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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법한 미래, 있었을 법한 과거



베르베르의 기상천외한 상상과 역설 가득한 과거를 담은 단편집 <파라다이스>
등록 2010-12-31 15:48 수정 2020-05-03 04:26
[올해의 책 2010]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열린책들 펴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열린책들 펴냄

강무성 열린책들 편집주간

는 베르베르의 상상력 속에서 탄생한 기상천외한 미래, 그리고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 속에서 나온 역설 가득한 과거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이다.

 개미들의 세계, 인간 두뇌의 비밀, 죽음 이후의 세계, 진화의 수수께끼 등 언제나 독특한 소재와 놀라운 상상력으로 전세계 독자를 사로잡아온 베르베르. 2008년과 2009년에는 신화·역사·철학이 어우러진 대작 (전 6권)으로 한국 독서 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베르베르가 이번 책에서는 ‘짧은’ 형식과 새로운 서사 기법을 시도했다.

 

자신의 추억을 대담하게 공개

 에 수록된 17편의 독립적인 이야기들은 ‘있을 법한 미래’ 혹은 ‘있었을 법한 과거’라는 꼬리표를 달고 엇갈려 등장한다.

 ‘미래’ 이야기들은 ‘만약…’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상상으로 축조된 ‘인류’의 미래다. 담배 한 대만 피워도 사형을 면치 못하는 무자비한 환경 독재 사회(‘환경파괴범은 모두 교수형’), 여자들만 남고 남자들은 전설이 돼버린 세계(‘내일 여자들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금지된 세상(‘영화의 거장’), 출처를 알 수 없는 농담의 발원지를 끝까지 추적하는 한 코미디언의 모험(‘농담이 태어나는 곳’)…. 베르베르 아니면 발상해내기 어려운 미래의 모습이 펼쳐진다.

 ‘과거’ 이야기들에서는 작가 자신의 개인적 추억을 ‘상당히 대담한 부분까지’ 공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베르베르가 전혀 다루지 않았던 영역인데다, 완전 구어체 1인칭 서술 등 기법 면에서도 신선한 시도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불행을 향해 달려가는 기묘한 정신세계를 가진 한 여성과의 연애(‘남을 망치는 참새’), 지방 신문의 연수 기자 시절 살인사건을 취재하며 겪은 황당한 해프닝(‘안개 속의 살인’), ‘백인 고기는 맛이 없어 먹지 않는’ 식인 부족과 안전하게 생활하며 아프리카 마냥개미 관찰에 목숨을 건 체험(‘대지의 이빨’), 최면을 통한 전생 퇴행으로 ‘기억해낸’ 1만2천 년 전 자신의 사랑 이야기(‘아틀란티스의 사랑’)…. 이렇게 ‘과거’를 쓴 이유를 작가는 머리말에서 “그 일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썼다. 미래를 보면 볼수록 나 자신의 과거가 증발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미래와 과거의 이야기는 책 속에서 그렇게 엄밀한 경계를 갖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고리처럼 맞물리며 이어진다. 그래서 하나의 장편소설로도 읽힌다. 수록 작품 전체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다음 문장이 그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어떤 현실이 미래에 존재할 수 있으려면, 누군가가 오늘 꿈에서 그 현실을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에서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그건 이미 우리 조상들이 꿈에서 본 것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날 좋은 일은 우리 중 누군가가 지금 꿈에서 볼 수 있다.”(‘내일 여자들은’ 중에서)

 완전히 독립적으로 보이는 17편의 이야기는 이렇게 맞물려 돌아가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인간 관찰’이라는 하나의 큰 패러다임, 또 느슨하지만 교묘히 연결된 소재들의 정교한 배치에 의해 마치 한 편의 장편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베르베르는 프랑스 타블로이드 잡지 <vsd>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미래관과 추억의 조각들을 연결한 장편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판에만 있는 강렬한 개성의 일러스트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뿜어내는 다양한 개성을 살리기 위해, 한국어판 에는 최근 강렬한 개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5명의 일러스트레이터(김정기·문지나·아이완·오영욱·이고은)의 그림을 함께 실었다. 각각의 작가는 이야기의 성격에 맞춰 선택됐다. 김정기는 정교한 사실적 묘사로, 문지나는 동화적 채색화로, 아이완은 몽환적 분위기의 연출로, 오영욱은 다이내믹한 공간감으로, 이고은은 포스트모던한 해체로 각 이야기의 분위기에 걸맞은 그림을 그려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먼저 발견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다시 소개한다. 베르베르는 일곱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타고난 글쟁이다. 19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하고 국립 언론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별들의 전쟁’(스타워즈) 세대에 속하는 그는, 고등학교 때 만화와 시나리오에 탐닉하면서 만화로 된 신문 를 발행했고, 이후 올더스 헉슬리와 H. G. 웰스를 사숙하면서 소설과 과학을 익혔다. 대학 졸업 뒤에는 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과학잡지에 개미에 관한 평론을 발표해오다, 드디어 1991년 120여 회의 개작을 거친 를 출간해 전세계 독자를 사로잡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떠올랐다.
 이후에도 세계 밖에서 세계를 들여다보게 하는 ,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영계 탐사단을 소재로 한 , 인류 진화의 수수께끼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과학 스릴러 , 천사들의 관점을 통해 무한히 높은 곳에서 인간을 관찰하는 , 뇌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 탐구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 ,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우리의 상식을 깨는 , 거대한 우주 범선을 타고 희망을 찾아 떠나는 14만4천 명의 이야기 , 신들의 게임을 통해 인간 세상을 우의적으로 풍자한 등으로 프랑스 내에서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의 작품은 35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2천만 부 가까이 판매됐다.</v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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