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 펴냄)에서 김연수는 말했다. “나는 노예라고 하더라도 평생 한 가지 일만 반복해서 할 수 있다면 죽는 자리에서 어떤 식으로든 깨달음을 얻으리라고 믿는 사람이다. 떡볶이라 하더라도 평생에 걸쳐서 먹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깨달음은 들게 될 것이다. 나는 떡볶이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변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처음에는 달콤했지만, 이내 매워졌다가는 결국 쫄깃쫄깃해졌다, 뭐 그런 식의 맛의 변천사를 말할 생각은 아니다. 우리 얘기를 할 생각이다. 우리. 떡볶이를 사먹는 우리 말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시 외곽에 있는 스케이트장에서 얼음을 지치고 돌아오는 길에 “떡볶이라는 음식”을 처음 맛봤고, 고등학교 때는 여고 문예반 활동을 하며 시를 쓰던 여자친구와 즉석 떡볶이라는 것을 처음 먹었다. 김연수에게 첫 떡볶이는 코끝 시린 1월과 스케이트에 대한 기억이 짝을 지어 추억된다. 문학소녀와의 떡볶이는 “할 말이 없어 서로 이제 다 된 것인가, 안 된 것인가 토론하다가는, 먹어야 할 시점에 이르러 서로 눈치만 보다가는, 제대로 먹지 못해 국물이 졸아 하나도 남지 않은 채, 당면이며 라면이며 떡이 퉁퉁 불게 된 지경”으로 회상된다.
그리고 어른이 된 소설가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길이면 늘상 원당 시내에 있는 분식점에 들러 떡볶이를 사먹는다. 맛은 대단찮다. “떡볶이에 포함된 여러 맛 중에서 씁쓸한 맛이 제일 강한 분식점 스탠더드 떡볶이일 뿐이다.” 4년여 같은 집에서 떡볶이를 사먹는 동안 그는 잡지사 기자에서 인생이 막막했던 전업작가가 되었다가, “소설을 위해 죽을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굶어죽을 수는 없”어 어느 회사의 과장직을 달았다가, 소설가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그 집 떡볶이를 포장해주는 이는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에서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20대로 성장했다. 맛은 한결같이 씁쓸하지만 떡볶이를 싸주는 주인의 손놀림만큼은 탁월해졌다. 김연수는 취중에 들르는 그 분식점을 인생의 맛집으로 삼는다. “어떻게 무엇으로 바뀌든 바뀌어간다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도 여러 떡볶이가 등장한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엄마의 떡볶이는 왜 주황색이고 학교 앞 분식점에서 파는 건 왜 빨간색인지 밝혀내려고 떡볶이에 심취하다 사랑에 빠져버렸다. 음식에 이런저런 시도를 하기 좋아하는 나는 망친 음식물로 엄청난 쓰레기와 설거지를 유발하는 주방의 난봉꾼인데, 떡볶이만큼은 예외로 항상 ‘오리지널’을 추구한다.
신당동의 신화적 존재 마복림 할머니처럼 고집스런 방식으로 만든 떡볶이로 인생에서 중요한 이들과 도타운 정도 많이 쌓았다. 20대에 만났던 친구들과는 우정의 통과의례처럼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면 “차라도…?” 대신 “출출하지? 떡볶이라도…?”.
‘주말에 만나는 남자’ 또한 떡볶이로 정을 쌓은 사이다. 우리는 수년간 연애를 하며 어색하거나 심심하거나 출출하거나 마음이 스산할 때면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며 동네의 ‘마약 떡볶이’ 노점을 찾았다. 해치워 쌓아올린 떡볶이 접시의 수만큼 정도 깊어졌다. 지난 일요일에 우리는 떡볶이를 해먹었으며 지지난 토요일에는 라면 사리를 넣은 라볶이를 나눠 먹었다(몇 주째 장을 안 본 탓이긴 하지만). 우리가 나눠 먹는 떡볶이의 쫄깃한 식감과 맵고 달고 짜고 때론 씁쓸한 그 맛은 앞으로도 ‘떡볶이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한 별다름이 없을 테지만 김연수의 말처럼 쌓인 세월만큼 우리의 모습도, 관계도, 사랑의 형태도 “어떻게 무엇으로 바뀌든 바뀌어”가겠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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