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 동녘 인문사회팀장
“그럼 이제 진보의 가치는 뭐냐? 연대, 함께 살자. 이거는 엄밀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교리하고도 맞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 같이 하느님의 자식들로 평등하게 태어나서 서로를 존중해라,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자유·평등·평화·박애·행복, 이게 고스란히 진보의 가치 속에 있는 것이거든요.”(213쪽)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에요. 핵심적으로 아주 중요한 벽이 무너진 것은 노동의 유연성을, 우리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이에요.”(232쪽)
“근데 이라크에 파병했죠? 그죠? 그것 말고도 국가적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말하는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한 게 있을 거예요.”(303쪽)
“그야말로 역사의 진보를 밀고 가는 역사의 주체가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의 이상과 목표를 분명하게 품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운영해갈 수 있는 시민 세력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답은 민주주의밖에 없어요. 지배 수단이라는 것을 놓고 정치와 권력을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똑똑히 제 몫을 다하자, 그것 말고 달리 있겠어요?”(309쪽)
<font color="#C21A8D">“그래서 답은 민주주의밖에 없어요”</font>2008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몇 명의 참모들을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로 부른다. 그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책, 우리 사회 공론의 수준을 높일 책, 민주주의 발전사에 길이 남을 책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제안한다. 그 책이 바로 다. 노 전 대통령이 이 책을 쓰고 싶어한 이유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뭔가 뜻있는 일에 책임 있게 헌신해야 한다는 역사의식과 소명의식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사색하고 독서하고 연구한 글을 ‘진보주의 연구 카페’에 올리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직접 참모진과 학자들에게 구술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1차 줄거리 초안’이라는 제목으로 글이 발표됐고, 이 글은 조금씩 수정을 거쳐 ‘5차 줄거리 초안’까지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날마다 밤잠을 잊을 정도로 이 연구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2008년 12월,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노 전 대통령과 그의 주변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해 겨울, 노 전 대통령은 방문객들과의 만남을 끊고 더욱 연구에만 몰두했다. 이 책의 많은 분량은 이 시기에 집필된 것이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책 연구는 중단되고 말았다. 2009년 5월6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제가 더 끌고 가기는 어려울 것 같지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고 집필 작업을 중단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짐을 혼자 끌어안고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리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의 연구는 그렇게 중단됐다.
서거 뒤 연구 모임에 참여했던 참모진과 학자들이 다시 모였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고뇌의 흔적을 다시 따라가보기로 했다. 그 내용을 하나씩 더듬어보니,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의 치열한 시민의식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국민이 먹고살기에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일까? 특히 힘없는 보통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책을 출간해 국민과 소통하기를 원했던 대통령의 구상이 이 원고에 오롯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이어가기로 했다. 대통령이 물었던 주제, 즉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며, 국민 삶을 위해 진보주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더욱 발전시키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노 전 대통령의 유고를 정리했다. 이 과정을 거쳐 노 전 대통령의 육필 원고와 육성 기록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font color="#C21A8D">1부는 육필 원고, 2부는 육성 원고</font>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진보의 미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육필 원고다. 대통령은 생전에 이 땅의 민주주의와 진보를 위해 한 권의 책을 엮고 싶어했지만, 아쉽게도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1부는 그 미완성 원고를 있는 그대로 수록했다. ‘국가의 역할’ ‘보수의 시대, 진보의 시대’ ‘보수의 주장, 진보의 주장’ ‘한국의 진보와 보수’ ‘시민의 역할’ 등 노무현 대통령이 한 사람의 시민이자 지식인으로서 느낀 문제의식이 오롯이 새겨졌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뇌했던 내용과 주제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2부 ‘진보주의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를 집필하기 위해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참모진과 학자들에게 구술한 내용이다. 연구 모임은 2008년 12월에 시작해 서거 직전인 2009년 5월까지 이어졌는데, 원고를 주제별로 나눠 재구성했다. ‘나는 왜 책을 쓰고자 하는가’ ‘진보와 보수를 말하자’ ‘김대중, 노무현은 진보인가’ ‘진보의 대안과 전략을 고민하다’ ‘역사의 진보와 시민의 역할’ 등 다섯 가지 주제이며, 될 수 있는 한 육성을 그대로 실으려 노력했다. 이 글을 1부와 함께 읽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구상한 의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내용을 읽으면 정치인 노무현이 아니라 사상가이자 지식인,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면모가 더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끊임없이 노무현을 지우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왜일까?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노 전 대통령의 ‘진보’에도 여러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진보’를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여러 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현실화하지 못한 지점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이 사회에 이뤄내려 노력하는 게 진보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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