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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불복 입시에 불복하다

2017학년도 대입 치른 학생 140명 대상 조사 “결과에 승복 못해요”

학생이 쓰는 학생부, 거짓이 담긴 자소서, 노골적인 학교 차별
등록 2017-01-24 11:58 수정 2020-05-02 19:28
이렇게 취재했습니다
교육학자들이 대학입시제도 변화에 대해 쓴 논문이나 보고서를 보면, 1945년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15~16차례 입시제도 변경이 있었다. 그럼에도 입시제도 변경에 따른 학생들의 피해 사례를 조사하거나, 입시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면밀히 조사한 경우는 드물다.
은 대선 국면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입시제도 개편과 관련해 학생들의 피해 사례를 직접 조사하기로 했다. 1월7일부터 1월15일까지 9일 동안 수험생들이 많이 찾는 입시 관련 인터넷카페 가운데 한 곳인 ‘수능시험날 만점 시험지 휘날리며’(수만휘, cafe.naver.com/suhui)에서 10문항의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2017년도 대입 전형에 응시한 140명이 응답했다. 다양한 입시 경험과 의견을 남긴 9명과는 전화 인터뷰를 추가로 진행했다. 이 가운데 4명의 학생이 보내준 학생부와 자기소개서는 인터뷰 내용을 검증하는 자료로 활용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내신 성적이 더 나쁜 학생이 더 좋은 대학에 간다? ‘비교과’ 스펙이 미흡한 학생이 더 좋은 대학에 간다? 사교육으로 꾸민 서류로 더 좋은 대학에 간다? 이 실시한 입시인식조사에서 2017학년도 대학 입시를 치른 고3 수험생들이 직접 경험했다고 밝힌 내용이다.

조사에 참여한 140명의 응답자 가운데 42.1%(59명)가 입시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입시인식조사는 1월7일부터 1월15일까지 9일 동안 수험생들이 많이 찾는 입시 관련 인터넷 카페 가운데 한 곳인 ‘수능시험 날 만점 시험지 휘날리며’(수만휘, cafe.naver.com/suhui)에 온라인 설문항을 올려, 학생들이 응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모두 140명이 참여했다. 입시 결과 평가와 응답자가 생각하는 당락 기준,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작성의 어려움, 부모가 입시에 미치는 영향 등 모두 10가지 질문을 던졌다. 대답 가운데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입시 결과에 승복 못하겠다. 수능 모의고사를 보면 나한테 맨날 지던 친구가 한 달에 50만원짜리 컨설팅 받고 나보다 세 단계 위 대학교에 갔다.”(인천의 어느 일반고 학생)

“3년간 한 학과를 지망해 그 학과 관련 교내 수상, 교외 봉사활동, 독서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철저하게 준비해 꽤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학생부와 자기소개서를 만들었다. (그런데) 친구는 학생부 비교과 스펙이 나보다 미흡하고, 평소 담배를 피우고, 야간자율학습도 도망가는 등 학교 생활에 불성실했다. 나와 그 친구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 같은 전형으로 지원했다. 친구는 합격했고 나는 예비번호를 받았다. 학교가 뒤집어졌다. 다른 학교에도 소문이 났다.”(경북의 어느 일반고 학생)

“교내활동을 중심으로 평가한다고 했지만, 우리 학교에서 서울대 합격한 학생을 보면 그렇지 않았다. 그는 비교과 스펙을 위해 필요한 교외활동에 참여하고, 거기서(교외활동) 진행하는 논문과 시험을 위해 사교육 기관을 이용했다. 정작 모든 교내활동에 참여하고 내신등급도 가장 우수한 다른 학생은 서울대에 불합격했다. 겉으로는 교내활동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놓고, 일부 학생들에게만 기회가 제한되고, 그 인원도 매우 소수인 외부활동을 높이 평가한 것이 황당하다.”(서울의 어느 일반고 학생)

왜 이들은 입시 결과를 개인의 불운이나 노력·실력 부족으로 돌리지 않을까. 이들은 왜 입시 결과에 불복하는 것일까. 은 이번 조사에서 ‘추가 인터뷰가 가능하면 연락처를 남겨달라’는 요청에 응한 학생 40여 명 가운데 9명의 학생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해 ‘불복의 변’을 들었다.

① 내가 쓰는 학생부 신뢰 못한다

학력고사 점수 또는 수능 점수만 확인하면 충분했던 과거와 달리 현행 입시에서 합격하기 위해 선택하고 거쳐야 할 단계는 10가지가 넘는다.

우선 △수시모집에 응시할 것인가, 정시모집에 응시할 것인가 △수시모집에 응시하려면 학생부종합전형, 학생부교과전형, 논술전형, 특기자전형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

이 가운데 수시모집에 응했고 그중에서도 학생부를 바탕으로 합격자를 선발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을 택했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또 다른 질문과 시험에 대비해야 한다. △학생부 내신등급은 몇 등급인가 △학생부 관리는 어떻게 했나 △자기소개서(자소서)는 어떻게 썼나 △면접 준비는 어디서 했나 △수능 최저학력 기준은 맞췄나 등의 질문이 기본이고, 각각의 상황에 따라 별도 세부 항목을 검토하거나 선택해야 한다.

학생들이 현행 입시에서 준비해야 할 요소(‘미로 같은 입시’ 참조)를 조목조목 따져보면 적어도 20여 가지 유형이 있다. 가히 카오스다.

복잡한 현행 입시제도 가운데 어떤 유형을 택하건 기본이 되는 것은 학생부와 자소서다. 그런데 ‘입시 불복’을 주장하는 수험생들의 상당수가 학생부와 자소서의 임의성, 모호함, 편파성 등을 지적하고 있다. 대입의 기본부터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이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자기 평가’하여 적는다면 그것이 공정할 리 없다. 공정한 전형 자료가 될 수 없는 학생부를 대학이 평가에 활용한다는 것부터 입시에 대한 수험생의 신뢰를 접게 만든다.

교육부의 ‘학생부 기록 및 작성 지침’에 따르면, 학생부 작성 주체는 교사다. 하지만 학생이 초안을 쓰고 교사가 이를 수정해서 학생부에 기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전남의 어느 일반고에 다니는 A는 학생부에서 중시되는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교과 세특) △비교과 자율활동 △비교과 독서활동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등의 항목이 자기가 쓴 그대로 기재됐다고 말했다.

“원래 선생님이 써주시는 건데 학생이 너무 많잖아요. 제가 쓴 게 문제가 없으면 그냥 올라가요. 선생님들 시간이 없으니까요.” 인터뷰를 마친 뒤 그는 자신이 직접 쓴 내용을 교사가 ‘복붙’(복사+붙여넣기)한 학생부 내용을 기자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교사들이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자기 평가’하여 적는다면 그것이 공정할 리 없다. 공정한 전형 자료가 될 수 없는 학생부를 대학이 평가에 활용한다는 것부터 입시에 대한 수험생의 신뢰를 접게 만든다.

“독서활동은요, 솔직히 책 안 읽고 지어서 쓰는 것도 있어요. 저희가 지어서 쓰는 것도 많은데 대학이 이걸 집어내지 못하고 그냥 서류평가 합격하고 최종합격까지 가요. 신빙성이 의심되죠.”

학생들은 학생부를 교사와 ‘공동 집필’하는 모순 속에서 자괴감에 시달린다. 대구의 어느 일반고에 다니는 B는 학생부 작성을 위해, 교육부가 교사들에게 안내하는 ‘학생부 기록 및 작성 지침’까지 직접 뒤져볼 정도로 학생부에 공을 들였다고 했다. 교사가 참조해야 할 지침을 학생이 직접 들여다보며 학생부를 작성한 것이다.

“겨울방학 때는 교무실을 돌아다니면서 ‘선생님, 학생부에 이거 좀 적어주세요’ 했어요. 제가 학생부 내용을 써가긴 하는데, 어쨌든 작성 권한은 선생님한테 있으니까 선생님이 ‘안 돼’ 하면 허사거든요. 선생님이 다시 써오라고 하면, ‘이럴 거면 자기가 쓰지 내가 왜 학생부까지 쓰고 있어야 하나’ 자괴감이 들죠.”

은 입시인식조사에서 학생부와 자소서의 신뢰 여부를 조사했다. 학생들에게 ‘학생부 또는 자소서가 실제 자신의 학교생활을 반영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응답한 학생 123명이 학생부의 공정성에 매긴 점수는 100점 만점에 66점이었다. 자소서의 공정성 점수는 58점으로 더 낮았다.

② 자소서로 포장한 나, 내가 아니다

대학은 학생부 중심 전형을 실시하면서 학생부만 반영하지 않는다. 1단계에서 학생부를, 2단계에선 면접을 통해 또 한 차례 학생을 검증한다. 대학 면접관이 학생을 면접하는 모습. 한겨레

대학은 학생부 중심 전형을 실시하면서 학생부만 반영하지 않는다. 1단계에서 학생부를, 2단계에선 면접을 통해 또 한 차례 학생을 검증한다. 대학 면접관이 학생을 면접하는 모습. 한겨레

수험생들이 자소서를 ‘자소설’로 부르는 일이 공공연해진 지 오래다. 서울의 어느 일반고에 다니는 C는 2017학년도 수시모집에서 지원한 대학 수만큼 자소서를 여러 버전으로 다시 썼다. 경희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에 지원한 자소서가 모두 달랐다. 4개 문항씩 5개 대학의 자소서를 썼으니 입시를 치르면서 20개 문항의 자소서를 쓴 셈이다.

4년제 대학의 입시 업무를 관장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학생들의 자소서 작성 부담을 덜기 위해 2015학년도 입시부터 자소서 공통양식을 도입했지만 무용지물이다. “대학마다 선호하는 인재상이 달라요. 서강대 입학처에서 우리 학교에 입학설명회를 왔는데 다 똑같이 쓰면 티 난다고, 인재상에 맞춰서 다르게 쓰라고 했어요. 학교 선생님들도 그러셨고요.”

하루 8시간 이상 교실에 앉아 일제식 수업을 들어야 하는 처지는 학력고사 세대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세대나 별반 다를 게 없는데도, 대학은 내신이나 수능 성적 말고 ‘대학의 인재상에 맞는 다양한 경험’을 요구한다. 그 괴리를 메우는 것은 자신의 경험을 대학의 인재상에 맞춰 다양하게 변주하는 ‘포장 능력’이다.

“이화여대는 어떤 분야건 최고여야 (입학)한다고 해서, 백일장에 참여한 것 설명하면서 내가 창작활동에서만큼은 최고다라는 것을 어필하려고 했어요. 서강대는 공부하는 걸 좋아한대요. 그래서 백일장이 공부에 도움이 됐다는 식으로 쓰고요. 경희대는 예술적 소양을 중시한다고 해서 뮤지컬 같은 문화활동을 한 내용을 부각해서 썼어요.”

전남의 어느 일반고에 다니는 D도 “6개 대학에 다 똑같은 자소서를 내는 학생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는 2학년 때부터 서울대 입학을 위한 자소서를 준비했다. “각 학교에서 서울대 갈 학생이라고 뽑은 애들 대상으로 도교육청이 서울대 자소서 작성법을 1박2일 교육했어요.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업에 기울인 노력을 적으라는 것인데, 전공이랑 연관지어서 쓰라고 하더라고요. 전공 관련 공부를 하다가 관심이 생겨 책을 읽고, 어떤 교수님을 찾아가서 얘기를 들었다는 식으로요.”

학생들은 ‘자소설’을 쓰는 데만 1~2개월을 투자한다. 주로 3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친 7월부터 수시모집 원서를 접수하는 9월 초까지다. 2016학년도 입시를 치른 재수생 E가 기자에게 보내준 ‘자소서 수정 파일’을 보면, 그는 2015년 7월5일부터 9월15일까지 자소서를 30차례 수정했다. 8월15일과 8월23일은 오전과 오후에 각각 두 차례씩 수정하기도 했다.

수험생들이 자소서에 매달리는 이유는 ‘표현’만 달라져도 당락이 뒤바뀌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E는 자소서를 고쳐 재수에 성공한 사례다.

그는 2016학년도 입시에서 건국대·고려대·국민대·동국대·상명대·숭실대에 지원해 모두 불합격했고 전문대에 다니면서 재수를 했다. 그런데 이번 2017학년도 입시에서 가천대·고려대·아주대·한국외대(용인)·한양대·한양대(에리카 캠퍼스) 6곳을 지원하여 고려대와 한양대를 뺀 4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고려대와 한양대도 추가합격을 위한 예비번호(4번)를 받았으니 최종 합격 가능성이 있다.

그가 짐작하는 반전의 이유는 자소서다. “지난번 입시 때는 학교 선생님들이나 입시기관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제가 다니던 전문대의 같은 학과에 국어 좀 잘하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손을 봤어요. 그런데 입시기관에 돈 내고 받은 것보다 오히려 결과가 더 좋네요. 문과 친구를 두는 게 정답인가요?”

나름대로 합격한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E는 “기준이 없다”고 했다. “고려대는 작년에 예비번호도 못 받고 바로 불합격이 떴거든요. 제가 학교를 다시 다닌 것도 아니고 결과가 너무 다르잖아요. 기준이 너무 애매모호해요. 솔직히 왜 붙었는지 모르겠어요.”

실제 경험과 무관하게 그 경험을 어떻게 ‘작문’하느냐가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대학을 결정한다면 그 결과에 누가 승복할 것인가.

③ 내가 아니라 학교 때문에 떨어졌다

고등학교 생활을 평가하는 잣대는 과거처럼 중간·기말 고사 성적뿐만이 아니다. 대학은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 교과수업 외 비교과활동을 평가에 반영한다. 2014년 11월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신문을 보며 토론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고등학교 생활을 평가하는 잣대는 과거처럼 중간·기말 고사 성적뿐만이 아니다. 대학은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 교과수업 외 비교과활동을 평가에 반영한다. 2014년 11월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신문을 보며 토론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서울의 어느 일반고에 다니는 C는 노력이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반고에 다녔다는 사실 때문에 입시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서강대 입시의 1단계 서류평가에서 불합격한 것을 그는 승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신이 1등급 중반대예요. 외고 다니는 친구가 5등급인데, 제가 지원한 서강대 학부에 붙었어요. 입시 커뮤니티에서 보니까 그 학과에서 특목고 6등급 학생이 붙은 사례도 있어요. 대학이 고교 서열화를 하지 않는다는 걸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반고 1등급보다 특목고 6등급을 더 좋게 평가해줄 정도로 차별했나 싶어서 배신감이 들었어요. 1등급 이상으로 내신 성적을 받을 수 없는데 최대치로 노력해도 대학이 두는 격차를 뒤집을 수 없잖아요.”

내신 1등급은 상위 4%에 드는 학생들이 받는다. 내신 6등급은 60~77%에 드는 수준이다. 내신 1등급을 받고도 특목고 6등급보다 나쁜 입시 결과를 받은 C는 수험생들 사이에 나도는 ‘블랙 리스트’에 대해서도 말했다.

“성균관대가 (학교 차별을 하는 것으로 수험생 사이에선) 좀 유명해요. 어떤 선배 언니는 고려대 붙었는데 성균관대는 예비번호도 못 받고 떨어졌어요. (그래서) 우리 학교는 성균관대를 잘 지원하지 않아요(학교 교사들이 성균관대 지원을 학생들에게 권하지 않는다는 뜻). 그래서 서강대를 쓴 건데, 나 역시 예비번호도 못 받고 떨어질 줄은 몰랐어요.” 이제 그의 ‘블랙리스트’에는 서강대가 추가됐다.

대전의 어느 일반고에 다니는 F는 고려대·서울대·성균관대·이화여대·중앙대·한국교원대 6곳을 지원해, 서울대를 비롯한 4곳에 합격하고 고려대와 성균관대에는 불합격했다. “성균관대는 학교 이름을 좀 보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전교 등수 상위권에 있는 애들이 많이 (입학원서를) 썼는데 한 명도 붙은 사람이 없어요. 여태까지 선배들 중에도 (성균관대에) 붙은 예가 없어요.”

서울의 또 다른 일반고에 다니는 G도 주변에 자사고나 특목고 출신 수험생들의 합격 사례를 목격하면서 “왜 그런 고등학교에 가는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연세대 특기자전형에 지원했는데, 저는 1차에서 떨어졌거든요. 그런데 학원 같이 다니는 자사고 친구는 내신 2등급대인데도 1차에 붙었대요. 우리 학교에선 연세대 특기자전형에 지원해 합격한 애가 없어요. 자사고 친구가 면접 대비 학원에 가서 만난 외고 친구 말로는 자기네 반에서 16명이 연세대 특기자전형을 썼는데 15명이 1단계 서류평가에 합격했대요. 면접에서 안 뽑아주면 자기 실력이니까 할 말이 없는데, 1차 서류에서도 안 뽑아주면….”

대구의 어느 일반고에 다니는 B는 “특목고랑 자사고(자율형사립고)가 (대학이 선호하는) 1순위 맞고, 그다음에는 대구에서도 명문고로 치는 몇몇 학교, 그다음은 (전부) 고만고만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확실한 증거도 있었다.

“성균관대 입학사정관이 학교에 와서 공개 입학설명회를 한 적이 있어요. 같은 재단에 있는 남고랑 저희(여고)랑 비교하면서 ‘남고랑 수준 차이가 좀 있지 않냐’는 발언을 했어요. 우리 여고랑 남고를 똑같이 취급하지 않는구나 느낌을 받았어요. (저희) 여고에서 성균관대 붙은 친구는 없어요.”

④ 서울대 붙었는데 연·고대 떨어질 수 있나

학생들이 대학의 ‘고등학교 차별’을 확인하는 근거는 공교롭게도 “서열상 상위 대학에 붙었는데, 하위 대학에 떨어질 수 없다”는 대학 서열 논리였다. 조사에 응한 학생 140명 가운데 내신등급을 적은 138명의 경우 3등급 이상이 120명(86.9%)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체로 서울에 있는 사립대, 즉 ‘인서울’을 희망하는 중·상위권 학생들이 입시 결과에 불복하는 일이 많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학생들이 대학의 ‘고등학교 차별’을 확인하는 근거는 공교롭게도 “서열상 상위 대학에 붙었는데, 하위 대학에 떨어질 수 없다”는 대학 서열 논리였다.

부산의 어느 일반고에 다니는 H는 2017학년도 수시모집에서 고려대·서울대·부산대·연세대·한양대·한국교원대 6곳을 지원했는데, 서울대에 붙고 사립대 3곳은 모두 떨어졌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1단계에서 떨어졌고, 한양대는 일괄 합산해서 한번에 결과가 나오는 거라 바로 불합격했어요. 서울대 결과가 제일 나중에 나왔는데, 다 떨어지다가 마지막에 서울대 붙고 나니까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뽑는 기준이 뭔가. 서울대 인재상과 연고대 인재상이 다른 건가 싶기도 했는데, 솔직히 제가 연고대 인재상에 맞는 스펙을 더 쌓았어도 안 됐을 것 같아요.”

현행 입시제도 아래서 수험생들은 ‘서연고서성한이중경외시건동홍…’ 따위의 대학 서열을 읊으며 여기에 맞지 않는 입시 결과가 나오면 의구심을 키운다. 학교 현장의 대학 신뢰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이명박 정부 이후 대학 입시 정책은 대학 학생 선발권의 공공성·공정성 확보보다는 자율성·다양성만 강조해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입 자율화’라는 명분 아래 확대된 입학사정관 제도와 박근혜 정부의 학생부종합전형은 고교 서열화나 고교 차별을 해도 물증이 남지 않는 구조다.

⑤ 내신등급 높다고 다 합격하는 게 아니다

복잡한 대학입시제도에선 ‘입시정보’까지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2015년 7월 서울 성동구 한양대 체육관에서 열린 사설 입시기관의 대입 수시모집 설명회에 참여한 학생과 학부모들. 한겨레

복잡한 대학입시제도에선 ‘입시정보’까지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2015년 7월 서울 성동구 한양대 체육관에서 열린 사설 입시기관의 대입 수시모집 설명회에 참여한 학생과 학부모들. 한겨레

학생부종합전형을 두고 ‘학부모 종합 전형’ ‘금수저 입시’라는 별칭이 생기는 등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만, 학생들이 불복하는 건 학생부종합전형만이 아니다. 내신등급을 주로 반영하는 ‘학생부교과전형’ 등도 학생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대상이다. 대학 입시 전반에 걸쳐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의 공정성이나 합리성을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것이다.

입시인식조사 및 추가 전화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이 ‘근본적인 불신’을 보내는 대표 사례로 고려대의 학교장추천전형이 있다. 기자와 전화 인터뷰에 응한 학생 9명 가운데 4명이 고려대 학교장추천전형과 관련한 입시 경험이 있었지만, 이들의 입시 결과에서 일관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서울 어느 일반고의 G는 내신등급 1.3으로 합격한 반면, 대전 어느 일반고의 F는 1.16으로도 1단계에서 불합격했다. G는 “고려대는 이상하다. 입시 커뮤니티 보니까 내신 3년 통틀어 1.0짜리가 있었는데 걔는 떨어지고, 내가 1.3인데 붙었다. 그냥 지들 마음대로 뽑는구나 싶다”고 말했다. 고려대 전형에 불합격한 F는 “고려대가 될 줄 알았는데 떨어지고, 기대도 안 했던 서울대가 됐다”고 했다.

고려대 학교장추천전형은 교장이 추천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내신 교과성적 90%에 학생부 비교과활동 및 자소서·교사추천서 등 서류평가 10%로 1단계 합격자(2단계 면접을 치른다)를 가린다. 결국 서류평가 10%가 당락을 갈랐다는 얘긴데, 학생들은 승복하지 못했다.

학교 차원에서 아예 고려대 학교장추천전형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어느 일반고의 C는 “선생님들이 고려대는 내신등급 1.1이 안 되면 쉽지 않다고 하셨다. 문과에서 고려대 추천은 아무도 받지 않았다. 여고는 내신이 치열해서 1학년 때 잘하다가 2, 3학년 올라가면서 엎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1등급을 쭉 다 받기가 쉽지 않다. 우리 학교 전교 1등이 1.23 정도다”라고 말했다.

과거 원점수가 나오면 이를 합산해 전 과목 평균을 내고 이에 따라 등수를 매기던 내신 성적 산출 체제에서는 ‘1등’과 ‘100점’, ‘올백’이면 우등생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2008년부터 ‘내신 9등급제’가 도입되면서 내신 성적 하나에도 무수한 변수가 작용하는 복잡한 구조가 됐다. 내신 9등급제에서는 원점수보다 상위 몇%에 드는지가 중요한 상대평가다. 상위 4%는 1등급, 4~11%는 2등급, 11~23%는 3등급 등 과목마다 등급이 매겨진다. 최종 성적은 등수가 아니라 등급평균이다. 고교 3년 동안 100여 과목의 과목을 시험치는데 전부 1등급을 받아야 1.00등급을 받을 수 있다. 2등급이 대여섯 개만 섞여도 1등급대 초반을 유지할 수 없고, 학생부교과전형을 노릴 수 없다.

⑥ 진짜 이유를 모르겠다

학생들이 ‘입시는 로또다’라고 말할 정도로 대학의 입학사정 기준에 대한 신뢰 수준은 바닥이다. 학생들이 체감하는 입시 결과의 불확실성은 학생을 ‘뺑뺑이’로 돌려 추첨·배정하는 수준이었다.

비교과 스펙이나 학생부, 자소서 작성에 공들여야 하는 학생부종합전형과는 ‘스타일’이 안 맞아 3년 내내 수능에 무게를 두고 공부했다는 서울 어느 일반고의 G는 수능을 망치고 뒤늦게 학생부종합전형을 시도해 한양대에 합격했다. 앞서 서술한 대로 고려대 학교장추천전형에 합격한 G는 수능을 망친 탓에 수시모집의 마지막 관문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넘기지 못해 고려대에 불합격했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오래 준비한 친구들이 한양대 다 떨어졌거든요. 그런데 제가 붙은 거예요. 수능 망한 거 알고 내가 불쌍해서 뽑아줬을까요?”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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