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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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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처럼

누구나 한 번씩은 거쳐가는 소설 <상실의 시대> 한국 출간 20년,
일상의 곳곳에 스며든 ‘하루키와 나’
등록 2009-08-06 16:14 수정 2020-05-03 04:25
무라카미 하루키. 사진 REUTERS/ PETR JOSEK

무라카미 하루키. 사진 REUTERS/ PETR JOSEK

1989년 7월 땡볕 운동장, 학생들이 열을 지어 모여앉아 있었다. 지구온난화가 아니어도 여름은 더웠고 운동장은 햇볕을 다 받아냈다. 선생님들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국어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등 뒤로 구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선생님은 아무 말씀이 없었다. 학생들의 울음소리가 높아졌다. 조용히 울던 학생은 속이 쿨럭해져 꺽꺽대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멍하던 학생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음소리가 너무 커져 선생님이 다시 말을 시작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잘 지내, 흑흑, 라, 엉엉, 안, 컥컥, 녕. 전교조 탈퇴서를 쓰지 않은 교사에게 여름방학을 노려 기습적으로 해고 통지가 왔다. 반동은 인간의 얼굴로 왔다. 수학 시간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순진한 교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업을 했고, 자율학습을 시키지 않던 담임 자리는 “나도 하기 싫”다는 지구과학이 맡았다. 거창하고 싶어도 별로 거창해지지 않는 ‘상실의 시대’였다. 큰 것을 잃었으나 누구 미워할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구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천천히, 울던 학생들은 20년이 지나 37살이 되었다.

사라져간 캐주얼티즈에 관한 이야기

1987년 37살의 ‘나’는 루프트한자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는 동안 비틀스의 (Norwegian Wood)를 들으며 머리를 걷어차이는 느낌이다. “일어나라, 생각해보라, 하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래서 나는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무슨 일이든 글로 써보지 않고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20년 전 1969년에서 1970년까지의 ‘나’를 떠올린다.

20년 타임워프. 1969년 사토 총리의 방미를 저지하려는 투쟁이 벌어져 2천 명이 체포되고, 뜨거운 꿈을 꾸는 시대는 갑자기 저물었다. 1970년 구석으로 몰린 혁명이 만들어낸 적군파 한편에선 보수의 깃발이 바쁘게 들렸다. 아사마 산장 사건(1972년 2월19일 연합적군 사카구치 히로시 등 5명이 총격전을 전개하다가 28일 모두 체포됨)에 동정을 보내는 이들은 한 줌에 불과했다. 문이 쾅 하고 닫혔다. 반성을 할 사이도 없이 투쟁에 앞장섰던 이들은 제 앞가림에 연연했다. 20년을 건너뛰어 루프트한자의 ‘나’에게 그 시절은 친구의 죽음과 우연히 만난 친구의 애인에게 싹트는 묘한 감정으로 기억된다. 많은 이들이 젊어서 죽었다. 정치적 이유가 아닌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잇달아 죽어간다. 그건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이 아니냐는 비평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변명이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이야기가 그것을 나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정말로 나로서는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캐주얼티즈(casualties)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내 주위에서 죽어간, 혹은 나 자신의 내부에서 죽거나 사라져간 수많은 캐주얼티즈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정말로 이 소설에서 쓰고 싶었던 것은 연애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캐주얼티즈의 모습이며, 그 캐주얼티즈의 뒤에 남아서 존재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혹은 사물들의 모습이다. 성장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고독하게 싸우고, 상처받고, 상실되고, 상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야만 하는 모습이다.”(열림원 판 책 표지글)
다음 카페 ‘무라카미 하루키 되기’의 회원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하루키의 책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박주희, 김도윤, 윤성의, 유승진, 윤종석씨.

다음 카페 ‘무라카미 하루키 되기’의 회원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하루키의 책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박주희, 김도윤, 윤성의, 유승진, 윤종석씨.

무라카미 하루키는 문학사상사에 보낸 (원제 노르웨이의 숲) ‘한국어판에 부치는 저자의 서문’(1989년 3월)에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를 한국의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일본에서는 이 ‘100% 연애소설’이라고 광고했다. 그리고 우리는 살짝 속았다. 실상 시대는 시대와 이미 손을 맞잡고 있었다. ‘나’의 과거는, 6·10 항쟁이 문을 열었으나 올림픽을 치른 뒤 한편에서 분당 등 신도시 건설로 경기 진작책이 이루어지고, 또 한편에선 문익환 목사와 서경원 의원 방북으로 공안 정국으로 급선회하고 전교조 대량 해직이 이어진 1989년의 한국과 통했다. 는 1989년 6월27일 시장에 나왔다. 그날로부터 20년간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은 ‘상실의 시대’를 지났다.

휴대전화 광고로 베스트셀러에 등극

1988년 12월 일본의 발간 형태를 본떠 빨간색과 초록색 상하 두 권(삼진기획)이 나와 있었지만 반응은 미지근한 상태였다. 문학사상사는 1988년 나온 를 정식 계약하면서 하루키 소설과 인연을 맺는데, 하루키 쪽에서는 도 내줄 것을 권했다.

임홍빈 문학사상사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원제대로 나온 책이 있는데도 또 내는 건데 안 팔리면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제목을 바꾸었다. 일본 문학에 대한 벽이 워낙 두꺼웠기에 일본 작가가 아닌 세계적인 작가라고 홍보했다. 내고 보니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는 안 팔리고 만 나갔다.”

1987년 저작권법은 1987년 10월1일 이후 나온 원작의 번역물에 대해 저작권료 지급을 명시했다(이전에는 저작권료 개념이 자리잡지 못했다. 이후 2000년 저작권법 개정으로 작가의 사후 50년까지는 모든 작품에 대해 저작권료를 지급하게 됐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1987년 9월’에 발간된 은 한국에선 ‘행운’의 책이었다. 이후로도 몇몇 출판사에서 여러 종의 이 더 발간되었다. 어쨌든 은 ‘상실의 시대’로 통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사장은 “여러 판본이 있었지만 를 읽어야 를 읽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상실의 시대’는 문학출판사(史)에서 ‘훌륭한 작명’으로 기록된다.

하루키의 는 출간 5년 만인 1994년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고, 1995년 12월 말 55쇄 30만 부라는 판매를 기록한다(·1996). 2000년 봄 “노르웨이 숲에는 가보셨나요?”라는 현대전자의 휴대전화 광고가 등장하면서 베스트셀러 1, 2위로 등극한다. 그 이후로 한 해 2만~3만 부를 찍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책은 부메랑이란 단어에 ‘던지면 되돌아오는 갈고리 모양의 장난감’이라는 역주가 달릴 만큼 20년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지만, 는 현대적이다. 5월8일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일본이 주빈국으로 참가하는 2009 서울 국제도서전을 앞두고 싸이월드 20~30대 이용자 2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2%가 를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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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지나 많은 이들은 ‘하루키 스타일’로 나아갔다. 역시 시대가 문제였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의 재편은 하루키의 스타일을 널리 확산시켰다. 1997년 서서히 전성기를 구가하던 PC통신의 중심에도 하루키가 있었다. 최근 (모요사 펴냄)를 펴낸 음식 칼럼니스트 차유진씨의 ‘손녀딸’이란 아이디도 하루키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나온 이름이다. 1997년 하이텔 하루키 소모임에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하루키 등장인물로 꾸미곤 했다. ‘손녀딸’은 에 나오는 “분홍 옷을 즐겨 입고 뚱뚱하지만 얼굴이 예쁘고 요리를 잘하며 남자에게 관심 많은, 노박사의 손녀딸”이다. 차유진씨는 당시 동호회 ‘오프’의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술을 마시고 세상 고민 다 짊어진 듯이 힘들어하나, 저렇게 대놓고 여자에게 작업해도 되나, 사람들이 왜 이리 현실감이 없어 보일까 등등 여러 가지 낯선 느낌이었다. 하루키의 소설 속 인물들과 공명하고 싶어 열심히 활동하면서, 좋은 것이든 구질구질한 것이든 많이 배웠다. 시샵 오빠의 말로는 한국 작가 모임도 변변하게 없는데 일본 작가 모임을 만들었다고 욕도 꽤 먹었다고 하더라.”

“얼마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얼마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 “그게 무슨 말이야. 봄날의 곰이라니?”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같이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똘망똘망한 새끼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 하겠어요?’ 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곰은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 영화 의 제목이 된 문장)

2003년 개설된 다음의 ‘무라카미 하루키 되기’ 카페 회원 수는 4천 명이 넘는다. 대부분이 20대다. 20년이 지난 뒤 17살에게도 하루키는 단숨에 읽힌다.

카페지기 김도윤(27)씨는 언어영역 이외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를 피해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어야 했는데, 책방의 친한 누나가 “야 이거 읽어봐”라고 건네주는 것을 들고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앉아서 그냥 끝내버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것도 처음이었지만 그렇게 긴 소설을 독파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 뒤로도 질릴 때마다 꺼내본다. 다.

같은 카페의 박주희(28)씨는 하루키의 수필을 좋아했다. 너무 좋아 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나 읽은 소설인 는 ‘와타나베 바람 피우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대학교 4학년 무척 괴롭던 시절에 간 일본에서, 중고서점에 들렀다. 소설 의 세 줄이 인생에 해답을 던져준 듯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되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간이라는 것은 때로 그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는 를 와타나베의 시각으로 다시 읽고는 모든 하루키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감각적인 문장도 좋지만 그것만이 하루키의 매력은 아니다. 윤종석(34)씨는 하루키 때문에 바람의 노래를 들으려고 한다(라는 작품이 있음). “책을 읽으면서 내 일기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루키에게 정말 감사한다. 살다가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 다시 들춰본다.” 윤성의(28)씨도 “나뿐만이 아니구나. 애써 감추고 있던 생각을 얘기해줘서 위로를 받는다. 니체의 초인이나 오쇼 라즈니시처럼 극한을 긍정하는 사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

하루키는 PPL, 원 소스 멀티 유스

하루키는 맥주 TV광고보다 자극적이다. 하루키는 PPL이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맥주가 마시고 싶어지고 재즈가 듣고 싶어진다. 하루키는 원 소스 멀티 유스다. 책에서 책과 음악과 스타일이 가지를 뻗어나온다. 윤종석씨는 하루키의 소개로 레이먼드 챈들러를 읽고 헤어날 수 없이 빠졌고, 박주희씨는 글렌 굴드를 듣고, 먼 북소리를 좇아 그리스를 간다. 김도윤씨는 1년간 여행 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다가 맞아죽을 뻔했다.

‘하루키처럼’은 이어진다. 그들이 진짜로 하루키에게 배우는 것은 ‘마이너리티’다. 유승진(27)씨는 “하루키에게는 거대담론과 거대권력에 대항하는 마이너리티의 정치학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오해되듯 탈정치화한 게 아니란 말이다. “80년대의 거대담론에서 인간 실존은 죽어 있었다. 김승옥 같은 예외가 있었지만 희귀했다. 그 단절 기간 동안 목말라 있었는데 하루키가 채워준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윤성의(28)씨도 비슷하다. “한국 문학이 극복하지 못한 지점에 하루키가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작가적인 태도야말로 ‘스타일’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사장은 “소설에서 주는 아름다움과 자기 관리가 동시에 다가왔다. 하루키가 20대가 보는 패션지에 쓴 칼럼을 묶어낸 게 있다(). 그걸 읽고 하루키는 그런 데 써도 하루키의 몸을 버리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마라톤을 하고 담배를 끊었다. 소설가의 자세가 느껴진다.”

칼럼니스트 임경선씨는 2005년 “그저 그래야 될 것 같았고 또 너무나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를 펴냈다. 그에게 하루키는 불가사의한 존재다. 변덕이 심한데 하루키에 대해서만은, 일본에서 빨간 책·초록색 책을 읽은 1987년 이후로 여전히 깊이 매료돼 있다. 그의 책상 앞에는 하루키의 사진이 붙어 있다. 하루키는 데레크 하트필드에게 문장에 대해서 배웠지만, 임경선씨는 하루키에게서 글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임경선씨가 글을 고칠 때 언제나 옆에 하루키가 나타난다. “아이씨, 대충 보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 때 하루키를 생각한다. 문장에 대한 집착, 잘 쓴 문장에 대한 집착을 유지하려고 한다. 얼음을 깎듯이 단어를 많이 없애려고 하루키처럼 노력한다.”

진실한 작가적 태도야말로 그의 ‘스타일’

하루키는 임경선씨에게 작가로서도 롤모델이지만 인간적으로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보는 유명인 중에서 성실함을 미덕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없어져간다. 진정성이 있으면서 성실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임씨는 하루키가 ‘가치 전파자’라고 말한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개인주의, 다원주의,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하고 또 은연중에 글이나 사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파하는 것 같다. 강요가 아니라. 또한 그는 집단주의의 광기나 부조리함, 권위주의을 맹렬히 거부한다. 그만큼 ‘편견’이 없고 ‘상대성’을 인정하는 개인주의자다.”



신작 신드롬
찍어도 찍어도


일본 서점에 깔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 사진 연합

일본 서점에 깔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 사진 연합

일본 영화계에서 ‘흥행 보증수표’로 국민적 성원을 받는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라면, 문학계에서는 당연히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지난해 극장 개봉 수익 1위, 흥행 수익 155억엔을 기록한 처럼, 지난 5월29일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신초사 펴냄)도 발매 2개월 만에 200만 부를 넘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홍보 전략도 닮았다. ‘광고 없는 광고 효과.’ 편집부에 따르면 “매번 히트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영화도 최근 세 작품은 영화 개봉 직전까지 거의 광고를 하지 않았다. ‘국민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브랜드의 힘이 있으면 정보를 외려 흘리지 않는 것으로 관객이나 독자의 ‘목마름’을 최고조까지 올린다”는 것이다. 가 출간되기 직전인 지난 5월21일, 이스라엘 문학상인 ‘예루살렘상’ 수상 연설이 일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신작의 판매 가도를 탄탄하게 다졌다. 예루살렘 현지에서 이루어진 수상 연설에서 하루키는 “만일 높고 단단한 벽과 그에 부딪히는 달걀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언제나 달걀의 편에 설 것이다”라며 이스라엘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리고 출간, 언론은 ‘대히트’ ‘전례 없는 팔림새’라고 표현해가며 판매 상승을 견인했다.
1·2권으로 나온 의 초판 인쇄 부수는 1권 20만 부, 2권 18만 부로 출판의 상식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치였음에도, 관심이 고조되자 발행 전 증쇄가 결정됐다. 발행 뒤 2주간은 ‘입수 대란’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사러 갔는데 책을 얻지 못한 독자들의 소유 욕구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 책이 서점에 나오면 매대를 따로 설치해 책을 쌓아놓고 팔았는데도 금방 동이 났다. 는 발매 34일 만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이 ‘무라카미 현상’을 주도한 층은 40대 여성이었다. 일판 오픈네트워크의 조사(2009년 5월29일~6월21일, 282개 점포, 299만 명)에 따르면, 발매로부터 3일간은 남녀 비율이 거의 같았으나, 6월 이후 급격히 여성 수가 증가했다. 그중 40대 여성 수가 눈에 띄게 급증했다.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40대 여성들의 ‘분투’가 베스트셀러를 견인한 것이다. 40대 여성의 비율 상승은 일본에서 전형적인 베스트셀러 구성 요소 중 하나다.
정작 작가 자신은 과의 인터뷰(6월16일)에서 “중요한 것은 판매 부수가 아니라 (내용이) 어떻게 전달되는가다”라고 했지만, 출판시장은 의 기록적인 ‘판매 부수’로 인해 한숨 돌린 상황이다. 올 상반기는 출판물 판매 실적이 1988년 이후 처음으로 1조엔 선을 밑돌았다. 지난해에 비해 2.7% 판매 감소가 예상됐다. 하지만 ‘덕분에’ 추정 판매 금액이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0.7% 증가해, 16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됐다.
무라카미 하루키 현상은 소설 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에 등장한 야나체크의 를 수록한 CD가 일주일간 6천 장 주문이 쏟아지면서 일시 품절됐다. 를 수록한 미 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의 도 폭발적으로 팔렸다. 1990년 발매된 이 음반은 그간 6천장이 팔렸는데, 최근 3주간 그 2배에 달하는 주문이 밀려들었다고 한다. 1시간30분짜리 900엔의 ‘베스트셀러클래식’이 온라인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또 에 인용된 안톤 체호프의 도 5천 부를 더 찍었다. 지난 4월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작가 후루카와 히데오의 대담이 게재된 계간문예지 가 기존 판매량의 약 3배에 달하는 3쇄 2만부나 팔렸다. 제목이 나온 계기가 된 조지 오웰의 도 서점가에 와 나란히 놓여져 판매되고 있다.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하루키를 위한 요리
간기능 회복에 좋은 술안주


간기능 회복에 좋은 술안주

간기능 회복에 좋은 술안주

하루키를 위한 요리는 뭐라 해도 두부가 좋지 않을까 합니다. 가장 ‘하루키적’이기도 하고요. 두부에 관한 하루키의 연작 수필을 읽었을 때는 정말 맞아 맞아, 하며 즐거워했답니다. 저도 유학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신선한 두부를 사먹지 못하는 것이었거든요. 종이팩 안에 넣어져 냉장고가 아닌 보통 진열대에 있는 두부만큼 끔직한 것이 또 있을까요. 제 컴퓨터 레시피 폴더에는 하루키를 생각하며 창작한 ‘오리엔탈 드레싱의 두부샐러드’라는 음식이 있답니다. 언젠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였을 때 함께 먹고 싶네요. 두부샐러드에는 두부와 미역과 채소가 들어갑니다. 하루키가 좋아할 담백한 음식이지요. 두부와 미역은 간기능 회복에도 좋으니, 술을 즐기는 하루키의 안주로도 좋습니다. 두부를 빼고 미역과 김치, 드레싱에 소면을 비벼먹어도 좋아요. 하루키는 소면도 좋아하더라고요.

*오리엔탈 드레싱을 얹은 김치미역무침과 두부 요리법

묵은지 400g, 마른 미역 100g, 두부 1모, 양상추와 오이 적당량

오리엔탈 드레싱:
참기름 2큰술, 쌀식초 혹은 레몬식초 1큰술, 양조간장 2큰술, 레몬즙 3큰술, 맛을 더하기 위한 마늘·고추·생강 다진 것을 기호에 따라 준비, 통깨 조금, 소금

1. 미역은 물에 불린 다음 손으로 꼭 짜 물기를 제거해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드레싱은 모든 재료를 잘 섞은 다음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식힌다.
2. 묵은지는 속을 털어내고 물에 살짝 씻어 잘게 다지고, 양상추와 오이는 채 썬다.
3. 두부는 뜨거운 물에 데친 뒤 잘라 접시에 담는다.
4. 두부를 담은 접시에 양상추와 오이, 다진 묵은지를 얹은 다음 위에 오리엔탈 드레싱을 적당히 붓는다.
글·사진 차유진 푸드 칼럼니스트 www.testkitchen.co.kr


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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