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스스로를 해명하는 데 평생을 바친다. 스스로를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은 긴 여운을 남긴다. 나는 나를 충분히 해명하지 못해 나와 비슷한 상황/고통을 겪는 이의 말에 귀를 세운다. 이런 공감은 정신과 의사의 상담보다 효험이 좋다. 게다가 싸다. 특히 ‘타자’라고 불리는 ‘아웃’된 존재들은 고통을 해석할 언어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몸과 맞지 않는 질서가 숨통을 조여서 죽는다. 아니, 살지만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읽는 이가 나름의 생각으로 치달아볼 기회”
토요판에 실리는 ‘정희진의 어떤 메모’는 어떤 이들에게 고통을 해명할 힌트를 주었다. 그 힌트가 내 몸을 통과해 스스로 해명에 이르는 순간, 묵상에 잠긴 기억도 있다. 정희진의 독후감인 ‘어떤 메모’를 정리한 가 최근 출간됐다. 책을 읽고 스스로를 해명하는 정희진을 읽으면서 독자 스스로가 해명되는 ‘자기해명서’, 의 사용법은 이처럼 다양하다. 정희진의 글이 나의 몸을 통과할 때 어떤 효험이 있는지, 그 요약하기 어려운 감상을 짧은 메모로 알려달라는 고통을 세 사람에게 주었다.
“정희진의 글은 ‘문제의식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소재로서 책을 소개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정희진의 지식, 입장, 감정을 진솔하게 ‘구술’한다. 사실 한번 보고 쉽게 이해되는 글들은 아니다. 정희진의 글을 읽으면 때로는 산만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는 귀찮음도 있다. 하지만 쓸데없거나 부적절하거나 뻔한 이야기가 펼쳐질까 조마조마하지 않고 되레 안전함이 느껴진다. 꼭 정희진과 같은 생각의 흐름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읽는 사람들도 나름의 생각으로 치달아볼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반성매매인권운동 ‘이룸’ 활동가 ‘숨’이 읽은 정희진은 그랬다. 그는 “극도로 개인화된 세상이 얼마나 전체주의적인가, 그 역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희진의 글이 반갑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뒤집기의 명수인 정희진이 감당한 독후감의 범위는 고전에서 찌라시(성매매여성 비범죄화를 선언한 )까지 다양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기지 않는 것은 살아 있는 영혼, 존재감 없는 존재, 스스로 몸 둘 곳을 없애 고스란히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려는 삶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것, 모든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지우는 것은 최후의 혁명이다. 불멸을 사려고 전쟁, 돈, 명예, 업적을 얻고 싶은 욕망은 가장 근절하기 어려운 권력 의지다.(나의 글쓰기도 이런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영정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은 이렇게 ‘어떤 메모’에 실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를 인용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삶은 양가적인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기억되고 싶은 것과 사라지고 싶은 것, 다르고 싶은 것과 같고 싶은 것, 떠나고 싶은 것과 남고 싶은 것, 홀로 서고 싶은 것과 소속되고 싶은 것. 어쩌면 외로움과 괴로움 사이의 조율이고, 두려움에서 한발 떨어져나와 내가 무엇에 연연하고 있는지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둘 사이에서 이 상태를 부정하지 않고 이 자체를 생각하도록 내내 이끌었던 것이 정희진의 어떤 메모였다. 게다가 이원론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퀴어의 삶이다.”
“눈물을 짜내는 대신 논리를 짜내는 글”정희진 ‘선생님’의 말씀은 요컨대 “주제 파악을 해서 주제를 바꾸자”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 이성애와 동성애, 서울과 지방, 백인과 ‘유색인’…. 그는 무수한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을 ‘지적질’하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를 해명하며, 그래서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가를 설득한다. 결국 약자가 ‘주제 파악’을 하면, 우리(혹은 사회)의 주제가 바뀐다는 것이다. 아래에서 질서를 이해(under/stand)하도록 돕는 를 보면서 독자는 결국 질서를 굽어보는(over/look) 위치에 이른다. 그게 영원한 게 아니고, 그게 단선적인 게 아니고, 그게 잘못된 게 아니란 것이다. 여기서 ‘그게’는 질서, 가부장제, 자본주의, 역사, 우울증 등등이 된다. 그것은 지독한 수렁에서 스스로를 건질 힘이 된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이창근씨의 ‘짧은 메모’는 이렇다.
“정희진 선생의 글은 표정이 없어 좋다. 찡그리거나 슬픔에 편승하지 않고 기쁨에 춤추지 않는다. 어쩌면 차가워 보이지만 행간에 뜨거운 맛이 있는 글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또렷하게 기억나는 칼럼 하나가 있다. 일본과 독도 논쟁이 한창이던 때, 민주노동당까지 군대 파병을 주장할 정도로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때로 기억된다. 당시 정희진 선생은 칼럼에서 ‘독도는 갈매기 땅’이라 일갈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정희진 선생은 언제나 전선을 옮겨놓는 힘이 있다. 읽을 때마다 놀랍다. 피해자를 불쌍한 지위에 올려놓고 감정의 선을 흔들거나 선동하지 않는다. 눈물을 짜내는 대신 논리를 직조하고 제공한다. 본질을 틀어쥐고 놓지 않는, 악력이 해체되지 않는 글을 보면 슬픔이 정제된다.
는 독후감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은 욕망의 생태보고서, 권력의 (오)작동 관찰기, 억압의 탈출법 안내서 구실을 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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