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사랑만큼 영원히 변주될 주제가 있을까. 여기 왕과 왕의 남자 그리고 왕비가 있다. 당초엔 왕비가 왕과 남자의 사랑에 고통받는 처지였으나 나중엔 왕이 왕비와 남자의 사랑을 질투하는 신세가 된다. 이렇게 고전적인 삼각관계를 새롭게 하는 요소는 ‘동성애’ 코드다. 그러나 동성애 코드는 얘기의 출발일 뿐. 유하 감독의 영화 에서 이들의 사랑을 갈라놓는 힘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다. 요컨대 욕망은, 섹스는 힘이 세다. 그 어떠한 짝사랑의 진심도, 집착도 심지어 권력도 그 정념의 폭발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사랑의 질주를, 아니 정념의 폭발을 누가 막을 것인가?
은 ‘야오이’(남성 동성애)물의 구도처럼 시작한다. 왕과 호위부대 대장, 동성애 로맨스의 고전적인 커플이다. 여기에 이들의 관계에 상처받는 왕비. 초반에 나오는 과감한 동성애 정사신은 이들의 사랑에 시각적 도장을 찍는다. 그러나 왕의 ‘후사’가 문제다.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에 시달리고, 공민왕(주진모)은 신하들의 역모에 시달린다. 왕위를 이을 세자가 필요하지만, 왕은 여성을 품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호위무사 홍림(조인성)에게 원나라 출신 왕비(송지효)와 합궁할 것을 명한다. 홍림을 너무도 사랑해 그를 닮은 세자를 갖고 싶었던 왕은 그러나 사랑도, 왕비도 잃는다.
강요된 정사는 뜨거운 사랑으로 이어진다. 홍림과 왕비의 정사엔 두 개의 감정선 혹은 시선이 겹친다. 처음엔 어색했던 정사가 점차 격렬해질수록 이들의 사랑도 무르익어가지만, 한편 왕의 고통도 커져간다. 억지로 합궁한 그들이 어느새 눈길을 마주치고, 키스를 하는 순간순간에 드러나는 감정의 변화는 의 바탕이다. 왕과 홍림의 관계가 친구이자 형제이자 연인에 가까운 ‘사랑과 우정 사이’에 있다면, 왕비와 홍림의 관계는 이성과 마음이 어쩌지 못하는 육체의 끌림에 있다. 그리하여 이들의 거친 숨소리는 왕의 귀를 찌르는 비명이 된다. 정사는 홍림과 왕비의 몸으로 나누지만, 왕의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장면이다. 결국 은 사랑의 약자, 아니 패자인 왕의 시선에서 ‘느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제 홍림은 전전반측의 나날을 보내고, 왕비도 홍림을 잊지 못한다. 이들은 급기야 왕을 속이고 비밀스런 장소에서 사랑을 나눈다. 한번 불붙은 정념의 화염을 신분의 차이도, 왕의 감시도 막지 못한다. 그렇게 타오른 불길은 왕의 마음에 질투의 불길을 댕긴다. 이렇게 통속적인 전개는 때때로 너무나 직설화법이다. 홍림과 왕비의 감정이 ‘공식대로’ 직선으로 나아가고 때로 비약해서 오히려 감정이입을 방해한다. 이렇게 은 조금 뻔해서 지루한 전반부, 파국을 향해서 긴박하게 나아가는 처절한 후반부로 나뉜다. 그러나 폭발하는 후반부를 위해서 전반부는 참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제 왕이 전전반측의 나날을 보낸다. 왕비에 대한 홍림의 사랑이 커질수록 홍림에 대한 왕의 집착도 따라서 커진다. 왕은 홍림을 의심하고, 홍림도 왕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연인이자 형제였던 절대적 신뢰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그러나 왕은 끝끝내 홍림을 향한 사랑을 접지 못한다. 왕은 홍림이 자신을 속이고 왕비와 만나온 사실을 알고도, 그가 다시 돌아오길 기대하며 “한순간의 욕정이냐?”고 묻는다. 그렇게 소년 시절부터 이어진 왕의 홍림에 대한 사랑은 집요하다. 홍림은 왕에게 돌아올 결심을 하지만 머리의 결심은 마음의 정념을 이기지 못한다. 이렇게 홍림의 사랑과 왕의 질투는 관계를 파국으로 끌어가는 쌍두마차. 홍림의 왕비에 대한 집착과 왕의 왕비에 대한 질투는 보편적 사랑이 가진 야누스의 얼굴을 상징한다. 결국 이들은 각자의 사랑에 충실해 파국에 이른다. 엇갈린 사랑은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왕은 홍림을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결국엔 사랑하는 자의 원수가 되어 사랑하는 자와 싸워야 하는 운명이다.
은 왕과 홍림의 동성애, 홍림과 왕비의 불륜(?),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두 개의 사랑에 측은한 눈길을 보낸다. 영화의 제목을 요즘 말로 하면 ‘원나이트 스탠드’를 그린 고려가요 에서 따온 것에서 보이듯, 제도 바깥의 사랑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렇게 은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집착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실패담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들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사랑받지 못한 자들의 심금을 더욱 울릴 가능성이 크다.
고려 처지에 이라크 파병 한국군이 겹치네은 사랑의 이야기에 정치적 층위도 더해두었다. 영화는 원나라의 속국으로 원의 파병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고려의 처지를 애통하게 묘사하는데, 여기엔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군이 겹친다. 고려의 전통을 살린 연회 장면이나 무사들이 벌이는 전투신도 이 내놓는 볼거리다. 시각적 충격을 줄 만한 장면이 많지는 않지만, 왕과 홍림의 마지막 검투신은 정사신만큼 치열하고 처절하다. 무엇보다 조인성(홍림)과 송지효(왕비)가 벌이는 정사신의 수위가 화제가 될 만큼 높다. 조인성과 주진모(왕)의 정사신도 독립영화를 제외하면, 한국 영화에서 묘사된 동성 간 성관계 장면으로 리얼리티가 높다. 실제 공민왕이 동성애자였다는 역사 해석이 있어 의 얼개가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등을 만든 유하 감독의 2년 만의 신작 은 12월30일 개봉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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