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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삼성을 생각할 때



언론의 책 광고 거부 사태 이후 독자들의 자발적인 ‘광고’가 들불처럼 번진 <삼성을 생각한다>
등록 2010-12-31 16:27 수정 2020-05-03 04:26
[올해의 책 2010]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지음/ 사회평론 펴냄

〈삼성을 생각한다〉김용철 지음/ 사회평론 펴냄

김태균 사회평론 학술팀 대리

는 2007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삼성 비리’ 고발의 주인공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다. 가볍지 않은 주제와 만만찮은 분량, 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2010년 1월 말 출간 즉시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약 두 달 만에 판매 10만 부를 돌파했다. 제목인 ‘삼성을 생각한다’는 유례없는 소비자운동의 한 슬로건으로, 2010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외양적으로 볼 때 는 2010년에 탄생한 수많은 베스트셀러 중 그다지 눈에 띄는 책은 아니다. 다른 베스트셀러들과 비교하면 많이 팔린 책도, 독자 인지도가 높은 책도 아니다(누적 판매부수 약 16만 부). 그러나 이 책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은 아마 다른 책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광고 거부 사태’

출간 직후, 이 책은 주로 담고 있는 내용으로 주목받았다.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숨겨진 이면과 기업 총수 일가의 사생활 등이 그것이었다. 이를테면 ‘이건희 전용기 스튜어디스 무릎 시중’과 같은 선정적 문구가 여론과 독자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상투적인 관심은 곧 뒷전으로 밀려났다. 저자도 출판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책은 ‘광고 거부 사태’를 통해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존재 자체로 위력을 발휘했다. 언론은 이 책을 철저히 외면했다. 특히 광고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일간지들이 유독 이 책의 광고만은 실어주지 않았다. 다양한 핑계를 댔지만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성을 불편하게 할 책을 광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매년 막대한 금액을 광고에 쏟아붓는 삼성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게재하는 언론을 광고를 끊는 방법으로 다스렸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자발적으로 삼성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본의 언론 장악 시나리오가 이미 완벽히 실현됐음을 이 사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과 언론은 이 책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이 취급했다.

그러나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출판사나 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상황을 독자에게 알리는 것뿐이었다. 광고 거부 사태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자 독자의 폭발적인 반향이 뒤따랐다. 수많은 독자가 트위터 등을 통해 일간지의 광고 거부를 알렸고, 스스로 책을 광고하기 시작했다. 책 광고는 불과 며칠 만에 십수만 명에게 리트윗됐다. 수천 개의 블로그와 카페도 책 광고에 동참했다.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 캠페인은 말 그대로 들불처럼 번졌다. 그렇게 이 책은 2010년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폭발적인 독자의 반응, 유례없는 소비자운동은 충분히 기사화할 만한 ‘사건’이었고, 국내 언론들이 여전히 침묵하는 가운데 <bbc> 등 외신이 이 사실을 보도했다. 대표적으로 는 “책 한 권이 대한민국을 갈라놓았다”면서 한 권의 책이 일으키는 기적을 세상에 알렸다.
 
우리 시대 새로운 아킬레스건 ‘자본권력’
출간 전에는 아무도 이 책이 몰고 올 파장과 의미를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저자도 출판사도 예상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출간 뒤 이 책은 만든이의 손을 벗어나더니 스스로 수많은 사건을 만들어냈다. 약 반년 동안 자신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정치권력보다 더 치명적인 자본권력의 위험성을 드러내며 우리 사회의 새로운 아킬레스건을 알게 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이 책은 우리를 어느 때보다 아프게 하는데, 그것이 역설적으로 책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
책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지켜보면서 출판사와 저자는 100만 부를 팔아서 세상을 바꾸자는 꿈을 꿨다.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판매량은 시간이 지난수록 줄어서 통산 16만 부가량이 팔린 것으로 집계된다. 100만 부의 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부수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 ‘위험한’ 책이 16만 부나 팔렸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독자와 이 책의 존재를 실감한 더 많은 사람들이 ‘또 하나의 가족’이 경영하는 ‘리얼 월드’의 목격자다. 이제는 이들 역시 저자 및 출판사와 함께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이로써 현실은 분명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꿈에 가까워졌다. 이것이 이 책이 이룬 가장 위대한 성취다.
이 책에는 김용철 변호사가 7년간 일하며 보고 겪은 삼성이 온전히 그려져 있다. 그가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는 책의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삼성에 입사하기 전에 그가 가졌던 글로벌 기업의 환상은 모두 부서졌다. 그는 삼성이 저지른 비리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그를 괴롭힌 것은 삼성이 비리를 저지른다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상시적으로 저질러지는 비리가 삼성 존재의 한 근거라는 사실, 그것이 그를 괴롭게 했다. 그는 묻고 싶다. 기업의 핵심인 선진 경영과 세계적인 경쟁력, 삼성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지금껏 대한민국은 오늘의 삼성을 만들기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나 이제 잠시 삼성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게 삼성을 다시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독자가 그의 글을 통해 삼성을 생각할 ‘때’를 실감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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