위에 발을 올린 모습이 담긴 포스터는 무슬림을 분노케 했다. SNS에는 무슬림의 계율상 이 장면들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성토가 이어졌다. 방송사는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 픽션이고, 아랍 및 이슬람 문화를 희화화하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할 의도는 없었다”고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는 본질에서 빗나간 사과다.

보두안티아가 가상국인지 아닌지는 핵심이 아니다. 드라마는 보두안티아를 아라비아반도의 산유국이자, 1980년대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개국한 이슬람문화권 신흥 부국으로 묘사한다. 여기에는 한국인이 중동 및 이슬람 세계에 대해 품은 이미지가 집약돼 있다. 왜곡할 의도는 없다는 말은 진실일 것이다. 아무런 악의 없이도, 자연스러운 왜곡이 가능할 정도로 한국인이 이 세계에 품은 이미지는 정형화돼 있다.

드라마에 녹아 있는 중동 및 이슬람 세계의 이미지는 대략 이렇다. 1970년대 건설노동자가 돈 벌러 갔던 곳이자 ‘만수르’로 대변되는 갑부들이 있는 나라, 공화국인지 왕국인지 알 수 없고 독재·쿠데타·내전이 빈번한 정치 후진국, 일부다처제와 여성 억압적인 문화가 만연한 곳 등이다. ‘오일머니’와 ‘비민주성’이라는 두 키워드로 이미지가 구성될 뿐, 평범한 무슬림이 어떤 계율을 지키며 살아가는지는 안중에 없다. 그 결과 히잡에 비키니를 입고 누워 있는 여인들과 강제결혼이 동시에 등장한다.

문화 다양성이 부족한 한국의 이중 잣대

드라마는 이슬람 세계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을 강화한다. 이것은 실질적인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낳는다. 지금 한국에는 무슬림 이주민이 존재하며, 한국의 문화콘텐츠는 전세계 무슬림과 직접 만난다. 중동 및 이슬람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1970년대 오일머니와 만수르의 표상 사이에 놓일 때, “중동으로 돈 벌러 가자”는 박근혜의 말은 가능해도 그곳에서 온 이주민이나 그곳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결과 무슬림 노동자에게 삼겹살에 소주를 회식으로 강요하는 사장님이나, 케이팝을 즐기는 히잡 쓴 소녀들에게 스킨십을 시도하는 가수가 등장한다. 한류가 수출되는 것엔 으쓱해하지만, 이를 볼 수용자들의 문화에는 무관심하다. 드라마 속 장달구는 공항에서 환영받는 아이돌을 보고 “기능올림픽 수상자들이냐?”고 묻는다. 자신이 떠나온 ‘1970년대 한국’에 사고가 고착됐음을 보여준 장면이지만, 드라마의 인식도 여기서 멀지 않다.

얼마 전 SNS에서 타 문화의 존중 없는 콘텐츠로 논란이 된 예가 또 있었다. 이효리의 신곡 에는 ‘가야트리 만트라’가 삽입돼 있다. 가야트리 만트라는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경구로, 힌두인들이 매일 새벽 암송한다. 명상음악 형태로 암송되기는 했어도, 대중음악에 삽입된 예는 극히 드물다. 를 접한 남아시아인들이 무례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물론 이효리가 인도 문화의 존중 없이 사용했다고 말하긴 힘들다. 이효리는 2011년 인도에 봉사활동을 간 이후, 렌틸콩을 알리고 요가를 수련하는 등 인도 문화에 친연성을 보였다. 2015년에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마힌드라그룹 회장에게 자신의 요가 사진과 함께 “부디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당신의 나라 인도의 사랑을 주세요. 나마스떼”란 트윗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효리가 얼마나 인도 문화를 사랑하는지는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2009년 인도인 교수 인종차별 사건에서 보듯이, 한국에서 남아시아인들은 차별당하고 있다. 힌두교에 대해서는 주요 종교라는 인식도 없다. 이 상황에서 힌두교의 가장 상징적인 경구를 노래에 삽입하고 인도풍 의상과 요가 동작을 활용한 춤사위로 관능적인 무대를 펼치는 것을 두고, 단지 문화 다양성이 부족한 한국에서 인도 문화의 대중 접점을 높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예컨대 한국에 온 이주민이 새벽마다 만트라를 암송하는 것은 미개한 짓으로 간주되지만, 이효리 무대에 녹아 있는 인도 문화는 신비하고 힙한 것으로 소비된다면 이는 타 문화를 이중 모독하는 행위 아닐까.

차별과 혐오에 대한 낮은 인식

지난 4월에는 예능 프로그램 에 홍현희가 흑인 분장에 미개인 복장을 하고 나온 것이 외신에 알려져 공분을 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1980년대 ‘시커먼스’도 흑인 비하냐?”는 황당한 두둔 발언이 나오는 등 차별과 혐오에 대한 낮은 인식을 드러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문화를 돈 벌어주는 수출상품으로 볼 뿐, 세계인과 소통하는 장으로 보는 인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악의가 없더라도, 헬조선의 궁핍함을 드러내기 위한 자조 섞인 차용이거나, 문화적 변방에서 문화 교류에 앞장서려는 선의가 있더라도, 타 문화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진정한 글로벌리즘은 아직 멀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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