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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의 해탈, 그냥 달리는 게 좋아요

자전거 타는 인간, 델로스
등록 2010-08-18 06:54 수정 2020-05-02 19:26
8년 만의 해탈, 그냥 달리는 게 좋아요. 델로스 제공

8년 만의 해탈, 그냥 달리는 게 좋아요. 델로스 제공

8년 동안 8대의 미니벨로를 갈아탔다. 요 몇 년 거의 매달 자전거대회를 나갔다. 대관령과 미시령을 오르는 험난한 코스에서 ‘순위권’에 들기도 했다. 서울 마포에서 강남 정도까지는 가뿐하다. 그의 이름은 델로스. 자전거 레이서. 본업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다.

시작은 이랬다. 2002년, ‘델로스 일러스트 다이어리’를 내놓았다. 생각보다 무척 많이 팔렸다. 기대하지 않았던 수입이 생긴 김에 기백만원 하는 산악자전거를 ‘질렀다’. “그런데 왠지 잘 차려 입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자전거가 덩치도 크고….” 바로 고가의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러다 미니벨로가 눈에 들어왔다. 16인치 바퀴의 아담한 사이즈가 부담 없어 보였다. ‘노란색 별’이란 뜻을 지닌 모델을 구입했다. 유유자적 양재천을 달리는 게 좋았다. 그냥 탄다는 데 만족하는 시절이었다.

2003년엔 동호회에 가입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더라고요.” 동호회 사람들과 모여 라이딩도 하고 대회도 나갔다. 미니벨로 부문이 따로 없던 초창기, 동호회에서 대회 주최 쪽에 강력히 건의해 올림픽 시범종목처럼 미니벨로 부문이 생겼다. 그렇게 처음 참가한 미시령 대회에서 팀이 우수한 성적을 거둬 파프리카 한 박스를 상으로 받았다.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하니 자전거 욕심이 났다. 고가의 미니벨로를 구입했다. “정해진 수순이라고 할까요. 예쁘게 꾸미고 별짓을 다 했죠.” 이제 경쟁심이 불타오르는 시기가 왔다. 앞서가는 자전거를 보면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잡았다. ‘나만의 자전거’를 갖기 위해 일본 공방에서 맞춤 자전거를 만들기도 했다. 클래식한 디자인, 가벼운 프레임, 완벽한 휠. “그런데 완벽한 자전거를 타니, 그것도 문제더라고요. 바꿀 게 없으니 심심한 거예요.” 자전거 마니아들이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거나 바꾸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자기한테 안 맞아서, 또 하나는 그냥. 델로스씨도 그런 마니아 중 한 사람. 그렇게 몇 대를 더 바꿨고, 레모네이드빛으로 도색한 프레임에 핸들과 안장 등 부품을 모두 은색으로 ‘깔맞춤’한 중량 7.5kg짜리 지금의 미니벨로까지 왔다. “이게 제 마지막 미니벨로예요. 더 바라는 게 없어요.” 경쟁의 시절이 가니 해탈의 단계가 오더란다. “지금은 그냥 타요.”

그는 요즘 자전거 탈 때 입는 의상을 만들고 있다. 직접 디자인한 동호회 단체 티셔츠가 반응이 좋았던 까닭이다. 평상복 디자인에 기능성을 더한 라이딩 의상과 자전거 소품을 만들어 공동구매 사이트에서 판매한다. 한강 라이딩의 묘미를 담은 책도 준비하고 있다.

취미가 일상이 되고 일상이 또 일이 된 행복한 델로스씨. 자전거로 달성하고 싶은 로망은 없는지 물었다. “없어요. 그냥 공기 마시면서 몸을 움직여 달리는 게 좋아요. 바라는 게 있다면 자전거도로가 더 많아지면 좋겠고, 자동차들이 위협 운전 안 했으면 좋겠고, 라이더들이 안전 신경 써서 조심조심 타면 좋겠어요.”

김송은 송송책방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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