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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재심개시 결정

[아쉽다]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첫 재심 결정 ‘김신혜 사건’ 무죄 주장 받아들여지지 않아 수감 상태로 재판받는 아쉬움 커
등록 2015-12-24 05:41 수정 2020-05-02 19:28

그녀는 아직 석방되지 않았다.
‘김신혜(사진)씨 사건’은 15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개시 결정으로 주목받았다. 광주지법 해남지원(재판장 최창훈)은 지난 11월18일, 존속살해, 사체유기죄 등으로 복역 중인 김신혜씨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여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첫 재심개시 결정으로 의미가 컸다.
재판부는 당시 경찰이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하고 현장검증을 강요했으며, 조서를 허위로 작성한 정황이 있다는 이유로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끈질기게 무죄를 주장해온 무기수 김신혜씨가 15년 만에 다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2000년 8월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그녀가 보험금을 노려 아버지를 음독 살해하고 주검을 유기한 죄로 그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진술 외에는 물증이 없고 본인이 범행을 부인했지만, 고등법원과 대법원도 항소를 기각해 무기형이 확정됐다.
위법한 수사 근거로 판단한 모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의 ‘새로 발견된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이 모인 거리. 한겨레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이 모인 거리. 한겨레

피고인의 억울함을 인정했을 법한 재심개시 결정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이다. 46쪽에 이르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변호인이 주장한 무죄증거 근거에 대해 법원은 “‘새로 발견된 증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결론 낸다. 수면제에 대한 경찰의 공문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것, 성적 학대가 범행 동기가 아니라는 것, 범행 방법이 도저히 실행 불가능했다는 것 등 무죄 주장의 근거를 법원은 줄줄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문의 끝에서야 당시 수사 경찰의 직권남용 등이 인정돼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재심 사유가 있다”는 반전이 나온다. 이번 판결문은 그만큼 법원의 자기 부정과 반성이 어렵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재심은 법원의 과거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인권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던 시절에 대한 사법부의 반성 의미도 지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같은 기구가 조사한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시국사건 일부에 대해 재심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런 기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일반형사 사건은 재심개시 결정을 받기가 더욱 어렵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만 인정했다.” 김신혜씨의 변호인 박준영 변호사가 내린 재심개시 결정에 대한 평가다. 그는 “위법한 수사라고 인정했는데, 위법한 수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피고인이 제기한 무죄 주장을 법원이 부인했다”고 모순을 지적했다. 재심개시 결정 관련 법령과 법리는 법원의 ‘후견인적 지위’를 규정하는데, 법원이 이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박 변호사는 “검찰과 달리 권력이 없는 피고인은 무죄를 완벽히 입증하기 어렵다”며 “법원이 진지한 무죄 주장이라고 생각되면 적극 검토해야 하지만, 관련자를 부르거나 하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심개시 결정이 나왔지만, 무죄를 입증할 근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신혜씨는 수감 상태에서 재심을 받는다. ‘절반의 재심 결정’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무고한 한 사람도 없도록

‘열 명의 범인을 놓쳐도 한 명의 무고한 범인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적잖은 이들이 김신혜씨 같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이들의 재심을 지원하는 시스템은 없다. 만고불변의 법은 없고, 무오류의 법정도 없다.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는 감옥에만 갇혀 있다.




심사위원 20자평


이광수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최은배 수형자의 억울함 호소에 작게나마 귀를 연 법원. 판결은 어떻게 나올까?
송소연  15년8개월 노역 거부 김신혜, 수의 벗고 재심받게 하라!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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