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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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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자, 작정하고 떠난 8박9일


‘국내 최초’ 공정여행 패키지 프로그램 ‘윈난 소수민족 체험 공정여행’ 뒷담화
등록 2009-03-10 11:43 수정 2020-05-03 04:25
그들이 왔다. 이 749호 Why Not ‘초콜릿처럼 여행도 착하게’ 편에서 보도한 대로, 국제민주연대의 ‘윈난 소수민족 체험 공정여행’ 참가자 32명이 지난 3월1일 8박9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국내 최초’의 공정여행 패키지 프로그램이다. ‘착한 초콜릿’에 이어 ‘착한 여행’의 씨알이 뿌려지기를 기대하며 참가자들이 보내 온 여행기를 싣는다. 편집자모쒀족들과 함께 춤을박준영 원주한살림생협 회원

처음엔 산에서 떨어진 돌이 길을 막았다. 비켜갔다. 다음엔 염소가 막았다. 기다렸다. 이번엔 소가 막았다. 살짝 비켜갔다. 이젠 개가 막는다. 운전기사가 경적을 울린다. 다음엔 무엇이 막을까? 이제는 돼지다. 그렇게 다리에서 루구후까지 8시간이 걸렸다. 보통이면 6시간 정도 걸린다는 그 길을.

여행 참가자들은 소수민족의 공연과 놀이문화를 함께 즐겼다. 언어의 장벽은 손을 맞잡은 사람들 사이엔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국제민주연대 제공

여행 참가자들은 소수민족의 공연과 놀이문화를 함께 즐겼다. 언어의 장벽은 손을 맞잡은 사람들 사이엔 존재하지 않는다. 사진 국제민주연대 제공

염소 다음 소, 개 다음 돼지가…

나는 지금 분명 버스를 타고 공간을 이동하는데,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은 시간의 이동이다. 해발 3800m를 넘는 저 산을 뱀처럼 휘어감은 이 길. 휘어져 느려지고 동물로 막히는 이 길의 흐름은 오직 윈난이기에 가능했으리라. 비행기 여행이었다면 평생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었을까! 이것이 공정여행이다. 난 그렇게 단언한다.

해발 3천m의 이 고난의 대지에서 오로지 인간의 손만으로 만들어낸 밭들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부끄럽게 만들 뿐이다. 저 많은 소수민족이 윈난에서 함께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자연을 공경하고, 그 땅 위에서 서로 협동하고 살았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에 비해 내 삶은 어떠했는가?

2월21일 인천공항에 참가자 33명이 처음 모였을 때는 어색한 기운이 가득했다. 위로는 65살의 어른부터 10살 아이까지의 나이 차이, 뒤섞인 남녀 사이에서는 미묘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그러나 우리를 묶어낸 ‘공정여행’이라는 낯선 단어와 그 설렘. 함께 보낸 8박9일에서 ‘공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참가자 모두의 평등한 어울림과 이동이 그랬고, 여정에서 만난 소수민족의 따뜻한 웃음과 식사와 안내, 그들이 보여준 볼거리와 제공해준 잠자리가 또한 그랬다.

잊을 수 없는 것은 루구후의 소수민족 모쒀족들의 삶을 함께한 시간들이었다. 이름이 ‘쫘파’라던, 잘생긴 그 청년은 우리에게 모쒀족 출신의 젊은 여성들과 전통춤을 출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늦은 시간까지 모쒀족 전통주인 ‘수리마주’도 함께 마셨다. 모쒀족은 중국에서도 유일하게 모계 중심 사회를 이루고 있는 특별한 민족이다. 합리적인 민족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아직 이들을 정식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일행은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대신 좁은 버스를 탔다. 그래서 창밖을 스쳐가는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옷과 집, 논과 밭 그리고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한가로이 바라볼 수 있었다. 공정여행 길에서 차 안에서 자는 사람은, 그 사람만 손해였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다니! 음식은 모두 현지 소수민족이 만든 음식이었다(시간이 흐를수록 김치와 된장, 고추장이 조금씩 나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루구후의 아름다움과 다리의 옛 고성과 어우러져 있던 얼라이 호수, 창산에서 불어오던 바람, 드넓은 밭을 가득 메운 유채꽃과 콩, 청보리의 하늘거림… 이 모든 풍경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가장 아늑하게 감싸준 것 같다. 공정여행도 여행이니, 여행객의 마음을 채워줄 그 무엇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난 그것을 윈난의 자연에서 찾았다. 다만, 현지의 소수민족들과 좀더 교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차 안에서 자는 사람만 손해!

올 때는 8시간이 걸렸던 길이 돌아갈 때는 10시간이 걸렸다. 이번엔 어디선가 아이들이 호박씨와 잣 등을 들고 왔다. 버스를 본 아이들이 저 멀리 산허리에서도 뛰어온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길을 막는 형국이다. 일행 몇몇이 그들이 내미는 물건들을 사주었다. 지금 사주면 당연히 그들에게 당장 도움은 될 것이다. 우리의 여행이 더 많아지면 윈난성의 오지 아이들도 우리에게 더 의지하게 될 것이다. 그 옛날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흘러 우리의 버스는 출발했다. 우리 삶의 시공간과 그들의 시공간은 다르다. 누가 더 좋다거나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부디 그들의 삶이 마구 흩어지지 않고 전통과 잘 조화롭게 이어졌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공정여행이 그들의 전통을 상업화하지 않고 그들 삶과의 진정한 연대 속에 꽃피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루구후에서 나는 울었네
그곳의 시장을 가고 음식을 먹고 문화를 알아가는 것은 ‘착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사진 국제민주연대 제공

그곳의 시장을 가고 음식을 먹고 문화를 알아가는 것은 ‘착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사진 국제민주연대 제공

송수명 회사원

여행을 다녀왔다. 아니, ‘공정여행’을 다녀왔다. 떠나기 전에 들은 공정여행의 뜻은 이랬다. ‘관광지의 역사와 문화를 만든 현지인들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을 주는 여행’. 외국의 여행 자본, 즉 항공사와 다국적 호텔 체인, 여행사, 외국 자본으로 운영되는 대규모 식당 등을 이용하지 않는 여행이라고 했다. 그냥 관광지만 둘러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직접 접촉하며 그들의 삶을 알고 느끼는 여행이라고 했다.

마사지를 받아도 되는 걸까

여행을 떠나기 전 공정(公正)의 뜻이 무엇일까 찾아봤다. ‘공평하고 올바름’이라고 했다. 공평(公平)은 또 무엇인가. ‘치우침 없이 공정함’이라 했다. 더 어려워졌다. ‘치우침 없이 올바름’이 가능한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여행은 시작됐다.

지난 2월21일 오후 1시5분 인천공항 출발. 베이징 공항에서 갈아탄 쿤밍행 비행기로 여행의 시작점인 윈난성 쿤밍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10분이었다.

‘윈난은 날씨로 사람을 죽인다’더니,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불어오는 바람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꽃향기가 아른한 봄밤은 늘 몽환적이다. 꽃향기에, 말갛게 부는 봄바람에 취한 나는 순식간에 윈난을 사랑하게 됐다. 숙소에 짐을 푸는 데 코피가 터졌다. 여행 떠나기 전부터 골골했던 터다. 코피를 핑계로 일행 몇 명과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나이 어린 여성들이 와서 마사지를 해준다. 소수민족 출신이다. 마사지를 받으며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편안함의 대가는 그들의 수고로움이기에.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있는 편리함이 너무 많다. 지금 내가 50위안을 내고 받은 마사지도 그렇고. 공정여행의 취지를 생각한다면 이 마사지는 받으면 안 될 서비스였을까? 여행에 ‘공정’이 붙으니 쉽지 않다.

이튿날 소수민족박물관에 들렀다. 윈난의 소수민족들에 관한 설명을 듣고 민속공연을 감상하고 다리로 이동했다. 트레킹으로 가는 300km가 넘는 그 길. 샛노랗게 핀 유채꽃과 푸르디푸른 청보리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어쩌면 이곳이 천국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푸른 올리브 나무가 화면 가득 펼쳐지던 그 영화 안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봄의 향연에 눈과 마음이 맑아진다. 소수민족들이 세대를 거듭해 힘겹게 산을 깎아 만든 다락밭의 모습에 울컥 눈물이 난다. 아름답다.

여행 닷새째(2월25일).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름답고 추억이 많았던 루구후. 보통 6시간 걸린다던 그 길이 8시간 이상 걸렸다. 난 길을 좋아한다. 길은 기다림이다. 산 위에서 굴러떨어진 돌이 길을 막고, 염소떼의 행렬에 가던 길이 느려져도. 산길 모퉁이에서 마주친 두 차가 서로를 피하기 위해 곡예 같은 운전을 해도. 차 안에서 지친 일행들을 위해 내가 부른 인순이의 노래 과 그 순간 하늘에 총총히 떠 있던 별. 차 속에 있던 우리는 그 순간 하나였고, 자연의 한 부분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공정여행의 기억 한 페이지였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던 어느 시인의 시처럼, 이 순간 루구후를 보고 있어도 루구후가 그리웠다. ‘이 여행의 끝에서, 일상에 돌아가서도 몸살을 앓게 되겠구나’ 싶었다(그리고 마음의 몸살을 앓고 있다).

소수민족 자취 따라 걸은 길

여행은 끝났다. 풍경은 아름다웠고, 순박한 루구후의 모쒀족들과 함께한 문화체험은 즐거웠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다녀온 여행지와 계속 소통하고 싶어 마음이 어지럽다.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날 밤, 난 왜 그렇게 울었을까. 누구보다 발랄하게 여행을 즐겼고, 긴긴 버스 여행 속에서도 졸지 않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구름 한 점까지 내 눈에 다 담았는데. ‘공정여행’이라는 타이틀이 함께하다 보니, 하나하나 힘겨웠나 보다. 루구후에서 다리로 넘어가는 산길에서 만난 아이들을 보고 엉엉 울던 일행의 눈물이 기억난다. 그도 이 순간의 마음과 같았을 테지. 타인에게 공정하게 대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의 좁은 소견들이 다시 생각났다.

남은 바람이라면, 여행 뒤에도 국내에서 그 곳의 현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언제든 내 마음 한 곳이 맞닿아 있는 곳, 가난 때문에 매일매일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현지 아이들을 내가 작은 힘으로나마 도울 수 있는 곳이 되도록.



■ 공정여행 일정표

1일차
인천(오후 1시5분 출발) → 쿤밍(저녁 8시10분 도착) 이동, 쿤밍 숙박

2일차(쿤밍)
윈난성 소수민족박물관 탐방(역사·문화 강연 및 질의응답)
윈난성 소수민족 민속촌 탐방(윈난성 25개 소수민족 중 14개 민족의 생활양식·복식·공연 볼 수 있음)
다리로 이동(버스 4시간), 다리의 소수민족인 바이족이 운영하는 객잔(민박)에서 숙박

3일차(다리·리장)
다리의 성산인 창산 중화사까지 말 타고 트레킹
바이족 전통가옥 밀집 지역인 시저우로 이동, 민속공연 보고 전통차 시음, 월요 장터 탐방

리장으로 이동(버스로 3시간30분이 걸림)
윈난성 나시족들의 옛 음악과 춤을 즐길 수 있는 동파궁 공연 관람
세계 각국의 배낭여행객들이 몰려드는 리장 고성의 밤풍경 즐기기

리장 소수민족인 나시족이 운영하는 객잔(민박)에서 숙박

4일차(리장·루구후)
성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리장 고성 도보 탐방
중식 뒤 루구후로 이동(버스로 6시간)
루구후의 소수민족인 모쒀족 객잔(민박)에서 숙박

5일차(루구후)루구호수에서 일출 보기, 모쒀족 할머니의 아침 치성 드리는 모습 보기, 모쒀족들이 물고기 잡는 현장 따라나서기
모쒀족 할머니에게 모쒀족 주거 형태와 전통에 대한 이야기 듣고 질의응답
오지 중의 오지 융닝 장터 탐방
융닝의 티베트 불교 사찰인 자메이사 탐방, 스님에게 사찰 이야기 듣기
물오리 수렵 모습 보기
모쒀족 등불야회 참가, 모쒀족들과 뒤풀이(민속주인 수리마주와 돼지 2마리 안주)


6일차(루구후·리장)
루구호수 도보 트레킹(왕복 3시간)
리장으로 이동(버스로 6시간)
그들만의 발마사지 체험(여느 관광지의 것과 다름)
작은 마을 쑤허의 소수민족 완화(춤과 음악) 참가
쑤허 마을의 나시족 전통민가 객잔(민박)에서 숙박

7일차(리장·다리)
쑤허 마을 도보 탐방, 티베트 장족 가옥에서 티베트인들의 삶 보고 듣기, 차마고도 박물관 방문

다리로 이동(버스로 3시간30분)
다리 바이족의 사랑을 그린 지역공연 ‘호접지몽’ 관람

8일차(다리·베이징)
윈난의 역사를 대표하는 천년고도 다리 고성 탐방
쿤밍으로 이동(4시간) → 쿤밍(오후 5시10분 출발) → 베이징(저녁 8시10분 도착) 항공 이동
베이징의 작은 호텔에서 숙박

9일차
베이징(오후 1시45분 출발) → 인천(오후 4시50분 도착)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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