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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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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관점

등록 2015-05-14 08:25 수정 2020-05-02 19:28

어쩌다보니 ‘자유기고가’로 몇 년을 살다, 작은 매체에서 ‘기자’ 직함을 달고 몇 년을 일했고, 이젠 다시 여기저기 자유기고를 해대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자의 글쓰기’와 ‘논평가의 글쓰기’의 차이를 떠올리며 ‘관점을 가진 글쓰기’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선수 혹은 활동가 혹은 글쟁이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기자들은 스스로를 ‘글쟁이’라 생각할까? 경험한 바로는, 일부만 그랬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정치판의 ‘선수’처럼 생각했고,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자신을 ‘활동가’ 비슷하게 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기자 역시 글쟁이라 생각한다. 개개인이 ‘글쓰기’에 부여하는 가치는 제각각일지라도, 그들 역시 ‘글’을 통해 무언가를 실현하려 하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실현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기사는 탁월함을 과시하기엔 부적절한 글쓰기 형식이기에 대체로는 개성이 돋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석에서 만난 어떤 기자들은 여느 칼럼니스트들보다 나은 통찰을 보여주기도 했기에, 나는 기자들이 기사가 아닌 다른 형식의 글도 많이 쓸 수 있다면 한국 사회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주류 언론의 웹대응 강화와 대안언론의 범람으로 인해 이러한 나의 소망은 서서히 충족되는 중이다).

문제는 분명히 관점을 가지고 쓰이는 기사의 관점을 (기자가) 자신의 견해로 드러내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교수가 아니라 자유기고가쯤만 되어도 종종 현상에 대한 견해를 요구하는 기자들의 전화를 받는다. 이 경우 기자들은 내 발언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표시하거나 형성하게 되니, 상황마다 그게 발언자의 생각인지 기자의 생각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기사는 모든 발언자들의 발언이 ‘평탄화’되어 ‘전지적 기자’의 관점에 봉사하는 것이다. 사안에 대한 발언자들의 생각이 온전히 일치할 리 없는데도, 기사가 하나의 흐름으로 나간다면 아무래도 기자의 관점으로 ‘통편집’된 거라 볼 수밖에 없다. 어떤 기사를 보면 딱히 기자가 처음부터 자기 관점을 가지고 있어 그리한 게 아니라, 발언을 듣는 과정에서 대략 하나의 상을 이끌어내 그에 끼워맞췄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과다노동을 하다보면 반드시 생기는 일이나, 기본적으론 게으른 글쓰기다).

내가 좋아하며, 그렇게 쓰려고 노력한 종류의 기사는 기자가 밀려고 한 관점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드러나면서도, 이 사안에 대한 다양한 생각의 지형도가 무엇인지 일정 부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해당 사안에 대한 발언들에서 ‘공통점’보다는 미묘한 수위에서라도 ‘차이점’을 우선적으로 추출해야 한다.

‘기자’와 ‘발언자’의 통화에서 양쪽 역할을 다 맡아본 경험을 돌이키면, ‘평탄화’된 기사를 피하기 위해선 차라리 기자 본인이 취재 과정에서 제 견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이 낫다. 가령 ‘이 사안에 대해 저는 이러하게 생각하는데, 님의 의견은 어떤가요’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동의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그리고 자기 생각에 추가적으로 더 제기되어야 할 논점이나 문맥에 대해 더 쉽게 늘어놓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자 역시 그 늘어놓은 내용이 다른 견해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더 쉽게 알고 서술하게 될 것이다. 딱히 자기 견해가 없다면 ‘다른 누구님은 이렇게 얘기하던데요’라고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

‘원하는 답은 이미 있어’만 아니라면

제 견해는 뚜렷하게 가지더라도, 상대방에게 ‘원하는 답은 이미 있어’란 식의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쉽게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관점을 투명하게 드러내되 다른 관점과의 긴장감 역시 드러내주는 글은 결국 독자로 하여금 가장 많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글들은 종종 구사하는 어휘가 전혀 어렵지 않아도 ‘어렵다’는 평을 듣게 된다. 세상엔 모범답안이 존재하지 않으며 당신이 세상사 문제에 접근하려면 이 한 편의 글에 동의하는 걸로 충분치 않다는 점을 드러내게 되기 때문이다. 꼭 기사가 아니더라도, ‘관점을 가진 글쓰기’는 그런 목표에 부합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윤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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