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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다시 출항하자

우의적 연작소설 펴낸 작가 한창훈과 삽화 그린 딸 한단하
등록 2016-08-18 06:44 수정 2020-05-02 19:28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다갈다갈’. 끓는 물에 달걀들 서로 부딪치는 소리. 한국 사회 현실은 어떤가. 최고권력자의 몰상식·몰염치에 민중은 다갈다갈 고통스럽다. 끓는 물 속 달걀과 염천의 사회 안 민중. 둘을 하나로 잇는 마음의 움직임. 알레고리(Allegory·우의)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1915). 벌레로 변한 사람의 기괴하고 착잡한 상황으로 카프카는 인간세를 지목한다. 봉준호 감독의 (2013). 빙하기, 생존자들이 탑승한 열차, 부자와 빈자로 구획된 불평등한 객차, 폭동과 해방의 욕망…. 이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의 알레고리.

덕장에 말린 생선 같은 문장

소설가 한창훈(53)의 최근작 (한겨레출판)도 알레고리의 전형이다. 연작 5편으로 짜인 소설은 무인도에서 고립이 아니라 자립한 사람들, 그 섬에서 본토로 옮겨 새 삶을 살다 돌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취재하는 기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창훈이 상상한 ‘율도국’의 법조문은 단 한 줄. “어느 누구도 다른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창포물 같던 젊은 시절, 그가 지역신문에서 읽은 김종철( 발행인)의 칼럼이 소설의 발원. 칼럼엔 ‘트리스탄 다 쿠냐’라는 남대서양 화산섬 이야기가 있었다. 제목이 ‘단 한 줄의 법조문만 있는 나라’였다고 작가는 기억했다. 당시 그는 대전의 연립주택 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했다.

7월28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한창훈과 그의 외동딸 한단하(22)를 만났다. 한단하는 이번 책에 일러스트레이션 20여 편을 그려넣었다. 작가가 직접 파서 먹여주던 생선 눈알 맛에 길들어져, 어릴 적부터 생선만 보면 눈알부터 빼먹던 딸은 지금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다. “여섯 살짜리가 눈알만 빼먹는 모습을 보며 손님들이 기겁을 했다. (…) 내 딸은 안경을 쓰지 않는다. 눈알 덕분이다.”(한창훈, , 문학동네, 2010)

한창훈 소설은 민중의 입말들이 널린 ‘문학적 덕장’이다. 꾸덕꾸덕한 생선처럼 그의 문장은 감치다. 예사 ‘말수더구질’(말솜씨)이 아니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주고받는 방언은 조정래보다 덜 날카롭고 이문구보다 덜 예스럽다. 가장 많은 독자와 만난 소설 (1998)의 한 대목. “썩을 것, 어째 친구를 사귀어도 꼭 저 같은 것들찌리만 사귀는지 몰르겄다. 참말로 하나같이 똥 밟고 자빠진 꼴들 하고는. 아이구 내 속이야. 어째 저것은 질바닥에 굴러댕기는 방범대원 아들 하나도 못 사귀었다냐.”

소설가 박완서가 “냉동식품이나 방부처리된 포장식품만 먹다가 싱싱한 자연산 푸성귀를 먹는 맛과 같다”고 한 이유다. 이번 소설은 이런 말본새가 전혀 없다. 가지런히 접시에 담긴 생선회같이 말쑥하다. 작가는 말했다. “문장에 정말 정성을 들였다. 아침마다 냉수마찰을 몇 번씩 하고 집중을 했다.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다.”

가령 연작 두 번째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을 보면, 이미 발표한 작품들을 작가가 얼마나 섬세하게 다듬었는지 알 수 있다. 처음 발표 당시 “자신도 그렇게 해온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계간 2010년 겨울호)였던 문장을 작가는 책으로 펴내면서 “자신에게도 몸에 밴 습관이 있기 때문이었다.”로 고쳤다.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원주민 습속”이라고 표현했던 것을 “원주민 습관”으로 바꿨다. 그다음 문장 “무엇을 버린다는 것은 무언가를 새로 얻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았다.”는 책에서 “무엇을 버린다는 것은 무언가를 새로 익히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았다.”로 달라졌다. 작가의 가치관에 섬세한 변화가 읽히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쪽팔린 짓은 안 해야 한다”
한창훈 연작소설집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에 실린 딸 한단하의 삽화. 한단하는 “화려한 포장지를 열어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사람들이 광고하는 행복은 실체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한겨레출판 제공

한창훈 연작소설집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에 실린 딸 한단하의 삽화. 한단하는 “화려한 포장지를 열어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사람들이 광고하는 행복은 실체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한겨레출판 제공

한창훈은 전남 여수 거문도 사람이다. 지금도 거문도에서 지낸다. 1992년 신춘문예 당선을 시작으로 이어진 작가 이력 24년. 그의 소설은 밀착을 넘어 삶과 접착한 듯 보인다. “삶보다 더 진한 소설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일찍이 되묻던 작가였다. 그가 살아온 길도 까닭을 짐작하게 한다. 음악실 디제이(DJ), 트럭 운전사, 커피숍 주방장, 각종 배의 선원, 건설 현장 막노동꾼, 포장마차 사장…. 그는 스스로 말한다. “욕을 잘하고 웃기는 소리도 종종 한다. 그 외는 침묵한다.”

책 뒤 ‘작가의 말’에서 밝힌바, 이 연작소설은 참여정부 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쪽과 함께 구상하면서 비롯했다. 시민교육의 한 방편으로 소설(문학)을 활용하자는 뜻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기획은 어그러졌다. “해야 할 것은 안 하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던 시절”이었다. 작가는 “나 혼자서라도 하겠다”고 다짐했다. 홀로 5년간 작품을 틈틈이 썼다. 그는 한국 사회에 절실한 시민사회 덕목을 이렇게 말했다.

“타인과 약자에 대한 배려, 공정한 룰, 잘못에 대한 인식과 반성, 적절한 통제력, 평범한 삶의 중요성…. 중요한 것은, 우리는 답을 알고는 있으나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첫 단추부터 뭔가 잘못 끼워진 느낌이다. 질문을 받았으니 딱 한마디만 답해보면 ‘쪽팔린 짓은 안 해야 한다’가 되겠다.”

이번 연작소설은 편마다 주제가 두렷하다. 공정하고 평등한 법(‘그 나라로 간 사람들’),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 아이들의 진정한 학습권(‘그 아이’), 올바른 리더십(‘다시 그곳으로’), 일중독(‘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특히 본토에 머물던 사람들이 화물선을 얻어타고 섬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될 위험에 내몰리지만 선원들은 오직 선장의 지시만이 유일하게 옳다며 주민들의 의견을 묵살한다. 가까스로 도착한 섬에서 측량사는 선원에게 말한다. “당신네 배의 선장님은 신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오. (…)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존재이면서도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그게 신 아니겠소?” 2014년 4월의 참사가 아프게 떠오른다.

작가에게 이 대목을 물었다. 작가는 단호하게 말했다. “가장 큰 원칙을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무언가 지금 잘못돼 있고 잘못 가고 있다. 배가 출항했다. 잘못된 길로 배가 가고 있는데 키를 어디로 하고 어디를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돌아가서 다시 출항하자’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다. 조목조목 세목을 해결할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발언도 가능하다고 본다.”

‘행복’ ‘힐링’ 고민 않는 행복한 삶
소설가 한창훈과 그의 딸 한단하. 한창훈은 딸이 공들여 그린 삽화를 고마워했고, 한단하는 자랑하고 싶을 만큼 좋은 아빠라고 했다. 박승화 기자

소설가 한창훈과 그의 딸 한단하. 한창훈은 딸이 공들여 그린 삽화를 고마워했고, 한단하는 자랑하고 싶을 만큼 좋은 아빠라고 했다. 박승화 기자

그의 딸 한단하는 이번 책의 ‘공동 저자’나 진배없다. 책의 으뜸 열쇳말 ‘행복’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한단하의 답이 야무졌다.

“행복이 뭔지 몰라 어려웠다. 아버지가 쓰신 (2011) 중 ‘진수성찬이 다 의미 없다는 말은 진수성찬을 먹어본 자나 할 수 있다’는 대목이 있다. 행복의 필수조건이 경제력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소설 속 쿠니가 본 TV 속 광고들이 외치는 ‘이 아파트에서 사시면 행복해집니다’라는 말이 어느 정도는 진짜인 것처럼. 그런데 를 읽자 경제체제와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른 공간에 간다면 그런 게 의미가 없어지겠다고 느꼈다. 광고들은 자꾸만 행복이 어떤 것인지 정의하려고 하니까 쿠니는 괴리감과 허무함을 느낀다. 행복, 힐링, 그런 단어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 같다.”

한창훈에게도 이번 책은 별나다. 그 또한 ‘딸바보’ 대열에 선 지 오래. 자신의 글에 딸의 그림이 어우러진 책을 받아든 소감이 남달라 보였다.

“애는 어렸을 때부터 저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이를테면 유치원 때 밧줄에 묶여 허공에 매달려 있는 인어만 매일 그렸다. 그것을 보며 나도 맨날 웃었다. 그렇게 통통 튀는 스타일대로 그려달라고 했는데, 이제 성인이 되어버려서 그런지 아빠 원고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심리적 부담이 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공연히 부탁했나, 자책하기도 했다. 지금은 공들여 그려준 딸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내처 삼단처럼 풀기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통박이 돌아왔다. “뭔 질문들이 이렇게 커? 대답하기 지랄맞게.” 답변은 곡진했다.

“나에게 문학하는 사람이다, 문인이다, 이러면 아주 어색하고 불편하다. 뭔가 내가 아닌 것 같다. 문학의 정체에 대해 깊은 고민을 안 했다는 고백도 된다. 작가가 이렇게 말하니 웃긴가? 그렇다면 웃어도 좋다. 문학의 순수성에 목숨 거는 사람을 보면 나도 웃으니까. 나는 문학 바깥에 있는 비문학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타인을 바라보고, 말을 듣고, 기록하는 것이다.”

“어쨌든 멍청하게는 안 앉아 있다”

한창훈에게 소설은 갯내음 물씬하고 펄떡이는 생선일지 모른다. 벽장에 넣어 부패하고 악취가 날 것인가, 덕장에 널어 발효되고 체취가 날 것인가. 땡볕에 그을린 얼굴의 그는 덕장에 서 있다. 또한 완성이 아니라고 했다. 더 쓸 게 있다고 했다. “뭔가 궁리는 하고 있다. 어쨌든 멍청하게는 안 앉아 있다.”

한국 소설이 독자에게 ‘벌레 먹은 오이 꽁다리’ 취급을 받을지언정 작가 한창훈은 삶이라는 바다, 바다 같은 삶에서 소설을 또 길어올릴 것이다.

참고 문헌
(한창훈, 한겨레신문사, 1998).
‘몸으로 배운 언어의 걸쭉한 맛’(민충환, , 2003).
‘방법으로서의 문체’(서경석, 1998년 겨울호, 실천문학사).
(존 매퀸 지음, 송낙헌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1980).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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