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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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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일하는 청년들을 만나다

낮에 일용할 시간을 얻으려 야간에 노동하지만, 오히려 건강·미래 위협해… 진짜 알바 임금 산정하는 '육값계산기'로 돌려보니' '깜놀'할 손해 나와
등록 2016-03-22 20:24 수정 2020-05-03 04:28

실험의 출발3개월에 걸친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에 참가한 뉴미디어 ‘닌’(NIN)은 한 달 동안 기획하고, 한 달 동안 취재하고, 한 달 동안 제작했다. (뉴스랩 펠로우십에 대한 설명은 ‘만리재에서’ 참조)
20대를 타깃 독자로 설정했다. 그들에게 가장 갈급한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아르바이트, 그 가운데서도 야간 아르바이트를 취재하기로 했다.
편의점, 술집, 카페 등 야간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없으면 도시는 굴러가지 않지만, 막상 그들은 생활비·학원비·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밤에 잠드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밤을 저당 잡힌 뒤 미래를 꿈꾸지만, 청년 실업률이 12.5%(2016년 2월 기준)에 육박한 상황에서 좋은 일자리는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아르바이트는 더 이상 디딤돌이 아니라 늪이 되어버렸다.
낮과 밤에 걸쳐 일하면서, 대학을 다니지 않거나, 휴학했거나, 졸업한 22명을 만나 깊이 인터뷰했다. 갈수록 아르바이트로 먹고사는 20대 수가 증가하는데, 노동자로서 적절한 처우를 받고 있는지 물었다. 또 아르바이트 노동자 역시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했다.
취재 결과는 세 가지 방식으로 보도했다.
첫째, 동영상을 만들었다. 젊은이들이 쉽게 뉴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싶었다.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미와 비판을 곁들인 짧은 동영상 9편을 제작했다.
둘째, 인터랙티브를 만들었다. 인터뷰에 등장한 단어를 분석하여 의미연결망 그래픽을 만들었다. 사용자가 직접 클릭하면서 야간노동의 실체를 체감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자신의 정상 임금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육값계산기’도 만들었다.
셋째, 영상과 인터랙티브를 통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독자들이 찬찬히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도록 장문의 텍스트 기사를 작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두 가지 방식의 뉴스 유통을 준비했다.
우선 ‘닌’이 독자적으로 구축한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관련 영상·인터랙티브·기사를 3월 초부터 공개했다. 기존 신문과 방송을 외면하는 20대에 접근하기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기성 언론도 활용하기로 했다. ‘닌’의 취재·보도 과정에서 작은 힘과 조언을 보탠 을 통해 그 결과를 종합 보도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약 일주일 동안 보강 취재를 벌였다.
이제 그 결실을 창간 22주년 특대호의 표지이야기에 담는다. 온라인 전용 콘텐츠로 먼저 제작해 수용자의 반응을 본 뒤, 추가 취재를 거쳐 이를 지면으로 옮기는 실험이다. 관련 기사는 의 누리집·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한번 유통될 것이다.
그리고 ‘영 프롤레타리아트’ 마침 은 불안노동자로 살아가는 청년에 주목하는 탐사보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세대 담론’을 넘어, 새로운 유형의 무산자(無産者)에 주목하는 ‘계급 문제’로 접근하려 한다. 은 ‘닌’이 던진 화두를 1탄으로 삼아 청년노동 ‘영 프롤레타리아트’를 계속 짚어갈 계획이다.
취재 이미진·박리세윤·최유진·김동관(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닌’(NIN)), 이완·김효실 기자,
편집 신윤동욱 기자, 디자인 장광석

“손님, 죄송하지만 매장 안은 금연인데요.” 술 취한 중년 남성이 퉁명스레 대꾸한다. “전자담배잖아. 눈 없어?” 점장님은 그냥 놔두라는 눈치다. 5분 뒤, 다른 손님이 ‘진짜 담배’에 불을 붙인다. “손님, 죄송하지만 매장 안은 금연인데요.” 젊은 남성은 턱짓으로 건너편 중년 남성을 가리킨다. “저 사람도 피우잖아요.” 손님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손님, 죄송하지만 저분은 전자담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욕설이 날아든다. “아, 씨발. 끈다 꺼.”

4개월, 몸이 무너지기 시작

마냥 달콤한 노동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술집에서 일하는 것은 유독 힘들다. 손님이 행패를 부려도 방도가 없다. 고생은 온전히 아르바이트생 몫이다. 조금만 불평불만을 하면 곧장 “이런 줄 모르고 지원했어? 네가 하겠다고 한 거잖아”라는 소리가 날아온다. 그렇다. 취객 많은 새벽에 일하겠다고 한 것도 ‘나’고, 고된 걸 알면서 술집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것도 ‘나’다. 누굴 탓하랴.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인 것을.

그렇다면 내가 야간 아르바이트라는 ‘개고생’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낮 동안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있고, 주간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500원 정도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포잡’을 뛰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4개의 아르바이트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젊음이 밑천이고 체력이 재산이니 몸이 힘든 것쯤은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일한 지 약 4개월.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대화 중에 잠들고, 5초 전 내뱉은 말이 기억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이미지는 떠오르는데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만사가 귀찮고 피곤했다. 결국 두어 달을 더 일한 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뒤에도 길가에는 여전히 24시간 영업 카페나 술집이 즐비했다. 그곳에는 늘 내 또래의 야간 아르바이트생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궁금했다. ‘저 친구들은 이걸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아마 저들 중에는 지난날의 나처럼 자신의 건강과 삶에 이상 신호를 느끼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여행 경비 마련’보다 훨씬 절박한 이유로 돈을 벌고 있었다면, 쉽게 일을 그만둘 수 있었을까. 밀려드는 졸음과 피로 속을 허덕이며 새벽을 겨우 버텨내는 청년들의 삶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돈 없는 20대’는 언제나 먹이사슬의 가장 하단에 위치할 수밖에 없기에, 싸구려 취급받는 청년들의 ‘육값’이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육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반갑게도 우리 닌(NIN) 팀원들 역시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유진(24)은 저녁 8시부터 시작해 새벽 2시에 끝나는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복수전공 때문에 학업에 매진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다보니 과제와 학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진은 당시를 회상하며 “학점도 망하고, 몸도 피곤하고… 얻은 건 돈밖에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동관(21)은 과외 외에 별다른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이 없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운 좋은 일’임을 알고 있다고 했다. ‘알바계의 금수저’라고 불리는 과외를 하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만일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까지 주어지면 그 부담감이 어떨지 상상이 잘 안 된다고 했다.

세윤(26)은 평소에도 20대 노동 문제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왔다. 고학력 친구들도 근로기준법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을 많이 봤다며,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하고 바랐던 전태일의 말이 무색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생이 법이 아닌 고용주의 ‘선의’에만 기대야 하는 현실 또한 안타깝다고 했다.

‘육탐(육체탐구생활) 프로젝트’는 이처럼 팀원 모두의 관심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획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동시에 현재의 먹고사는 문제까지 감당해야 하는 청년들의 삶. ‘돈 없는 20대’는 언제나 먹이사슬의 가장 하단에 위치할 수밖에 없기에, 싸구려 취급받는 청년들의 ‘육값’이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육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모바일 시대에 뉴스 콘텐츠 실험에 나섰던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닌’(NIN). 김동관·박리세윤·이미진·최유진(왼쪽부터). 닌(NIN) 제공

모바일 시대에 뉴스 콘텐츠 실험에 나섰던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닌’(NIN). 김동관·박리세윤·이미진·최유진(왼쪽부터). 닌(NIN) 제공

싸구려 커피 아니, 싸구려 청년

모두 22명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청년들을 만났다. 모든 인터뷰이를 최소 1시간 이상 인터뷰했다. 꼬박 2주가 걸렸다. 모든 인터뷰는 사전 동의를 구하고 녹음한 뒤, 글로 옮겨 적었다. 녹취록 총분량은 A4용지 101쪽으로, ‘알바의 언어’라는 단어 의미연결망 분석에도 활용했다.

지인에게 부탁하거나 주변 소개를 받는 한편, 야간노동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의뢰하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터뷰이를 섭외했다. 20살부터 30살까지 여러 연령의 청년들을 만났다.

20대 중반(24∼26살)이 16명으로 가장 많았다. 22명의 청년 중 3명은 고교 졸업자였다. 나머지는 대학원 재학생 2명, 대학 졸업자 9명, 대학 재학생 5명, 대학 휴학생 2명, 대학교 졸업 유예자 1명이었다. 남성은 5명, 여성은 17명이었다. 야간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청년은 모두 12명으로 남성이 5명, 여성은 7명이었다( 인터뷰 대상자 정보는 추가 정보를 확인한 20명에 한함).

처지가 모두 비슷한 것은 아니었다. 여행을 가기 위해, 카메라를 사기 위해, 다음달 여자친구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밥을 먹기 위해, 방세를 내기 위해, 학교에 다니기 위해 일하는 이도 있었다. 전자의 아르바이트가 선택의 문제라면, 후자에게 아르바이트는 필연적이었다.

후자에 속하는 청년들은 사람답게 사는 데 드는 최소한의 비용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 따라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부조리를 겪거나 문제의식을 느낄 때도 쉽게 대응하지 못한다. 생계 유지에 대한 부담과 직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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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자유시간 2시간

눈에 띄었던 것은 22명 중 절반을 넘는 12명의 청년이 야간 아르바이트(밤 10시∼아침 6시) 경험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낮에 학교에 가거나 취업 준비를 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대판 ‘주독야경’의 삶을 살고 있었다. “야간 알바는 피곤한 것만 잘 이겨낸다면 시간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알바라고 생각해요. 내 잠만 줄이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L씨)

학업과 취업 준비 등을 위한 최소한의 일들을 하다보면, 청년들에게 남는 시간은 새벽뿐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하는 이들은 아무리 바빠도 매달 최소한의 금액을 벌어야 한다. 이들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 돈을 벌면서 개인 시간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매력을 느끼는 듯했다.

우선 이들의 실제 하루가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는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그린 생활시간표를 받았다. 는 술집에서 마감 업무를 하는 T(26)씨와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S(25)씨, 24시간 카페에서 근무하는 P(22)씨,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L(30)씨의 하루 생활시간표다.

T씨의 경우, 일하는 10시간과 잠자는 8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24시간 중 6시간이 남는다. 출퇴근 시간 등을 제외하면 온전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약 2시간이다. 입대 전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려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T씨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면 절대 이렇게 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L씨는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이공계 학과 특성상 실험이 많아 토요일에도 학교에 나가는 일이 잦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는 1년 정도 했다. 그동안 야간 아르바이트 경력을 합치면 벌써 햇수로 6년차라고 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 박탈감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친구들은 실험에만 집중할 수 있는데 저는 딱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방학 때는 휴가가 있어서 아이들은 여행도 가고 그러는데, 저는 집에서 쉬거나 알바할 때도 있고. 그런 점에서 격차가 생기는 것 같아요.”

24시간 카페에서 일하는 P씨는 주말만이라도 제대로 쉬고 싶어 ‘굵고 짧게 하자’는 생각으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그는 일주일에 금, 토, 일 주 3회 출근을 한다. 금·토요일엔 새벽 퇴근 뒤 낮에 자면 되지만, 일요일 근무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월요일 아침 7시에 퇴근하면, 2시간 뒤인 오전 9시에 첫 수업이 시작된다. 그는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대로 학교 과방이나 휴게실에 가서 쪽잠을 잔 뒤 수업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월요일 수업은 오후 3시에 끝나는데, 집에 오면 쓰러지듯 잠든다. 야간 아르바이트 기간이 한 달, 두 달 늘어날수록 점점 몸이 쇠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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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휴수당이 뭔가요?

방학 때 등록금을 벌기 위해 호프집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O(24)씨는 개강 3일 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지만, 밤낮이 바뀌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한다. “개강하고 3주 동안은 강의에 들어가 잠만 잤어요.”

개강 뒤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카페에서 12시간을 일하고 3시간만 잔 뒤 통학버스를 타야 했다. 수업 시간에는 출석 체크만 하고 바로 잠들었다. 함께 조모임을 하는 이들에게 미안했지만, ‘방세라도 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청년들은 ‘낮을 자유롭게 활용하기 위해’ 야간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야간의 피로가 낮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처럼 많은 피로를 감수하면서 일하는 청년들은 과연 ‘제값’을 받으며 일하고 있을까.

야간노동자는 수면 시간을 포기하고 삶의 질을 낮춰가면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만큼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근로기준법 제56조(연장·야간 및 휴일근로)를 보면,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의 야간노동에 대해 고용주는 기본 시급의 1.5배를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야근수당’이 ‘5명 이상 사업장’에 한해 적용된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상시 근로자 수 4명 이하의 사업장을 ‘소규모 사업장’으로 분류하고, 5명 이상 사업장부터 야근수당을 적용하고 있다. 2016년 주간 최저시급이 6030원이므로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 사이의 야간 최저시급은 9045원이 된다. 안타깝게도 청년들이 많이 근무하는 4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는 이런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관련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야간 아르바이트생이 놓치기 쉬운 또 하나는 ‘주휴수당’이다. 근로기준법 제55조(휴일)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일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한다”. 따라서 일정 시간 이상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쉬는 날에도 그 하루치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주휴수당의 경우 업장의 규모와 상관없이 적용되며, 일주일에 15시간, 한 달에 60시간 이상 근무하는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알아도 주장하기 힘들다
동서울우편물류센터의 소포 운반 작업. 우편물류센터는 명절 때 우편물을 분류하고 나르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고용한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동서울우편물류센터의 소포 운반 작업. 우편물류센터는 명절 때 우편물을 분류하고 나르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고용한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야근수당과 주휴수당은 법적으로 보장된 임금이다. 해당 자격을 갖췄음에도 고용주가 야간·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면, 이는 ‘체불임금’이다. 아르바이트를 이미 그만두었어도 자신의 노동시간을 증명할 자료가 있다면 노동부에 진정해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은 근로계약서나 근무일지가 이 ‘자료’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 번도 주휴수당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받아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내 또래의 다른 친구들은 어떤지 궁금했다.

조사 결과, 야간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12명의 청년 중 대기업 직영 점포에서 근무하는 2명만 야근수당과 주휴수당을 제대로 받고 있었다. 나머지 10명 중 4명은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해당하지만, 실제로는 받지 못하고 있었다.

야근수당의 경우 5명 이상 사업장에서 근무하면서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총 3건이었다. 이 중 1건은 ‘주간 시급’에 1.5배를 곱하는 것이 아니라 주간 시급보다 낮은 최저시급에 1.5배를 곱해 야간수당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받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근로기준법에서 명시한 ‘통상임금’보다 낮은 금액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야간수당을 지급했다고 볼 수 없다. 대부분 아르바이트생의 경우 시급으로 임금을 정하는데 이 경우 애초 약속한 시급이 곧 통상임금이 된다.

돈을 받아야 할 청년이 주휴수당이나 야근수당과 같은 개념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알고 있다 해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답이 훨씬 많았다.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고, 고용주와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까칠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찍히는 등 불이익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청년들이 밝힌 ‘돈 달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K(20·편의점 아르바이트) “제가 그렇게 오래된 알바생도 아니라서 요구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요구한다고 해도 친구들 보면…, 그런 얘기를 한 친구들은 거의 다 잘리는 쪽으로 되더라고요.”

O(24·호프집 아르바이트)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서 알바를 더 구할 수가 없으니까…. 차선책이 없어 그만두지 못했어요.”

M(26·보드복숍 아르바이트) “어떤 기사에서 그런 댓글을 봤어요. ‘정말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은 최저임금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 말이 딱 맞아요. 더 챙겨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어요. 그냥 ‘이건 잠깐이다, 곧 지나가는 시간이다’ 생각하고 살았어요.”

Q(26·호프집 아르바이트) “저한테는 주휴수당이 보편적 개념이 아니었고, 사장한테 얘기하면 싫어할 거 뻔히 아니까 관계를 생각해서 그런 요구를 하기가 힘들었어요.”

S(25·공연장 스태프) “제 전공 분야이기 때문에 나중에 취업할 때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도 모르는데…. 모르는 사람들이면 따질 텐데, 아는 사람들한테 얘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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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값’ 차이, 80만원에 이르다

사장님과의 관계를 생각해 주휴수당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대답한 Q씨. 그가 ‘관계’ 때문에 포기한 돈은 얼마나 될까. 법정임금과 그가 실제 받은 임금을 비교해보니 한 달 기준 약 20만8천원의 차이가 났다. 그가 호프집에서 일한 총기간인 3개월을 곱하면 약 62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구체적 액수를 알려주자 Q씨의 반응이 달라졌다. “와, 저 소송 걸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인터뷰 내내 태연했던 그가 처음으로 흥분했다.

인터뷰한 청년들은 주휴수당, 야근수당, 근로기준법 등의 단어에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걸 챙겨주는 곳이 진짜 있긴 해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놓치고 있는 권리를 구체적 액수로 환산해 알려주자 반응이 달라졌다. 화를 냈고, 진짜냐고 몇 번씩 확인하더니, 이내 “그 돈을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구체적 수치를 보여준 결과다.

는 인터뷰에 응한 야간 아르바이트생 12명의 임금을 그들이 받았어야 할 법정임금과 비교한 결과다. ‘육값계산기’를 활용하면, 누구나 자신의 노동조건을 입력해 법에 따라 받아야 할 ‘진짜 월급’을 알아볼 수 있다.

12명의 ‘육값’을 계산해보니, 한 달에 적게는 5만원부터 많게는 80만원까지 차이가 났다.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청년들의 ‘몸값’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건강, 여유, 임금…. 새벽을 노동으로 지새우며 청년들이 잃는 것은 적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그리는 미래와 아르바이트 노동이 얼마나 잇닿아 있을지 궁금했다.

야간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청년 12명에게 ‘미래 진로 계획에 아르바이트 경험이 도움이 되었는지’ 물었다. 12명 중 6명의 청년들이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단순히 경험 차원에서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 이도 있었지만, 자신의 진로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들도 있었다.




육값  계산기



‘육값계산기’는 닌팀이 개발한 인터랙티브 웹이다. 누구나 자신의 아르바이트 임금이 정상적으로 지급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 사이트 ‘육값계산기’( http://nin.newslabfellows.com/calc/ )에 접속하고, 안내에 따라 ①시급 ②업무 시간 ③업무 요일 ④사업장 규모를 입력하면, 법이 정해놓은 ‘정상 임금액’을 확인할 수 있다. 실근무수당, 주휴수당, 야근수당, 연장수당, 휴일수당 등 항목별 금액도 볼 수 있다. 간편하게 임금을 계산할 수 있는 ‘육값계산기’는 노무사의 자문을 거쳤으나, 휴게시간·식사시간 유무에 따라 일부 임금이 달라질 수 있다.
는 인터뷰에 응한 이들이 실제 받은 급여와 ‘육값계산기’로 산출한 법적 급여를 비교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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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일은 하나도 하신 게 없네요?”

방송연출 분야 진출을 꿈꾸는 S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람 대하는 법을 배우고 협업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연출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두 가지 덕목을 아르바이트를 통해 길렀기에, 그 경험이 자신의 진로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배우를 꿈꾸는 K씨는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많은 경험을 할수록 성장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경험이 진로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조차 아르바이트에 대해 ‘이중적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시간에 내 꿈과 더 직접 관련 있는 일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르바이트가 자신의 꿈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삶이 너무 바빠 돈 벌 시간조차 없는 청년에게 ‘그러면 야간 아르바이트하면 되잖아, 피곤하긴 해도 잠만 조금 줄이면 되는데’라고 말하는 사회. 생각만 해도 벌써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나머지 6명은 아르바이트 경험이 미래의 진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경험을 이른바 ‘제대로 된 경력’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치열하게 일했어도 이력서의 ‘경력’란에는 아르바이트 경험을 한 줄도 써넣을 수 없는 것이다.

J(25)씨는 지난 겨울 면접에서 겪은 일화를 말해주었다. “면접 마지막 순서였어요. 기다리는 동안 이미 지쳤는데, 들어가자마자 ‘이것저것 하신 건 많은데, 동종 관련 일은 하나도 하신 게 없네요?’라고 하더라고요. 할 말이 없어서 ‘네’ 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경력으로 쳐주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 치열했던 자기 삶의 궤적이 ‘경력 없음’으로 치환되는 것이 속상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아르바이트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할수록 자신의 꿈과 멀어지는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노동에서 느끼는 피로만으로도 충분히 버겁기 때문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꿈을 꾸고 살아왔는지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힘들고 고단하니까 더 멀리 못 보고, 지금 당장 이 시점만 보게 되더라고요.” 하루 서너 시간만 자며 일했다는 M(26)씨는 시험기간이면 사흘 연속 밤을 새워 시험을 준비했다. 학교와 아르바이트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삶이었다.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하늘의 천’에서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꿈밖에 가진 것이 없어요”라고 말했지만, 오늘날 한국 청년에 비하면 예이츠는 그나마 행복했던 것 같다. 우리 사회는 가난한 청년은 꿈조차 꿀 수 없는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꿈을 꾸려면 자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잠을 못 자요.” J씨는 인터뷰하는 내내 쓴웃음을 지었다.

‘안타깝다’는 말에 울다

2015년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몬’에서 시행한 조사를 보면,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평균 531시간 동안 일해야 한다. 버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다. 똑같은 531시간을 누군가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버는 데 쓰고, 누군가는 공부와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데 썼다면, 전자와 후자의 청년들이 동등한 출발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청년들은 청년의 시기에만 품을 수 있는 꿈과 그 시기에만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기회비용 삼아 일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컴컴한 지하 술집에서 보냈던 지난해의 내 삶이 떠올랐다. 통장에 찍히는 돈을 보며 ‘이 정도 힘든 건 괜찮다’고 생각했던 그때, 나는 정말 괜찮았던 것이 아니라 그저 ‘괜찮은 척’했던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알바하다가 알게 된 어떤 오빠가 ‘휴학하고 뭐했어?’ 하고 묻길래 ‘알바하고 돈 벌었죠’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아깝다, 21살은 네 인생에 그때 단 한 번 있는 건데 왜 일만 하고 살았어? 그때만 할 수 있는 것도 있는데. 네가 그 시기를 일로 보낸 게 안타깝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날 울었어요. 그때 알았죠. 하루 10시간, 12시간씩 일하고 친구도 전혀 못 만나고 그랬던 시간이 아깝다는 걸.”(M씨)

불가능은 없다고 믿는 사회에서 뭔가를 해내지 못했을 때 개인은 자신을 탓하게 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더 채찍질한다. 어쩌면 청년들은 위기의식과 불안감에 쫓겨 새벽의 거리에 나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부하고 과제하고, 동시에 취업 준비까지….

삶이 너무 바빠 돈 벌 시간조차 없는 청년에게 ‘그러면 야간 아르바이트하면 되잖아, 피곤하긴 해도 잠만 조금 줄이면 되는데’라고 말하는 사회. 생각만 해도 벌써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밥, 방세, 등록금을 위한 선택

유럽 선진국에서 야간노동은 약 100년 전에 사라졌다. 유럽에 가보면 특별한 곳을 제외하고 저녁 7시 무렵 대부분 가게들의 영업이 끝난다. 그러나 잠들지 않는 ‘불야성의 도시’로 유명한 한국의 사정은 다르다. 우리 사회의 밤은 ‘낮의 연장’으로, 일상이 지속하는 시간으로 자리잡았다.

앞으로도 도시의 밤을 환하게 밝히기 위한 노동이 필요할 것이다.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근본적 이유가 해소되지 않는 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청년들의 ‘값싼’ 노동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밥을 먹기 위해, 방세와 등록금을 내기 위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매달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최소 금액을 벌어야 하는 청년들에게 야간 아르바이트는 거부하기 힘든 선택지다. 그것이 아무리 고단하고 지치고, 슬픈 일일지라도 말이다.

대표집필 이미진(NIN), 취재 이미진·박리세윤·최유진·김동관(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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