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 문학의숲 편집팀 대리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는 사건·사고,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범죄, 걱정해야 할 것은 늘었고 세상은 요란스럽기 그지없다. 지금 이곳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이 눈 깜짝할 사이 저편에서 엄청난 결과로 나타나는 오늘날의 사회건만, 나 한 사람을 위하기에도 벅찬 삶에 휘둘려 잠깐이나마 주변을 돌아볼 만한 시간이고 여유고 갖지 못한다. 이에 더욱더 피폐해지는 모두의 삶을 마주하며 대체 나는 어떻게 살면 좋은지 불현듯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진다.
하나 속에 전체가, 전체 속에 하나가
“여기 삶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있다. 이 나무 아래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왔다가 떠난다. 때로는 미물의 몸으로, 때로는 동물의 몸으로, 인간의 몸으로, 여자와 남자의 몸으로, 그렇게 몸을 바꿔가며 이 삶이라는 나무 아래 앉았다가 간다. 그대는 이 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깨닫고 가는가? 그대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업가든 스님이든 정치인이든 배우든 택시 운전사든, 그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깨달음을 이루는가이다. 그대는 하나 속에 전체가 있음을 깨닫고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삶을 실천하는가, 아니면 개체와 자아의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가. 그것에 따라 그대의 삶은 성자의 삶이 되기도 하고 속인의 삶이 되기도 한다.”
2년 전 늦봄에 출간된 첫 법문집 (一期一會)에 이은 두 번째 법문집이자 법정 스님 법문집의 완결편인 이 책의 제목은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이다.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하나는 모두이며 모두는 곧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저마다 피어나는 하나하나에는 전체가 담겨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모여 전체를 이룬다. 생전 홀로 오두막에 머물렀던 스님은 우리가 비록 시간적·공간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서로 기대고 받쳐주는 존재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세상에 단 한 사람으로서 초대받은 우리는 서로에게 복밭이자 선지식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큰 생명에서 나온 존재들이며, 남이란 타인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이다.
자신으로부터 시작해 타인에게 도달하라
법정 스님은 “자기 자신이란 독립된 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관계 속에 얽혀 있다”며 안팎으로 수행한 뒤에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자비를 통해 지혜를 이웃과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깨달음의 궁극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해 세상과 타인에게 도달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나라는 존재는 남과 관계를 맺고 있기에 내가 행복해지고자 한다면 먼저 남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스님은 행복하게 해줘야 할 대상을 인간으로만 한정짓지 않았다. 이웃뿐 아니라 그것이 바위가 되었든, 새가 되었든, 짐승이 되었든, 우리가 만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뿐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뿐인 인연이기 때문이다.
“만남의 의미를 뜻있게 지니려면 보다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처럼 비정하고 냉혹한 세태에 우리가 사람의 자리를 잃지 않고 지키려면, 만나는 대상마다 보다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 나는 새벽예불 끝에 늘 다짐을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보다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겠습니다.’”
법정 스님의 법문은 종교를 초월해 모든 이에게 진정한 삶의 길을 제시했다. 단순하고 청빈한 생활의 실천가이자 자유로운 정신의 표상이던 스님의 맑은 법문은 이 시대의 정신적 양식이자 영혼의 샘물이 돼주었다. 쓸쓸히 잠든 이에게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고, 외로운 이의 마음속 뒷마당을 정갈하게 쓸어주는 다정한 손길 같았던 말씀. 그 한마디에 어떤 이는 잃었던 웃음을 되찾았고, 어떤 이는 함박눈처럼 펑펑 울고 나와 차꽃보다 맑은 영혼의 밭을 갈기로 마음먹었다. 어부의 그물에 갇힌 물고기처럼 어쩔 줄 몰라하던 이들은 마음을 늦추고 낮추는 기쁨을 발견했다.
17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
에는 2009년 5월 성북동 길상사에서 부처님오신날에 행한 법문을 시작으로 2000년 뉴욕 불광사 초청법회와 1998년 원불교 서울 청운회 초청강연, 1992년 약수암 초청법회에 이르기까지 17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서른다섯 편의 법문이 두툼한 분량으로 실려 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17년 전이나 1년 전이나 스님의 말씀에 한 톨의 변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크나큰 감동이다. 어쩌면 법정 스님의 그 삶이야말로 더욱 가치 있는 법문일지 모른다. 말은 행이 뒤따라야만 그 아름다움이 진정성을 갖는 까닭이다. 말과 삶이 일치하는 이와 동시대를 살아갔던 우리는 행복하다. 법정 스님의 법문들과 우리 사이에는 17년 이상의 세월이 존재할 것이고 그 거리 또한 가늠할 수 없겠지만 을 읽는 순간, 우리는 그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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