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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둘래 기자, 하룻밤 동안 엽기 애플리케이션 만들기에 도전하다…

고등학생들과 함께 만든 ‘똥의보감’ 기대하시라!
등록 2011-01-06 01:25 수정 2020-05-02 19:26

5시란다. 서울 우면동 KT연구개발센터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12월18일). 다시 어제 내린 눈이 쌓인 길을 걸어나와 지하철 양재역까지 걸어갔다. 커피숍에서 5시를 기다렸다. 원래 오후 1시부터 밤 11시까지 10시간 동안 열리기로 한 ‘앱잼’은 하룻밤을 새우는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의 일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앱잼’은 ‘게임잼’의 변형이다. 게임잼은 정해진 시간 동안 프로그래머·디자이너·기획자가 머리를 맞대고 간단한 게임을 완성하는 것이다. 주말에 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길어봐야 이틀이다. 짧은 시간에 완성해야 하니 창조력이 더 왕성해진다고 한다. 짧은 시간이 제약이 아니라 자극이다. ‘앱잼’은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간단한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완성하는 것이다.

» 구둘래 기자의 엽기 '앱' 만들기 도전기

» 구둘래 기자의 엽기 '앱' 만들기 도전기

대박나면 어떡하지?!

기다리는 시간이 연장된 건 불행한 일이었다. 여러 가지 ‘분홍 빛깔 생각’이 머릿속으로 끼어들었다. 이러다 대박나는 거 아냐? 그래서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건 아닐까? 그냥 흰 종이에 슥슥 몇 글자 적는 것으로 떼돈 버는 게 일이 되면 어떡하지?(너무 좋지!) 망상이 폭주하고 있었다. 망상으로 ‘앱’ 하나를 완성하는 지경이 되기 직전, 약속 시간이 됐다. KT연구개발센터 내의 KT이코노베이션센터로 향했다. 연구개발센터는 앱을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장소와 컴퓨터를 제공한다. 센터 내에 숙박시설과 샤워시설, 헬스장까지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갖고 오지 말라고 했다. 필요한 컴퓨터는 대여해준다. 대여 컴퓨터는 맥이다. 14년 전 직장에서 잠깐 써본 맥을 받아놓고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건드렸다. 사실 이 유연한 컴퓨터 앞에서 내가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었던 건 ‘노트패드’ 정도.

10여 명의 참석자가 자리에 앉자, 행사를 주최한 앱 개발사 보보브(VOVOV)의 황현섭씨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보보브가 앱잼을 개최하게 된 것은 전광석화처럼 떠오른 생각을 옮긴 앱이 실지로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의 박현천씨는 ‘전생 테스트’를 2시간 만에 만들어 올리고, 예정됐던 세부 여행을 갔는데, 갔다 오니 다운로드 순위에서 1위를 하고 있었다, 는 전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앱 프로그램의 세계는 문턱이 낮다. 황현섭씨도 앱 프로그램을 한 지 9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재미로 만들어본 ‘심리게임 테스트’가 3일 만에 1위를 찍고, 일주일 정도 지나 2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1위를 했을 때 첫날 수익은 1만원이었다. 무료로 내도 시장이 있구나라고 느낀 황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보보브를 만들었다. 자신을 포함한 개발 인원 3명이 한 달에 16개의 어플을 만들고, 이 중 14개가 100위권 안에 있다고 한다. 이들이 주로 역점을 두는 것은 ‘재미로 하는 테스트’ 앱이다. 심리·성격, 전생, 몸값, 바람기 등을 테스트한다. 물론 정확한 몸값을 알려주지도 않고, 바람기 100 지수가 나왔다고 청정지역이 물 반 고기 반이 되는 일도 없다. 재미다. 황현섭씨는 “(다운로드 횟수가)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 유지는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앱을 개발해야 한다. 의 아버지가 만든 캐럴송 로열티로 먹고사는 휴 그랜트 식 ‘꿈의 삶’은 아닌 것.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제일 먼저 와서 앉아 있던, ‘똘똘’이 눈빛에 총총 맺혀 있는 학생은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2학년인 최건우와 박민수. 프레젠테이션 중에 김승현·김우휘·명혜진 선린인터넷고등학교 학생들이 등장했다. 유주완군은 버스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서울버스’를 고2 때 만들었다. 그는 고등학생들의 스타였다. 서울버스는 12월16일 현재 181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초기 ‘세팅’ 과정에서 기획자·프로그래머·디자이너가 5명씩이었다. 그래서 5팀으로 꾸리기로 했다. 15명의 인원은 토요일 저녁 강남 ‘트래픽잼’을 뚫고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22명에 이르렀다.

주제는 혐오스럽지 않은 ‘엽기’
» ‘똥의보감’ ‘막장 병맛 스토리’ ‘밑져야 본전’ 팀이 앱을 만들고 있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막장 병맛 스토리’의 서버를 만들고 다른 팀의 서버 작업도 해준 고등학생 김승연군이 지쳐서 자고 있다. 이익재 제공

» ‘똥의보감’ ‘막장 병맛 스토리’ ‘밑져야 본전’ 팀이 앱을 만들고 있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막장 병맛 스토리’의 서버를 만들고 다른 팀의 서버 작업도 해준 고등학생 김승연군이 지쳐서 자고 있다. 이익재 제공

황현섭씨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화면에 띄웠다. 뜸을 들인 뒤 나온 단어는 ‘엽기’.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 5분이 주어졌다. 뭘 하지, 뭘 하지 생각하며 조바심이 나는데 누구도 조바심 내지 않는 것 같았다. 웃고 떠들다가, 진짜 5분이 지난 뒤 발표가 이루어졌다.

맨 처음 나온 이호진(앱기획자)씨는 엽기 사진을 비교해 누가 이기느냐를 겨루는 ‘엽기 사진 배틀 게임’을 제안했다. 등록된 사진을 무작위로 비교해 점수를 주고, 등록한 사람에게는 해당 지역구 넘버원 호칭을 준다는 식이다. 기획자로 참여한 나도 무작정 손을 들고는 ‘화장실 앱’ 이야기를 했다. 엽기에서 화장실 앱을 연상하는 이 단순함이라니! 똥, 오줌, 분비물 등 화장실에서 처리하는 것들로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하는 앱이다. 김성준(프로그래머)씨는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앱을 제안했다. 입력해놓은 데이터베이스가 무작위로 표시되는 것이다. ‘송혜교와 화장실을 간다’ 등의 주어와 서술어의 엇박자를 노리는 것. 김성준씨는 자신이 서버 처리(데이터베이스를 하드웨어에 올려놓고 호출하는 작업)를 다 해주겠다, 아주 단순한 게임이기 때문에 밤 11시 전에 집에 들어갈 수 있다며 ‘호객’을 했다.

최해영(보보브 디자이너)씨는 카드 맞춰 뒤집기 게임에 틀리면 무서운 사진과 사운드를 넣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앱을 제안했다. 남자와 여자 합쳐서 2세의 얼굴을 그려준다(김선애·디자이너), 한 공간에 있는 사람을 지정하고 그 사람에게 무작정 대시한다(송선호·기획자), 위치기반 서비스는 로그인 뒤에만 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익명으로 낙서를 할 수 있도록 한다(정만규·기획자) 등등. 손들었던 사람이 또 손을 들어서 나오기도 했다. 셀카를 찍은 뒤 등록된 엽기 사진과 비교해주는 앱을 발표했던 명혜진 학생은 ‘무작위 스토리텔링’ 앱을 제안했다. 등장인물을 입력하게 하고 무작위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게 하는 것이다.

총 11개. 시장이 열렸다. 장소의 곳곳에 아이디어를 낸 사람들이 배치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다가가 그 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이걸 ‘노예시장’이라고 한다. 노예를 고르는 것이지만, 기획자가 ‘월플라워’가 되고 나면 주인이 노예의 심정이 된다. 사람들이 머쓱해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내 옆의 이호진씨는 아이패드 낙서판을 들고 사람들을 붙들기 시작했다. ‘대박의 꿈’은 ‘나한테 말이나 좀 걸어주지’로 바뀌어갔다. 낙서 앱과 무작위 스토리에 기웃거리며 질문을 하는데, 황현섭(프로그래머로 참여)씨가 다가와 내가 제안한 앱을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혹시 이분이 기사를 잘 나가게 하려고 이러시는 걸까? 그러나 프로그래밍도, 디자인도 못하는 연필굴리개(그래, 연필 슥슥)에게는 ‘순수한 기쁨’이었다. 앱에 추가될 수 있는 코딱지, 귀지, 눈곱 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역시 어린 조카들이 똥 이야기만 나오면 좋아하듯 몇몇이 Red눈을 반짝인다.

조직이 시작되었다. 몇 명이 자체적으로 제안을 철회했다. 관심 있던 ‘낙서 지도’도 낙서가 겹쳐지는 문제, 용량 문제, 무엇보다 일찍 가야 하는 기획자의 문제로 인해 자진 사퇴했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수줍남의 고백’ ‘무작위 스토리텔링’ ‘사진 배틀’ ‘카드 잘못 뒤집으면 으악’, 그리고 ‘엽기 화장실’. 나의 기획안에는 프로그래머는 몰리는데 지원하는 디자이너가 없었다. 앱에 더러운 사진(혐오 사진)은 올릴 수 없으니 사진을 일일이 그림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디자이너들이 짧은 시간에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최해영씨가 ‘혐오스럽지 않은’ 사진을 골라 합성하는 식으로 해보자고 했다. 그는 자신이 제안한 앱을 만들면서 우리 디자인을 돕기로 했다.

방이 배정되고 작업이 시작되었다. 고등학생 프로그래머 박민수와 선린인터넷고의 김우휘가 나와 같은 방으로 들어갔다. 민수가 안드로이드폰 디자이너라 자연히 앱은 안드로이드앱으로 결정되었다. 역시 ‘무작위 스토리텔링’도 프로그래머의 성향에 따라 안드로이드앱이 되었다. 나머지는 아이폰 앱이다.

똥의보감·밑져야 본전·도전 병림픽…

앱 탐색 결과 비슷한 앱이 발견되었다. 분유회사에서 나온 아이들 용변을 보고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아기똥 솔루션’과 용변의 색깔과 형태 두 가지로 상태를 판단하는 ‘보셨나요?’라는 앱이 있었다. 분유회사의 프로페셔널이 만든 ‘귀여운 아기’를 보며 유아용은 빼기로 했다. 그리고 똥과 오줌, 뾰루지 세 가지로 특화하기로 했다. 문을 열면 화장실이 펼쳐지게 하여, 대변기-소변기-거울을 선택하면 각 체크 메뉴로 들어가게 된다.

우휘가 앱이 변비를 겪는 사람에게 유용할 것 같으니 캘린더를 넣자고 했고, 민수는 거기까지는 힘들 것 같다면서도 해보겠다고 했다. 질문을 어떻게 조직적으로 요약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똥은 모양, 색깔, 굵기와 길이, 주기 네 가지로 만들기로 했다. 오줌은 색깔, 맑기, 횟수에 추가 사항으로 냄새를 넣고, 뾰루지는 얼굴을 그리고 그것을 눌러 바로 상태를 표시하도록 했다. 우휘는 똥과 오줌 대신 대변과 소변으로 ‘의사 선생님’처럼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철없는 최고령자에 똑똑한 고등학생이다!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와 힘주는 소리 등을 무료로 소리 파일을 제공하는 사이트에서 찾아냈다.

» ‘똥의보감’의 ‘주요 장면’. 화장실 메뉴 화면과 똥 형태 선택 화면, 얼굴 뾰루지 체크 화면. 가래, 귀지, 코딱지 등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계획은 이뤄질 수 있을까?

» ‘똥의보감’의 ‘주요 장면’. 화장실 메뉴 화면과 똥 형태 선택 화면, 얼굴 뾰루지 체크 화면. 가래, 귀지, 코딱지 등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계획은 이뤄질 수 있을까?

방으로 온 황현섭씨가 ‘히트’ 팁을 알려줬다. 자신들의 회사에서 개발한 앱에 서로 광고를 실어서, 서로 타고 갈 수 있게 한 게 주효했다고 한다. 그리고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단다. 우리 앱의 제목은 ‘나는 네가 화장실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시원~스쿨’ ‘넌 나에게 똥을 줬어’ ‘이런 변이 있나’ ‘안녕, 똥’이 경합하던 중 ‘화장실 명의보감’이 어떠냐 했더니 지나가던 우휘 친구 혜진이 ‘똥의보감’이 어떠냐고 했다. 결정! 메인 타이틀을 옛날 책같이 꾸미고, 도장을 ‘붓으로 그린 똥 모양’으로 해서 넣기로 했다. 이쪽저쪽을 바쁘게 오가며 작업하던 최해영씨의 얼굴이 변비 걸린 사람처럼 하얗게 변해갔다.

그의 팀인 ‘카드 잘못 뒤집으면 으악’은 초반에 기획을 엎었다. 왜인지는 모르겠고, 던지는 게임으로 바뀌었다. 캔, 동물, 문화유산, 지구 등에서 선택해 깡통에 집어넣는 것이다. 제목은 ‘Throw Throw’로 정해졌다. 영어 제목을 달아 세계시장 공략?

‘밑져야 본전’이라고 앱 이름을 붙인 ‘수줍남 대시’ 팀에서는 작업 멘트를 만드는 게 일이었다. “저 곧 내려요” “날씨가 춥죠? 옆에 같이 있을까요?” “놀래 말래?” “당신의 콧날에서 스키 타도 될까요?” 이것을 옆사람에게 내밀면 상대가 예, 아니요를 선택하고 아니요를 하면 한 번 더 대시를 한다. “초면인데 커피 한잔 할까요?”에 ‘아니요’를 선택하면 “그럼 이제 구면이니까 커피 한잔 할까요?” 하는 식이다.

‘스토리 제조기’ 팀의 앱은 ‘막장 병맛 스토리’로 이름이 정해졌다. 초기 화면에서 3명까지 이름을 입력할 수 있고, 스타트를 누르면 스토리가 나온다. 팀의 명혜진과 김승연의 이름을 넣으면 무작위로 불러온 뉴스, 대화 등이 뜬다. “배우 명혜진이 누드 화보집을 발표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편 명혜진이 김승연과 호흡을 맞춰 촬영한 영화도 크랭크업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진 배틀’ 팀의 앱은 ‘도전 병림픽’이 되었다. ‘병맛’이 워낙 히트다. 기획자 이호진씨는 기존에 있던 사진을 올리는 일을 막기 위해 카메라로 찍어서만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양심적 앱’을 구현했다. 게임을 시작하면 10회의 배틀이 기다리고 있고, 배틀이 끝나면 자신의 순위가 보인다.

원나이트스탠드의 결과물, 개봉박두!

주최 쪽은 먹이는 것으로 잠을 깨우려 한 듯 과자, 통닭, 귤, 음료수가 때마다 도착했지만 우휘는 귤을 먹으며 자고 있었다. 민수도 가끔 다리와 팔을 축 늘이며 잠이 들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나도 침대를 찾아 들어갔으니… 일어나니 아침 7시. 참가자들이 한방에 모여들었다. 얼마나 엽기적인가, 얼마나 참신한가, 얼마나 흥행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앱을 평가했다. 최고의 영예는 ‘밑져야 본전’! ‘똥의보감’은 흥행성 면에서 한 개의 추천을 받았다. 비몽사몽이었지만 손을 드는 사람이 우휘의 친구라는 것을 확인. 앱잼 일주일 뒤 ‘밑져야 본전’과 ‘Throw Throw’가 완성되었고 앱스토어에 등록했다. 앱스토어 쪽이 연말 휴가라 승인이 늦어진단다. 고등학생이 프로그래머인 ‘똥의보감’과 ‘막장 병림픽’은 방학하면 완성한다고 한다. 방학 시작은 12월29일. 두근두근 개봉박두! ‘대박을 향한 분홍빛 꿈’은 사라졌지만, 지난 1년 중 가장 알찬 하룻밤이었다는 사실. 원나이트스탠드 였잖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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