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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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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사업하는 팬질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팬클럽의 자원활동, 절멸돼가는 사회성을 복원하는 상징적 언어
등록 2010-07-07 16:36 수정 2020-05-03 04:26
김현중의 팬클럽 ‘지후앓이’ 회원들이 지난 6월27일 오후 서울 가회동 아름다운재단을 찾아 350만원을 기부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김현중의 팬클럽 ‘지후앓이’ 회원들이 지난 6월27일 오후 서울 가회동 아름다운재단을 찾아 350만원을 기부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나는 요즘 아름다운재단에서 후원하는 아카이브 사업을 맡아 하고 있다. 주로 1세대 아이돌(H.O.T부터 god까지) 문화에 대한 팬들의 기억을 수집하는 일이다. 물론 학술적 목적이 주가 되지만 사실 거기에는 그동안 손가락질과 비웃음을 받아왔던 팬덤 문화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해보자는 심산도 깔려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법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런 주제를 공익사업으로 인정해준 아름다운재단 말이다. 상식적으로 아이돌 팝문화와 사회공공성을 직접적으로 연결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관계자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정은 이랬다. 근래 들어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활동을 하는 팬클럽이 급증하고 있는데 자신들조차도 이런 현상이 신기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참에 우리 문화사회연구소 쪽의 문제의식이 팬덤의 의미화에 있으니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사업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최근 팬덤 문화의 양상 중 하나가 바로 사회지향적(societal) 활동이다. 이제 팬들은 십시일반해 김현중·배용준·서태지·소녀시대 등등의 이름으로 기부활동을 한다. 그리고 팬질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더불어 바자회를 열거나 자원봉사 활동을 다니곤 한다.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서태지 마니아들이 ‘함께일하는재단’과 정기기부 협약을 체결했고, 올 2월에는 김현중 팬클럽이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장학기금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다방면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물론 스타라는 상징을 통해서만 이러한 행위가 나타난다는 점, 그리고 이런 활동이 관료사회나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 등에서 기부문화의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팬덤은 스타와의 가상적 관계를 통해서만 조직된다. 그렇기에 이들의 ‘착한’ 행동을 두고 예의 꼰대 같은 눈길을 보내거나 과중한 짐을 떠맡길 필요는 없다.

일단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와 자원활동을 하게 되면 자신들이 지지하는 스타의 이미지가 제고된다. 이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가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맥락을 형성한다. 특히 아이돌 스타의 경우에는 한국 사회 특유의 엄숙주의적 시선 때문에 스타 자신이나 팬들이 난처함을 호소하곤 하는데, 이러한 사회 지향적 활동은 그렇게 ‘일반화된 타자’로부터 자신들의 정체성과 감수성을 승인받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사회 지향적 활동을 통해 절멸돼가는 사회성을 지켜낸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가 됐든 아니면 다시 고개를 쳐든 권위주의가 됐든 어떤 이유로 인해 우리 주변에서 사회적인 것들(the social)은 무참히 소실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팬덤은 확실히 우리에게 어떤 에너지가 아직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이 복원하고 있는 공동체적 관계성과 상호부조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면 약자를 돌보면서 세상의 부조리에 대응하고자 하는 이들의 실천은 사실상 더 많은 사회적인 것을 요구하는 일종의 상징적 언어가 아닐까.

확실히 오늘날 팬덤은 진화하고 있다. 맺음말을 대신해, 어느 서태지 팬이 남겼다는 유명한 말을 패러디하면 이렇다. 시작이 아이돌이었다고 해서 그 끝도 아이돌일 거라 단언하지 말라.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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