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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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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가 이상해졌어요


‘어리다고 놀리지 말라’더니 이제 오빠와 삼촌을 향해 요염한 미소를 던지네
등록 2010-03-26 02:55 수정 2020-05-02 19:26

“아빠, 소녀시대가 이상해졌어요.” 소녀시대의 신곡 (Oh!)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난 뒤 딸아이의 말이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딸은 소녀시대의 열성팬이다. 지난해 여름 휴가차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딸아이의 간절한 소원이던 가 수록된 소녀시대의 미니앨범을 사주었다. 딸아이는 이동 중인 차 안에서뿐 아니라 펜션에서도 오로지 소녀시대의 CD만 듣고 따라했다. 휴가가 끝나고 서울로 이동할 즈음 딸아이는 미니앨범의 모든 수록곡을 외우고 말았다.

소녀시대는 <오!>를 통해서 “난 이제 소녀가 아니에요”라고 ‘성인식’을 치렀다. 이제 팬에게는 달라진 소녀시대에 적응하는 일만 남았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소녀시대는 <오!>를 통해서 “난 이제 소녀가 아니에요”라고 ‘성인식’을 치렀다. 이제 팬에게는 달라진 소녀시대에 적응하는 일만 남았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딸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는 〈Kissing You〉이다. 왜 좋아하냐고 물어보니 언니들이 너무 천사같이 예쁘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화의 세계처럼 꾸민 방에서 하얀색 옷을 입고 커다란 막대사탕을 흔들며 앙증맞은 표정을 짓는 뮤직비디오는 데뷔 초 소녀시대의 트레이드마크인 ‘깜찍발랄함’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 공주 방에 공주 옷, 공주 표정을 짓는 이 뮤직비디오가 ‘초딩’ 2학년 딸아이의 눈에 꽂힌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뮤직비디오 에서 소녀시대는 오빠를 유혹하는 요염하고 섹시한 스타일로 변신했다. 짧은 핫팬츠에 핑크빛 긴 비닐 부츠, 원색의 야구모자와 길게 늘어진 파마머리는 오빠를 유혹하는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치어리더로 변신한 뮤직비디오의 퍼포먼스도 영락없이 미성년의 이미지를 벗어내려는 오빠들을 향한 성인식이다. 딸아이는 “전에 알던 내가 아냐” “오빠를 사랑해”를 부르는 언니들의 노골적인 변신에 흠칫 놀라며 보고 있던 뮤직비디오 동영상을 꺼버렸다. 소녀시대의 어린 팬들은 “언니”와 “누나”를 외치지만, 정작 그녀들은 “오빠”와 “삼촌”을 향해 요염한 미소를 던진다.

소녀시대는 변신했다. 뮤직비디오 는 깜찍발랄에서 섹시요염으로 확실히 변신한 소녀시대의 성인증명서와도 같다. 성숙해진 그녀들의 몸이 오빠를 부른다. 그러나 노래 속 ‘오빠’는 실제 오빠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상품으로 재무장한 소녀시대가 가상의 고객 삼촌 팬들을 호명하는 ‘상상된’ 기표다. 딸아이가 뮤직비디오에서 느꼈던 첫인상이 이상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애초에 초딩 팬덤이 이 노래에 개입할 여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빠만 찾는 언니들의 변신을 보며, 초딩들은 아마도 언니들이 날 외면할지도 모른다는 거세공포증에 시달렸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딸아이는 더 이상 소녀시대를 찾지 않았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대략 일주일간의 적응기를 거친 딸아이는 를 매일 흥겹게 따라 부른다. 다시 좋아졌다는 거다. 어느 초딩의 한순간 반란은 곧 진압되고 만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건 이 노래가 초딩의 거세공포증마저 무력화할 수 있는 최신 유행가이기 때문이다. 초딩의 시각적 거부감은 신상 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딸아이의 실제 거세공포증은 의 섹슈얼리티 그 자체에 있었다기보다는 최신 유행가로부터 내가 배제될지 모른다는 데 있었던 셈이다. 의 유행 형식과 트렌드의 압도적 효과는 소녀시대의 변신을 정당하게 만든다. 아이돌 그룹의 최신 유행가는 모든 것을 먹어 삼킬 정도로 압도적이다. 이제 ‘블랙 소시’로 변신한 소녀시대에 대해 딸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한국은 동서고금 유래없는 아이돌 공화국, 그래서 아이돌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욕망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돌을 ‘사유하는’ 젊은 연구자들의 모임인 ‘아이돌팝 문화연구 세미나’ 팀이 매주 ‘아이돌 탐구반’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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