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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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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보와 △△신문의 다른 단어 사전

언론이 그린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담론 지도…
18년치 종합일간지 6곳 사설 8만3316건 분석, 통계로 확인된 한국 언론의 민낯
등록 2016-01-27 09:04 수정 2020-05-02 22:17



숫자로 읽는 대통령


① 대통령의 말
② 언론이 그린 대통령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세금 구제’(Tax Relief)라는 표현으로 웃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금 폭탄’이라는 표현 때문에 울었다. 한쪽은 세금 고통을 줄여준 영웅이 됐고, 다른 한쪽은 세금 부담을 늘리려던 몹쓸 사람이 됐다. 언론이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어떤 프레임을 짜느냐에 따라 정치가 달라지고 정책이 달라졌다. 성공한 쪽은 백악관에서, 실패한 쪽은 언론에서 프레임을 짜고 말을 흘렸다. 이처럼 대통령의 말과 언론의 말은 서로를 견제하고, 서로에게 개입한다.
은 ‘숫자로 읽는 대통령’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대통령이 말하고자 했던 이슈(어젠다)를 언론은 얼마나 자주, 어떤 프레임으로 다뤘을까? 그렇게 언론이 그린 ‘담론 지도’는 실제 대통령이나 여론과 상호작용하며 어떻게 변해갔을까? 대통령과 언론의 말과 글, 그 둘 사이의 관계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18년치 대통령 연설문과 8만 건이 넘는 종합일간지 사설을 분석했지만, 주어진 시간과 능력의 한계 탓에 겨우 실낱같은 단서를 찾는 데 그쳤다. 그 작은 실마리를 2회에 걸쳐 풀어놓았다. 학술연구는 아니지만, 최대한 꼼꼼하고도 엄밀하게 접근하려 노력했다. 이번 기획은 대통령과의 기자회견에서 ‘짜고 치는’ 질문이나 던진다는 비아냥을 듣는 2016년 언론 현실에 대한 의 자기반성문이다. ‘좋은 기자’를 만들어내고 ‘혁신하는 언론’이 되겠다는 의 또 다른 다짐이기도 하다. 찾지 못한 답, 부족한 내용은 계속 채워나가겠다.
취재 황예랑·김효실 기자, 편집 신소윤 기자, 디자인 손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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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실상 ‘1당 독재국가’를 만들겠다는 말과 한가지다.

B:  독재적인 발상이다.

첫 번째 문제. A와 B는 어느 대통령 때 어느 신문사의 사설일까?

C:  그 잘난 ‘검증 시스템’은 이번에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니면 청와대 ‘검증 시스템’은 대통령이 귀여워하는 상대는 대충대충 봐주고 밉보인 상대는 거덜을 내고 마는 시스템이란 말밖에 되지 않는다.

D:  그동안 종북이 어떻고 하며 쓸데없는 간섭은 곧잘 하더니 정작 말이 필요할 때는 꿀 먹은 벙어리다.

두 번째 문제. C와 D에 언급된 형용사는 어느 신문사가 어느 대통령을 설명하는 데 쓰인 걸까?

A와 C는 , B와 D는 사설이다. 사설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사설은 이명박 전 대통령 때 쓰였다. A는 2005년 노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구상을 내놨을 때, B는 2009년 이 전 대통령이 방송 관련 법 통과 등으로 국회를 압박했을 때 나온 사설이다. C에서는 2007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감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D에서는 2012년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국무회의 밀실 처리에 책임지지 않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잘난’ ‘귀여워하는’ ‘쓸데없는’ 등 사설에서 평소 잘 쓰지 않는 ‘생짜’ 형용사를 동원했다.

대통령과 언론, 탱고를 추듯
2007년 1월17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에서 참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07년 1월17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에서 참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리나라 언론이 대통령을 어떻게 은유하고, 묘사하는지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다.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를 춤에 빗대자면, 탱고와 비슷하다. 가까이 있어도 가깝지 않은 존재.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바싹 몸을 밀착해 ‘허니문’ 기간을 갖기도 하지만, 이내 몸을 떼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한다. 아무리 서로 가깝더라도 짐짓 거리를 두는 척, 고개는 꼿꼿이 표정은 비장하게 서로를 응시한다. 어려운 스텝이 꼬이지 않으려면 항상 상대를 의식해야 한다. 때로 정치·사회 갈등이 고조되면 격한 리듬에 몸을 맡긴 채 ‘뜨겁고 날선 말’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렇게 미묘한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는 숫자나 데이터로는 어떻게 나타날까? 언론은 대통령을 얼마나 자주 언급하고, 대통령의 어떤 말과 정책을 어떻게 부각시켰을까? 그리고 이 관계는 한국 정치·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은 빅데이터 전문 분석업체와 함께 1998년부터 2015년 10월까지 종합일간지 6곳( )에 실린 18년치 사설 총 8만3316건을 수집했다.

그중에서 각 대통령 임기 때 현직 대통령 이름(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을 언급한 사설 총 1만6749건만 골라내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사설은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나머지 4개 매체의 사설은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데이터베이스(KINDS)에서 추출했다.1) 기사 하단 주석 참조

신문사 사설은 일반 뉴스 기사보다 논조나 시각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 때문에 데이터 분석 대상이 되는 단어의 뜻이나 쓰임이 비교적 확실하다. 또 해당 신문사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발화자인 대통령이나 수용자인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일반 뉴스 기사 대신 사설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까닭이다.

대통령 자주 언급할수록 비판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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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8만3316건의 사설에 등장하는 단어를 형태소 분석기로 분류한 다음, 다양한 데이터 분석 기법을 써서 재가공해봤다. 그 결과, 크게 4가지 분석 결과에서 일치하는 경향성이 나타났다.

우선 각 언론사마다 특정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히 갈렸다. 네 편과 내 편을 나누는 언론의 편 가르기식 보도 행태, 즉 언론의 노골적 정파성이 확인된 것이다. 특히 특정 대통령을 공격하거나 강하게 비판하는 보도를 하기 위해, 언론들은 때로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특정 단어나 판단 잣대를 서로 다르게 끌어다쓰기도 했다. 정치·사회 갈등을 부추기거나 진영 논리에 입각해 사회를 분열시키는 행위도 수시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동안 언론·정치학계에서 기사·사설 일부를 내용·담론 분석해 이같은 문제를 지적해왔는데, 뉴스 빅데이터를 통해서도 한국 언론의 민낯이 확인된 셈이다.

4가지 분석 결과는 이렇다.

첫째, 각 언론사가 어떤 대통령을 언급하는 사설을 많이 썼는지 살펴보자(그림3 참조). 는 대통령 관련 전체 사설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한 비중이 35%로 가장 높았다. 와 도 노 전 대통령 관련 사설이 각각 33.4%, 38.3%로 다른 3명의 대통령에 대한 사설보다 많았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 재임 기간이 2년8개월이라는 점에서 사설의 비중은 이후 달라질 수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6개 언론사 사설을 모두 통합하여 각 언론사별 비중을 따져봐도 3곳의 비중이 60.9%나 된다. 이른바 보수언론이 노 전 대통령에게 ‘각별한’ 관심을 쏟은 셈이다.

반면 는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사설의 비중이 39.1%로 가장 많았다. 도 이 전 대통령 관련 사설의 비중이 35.8%였다. 는 노 전 대통령(35.4%)과 이 전 대통령(33.2%) 관련 사설 수가 거의 비슷했다.

단순히 사설 수가 많았다고 해서, 그 대통령을 무조건 공격하거나 비판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럴 개연성이 높다고 추정케 하는 또 다른 근거들이 있다. 둘째, 사설에 쓰인 단어들 중에 형용사만 골라내 따로 살펴봤다. 이와 관련해 ‘라소(lasso) 회귀분석’을 이용해 각 대통령에 대한 매체별 특성을 드러내는 ‘형용사 사전’을 만들었다. 형용사는 상대방을 묘사하거나 자신의 감정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에 ‘긍정/부정’을 판단하기에 적절한 품사다.2) 기사 하단 주석 참조

이렇게 만들어진 형용사사전을 살펴봤더니, 보수신문일수록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한 사설에서, 진보신문일수록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언급한 사설에서 특이한 형용사를 많이 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적 입맛에 맞춰 공격적 성향 드러내

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언급한 사설에서 ‘남부끄럽다’라는 형용사를, 은 박근혜 대통령을 언급한 사설에서 ‘부끄럽다’라는 형용사를 많이 사용했다(상단 그림2 참조). 그림에서 원의 크기는 해당 형용사가 얼마나, 독특하게 쓰였는지를 뜻한다.

특히 는 4명의 대통령 관련 사설을 통틀어 88개의 형용사를 딱 1번씩만 사용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인 43개의 형용사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설에 등장시켰다. 보통은 잘 쓰지 않는 형용사를 동원한 셈인데, 그 대표 격으로 ‘거추장스럽다’ ‘두서없다’ ‘사사롭다’ 등이 있었다.

그리고 6개 언론사 모두 최근에 가까워질수록 부정적 느낌의 형용사 사용 비중(박근혜 대통령 관련 사설 기준 각 38~48% 정도)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최근 들어 언론사 사설들이 공격적 성향을 더 많이 드러내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언론을 ‘언어의 마술사’라고 일컫는 까닭은 굳이 품위 없는 표현으로 공격하지 않더라도 점잖은 표현으로 더 아프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론은 ‘독자들 속 후련하게 써라’ ‘욕은 못해도 욕 직전까지는 가도 된다’는 분위기가 있다.” (박재영 고려대 언론학 교수)

셋째, 각 언론사가 선호하는 단어를 따져봐도, 해당 언론이 어떤 이슈를 부각시키려 했는지가 엿보인다(상단 그림1 참조). 는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를 대통령 관련 사설에서 796번이나 등장시켰다. 다른 5개 언론이 같은 단어를 쓴 빈도의 총합과 거의 맞먹는다. 이 매체의 국가주의적 성향을 짐작케 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 집안과 사돈 사이인 는 ‘재벌’이란 단어를 6개 언론사 중 가장 적게 썼다. 반면 경제 이슈를 상징하는 ‘투자’와 같은 단어는 제일 많이 썼다.

이같은 단어 선호도는 매체별 대통령 선호도와도 겹친다. 이른바 보수신문은 이명박 정부 시기 남북 대치 국면과 안보 이슈에 힘을 실어주는 ‘천안함’을, 진보신문은 박근혜 정부 시기 대선 개입 논란의 뿌리인 ‘국정원’을 상대적으로 많이 썼다. 그만큼 상대를 공격하는 이슈나 단어에 집중했다는 뜻이다. 보수신문이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호남’이라는 단어와 이념으로 낙인찍는 ‘좌파’라는 단어를 많이 쓴 점도 흥미롭다.

각각 다른 대통령과 ‘독재’ 단어 짝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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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시 질문 하나. 가 다른 언론에 견줘 독재라는 단어를 사설에 가장 많이 사용한 시기는 어느 대통령 때였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 때다. 그렇다면 는 어떤 맥락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독재’를 언급했던 걸까.

넷째, 은 각 대통령 임기별로 신문사 매체 간 차이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사회학)의 도움을 받아 ‘조정 잔차’분석을 시도했다.

먼저 4개 언론사 사설에서 특정 단어군을 추출했다. 정치(민주주의·호남·좌파 등), 경제(재벌·일자리·구조조정), 사회(비정규직·민생·언론), 통일·외교(북핵·김정일), 역사(박정희·독재) 등 분야별로 언론사 특색을 드러낼 만한 단어 30여 개를 뽑았다. 그리고 그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지 검증했다.

그랬더니 노 전 대통령 시기 사설에서 ‘독재’라는 단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쓰였다는 결과가 튀어나왔다(그림4 참조). 즉 우연에 의해 발생한 차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 ‘독재’라는 표현을 즐겨 쓰지 않던 가 “군사독재 시대에도 없던 일”이라는 표현(2005년 11월 ‘대통령의 1000만원과 외교부의 1000만원’ 사설, 2006년 6월 ‘정권과 줄댄 사장이 만든 요지경 KBS’)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했고, 심지어 대통령의 말과 표정을 묘사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독재’라는 단어를 끌어왔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이 나라 헌법의 제1조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권력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잘 섬기라고 국민이 맡긴 국민의 권력이다. 이 기본 원리를 거역하는 것이 독재다. 이날 노 대통령의 화난 표정과 국민을 향해 던진 위협적인 언사는 마치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청와대 필름을 다시 돌리는 것 같았다.”(2007년 1월 ‘점점 두려워지는 대통령의 생각’) 1987년 민주화 이전을 일컫는 역사 용어로서 ‘독재’라는 단어를 동원해 노 전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다.

‘민주주의’ 사용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
2013년 7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논설실장 및 해설위원실장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3년 7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논설실장 및 해설위원실장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는 ‘민주주의’에 대립하는 의미로서 대통령을 ‘독재’라고 비판했다. “최근 촛불시위에서 ‘독재정권’이라는 구호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2008년 6월 ‘물갈이 독재하려면 임기·공모제부터 없애라’ ) “국민 다수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무시되는 것이 바로 독재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이번 일을 방송산업 발전 등 경제논리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사실 왜곡에 해당한다.”(2008년 12월 ‘언론 개악 입법, 국민 고통으로 돌아온다’ )

‘독재’라는 단어 사용에서 전문가들은 정파성 문제와 함께 ‘비일관성’(자기모순)에 주목했다. 는 박근혜 대통령 시기에 쓴 사설에서는 “그들은 이 나라를 독재국가인 듯 몰아세우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선 그 어느 누구도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면서 눈치를 보지 않는다”(2014년 9월 ‘모국을 부정하고 침까지 뱉는 교포 시위대’)고 썼다. 박재영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독재’란 단어는 제한적으로 쓰여야 한다. 그런데 가 노무현 전 대통령 때만 이 단어를 유의미하게 썼다면 지나치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에서도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이 극명하게 갈렸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4개 언론사의 별다른 차이가 보이지 않았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부터 와 은 눈에 띄게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사설에서 많이 쓰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대 반민주주의 세력 간의 대결로 ‘담론 투쟁’ 양상이 벌어진 것이다.

재밌는 대목은 가 박근혜 대통령 때부터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많이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그림5 참조).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재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는 종종 ‘민주주의’를 사설 문장들 사이에 끼워넣곤 했다.

“국기 문란 행위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2013년 4월 ‘국정원의 임무가 정권 안보인가’)이라거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2013년 12월 ‘국민은 사이버심리전 대상이 아니다’)이라는 식이다. 는 또 “(정윤회 동향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면직됐다는 이유로 어물쩍 사건을 넘기는 것이야말로 법치와 민주주의의 훼손”(2015년 1월 ‘민정수석 항명, 면직으로 어물쩍 넘길 일인가’)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언론학)는 이를 언론과 사회의 ‘전반적인 퇴행’ 징후로 해석했다. 대통령과 언론 모두 보수냐 진보냐 양쪽으로 갈라져서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쪽으로 점점 더 몰아붙이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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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양분화한 사회의 퇴행 징후

정치적 모범답안을 써내기 위해 언론은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는 ‘구조화된 참고 문헌’을 종종 불러낸다. 때론 ‘독재’라는 은유로, 때론 ‘민주주의’라는 정반대의 상징으로. 김 교수는 “언론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면서 반이성적인 언어, 감성에 호소하는 담론 전략을 계속 활용하는 방식으로 결국 우리 사회 전체를 ‘동물 사회’로 몰아가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마지막 문제다. 아래 E와 F는 각각 어느 신문의 1월23일치 사설일까?

E:  평생 야당이나 하겠다는 태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동물 국회 막아보자고 만든 법이 식물 국회를 만들었다.

F:  고작 하는 행동이 서로 손잡고 길거리에서 ‘약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역겹다.

컴퓨터한테 눈 가리고 맞혀보라고 하지 않아도 누구나 예상 가능한 ‘뻔한 답’이 나온다. E는 , F는 다. 이제 진짜 마지막 문제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정치 현실이, 이 세계를 비추는 거울인 언론이 어떤 모습인지 굳이 18년치 데이터를 분석하지 않아도, 구태여 숫자로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면 이 ‘배배 꼬인’ 정치와 언론의 관계를 바꿀 해답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1) 최초 검색 과정의 기술적 문제로 일부 매체의 일부 기간 사설( 2014년 3월, 2014년 6~12월, 2015년 1~3월, 2015년 1~3월, 2014년 1월~2015년 3월)이 추출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나중에 발견하게 되어 이를 밝혀둔다. 그러나 빅데이터의 특성상 분석 결과의 큰 줄기를 흔들지 않을 것으로 보고, 그 내용을 그대로 소개한다.
2) 라소 회귀분석은 컴퓨터를 이용해 특정 매체의 특정 형용사를 추출하는 데 사용됐다. 예를 들어 사설을 컴퓨터가 분석하여 이 매체에만 등장하거나 특정 대통령 시기에만 등장하는 형용사를 추출했다. 그 수치가 클수록 그 특이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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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의제  담론  지도  어떻게  그렸나


‘○○○ 정부의 100대 과제’.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을 앞두고 임기 5년간의 밑그림을 미리 제시한다. 대통령으로서 5년간 추진할 분야별 정책이 총망라된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등 3가지를 국정목표로 내걸고,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및 혁신도시 건설’과 같은 구체적인 과제를 내밀었다.
대통령은 주요 국정 과제와 정책에 힘을 싣기 위해 특정한 의제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지식·정보 사회’(김대중 전 대통령), ‘창조경제’(박근혜 대통령) 등 대통령 연설문에서 비슷한 단어나 문구가 ‘복사판’처럼 반복되는 이유다.
그러나 대통령이 그린 밑그림이 반드시 ‘국가 의제(어젠다)’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국회·언론 등이 도와주지 않으면 대통령이 내민 의제는 ‘말잔치’로만 끝나기 십상이다.
은 대통령이 내세운 국가 의제가 언론에서 어떻게 ‘틀짓기’(프레이밍·Framing) 되는지 살펴보았다. 반대로 언론이 ‘점화’(프라이밍·Priming)했거나 정치·사회 갈등으로 인해 ‘강요된’ 의제가 대통령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분석했다.
우선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기의 주요 국가 의제가 무엇이었는지 목록을 추렸다. 각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작성한 ‘국정 과제’ 목록을 확보한 뒤 ‘델파이 기법’으로 정치·사회·언론 학자 6명에게 각 대통령별로 3개씩 총 12개의 의제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내세우고 싶어 했던 정책 의제를 주로 꼽았다.
은 발화자인 대통령이 내세우는 어젠다 못지않게 전달자인 언론이나 수용자인 독자 입장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어젠다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판단해, 기자 3명의 토론을 거쳐 최종 분석 대상 의제를 정했다. 12가지 의제는 다음과 같다. 김대중(IMF 외환위기/햇볕정책/구조조정), 노무현(탄핵/4대 개혁입법/지방균형발전), 이명박(4대강 사업/미국산 쇠고기 사태/언론 통제), 박근혜(세월호/교과서/창조경제).
그 뒤 종합일간지 6곳( )이 각 대통령 임기 동안 현직 대통령을 언급한 사설 가운데 해당 의제를 다룬 사설을 따로 뽑아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이명박’과 ‘쇠고기’가 동시에 언급된 사설을 ‘미국산 쇠고기 사태’라는 의제를 다룬 사설로 분류하는 식이다.
그 뒤 사설 속 단어를 형태소 분석기로 헤아려, 단어 빈도 분석, 핵심 단어와 밀접하게 연결된 단어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의미연결망 분석, 컴퓨터가 주요 단어를 주제별로 자동 분류해 숨어 있는 토픽을 뽑아내는 LDA(Latent Dirichlet Allocation) 분석 등을 다양하게 시도했다.
위 그림은 데이터 분석업체 (주)퀀트랩의 유재명 대표에게 의뢰해 12가지 어젠다를 다룬 6개 언론사 사설의 ‘담론 지도’(단어 간 의미연결망 분석)를 그린 것이다. 분석 결과물 중에서 언론사 6곳의 시각차가 가장 도드라지게 구별되는 이슈 2가지를 골랐다.
‘구조조정’ ‘창조경제’와 같은 정책적 이슈에서 각 언론사의 의제 설정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햇볕정책’ ‘4대 개혁입법’ ‘4대강 사업’처럼 언론사별 찬반 논조가 확실한 주제일수록 차이는 뚜렷했다. 특히 ‘세월호’처럼 안전·진상 규명·유가족 시위·규제 완화 등 다차원적 이슈가 결합된 ‘강요된 의제’일수록 담론 지도의 모양이 더 달라졌다.
담론 지도를 읽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등장 횟수가 많으면서 단어 간 연결 ‘교차로’가 되는 단어는 큰 원으로 표시했다. 연결선이 굵을수록 두 단어가 동시에 자주 쓰였다는 뜻이다.
‘탄핵’ 담론 지도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3개 신문에서만 독특하게 발견되는 키워드가 2가지 있다. 선거언론(방송 또는 신문)이다. 대통령의 행위 자체보다 그것이 선거에 미칠 영향, 이를 보도하는 방송 3사, 노무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것으로 보이는 신문 등 언론을 더 많이 다룬 셈이다.
‘쇠고기’ 담론 지도에서도 보수신문들은 ‘방송의 왜곡 보도’ ‘불법·폭력 시위’ 등을 자주, 중요하게 언급했다. 특히 는 전교조학생들을 촛불집회로 끌고 나온다는 ‘생각의 틀(프레임)’을 강조했다. 야당인 민주당책임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는 쇠고기 사태 자체보다 한-미 동맹이 약해지거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우려했다. 반면 는 왜곡 보도를 빌미로 한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 은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의 정치 비판과 민주주의에 더 주목했다. 2016년, 지금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몇몇 단어 혹은 이미지는 이 시기 주요 언론이 의도한 ‘프라이밍 효과’의 잔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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