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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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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우리의 것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의 세 여성

젠더 권력 쥔 남성연대에 같이 맞서다
등록 2017-11-03 07:28 수정 2020-05-02 19:28
<부암동 복수자들>의 주인공인 세 여성은 남성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 ‘복수의 연대’를 결성한다. 네이버TV tvN 화면 갈무리

<부암동 복수자들>의 주인공인 세 여성은 남성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 ‘복수의 연대’를 결성한다. 네이버TV tvN 화면 갈무리

은 웹툰을 원작으로, 세 여성이 의기투합하여 나쁜 인간들에게 복수한다는 서사를 지닌다. 학교폭력·가정폭력·성추행 등 드라마가 다루는 갈등이 사소하지 않지만, 극의 분위기는 코믹하다. 이들의 복수는 치명적이지 않지만 망신의 효과는 크다. 인물의 묘사도 다소 캐리커처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요원, 라미란, 명세빈 등 꼭 맞는 캐스팅의 배우들이 캐리커처화된 인물들을 현실의 온기를 지닌 인물들로 보이게 한다.

드라마의 대결 구도는 선명하다. 재벌가 사모님인 정혜(이요원)와 교수 부인인 미숙(명세빈) 그리고 시장 상인인 도희(라미란)는 서로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정혜와 미숙은 약간 면식이 있지만, 도희는 초면인 사이였다. 그 자리에서 정혜는 대뜸 ‘복자클럽’(복수자 클럽)을 제안한다. 서로를 보며, 복수가 필요한 사람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언니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언니 일”

정혜는 자본주의의 최고 가치인 돈을 가졌지만, 가족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재벌들 간의 정략결혼으로 남편을 만났고, 아이를 갖지 못했다. 시가에서는 불임으로 눈 밖에 났고, 친정에서는 처음부터 혼외자였다. 그런데 갑자기 19살 먹은 혼외자가 나타나 남편의 아들로 인정받는 분위기이다. 억울하고 서럽지만 하소연할 데가 없다.

미숙의 남편은 교수이자 교육감 후보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다. 미숙은 온몸이 멍투성이고 남편의 손길만 닿아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폭력이 벌어질 때마다 미숙은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말한다. 미숙의 가정에는 아들의 자살이라는 트라우마가 있다. 본래 고아였던 미숙은 자존감이 낮고 가족에게 헌신적이었다. 아들의 죽음에 죄의식을 안은 미숙은 폭력 앞에 당당하지 못한 태도로 남편과 딸에게 경멸을 받는다.

도희는 남편 없이 남매를 키우는데, 아들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오히려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었고, 기간제 교사가 된 딸은 교장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드라마는 복수 품앗이를 하려고 모인 여성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진짜 자매처럼 느끼고, “이젠 품앗이가 아니라 가족이야. 언니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언니 일이야”라고 말할 만큼 공감에 도달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의 맞은편에는 젠더 권력을 쥔 남성연대가 있다. ‘복자클럽’을 만드는 과정에서 세 여자는 시험 삼아 여직원에게 ‘갑질’하는 진상 남성 고객을 혼내준다. 그들의 본격적인 첫 복수는 교장이 학부모 앞에서 자빠지고 엎어지며 바지를 벗고 도망치게 만든 일이었다. 이들의 복수 대상은 교장-미숙 남편(교육감 후보)-정혜 남편(자본가)인데, 이들은 선후배로 공고한 ‘남성연대’를 이루고 있다. 이들이 점잖은 척 모여서 ‘동남아’(동네 남아도는 아줌마들)니 ‘아내는 관상용’(만지지 않고 보기만 하는 존재)’이니 하는 여성 혐오 발언을 지껄이며 국외 성매매를 태연히 입에 담는 장면은 역겨움을 일으킨다. ‘복자클럽’이 성추행한 교장을 응징하러 나서면서 “잘라버려”란 말과 함께 칼, 가위 등 연장을 꺼내드는 모습은 명백히 ‘거세’를 암시한다.

고통의 연대에 눈뜰 때

계층을 초월하여 자매애로 뭉친 여성들이 권력을 쥔 남성연대에 맞선다니, 일찍이 이렇게 선명한 구도가 있었던가. 나 처럼 여성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뭉치는 활극을 보여준 예는 있었지만, 그 상대가 뚜렷한 남성연대인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가 있었다. 영화 에선 6명의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을 보여주면서, 사건의 진상으로 불륜한 아내를 죽이고픈 남편들의 교환살인을 내놓았다. 이런 교환살인이 가능하려면, 불륜한 아내를 응징해야 한다는 이념을 공유하거나, 아내의 불륜에 고통받는 남성들이 자기연민으로 뭉친 ‘남성연대’가 존재해야 한다. 영화는 심각한 젠더 폭력의 본질을 품고 있지만, 코미디적인 분위기에서 문제를 희석해버린다. 사건을 수사하는 두 남성은 기묘한 합을 이루는데, 이들은 생계노동과 가사노동을 하라고 아내에게 들볶이는 ‘공처가’로 동병상련의 연대감을 지닌다. 영화는 여성들을 시체로 전시하거나 남편에게 바가지 긁는 존재로 묘사할 뿐, 여성들이 어떤 공포와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 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은 돈이 있건 없건 고통받으며, 이들이 각성해 고통의 연대를 맺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자클럽’에는 남성 멤버가 하나 있다. 정혜 남편이 데려온 수겸이다. 일단 유일한 남성 멤버가 세 여성을 지도하는 ‘오빠’가 아니라 아들뻘이라는 점은 신선하다. 여기에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수겸은 자신의 친부모나 출세를 보장해줄 할아버지가 아니라 정혜에게 합류한다. 이는 그의 욕망이 혈육이나 가부장적 권력을 벗어나 있음을 말한다.

가부장적 관계에서 정혜와 수겸은 적대적 위치에 놓인다. 이들이 연대할 수 있는 것은 혼외자라는 고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미숙과 시어머니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가부장제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적대적 권력관계에 놓인다. 그러나 폭력이 대물림된 미숙의 가정에서 일생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시어머니에게 미숙은 동질감을 느낀다. 이는 이해관계가 아니라 고통의 연대에 눈뜰 때 전혀 다른 관계의 가능성이 펼쳐진다는 것을 뜻한다.

혹자는 정혜의 돈질이나 갑질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도희에게 갑질하는 학부모에게 정혜가 나타나 더 큰 갑질로 응수하는 장면은 한편 그리 보일 만도 하다. 그러나 드라마가 강조하는 것은 ‘약자들에 대한 임파워먼트’이다. 처음에 정혜는 도희에게 단순히 돈을 주며 도우려 했지만 도희의 반발을 산다. “거지 취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조금 마음이 열린 상태에서 정혜는 적절한 도움의 방법을 찾는다. 그는 도희의 자신감을 높이도록 외모를 꾸미게 하고,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정연하게 말할 수 있도록 연습시킨다. 이후 줄어든 합의금은 도희가 낸다. 도희가 ‘정혜 카드’를 쓸 때 상대인 학부모는 비굴함을 보이며 돌변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것을 비웃으며 도희 스스로 “정혜가 없어도 CCTV가 없어도 당신 따위 하나도 겁 안 나”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 정혜가 ‘그림자 호위무사’ 구실을 한 셈이다.

TV 드라마에 대세로 도래한 ‘여성주의’

이런 역할은 필요하다. 도희의 아들도 놀리는 아이에게 말려들어 번번이 욱하며 폭력으로 응수했지만, 상급생인 수겸이 곁에 있어준 이후에는 상대를 조롱할 여력이 생겼다. 도희가 길에서 남성에게 위협당할 때, 낯선 남자가 나서서 도와주는 장면도 비슷한 맥락을 지닌다. 어려움에 빠진 약자가 용기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며, 다만 그의 주체성을 존중하고 그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 요구된다.

은 과 더불어 최근 여성주의의 기류가 TV 드라마에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도래했음을 알려준다. 콘텐츠 제작자라면 부디 시대정신에 눈뜨길 바란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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