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 비례대표인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6월20일 발의)과 윤소하 정의당 의원(8월16일)이 두 달 차이로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각각 제출했다. 두 법안 모두 ‘GMO를 쓴 모든 식품에 GMO 표시를 한다’는 대원칙을 똑같이 담았다. 그러나 디테일에선 미묘하게 갈린다. 그들이 살아온 환경과 지켜온 가치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25년차 농사꾼인 김현권 의원은 수입 GM작물의 공세와 국내 GM작물의 시험재배에 고통받는 농민들의 고민도 법안에 함께 녹였다. 반면 30년 넘게 시민운동을 한 윤소하 의원은 시민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소비자의 혼란과 불안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은 ‘같은 듯 다른’ 법안이 나온 자세한 과정을 소개한다. 국회에서 법안이 만들어지는 단계도 함께 설명한다.
이제, 발의된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각각 상정되고 동시에 논의된다. 오로지 GMO완전표시제 실현을 위해 뭉친 온라인 프로젝트 정당 ‘나는 알아야겠당’이 국회로 달려갈 차례다. 그 출정식인 창당 파티가 9월5일 저녁 7시,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다.
취재 서보미·김효실 기자, 편집 신윤동욱 기자, 디자인 장광석
기사에 등장하는 인용문과 상황은 기자가 직접 보고 들었거나, 취재원 스스로 그런 말을 했다고 확인한 내용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의 심리와 감정은 당사자가 직접 설명한 것을 옮겼다. 주요 쟁점과 관련한 사실관계는 인터뷰에 바탕을 두되 여러 자료와 문헌을 비교하여 검증했다. 김현권 의원의 인터뷰는 김민지 교육연수생이 도왔다. _편집자
7월26일 저녁 7시, 서울 여의도의 전라도 음식점에 둘은 마주 앉았다. 야당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백반 정식으로 식사를 하며 둘은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날은 두 번째 만남이었다. 한 달 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둘은 처음 만났다. ‘백남기 농민 국회 청문회’를 촉구하는 야 3당의 거리 기자회견 자리였다. 그때는 이름만 나누고 목례를 했다.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그들은 서로가 하나의 법안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알지 못했다. 20대 국회의 쟁점으로 떠오를 ‘GMO완전표시제법’(식품위생법 개정안)을 조금 다르게 각각 발의하게 될 것이고, 때로는 협력하지만 때로는 미묘한 신경전을 펴게 될 것임도 예감하지 못했다. 어쨌건 그들은 소속 정당이 다르고, 살아온 이력도 달랐던 것이다.
“농업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면서 풀어나갑시다.” “저도 농업 현장과 국회를 잇고 싶은 사람입니다.” 김현권 의원과 윤소하 의원은 그날 밤 농업 이야기를 하며 밤 9시까지 소주를 나눠 마셨다.
“응, GMO 법안 어때?”4·13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며칠 뒤 아내가 물었다. “국회의원 되면 자기 이름 걸고 첫 번째 법안 준비한다며?” 김현권 의원이 씩 웃으며 아내를 돌아봤다. “생각하고 있는 1호 법안이 있어?” 아내 임미애씨는 남편과 25년간 농사를 지어온 동료이자, 경북 의성군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을 지냈다. 아내 역시 정치인인 셈이다. 벌써 고민이 끝났다는 듯이, 간단하게 답하던 남편을 아내는 기억한다. “응, GMO 법안 어때?”
그로부터 한 달여 뒤, 개원이 얼마 남지 않은 5월 말, 김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 내 간담회실로 새로운 보좌진을 불러모았다. 아직 의원회관 사무실을 배정받지 못했으니 달리 모일 곳이 없었다. 앞으로 4년 동안 함께 일할 ‘김현권 의원실 사람들’이 처음으로 모두 모이는 자리였다.
서로가 어색했던 보좌진들은 회의 자료에 눈길을 박아두고 있었다. 회의 테이블의 상석을 피해 보좌관들 사이에 섞여 앉은 김 의원이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농업도 범위가 많으니 공부를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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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에 메모를 하던 송용한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의원님이 농민과 소비자를 연결하기 위해 GMO완전표시제법을 1호 법안으로 마음에 두시는 걸 알고 있습니다.” 송 보좌관은 정책 담당이었다. 그는 마음에 담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농민 대표이신데… 상징적으로 농업 법안을 1호 법안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김 의원이 활동할 국회 상임위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다. GMO완전표시제법은 농해수위가 아닌 보건복지위 소관 법안이었다. 의원실을 총괄하는 김현곤 수석보좌관도 말을 보탰다. “저도 1호 법안은 농해수위 소관 법안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느릿한 말투의 김 의원은 보좌진의 이야기를 내치지 않았다. “그래요. 한번 고민을 해봅시다.”
고민은 보좌진들로 옮겨갔다. 20대 국회 개원일인 5월30일 회관 1023호. 김성훈 비서관(5급)이 휑한 사무실 오른편 4개의 책상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정책팀은 사무실 입구 오른쪽에, 정무팀은 왼쪽에 앉기로 정한 뒤였다. 김 비서관은 세 번째 책상에 짐을 풀었다. 김현곤 수석비서관(4급)과 송용한 보좌관(4급)의 옆자리였다.
국회 보좌진으로 첫 출근을 한 그는 책상에 노트북부터 설치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고 아주 긴 이름의 서류를 내려받았다. 식약처가 행정예고 중인 식품위생법 하위 시행 기준 ‘유전자변형식품 등의 표시기준 일부개정 고시’였다. 행정예고가 끝나는 6월20일 전에 이에 대한 의원실의 의견을 전달해야 했다.
김 비서관은 안경을 벗어 책상에 내려놓은 뒤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고시를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GMO 표시 대상은 다음 각호와 같다. (중략) 제조·가공 후에도 GMO DNA 또는 단백질이 남아 있는 식품.’ ‘표시 대상 GMO가 아닌 농·수·축산물 또는 식품에 비GMO, 무GMO 등 소비자에 오인·혼동을 줄 수 있는 표시·광고를 해서는 안 된다.’
계속 떠오른 기사여느 사람들에게 그것은 외계의 언어처럼 읽혔겠지만, 농업 전문 기자 출신인 김 비서관의 더듬이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빠르게 안경을 다시 낀 김 비서관은 사무실의 다른 책상으로 다가갔다. “식약처 고시가 아주 황당합니다.”
김현곤·송용한 보좌관이 동시에 김 비서관을 올려다봤다. “아직도 ‘단백질·DNA 잔존’ 예외 규정이 남아 있습니다. 비GMO 표시 제한 규정은 아예 새로 들어갔고요.”*
잠시 생각하던 송 보좌관이 답했다. “고시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보다 식품위생법을 개정해야겠네요. 의원님도 1호 법안으로 마음을 두고 있으시니까 빨리 준비합시다.”
‘법안 발의’는 국회의원이나 정부, 국민이 법률안 제정안·개정안을 제안하는 행위를 뜻한다.** 쉽게 말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법률안이나 바뀌었으면 하는 법률안의 해당 조항을 만들어 국회사무처 의사국 의안과에 제출하는 것이다.
1호 법안의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단백질이 남아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없이 GMO를 원재료로 쓴 모든 식품에 GMO를 표시하도록 만드는 것은 이미 십수 년에 걸쳐 야당·시민사회·소비자가 주장해온 내용이었다. 이에 김현권 의원실은 식약처가 논란을 일으킨 비GMO·무GMO의 표시 기준을 제대로 세우는 문제에 집중했다.
6월10일, 송 보좌관과 김 비서관은 4개층 아래에 있는 630호로 내려갔다. 복지위 소속인 정춘숙 의원의 사무실에는 고시 개정안을 설명하러 온 식약처 수입식품정책과 과장과 직원이 와 있었다. “비GMO, 무GMO 표시에 제한을 둬야 소비자의 혼동을 막을 수….” 가만히 듣던 김 비서관이 물었다. “비GMO는 민간이 자율적으로 표시하면 되는데 왜 (표시 대상을) 제한한 겁니까?” 식약처 과장이 대답했다. “다른 나라들도 GMO 수입 허가가 됐거나 상용화된 품목에 대해서만 비GMO 표시를 합니다. 개발 안 된 모든 품목에까지 비GMO 표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찜찜한 기분으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김 비서관은 예전에 읽은 기사를 계속 떠올렸다. “아, 분명히 유기농법으로 기르던 옥수수가 GMO에 오염돼서 농민이 그걸 극복하고 비GMO 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농업 전문 기자 출신인 그는 국회에 들어오기 전 3년 동안 국제비영리기구인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에서 반GMO 연대 활동을 벌였다. 최근까지도 GMO표시제가 없던 미국에서는 민간이 자율적으로 모든 식품에 비GMO 표시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김 비서관은 미국의 유명한 사이트인 ‘Non-GMO Project’에 접속해 이리저리 검색을 시작했다. 가장 위 오른쪽에 걸린 배너 ‘Find Non-GMO’를 클릭했더니 2만9천여 개의 비GMO 목록이 쏟아졌다. 열흘 동안 자료 조사를 마친 김 비서관은 텔레그램 메신저로 송용한 보좌관에게 보고했다. “우리도 미국처럼 민간이 자율적으로 모든 식품에 비GMO 표시를 할 수 있게 법안을 준비하겠습니다.”
텔레그램 화면에서 송 보좌관이 답했다. “이거 참고하세요.” 19대 국회의 환경노동위원회 보좌관 시절에 발의를 준비했던 환경보건법 개정안이었다. 법안 준비의 중요한 고비를 넘어가고 있었다.
“요새도 주말에 집에 가면 소먹이도 주고 소똥도 치우고 그럽니다.”
아내와 함께 100마리 넘는 소를 키우는 초선 김현권(52)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년차 ‘농사꾼’이다. 서울대 천문학과(82학번) 재학 시절 ‘반제동맹당 사건’(1986년)에 연루돼 2년 넘게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그는 1992년 결혼했다. 아내 임미애씨는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결혼 직후 둘은 경북 의성으로 귀향했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 무언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김 의원은 말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사과 과수원을 2004년 폐업한 부부는 열댓 마리였던 소를 50마리로 늘려 본격적으로 축산업에 뛰어들었다. 열심히 농사지어도 늘 빠듯한 살림에 부부는 농산물 온라인 쇼핑몰, 학원 등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던 2007년 우연히 TV 다큐멘터리를 보던 부부는 소에게 먹이는 ‘수입산 100%’ 표시의 상업용 배합사료에 GMO(유전자변형식품)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사과에 차마 농약을 칠 수 없어 과수원 문을 닫았지만, 또다시 안전성 논란이 있는 GMO와 맞닥뜨린 것이다. 고민 끝에 부부는 사료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직접 기른 풀과 들깨, 정미소에서 얻어온 쌀겨·미강·두부 막지(비지)를 배합사료기에 넣고 2~3일간 발효해야 하는 고된 과정을 부부는 기꺼이 감내했다.
농민운동가이기도 했던 김 의원은 영호남 지역주의 완화와 현실에 맞는 농업정책을 위한 정치를 꿈꿨다. 2004년 열린우리당(득표율 18.73%), 2012년 민주통합당 후보(27.32%)로 군위·의성·청송에 출마했으나 두 차례 모두 김재원 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패했다. 그러는 동안 아내 임씨는 2006~2014년 의성군의원,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 등으로 나섰다.
4·13 총선에서 김 의원은 농민을 대표하는 비례대표로 더불어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C그룹(21~45번)으로 분류돼 당선과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3월22일 새벽 진행된 더민주 중앙위원회 ‘비례대표 후보자 순위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일찌감치 당선을 확정지었다. “밤에 아내 곁에 가기 미안할 정도로 거친 손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누구를 위해 일할지 잘 알고 있다”는 당시 그의 연설은 지금도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사흘 뒤 김 비서관의 책상은 별다른 문서도 없이 단출했다. 안경, 화장지, 펜 몇 개. 기존 식품위생법도, 해외 사례도 올라와 있지 않았다. 웬만한 자료는 문서나 사진 파일로 보고, 출력한 문서도 곧바로 보관함에 정리해두는 게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법안 준비와 농해수위 첫 업무보고(6월27일) 준비로 사흘에 한 번씩 집에 가지 못하고 회관 휴게실 신세를 지고 있었지만, 이날 작업은 특히 중요했다. 생전 처음으로 법안의 구체 문항을 적어야 했다. 그는 컴퓨터 화면에 얼마 전 송 보좌관이 줬던, 환경보건법 개정안 파일을 띄웠다. 톡톡톡톡. 원래 법안 이름을 지웠다. 제안 이유 및 주요 내용도 지웠다. 이제 새로운 법률안을 적어넣을 차례다.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김현권의원 대표발의)’라고 적었다. 주요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중략) 이에 GMO를 원재료로 사용한 식품에 대해서 모두 GMO를 표시하도록 하고, GMO를 사용하지 않은 식품에 대해선 비GMO와 무GMO 표시를 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강화하고 국민 건강을 보호하려는 것임(안 제12조의 2)’ 순식간에 200자 원고지 3.5장 분량의 새로운 제안 이유와 주요 내용이 채워졌다.
기존 법률과 개정안의 달라진 부분을 비교하는 ‘신·구 조문 대비표’까지 직접 만든 뒤에야 그는 처음으로 허리를 폈다. 곧바로 김 비서관은 김현권 의원실 전체 텔레그램방에 법안 개정안을 띄웠다.
그날 오후부터 의원실의 복사기는 쉴 새 없이 돌아갔다. 하동욱 비서는 갓 만들어진 법안 개정안과 함께 독소조항이 담긴 식약처 고시 철회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야당·무소속 국회의원 수에 맞춰 171부씩 복사했다. 이윽고 의원회관 1층에 있는 의원실별 우편함에 일일이 꽂아두었다. 한편 박민주 비서는 여야 의원 300명의 사무실로 팩스를 보냈다. 공동발의를 위해선 이들의 서명이 필요했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은 혼자 법안을 발의할 수 없다. 동료 의원 9명의 동참이 필요하다. 국회법은 ‘의원 10명 이상의 찬성으로 법안을 발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분별한 발의를 막기 위한 취지다. 의원들은 법안에 힘을 싣기 위해 최대한 많은 동료 의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 각 정당 지도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금지법, 노동시장 개편 관련법 등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법안에 대해선 전체 의원의 서명을 받아 ‘당론’으로 발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현권 의원의 GMO완전표시제법은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으로 채택되지 않은 상태였다. 의원실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법안 제출하러 왔는데요”6월13일부터 김 의원실로는 하루에 십수 통씩 법안 발의 동참 의사를 밝히는 전화가 걸려왔다. 김영춘, 박재호, 박주민, 서형수, 안규백…. 보좌진의 텔레그램방에는 실시간으로 의원들의 이름이 올라왔다. “사흘 동안 법안 발의에는 29명, 고시 철회 요구서에는 36명이 서명했습니다.” 수시로 김 의원에게 법안 내용과 진행 과정을 보고해왔던 송 보좌관과 김 비서관이 마지막 보고를 했다.
6월20일, 파란색 서류철을 든 박민주 비서는 의원회관 지하 1층으로 내려가 긴 통로를 따라 국회 본청을 찾아갔다. 국회사무처 의사국 의안과 의안접수센터가 있는 701호였다. 1년 전쯤 한 번 의안과에 들른 적이 있는 박 비서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른 의안과 사무실 앞쪽에 ‘의원 접수 및 처리’라는 작은 명패가 달린 책상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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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안과에서는 직원 10명이 정치·경제·사회 의안을 분야별로 나눠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정치 의안 담당자는 국방위원회·안전행정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정보위원회 소관 법안을 접수받는다. 현재 국회는 의원 개인의 인장에 대한 보안과 원활한 서류 보완 요구 등을 이유로 서면으로만 법안을 제출받고 있다.
문가에 앉은 직원에게 박 비서가 물었다. “법안 제출하러 왔는데요.” “저한테 주세요. USB도 같이요.” 파일철을 열어 법안명을 본 직원이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마침 그는 복지위 소관 법안을 접수받는 사회 의안 담당자였다. 직원은 서류철에 들어 있는 법안 개정안, 발의자 서명부, 비용추계요구서, 국회의장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5분가량 확인했다. “접수됐습니다.” 박 비서는 서류 파일이 담긴 USB를 돌려받고 의안과를 나섰다.
이튿날 정세균 국회의장은 법안을 결재해 소관 상임위인 복지위로 회부했다. 그 즉시 국회의안정보시스템 홈페이지를 통해 ‘김현권 안’은 일반 국민에게 공개됐다.
“어라, 같은 법이다”김현권 의원실이 GMO완전표시제법을 다른 의원실에 돌리던 날, 술렁이는 의원실이 있었다. 517호 윤소하 의원실이었다. “어라, 같은 법이다.” 같은 법안을 준비하고 있던 공석환 정책 비서가 허탈하게 웃으며 의원실을 총괄하는 박선민 보좌관에게 법안을 내밀었다.
며칠 전 1호 법안으로 ‘어린이 병원비 걱정제로법’(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한 박 보좌관은 또 다른 법안 개정안의 조문 작업을 하고 있었다. “보좌관님, 이것 좀 봐주세요. 우리가 준비하던 법안과 거의 동일한 법안을 김현권 의원실에서 냈네요.” 의자에 허리를 기댄 박 보좌관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분하게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준비해보는 건 어때.”
자리로 돌아온 공 비서는 턱을 괴고 김현권 의원실 법안을 한 줄씩 뜯어봤다. ‘단백질·DNA 잔존’이라는 예외조항을 삭제하는 조문은, 그도 생각하고 있던 그대로였다. 다음 조항을 읽던 그가 갑자기 자세를 고쳐잡고 파란 펜을 들었다. ‘GMO를 원재료로 사용하지 않은 식품에 비GMO·무GMO를 표시할 수 있다’는 신설 조항에 파란 별표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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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개원 전부터 윤소하 의원도 GMO 법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개원을 앞둔 5월 중순, 윤 의원과 새로운 보좌진들은, 불이 꺼진 의원회관 간담회실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 앞에서 박선민 보좌관이 파워포인트(PPT) 자료를 화면에 띄운 채 국회 일정과 복지위 현안에 대해 설명했다.
다시 불이 켜지자 윤 의원이 안경을 벗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민의 복지와 안전, 건강을 책임지는 복지위 소속인 만큼 긴장하고 일했으면 좋겠어요.” 이어서 중요한 의제를 하나씩 짚어나가던 윤 의원은 한 달 전쯤 전북 완주의 농촌진흥청 인근을 방문해 GM벼 시험재배 현장을 본 경험에 대해 설명했다.
“생각보다 GMO 문제가 심각했어요. 농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소비자인 전 국민에게도 중요한 문제니 식약처를 담당할 분은 현황을 파악해 대안을 마련해주세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식약처를 맡게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공 비서도 수첩에 ‘GMO 대안 마련’이라 썼다.
6월 중순 어느 날, 공 비서는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화면 두 대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왼쪽 화면에는 국회전자도서관에서 내려받은 유럽연합(EU)의 GMO 표시법이, 오른쪽 화면에는 국내 식품위생법이 떠 있었다. 유럽연합,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법안을 출력해 책상 위에 폈다. 비의도적 혼입치(GMO 표시 면제 범위) 0.9%, 1%에 파란 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현재 3%인 한국보다 크게 낮았다. 김현권 의원실이 제출한 법안에는 비의도적 혼입치에 대한 언급이 없던 터였다.
한참을 보고 “고생했어요”한 달 뒤 공 비서가 박지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의당 시도당 당직자 출신으로 처음에 GMO에 익숙지 않았던 공 비서는 틈만 나면 박 간사를 비롯한 아이쿱생활협동조합, 소비자시민모임 등의 활동가들과 만나거나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구했다.
“간사님, 마지막으로 확인할 게 있는데요.” “뭔데요?” “국내에 유통되지 않는 GMO가 들어간 식품에도 비GMO 표시를 하면, 대기업들이 자기 상품에 다 비GMO 표시를 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돈 없는 회사나 농민들은 피해를 볼 수도 있잖아요.” “네, 맞아요.” “소비자도 농민이나 중소기업 제품이 다 GMO라고 오해할 수도 있고요.” “그렇죠.”
박 간사의 의견도, 며칠 전 토론회에서 소비자단체가 했던 주장과 같았다. 그제야 공 비서는 비GMO 표시 대상을 모든 품목이 아닌, 국내에서 GMO가 상용화되는 품목으로 규정하는 게 맞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비GMO 표시 대상에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김현권 의원실의 법안을 봤을 때부터 고민해온 문제였다.
생각을 정리한 뒤 한글문서로 법안 제안 취지와 개정 조항을 공들여 쓴 공 비서가 국회 내부 전산망에 접속해 법률안 작성 편집기를 켰다. 국회 보좌진으로 처음 온 그에게 얼마 전 홍기돈 비서관이 “법안 제안 취지만 제대로 쓰면 신·구 조문 대비표를 만들어주는 신기한 게 있어”라며 알려준 프로그램이었다. 신·구 조문 대비표는 기존 법 조항과 개정된 법 조항의 차이를 한눈에 보여주는 표로, 개정안 뒤에 붙여서 제출하게 돼 있다.
프로그램에서 법안명에 ‘식품위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치니, 전체 102조 조항이 한글문서로 길게 떴다. ‘단, 제조·가공 후 GMO DNA 또는 단백질이 남아 있는 GMO에 한정’ 부분을 삭제하고, ‘GMO가 사용 안 된 식품에는 비GMO 표시를 할 수 있다. 다만 GMO가 0.9% 범위 내에서 포함된 경우에는 비GMO를 표시할 수 있다’는 내용을 새로 추가했다. ‘적용’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 신·구 조문 대비표가 등장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안 초안은 국회 법제실의 법률적 검토와 시민단체와의 회의를 거친 뒤 8월8일 월요일 의원실의 회의 테이블에 올랐다. “이번주 발의될 법안입니다.” 윤 의원이 안경을 찾아 쓴 뒤 한참을 들여다봤다. “고생했어요.”
‘타당함’이라는 의견이 왔다윤 의원이 최종 확인한 법안의 파일을 공 비서는 정의당 정책위원회 농업 담당 위원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새누리당·더민주와 달리 정의당에선 각 의원실이 발의한 법안을 당 정책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의원총회에 보고하게 돼 있다.
며칠 뒤 당 정책위에선 ‘GMO표시제를 강화하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은 추진되는 것이 타당함’이라는 의견을 텔레그램으로 보내왔다. 모든 단계를 거친 법안에는 윤 의원 외에 16명 의원이 동참했다. ‘김현권 안’과 같은 듯 다른 ‘윤소하 안’은 8월16일 발의됐다.
법안 발의는 입법 과정의 출발이라는 점을 두 의원실에서 일하는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지난 19대 국회 4년 동안 복지위에 묶여 있던 GMO완전표시제 법안은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된 바 있다. 두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과거와 다른 궤적을 따를 것인지, 아직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고향, 시골, 어머니…. 이 단어를 말할 때마다 그는 같은 표정을 지었다. 미소 띤 얼굴에선 그리움이 묻어났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고향을 좋아했던 초선 윤소하(55) 정의당 의원은, 옥천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 전남 해남군 옥천면에서 태어났다. 교육행정직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초·중학생 시절 11차례나 학교를 옮겨야 했던 그는 방학만 되면 꼭 시골의 할아버지 집에서 지냈다. “그때는 너무 전학을 많이 시켜서 아버지가 조금 밉기도 했다”며 그는 웃었다.
그곳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목포대 경영학과(80학번)에 입학한 뒤 그는 목포에 뿌리를 내렸다. 신입생 시절엔 ‘5월의 광주’를 겪었다. 친구들과 함께 목포에서 광주 시민군을 도우려 했던 그는 “(해남으로) 안 내려오면 가만히 안 놔둔다”는 아버지의 만류로 마지못해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다. “꼭 도망을 간 것처럼 늘 마음에 걸렸다”고 그는 지금도 말한다. 5·18민주화운동과 이듬해 학내 민주화 투쟁을 겪으며 그는 사회운동에 눈을 떴다.
전두환 정권에서 열성적으로 싸웠던 그는 ‘학원안정법’ 반대 시위와 ‘부천서 성고문 응징’ 투쟁으로 두 차례 투옥됐다. “제가 감옥에도 왔다갔다 하고 수배도 당하고 하면 어머니가 옷가지를 챙겨주셨는데 그때 어머니 심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울컥해요.” 재작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생각난 듯 그의 말끝이 흐려졌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을 그는 지금도 매일 되뇐다.
민주화가 이뤄진 뒤에도 그는 학교무상급식운동본부 상임본부장, 목표민주시민운동협의회 의장, 광주전남진보연대 공동대표 등을 맡아 30년 넘게 농업, 여성, 노동자, 통일 관련 현장을 누볐다. 그는 2008년 민주노동당(득표율 5.53%), 2012년 통합진보당(16.29%) 소속으로 목포에 출마했다가 박지원 현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상대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으나, 지난 4·13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4번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을 맡은 윤 의원은 개원 직후인 6월8일 0~15살 아이들의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보장하게 하는 ‘어린이 병원비 걱정제로법’(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의원실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이후엔 GMO완전표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개정안과 간호사 등 보건의료 인력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보건의료 인력 지원 특별법안 등을 대표 발의했다.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법안 발의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식약처가 ‘월권’을 한 부분도 있다. 콩(대두), 옥수수 등 국내에서 상용화된 6개 GMO 품목을 제외한 다른 품목에는 비GMO·무GMO 표시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한 것이다. 이는 개정 식품위생법에도 없는 내용이다. 현재 법적으로 비GMO·무GMO 표시 기준은 없는 상태다.
**국회법은 국민이 국회의원 소개를 받고 입법 청원서를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때 발의 주체는 국민이지만 청원을 소개한 의원이 상임위원회에 나가 그 취지를 설명해야 한다. 각 상임위원회는 별도 청원심사소위원회를 둬서 입법 청원을 논의해야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
***비의도적 혼입치는 GMO가 유통 과정에서 다른 식품에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어느 정도까지는 GMO 표시 대상에서 제외해주는 비율을 뜻한다.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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