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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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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있으되 민중은 없다

타이·팔레스타인·한국의 고통이 겹쳐 보이는 <헝거게임: 모킹제이>,

그 안에도 능력자만이 인정받는 신자유주의적 무의식이 스며 있어
등록 2014-12-06 06:24 수정 2020-05-02 19:27

타이 대학생은 ‘세 손가락’ 시위를 하다 체포됐다. 영화 가 타이에서 개봉한 11월19일, 타이 콘깬에서 벌어진 일이다. 군부 쿠데타로 선거로 선출된 정부가 전복되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는 타이에서 세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행위는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세 손가락 인사’는 ‘헝거게임’에서 혁명을 상징한다. 이런 여파로 타이의 일부 영화관에서 상영이 취소됐다.

‘세 손가락’ 시위로 타이서는 상영 취소

주인공 캣니스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는 〈헝거게임〉을 볼 만한 영화로 만드는 힘이다. 누리픽쳐스 제공

주인공 캣니스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는 〈헝거게임〉을 볼 만한 영화로 만드는 힘이다. 누리픽쳐스 제공

시리즈 3부작의 1편인 는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선언하며 시작한다. 12구역으로 나눠져 표현을 억압당하고 노동을 착취당하고 거짓 평화를 강요당하던 이들이 부와 권력을 독점한 ‘캐피톨’(Capitol)에 맞서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핵폭격을 당해 없어진 것으로 여겨진 13구역의 지하에서 사람들은 정부를 세우고 저항을 준비했다. 주인공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는 저항의 촉매가 되었다. 12구역에서 추첨에 의해 선발된 남녀가 살인게임을 벌여 오직 1명만 살아남는 ‘헝거게임’에서 거대한 경기장을 부수고 나온 캣니스는 혁명의 상징 ‘모킹제이’로 떠올랐다.

거대한 지하벙커를 만들어 그곳에서 생존해온 이들에게 캐피톨의 폭격이 시작된다. 무자비한 폭탄을 쏟아붓는 폭격과 지하에서 그것을 견뎌야 하는 상황은 지구촌의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팔레스타인의 고통이 겹친다. 12구역으로 분할통치를 당하는 현실은 가자와 서안으로 고립된 현실을 생각하게 하고, 저항하다 몰살당한 기억은 인티파다를 연상하게 한다. 팔레스타인만이 아니다. 캣니스의 고향인 12구역에 널브러진 주검들은 1980년 광주의 기억과 겹친다. 12구역 각각에서 남녀를 추첨으로 선발해 오로지 1명만 생존하고 나머지는 죽어야 하는 ‘헝거게임’은 가상의 현실만이 아니다. 지역 간 갈등을 유발하고, 쾌락을 통한 통치를 하는 방식은 지구촌에 존재했고, 존재하는 독재의 보편적 현상이다. 그래서 은 타이의 현실, 팔레스타인의 역사, 한국의 오늘을 각각 떠올릴 여지가 있다.

저항의 요새도 완벽한 공간은 아니다. 술은 물론이고 커피조차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윤리는, 이슬람 원리주의 통치를 생각하게 한다. 캐피톨이 ‘헝거게임’을 통해 주민을 현혹하고 관리해온 것처럼, 반군도 저항의 기운을 높이기 위해 현실을 과장한다. 반군 정부는 ‘헝거게임’을 통해 저항의 상징이 된 캣니스를 선전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 캣니스는 때로 무리한 요구에 갈등한다. 그러나 잔혹한 캐피톨의 공격 앞에서 저항에 나서게 된다. 이렇게 3부작 완성으로 향하는 은 저항세력의 세상도 무언가 잘못된 구석이 있다는 암시를 던진다. 평화와 자유가 완전히 보장된 곳은 아니란 것이다.

는 혁명의 대의를 말하지만, 영화에 민중의 힘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헝거게임’을 통해 능력을 과시한 자들만 저항의 주체가 된다. 때때로 등장하는 민중은 주요 인물의 의지를 자극하는 구실을 할 뿐이다. 마치 그들의 거울상인 진압 경찰의 얼굴이 마스크로 가려진 것처럼, 민중에게 인간의 얼굴을 한 캐릭터는 없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트위터에 “‘’은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개인에 대한 이야기다. ‘혁명은 없다, 다만 탁월한 개인이 있을 뿐’이라는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썼다. 1~2부도 살인 리얼리티 쇼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러닝타임은 게임의 쾌락으로 흘렀다. 게임이 시작되면 그저 추적과 살인의 기운만이 스크린에 가득했다.

현실 비판? 쾌락으로 흐르는 스크린

이렇게 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무의식을 반영한다. 오직 탁월한 능력자만이 가치 있고 나머지는 ‘쩌리’가 돼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기준이 혁명에도 스며든다. 지금 지구촌의 비극은 최악과 차악의 선택지만 남았단 것이다. 최악의 악행을 피하기 위해 차악의 편에 서야 하는 일은 차라리 보편적 현실이 되었다.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구지배체제의 발악에 저항하기 위해 부패한 신자유주의 세력인 탁신에 기댈 수밖에 없는 기막힌 현실이 ‘세 손가락’ 시위를 벌이는 곳에 있다.

을 볼 만한 영화로 만드는 힘은 주인공 캣니스 역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에서 나온다. 이렇게 블록버스터 액션물 시리즈에서 자연스러운 여성 캐릭터를 찾기도 힘들다. 의 또 다른 의미는 고인이 된 배우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설이 된 배우의 유작에는 살아 있는 전설 줄리언 무어도 나온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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