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채식주의의 ‘불편한 진실’

위대하고 선하며 건강한 삶의 방식이라고 칭송받는 채식주의의 이면 다룬 리어 키스의 <채식의 배신>
등록 2013-02-26 13:16 수정 2020-05-02 19:27

눈앞에 잘 익은 사과가 있다. 별 생각 없이 한입 베어 문다. 당신은 평범한 식생활을 하는 일반인이다. 그러나 죽임당한 소보다 땅에서 자란 사과를 먹는 게 도덕적이라는 판단 끝에 사과를 한입 깨어문다면 당신은 채식주의자다. 지구 반대편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사과를 집어든 당신 역시, 채식주의자다. 쇠고기보다 사과가 인간의 몸과 정신에 적합하다는 확신으로 사과를 먹는 당신도, 두말할 것 없이 채식주의자다. 이렇듯 채식주의자에게 채식은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실천하려고 본능인 식욕도 포기하는 삶의 태도다. 일반인이 풍족한 먹을거리 앞에서 늘 ‘무엇을 먹을까’에 골몰할 때 채식주의자는 ‘어떻게 살까’를 먼저 고민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채식이 위대하고 선하며 건강한 삶의 방식이라고 칭송받아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을 통해 건강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은 이런 채식주의자의 믿음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을 통해 건강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은 이런 채식주의자의 믿음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채식이 불평등을 해소할 순 없어

리어 키스의 (부키 펴냄)은 채식에 대한 이런 신념이 무지에서 비롯된 ‘신화’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한다. 저자는 10대 소녀 시절부터 20년간을 철저한 비건(유제품·달걀류 등 동물성 지방을 전혀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으로 살았다. 그러나 몸과 정신까지 망가뜨린 자신의 희생이 자연이나 가난한 이들에게는 되레 더 큰 해를 끼친다는 것을 깨닫고 채식을 그만둔다. 그러고는 아직도 채식만이 자신과 인간과 지구를 구하는 방법이라 믿는 이들에게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채식은 정의로운가? 채식주의자의 식탁에 올라온 식물성 식품은 그 자체로 수많은 생명의 죽음을 전제로 한다. 지금의 ‘일년생 단일 경작’ 농업은 채식주의자들이 경멸하는 축산공장처럼 오로지 인간의 먹거리를 생산해내기 위해 옥수수·쌀·밀·보리 등 곡물을 대량으로 찍어낸다. 이 반자연적인 농업 탓에 지난 1만 년간 조화로운 생태계는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됐고, 수많은 동식물이 죽었으며, 생명을 품은 땅과 강은 회복 불가능한 지경으로 오염됐다. 채식을 통해 생명의 희생 없이 내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채식주의자의 확신은 오만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채식주의자들이 양심의 가책 없이 먹는 풀과 나무도 서로 공동체를 이뤄 의사소통하고, 종족 유지·번식을 위해 진화도 하는 엄연한 생명체다. 무엇보다 모든 존재는 먹고, 모든 존재는 먹힌다. 식물조차 화학적 요소 없이 생명을 이어가려면 동물의 피와 뼈와 살이 필요하다. 다른 존재의 죽음에 기반하지 않은 생명이란 있을 수 없다.

채식이 불평등을 해소할까? 누군가 스테이크를 배불리 먹고 있는 사이 누군가는 옥수수 한 줌도 먹지 못해 굶어 죽는 현실은 분명 잔인하다. 그러나 소에게서 옥수수 사료를 빼앗아 가난한 나라에 나눠준다고 해서 불평등이 근본적으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정부 보조금 덕에 값이 싸진 미국의 밀·쌀·옥수수 등 곡물들이 가난한 국가로 흘러들수록 그 지역의 농업 기반은 무너지고 굶주리는 사람은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가나 등 농업 기반을 갖췄던 국가들이 지금처럼 망가진 근본적 원인도 값싼 곡물의 습격이었다. 소가 옥수수를 덜 먹어 곡물이 남아돈다고 해도 국제사회의 원조가 아니면 가난한 국가의 빈곤층이 사먹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국제 곡 물시장을 장악한 카길 등 탐욕스러운 곡물 메이저 기업 들이 거저 내놓을 리 없기 때문이다. 결국 채식주의자들 이 쇠고기를 먹지 않으면 마음의 위안은 얻을 수 있을지 언정 굶주림에 시달리는 지구 반대편의 아이는 배를 채 울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가까운 곳, 단순하게 생산된 먹거리를

채식은 건강하다? 지방(콜레스테롤)이 심장병을 일으 킨다는 ‘지방가설’은 채식주의자들에게 금과옥조다. 이 미 플라톤 시대부터 채식주의가 건강장수법의 하나로 여겨졌을 만큼 그 뿌리도 깊다. 그러나 인간의 뇌와 몸 은 지방을 갈구하도록 설계됐다. 적정한 지방이 있어야 만 몸이 정상적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식, 치아 발달, 면역 기능, 피부 건강, 뼈 재형성 등에 관여하는 비타민 A·D·E·K 같은 지용성 비타민은 지방 이 있어야만 몸으로 흡수된다. 다수 연구자들의 조사 결 과를 봐도 완벽에 가까운 건강을 자랑하는 여러 원주민 들은 내장, 골수, 생선 알, 달걀 노른자 같은 동물성 지방 을 반드시 먹었다. 반면 당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곡물 위 주의 식사는 건강에 여러 위험을 초래한다. 당뇨병·고혈 압·심장병·동맥경화·백내장·신부전증 등도 고탄수화 물 식단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곡물은 건 강하고, 지방은 탐욕스럽다’는 잘못된 믿음은 식품회사 들이 생산단가 대비 수익이 많은 곡물 식품을 많이 팔아 먹으려고 연간 수백억달러를 투자한 마케팅의 결과일 뿐 이라는 게 저자의 비판이다.

그렇다면 채식주의자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저자는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는 음식을 먹어야만 자신과 인간과 지구에 이롭다고 말한 다. ‘내 앞에 놓인 음식이 표토(식물의 양분·수분원이 되는 토양)를 만들어냈는가, 파괴했는가?’ ‘태양과 빗물 로 자란 음식인가, 습지대와 강을 파괴한 화석 용수를 마신 음식인가?’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서 자란 음 식인가, 석유 범벅으로 내 밥상에 오른 음식인가?’ 한마 디로 나와 가까운 곳에서 단순한 방식으로 생산된 음식 을 골고루 먹으란 얘기다. 채식주의자가 아니어도 가끔 씩 떠올려보면 좋을 원칙이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