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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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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거기 있니?

넓은 슈퍼시트, 영·유아 없는 정숙 구역 선택할 수 있는 스쿠트항공…
푹신한 시트는 있고, 그것은 없었더라면 좋았을 비행
등록 2015-03-27 17:02 수정 2020-05-03 04:27

지난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대만 정부는 여성 사회적 기업가들을 초청해 큰 행사를 기획했다. 싱가포르와 베이징에서 길거리 패션 트렌드 시장을 선도하며 사회적 기업 네트워킹을 활발히 하고 있는 싱가포르 ‘77th Street’의 최고경영자(CEO) 엘림 추가 여성 사회적 기업가로 참여했고, 한국에서는 청년을 위한 요리학교 영셰프를 운영하며 식문화 다양성과 안전한 먹거리에 힘쓰고 있는 (주)슬로비생활의 한영미씨가 국가대표(?)로 참석했다. 이외에도 소외된 지역의 재활력화를 위해 힘쓰는 대만의 여러 여성 사회적 기업가들이 참석했다. 행사장이었던 타이베이의 창의공원은 100년도 넘은 와인 공장을 근사한 복합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한 곳이었는데 그 열기가 대단했다.

싱가포르에서 대만 타이베이로 가는 스쿠트항공편 23A 좌석에서 마주친 전등 위 바퀴벌레 사체. 이규호

싱가포르에서 대만 타이베이로 가는 스쿠트항공편 23A 좌석에서 마주친 전등 위 바퀴벌레 사체. 이규호

나 또한 그 행사에 작은 일조를 하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타이베이로 향했다. 특히 이 구간은 싱가포르를 주둔지로 하는 젯스타항공, 타이거에어, 스쿠트항공의 격전지여서 갈 때는 스쿠트항공으로, 올 때는 젯스타항공으로 표를 발권했다. 가능한 한 많은 항공사를 ‘체험’해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싱가포르에서 타이베이 구간은 매주 싱가포르의 화요일 이른 아침에 2시간만 진행되는 특별 할인 판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편도 11만원에 득템했다.

스쿠트항공은 최근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항공사다. 기존 저비용 항공사가 보잉737 혹은 에어버스320의 협동체로 단일화해 3~4시간 미만의 단거리를 주로 운항하는 반면, 스쿠트항공은 광동체 보잉777을 도입해 장거리를 주 타깃으로 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2012년부터 운항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진에어도 777을 도입해 괌 노선에 나선 걸 생각해보면 광동체와 장거리는 저비용 항공사와 상관없다는 공식은 곧 깨지게 될 것이다.

항공 기내 서비스 역사에서 선도적 위치를 고수해온 싱가포르항공의 자회사답게 몇몇 새로운 서비스가 보인다. 비즈니스석 이외에 이코노미석을 세분화해 일반 이코노미는 좌석 간격이 31인치 정도로 좁지만 거리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 슈퍼시트를 선택하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같은 항공기의 좌석 간격인 33~34인치보다 더 넓은 35인치에 앉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앞의 5열은 ‘정숙 구역’으로 12살 미만의 영·유아가 탑승할 수 없어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로부터 해방(?)될 수도 있다. 새벽 0시55분 타이베이로 출발하는 편에 이 정숙 구역에 있는 35인치 좌석에 탑승했는데, 이코노미석에서 세계 으뜸가는 좌석 간격을 보여주는 국내 양대 항공사보다도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외에도 개인의 모바일 기기로 접속하면 기내에서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으며 앞으로 도입하게 될 드림라이너 보잉787에는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물론 이 모든 건 유료이지만 말이다.

좌석의 쿠션이 얇아 장거리 비행시 불편하긴 했다. 비단 스쿠트항공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항공사에서 이코노미석의 쿠션 두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방향인 듯싶다. 한데 가장 큰 문제는 3월6일 내가 앉은 23A 좌석 전등 위로 바퀴벌레 사체가 있었다는 것이다. 전등 커버 안쪽에 있어서 어떻게 치울 수도 없었다. 대화를 나누는 앞사람의 코털이 삐져나와 있을 때 계속 그것만 보이는 것처럼 타이베이까지 가는 내내 나는 고개를 쳐들고 치울 수 없는 바퀴벌레 사체만 보았다. 어쨌든 탑승 당일 스쿠트항공 페이스북에 기내에 죽은 바퀴벌레가 있다고 포스팅을 남겼다. 아직까지 어찌됐다는 소식은 없다. 싼 항공권이라지만 바퀴벌레 사체가 무료 서비스로 포함될 필요는 없었다.

이규호 미국 일리노이대학 인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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