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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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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골

등록 2015-07-09 05:13 수정 2020-05-02 19:28
한겨레 김정효 기자

한겨레 김정효 기자

골은 동네 은행에서 계약직 청원경비원으로 일한다. 서울 노량진 학원에 등록하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몇 번 응시했지만 연거푸 낙방한 뒤 선택한 일이다. 고향 부모님께서 매달 보내주시던 생활비와 학원비도 끊긴 지 꽤 되었고 백수로 계속 지내는 것도 무리였다. 시골에 계시는 골의 아버지는 아직까지 악몽으로 남아 있는 소도둑 사건 때문인지 골이 반드시 훌륭한 경찰관이 되기를 바랐다. 골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이었다. 밤사이 누군가 트럭에 소를 몽땅 태워 사라져버린 것이다. 끝내 도둑은 잡지 못했고 골의 아버지는 농약을 마시고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기셨다.

골은 그동안 아버지의 한과 부모님의 원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보안업체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도리라고 판단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만족하시진 않았지만 청원경비복을 입고 찍어 보내드린 인증샷에 기분이 풀리셨는지 전화를 주셨다. “총은 주냐?” “아니요, 아버지. 제가 직접 구매해야 합니다.” “총을 어디서 산단 말이냐?” “경찰이 소개해주는 곳이 있어요. 가스총이지만요.” “그래, 경비라면 총은 꼭 하나 있어야 한다. 돈은 있냐?” “다음달 월급 타면 할부로 구입하려고요.” “계좌번호 문자로 보내. 젊은 놈이 그까짓 총 한 자루 없다고 은행에서 기죽지 말고.” “네, 아버지. 감사합니다.”

골은 아버지의 격려와 지원으로 가스총을 구매했다. 하지만 가스총은 정기적으로 가스를 충전하지 않으면 위급시 불량이 되기 때문에 몇 달 안에 강도나 소매치기가 나타나주어야 한다. “가스총은 강도가 나타나기 전까지 충전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골은 여직원에게 가스총 하나 은행 쪽에서 지급해주지 않는 인심이 언젠가는 큰 은행강도를 부를지 모른다고 설득해보았지만 유사시엔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라는 말만 전해들었다. “아버지, 제가 일하는 동네에선 총기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서 방망이로 바꿀까 합니다.” “돈은 있냐?” “아버지, 계좌번호 알려드리겠습니다.” “주소, 문자로 보내라. 집에 있는 삼단봉 보내마.”

골이 몇 달 동안 지켜본 결과 소매치기나 은행강도를 만날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인상이 험악한 고객을 노려보았다가 지점장에게 혼도 많이 났다. 진상 고객의 목에 헤드록을 걸고 팔을 꺾었다가 지점장에게 뒤로 끌려가서 조인트를 당하기도 했다. “앞으로 고객에게 그런 짓 한 번 더 하면 넌 영원히 은행 출입을 못하도록 신용을 제로로 만들어버리겠어!” 골은 경비답게 은행의 안전과 보안을 위해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했다. 고액을 출금하는 고객님의 지갑을 지켜주려고 만졌다가 손버릇이 나쁘다고 고객에게 뺨따귀를 맞은 적도 있다. “이 새꺄! 방금 내 엉덩이 만지려 했잖아!” 서비스 불만을 호소하는 고객에게 무조건 고개를 숙였고 VVIP 고객에겐 무릎을 꿇고 빈 경우도 더러 있다. 민중의 지팡이라면 자존심은 버려야 한다.

골의 일은 고객의 간단한 서류 작성을 돕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연령대가 높은 고객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이용을 보조하는 게 주 업무다. 보안 업무보다는 주로 직원들의 잡무를 돕는 일이라고 해야 한다. 말이 잡무지 은행 업무와는 상관없는 사적 용무를 감당해야 할 때도 많다. 지점장 담배나 커피 심부름을 할 때도 있다. 점심도 창고에 가서 혼자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은행 직원들은 청원경비를 거의 하청업자 수준으로 대한다.

“은행 강도를 때려잡는 일이라면 포기하는 것이 좋을 거야. 세스코 같은 바퀴벌레 퇴치 업체가 때려잡는 쪽이라면 더 맞을 수도 있지.” “내가 청원경비로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일도 바퀴벌레약을 놓는 일이었지.”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다보니 허리에 무리가 생겼다. 골은 온종일 걸린 경비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바퀴벌레가 한 마리라도 집 안에 몰래 들어와 있는 모습이 언제부턴가 골은 눈물겹다. 골은 영어 회화를 동영상으로 공부한다. “보안관이라면 외국인 강도가 들어와서 인질극을 벌일 때 협상 정도는 능숙하게 영어로 해야 한다고.”

골은 취준생(취업준비생)에겐 필요 없는 가스총을 어버이날 선물로 고향에 보내기 위해 다음날 우체국에 간다.

김경주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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