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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라, ‘장두노미’의 세상에서



서거 1주기에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 정본 자서전 <운명이다>
등록 2010-12-31 06:43 수정 2020-05-02 19:26
[올해의 책 2010]
노무현 전 대통령 정본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펴냄

노무현 전 대통령 정본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펴냄

박태근 돌베개 인문사회팀

2010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장두노미’(藏頭露尾)로 선정됐다. ‘쫓기는 타조가 머리를 덤불 속에 숨기지만 꼬리는 미처 숨기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란다. 교수들은 4대강 개발 논란과 천안함 침몰 등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현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고 의혹을 해소하려는 노력보다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무현 자서전 는 이처럼 현 정권이 실정을 거듭하는 상황 속에서 그 존재 이유를 찾아갔다. 소통을 거부하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 반민주적 정책 운용에 대한 시민사회의 위기감 속에서 노무현이라는 인물은 어느새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부활했다.

미완성 원고를 유시민 전 장관이 정리

는 이미 출간 전부터 흥행(?) 요소를 두루 갖춘 책으로 회자됐다. 먼저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에 맞춰서 낸 정본 자서전이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우리 역사에서 이렇게 오해받은 대통령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노 전 대통령 사후에 시민사회에서 그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현 정권의 반민주적 행보가 국민에게 노 전 대통령의 서민적이고 탈권위주의적인 모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에는 또다시 추모 열기가 점화될 터였고, 이 책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커질 것이었다.

이 책의 정리 작업은 유시민 전 장관이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의 이른 서거로 다른 사람이 자서전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대통령 생전에 본인의 자서전 집필을 약속받았던 유 전 장관이 정리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익히 잘 알려졌듯, 유 전 정관은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사람으로서 참여정부를 세우는 데에도 일등 공신이었다. 또한 정치 활동과 병행해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비판적 논객’으로도 이름을 날린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우리 시대 가장 논쟁적인 인물의 삶을 우리 시대 최고의 저자가 기록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대할 만한 책이었다.

“이 책은 누구를 미화하려고 쓴 책이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는 노무현 대통령만큼 많이 오해받았던 대통령이 없어요.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한 인간으로서의 생애, 그리고 정치인으로서의 삶, 대통령으로서 했던 고뇌, 그리고 갑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나는 과정과 관련된 일들, 이런 것들을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출간 인터뷰 중에서)

의 탈고를 끝내고 편집부로 찾아온 유 전 장관의 첫마디는 “이제 큰 짐을 던 것 같다”였다. 그렇게 많은 글을 써온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정리 작업만큼은 꽤 힘들었나 보다. 그때가 2010년 2월 말이었다.

는 ‘사후 자서전’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유 전 장관은 고인이 남긴 저서,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 등과 각종 인터뷰 및 구술 기록을 토대로 출생부터 서거까지 일목요연하게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기록을 일관된 문체로 정리하는 것도 정리자의 몫이었다. 고인의 모든 자필·구술·기록물을 살펴 일대기로 정리하고, 빈틈은 유족과 지인들의 인터뷰, 공식 기록 등을 통해 보완했다. 고인이 남긴 여러 기록 중 퇴임 뒤 서거 직전까지의 미완성 회고록 노트를 기본으로 문체를 통일하는 작업도 거쳤다. 유족과 노무현재단 관계자, 그 밖에 가까이에서 고인을 지켜봐온 지인들의 검토를 통해 사실관계를 철저히 확인해 오류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했다. 2009년 8월부터 2010년 2월까지 꼬박 6개월 동안의 작업이었다. 유 전 장관이 그 작업 기간을 곧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시간”이었다고 할 만큼, 이 작업은 정리자 본인에게도 정신적으로 꽤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위대한 유산

역시 는 출간되자마다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출간 일주일 전, 인터넷서점 예약 판매에서 단숨에 종합순위 상위에 랭크되더니 6월 초까지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트위터를 타고 대통령 추모의 글과 사진이 리트윗되고, 참여정부 시절 노 대통령이 시국과 관련해서 강연했던 동영상이 다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특히 6·2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노풍’(盧風)이라는 말이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왜 노무현일까? 사실 2010년에 출간돼 주목할 만한 베스트셀러 세 권을 고르라면, 를 꼽을 수 있다. 이 책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폭넓게 본다면 ‘정의’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부패한 자본권력에 대한 저항감에서 독자들이 를 찾았다면, 반민주적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감으로 를 찾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서전에서 볼 수 있듯, 노 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한민국 대통령도 보여준 적 없는 탈권위적인 지도자였다. 국익을 고민하면서도 대국들과의 외교에서 늘 당당하게 우리 권리를 주장한 자존심 센 인물이었다. 특히 자서전에는 언론권력과 검찰권력, 그 밖에 무수한 기성권력과 외롭게 싸워야 했던 노 전 대통령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련의 사태 속에서 시민들이 노무현 자서전을 찾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일을 정점으로 외형상의 추모 열기는 누그러졌지만, 지방선거 때까지 책 판매량은 꾸준히 유지됐다. 지방선거에서는 ‘4대강 개발 반대’와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운 야당이 승리했다. 참여정부 때 인사들도 대거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국 정치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한편으로 귀중한 유산도 남겼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그 정부가 민주주의를 훼손하려 할 때 노무현은 부활할 것이고, 민주주의가 역행할 때 5월은 여느 달보다 뜨거울 것이라는 유산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몸을 던진 한 인물의 기록으로서, 가 여느 정치인들의 자서전보다 뜨겁게 읽힐 책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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