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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간섭, 굿바이

[아쉽다] 성적 자기결정권 등 침해 이유로 62년 만에 간통죄 위헌판결…불륜 둘러싼 성별 권력 논의는 여전히 필요해
등록 2015-12-24 14:33 수정 2020-05-03 04:28

지난 2월 이후 드라마의 한 장면이 사라졌다. 불륜으로 배우자를 고소해 법정 공방을 벌이는 모습, 경찰이 불륜 현장을 덮치는 장면 같은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2월26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41조 간통죄 처벌 규정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재판관 박한철(재판장)·이진성·김창종·서기석·조용호·김이수·강일권이 위헌 의견을 냈고, 이정미·안창호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냈다.
간통죄 폐지는 세계적 추세

지난 2월 간통죄가 폐지됐다. 위헌법률심판에 오른 지 5번째 만이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지난 2월 간통죄가 폐지됐다. 위헌법률심판에 오른 지 5번째 만이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반대 의견을 낸 이정미·안창호 재판관은 “우리나라는 고조선의 8조 법금에서부터 일관되게 간통을 금지하고 간통 행위를 한 자를 형사처벌해왔다”며 간통죄에 대한 인식이 오랫동안 뿌리 깊게 이어져왔다고 썼다. 간통죄 존재 자체만으로도 간통 행위에 나아가지 않게 하는 일반예방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간통죄는 1953년 제정 때부터 아슬아슬하게 사회적 합의를 얻은 법률이었다. 해방 이후 아내만 처벌하는 일본의 간통죄 형벌 조항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당시 법령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절반을 1명 넘긴 표결 결과로 간통죄가 법제화됐다. 이후에도 간통죄 존폐는 늘 논란의 대상이었고 1990년부터 1993년, 2001년, 2008년 등 총 네 차례 위헌법률심판에 올랐다. 모두 합헌 결정을 해왔지만 그때마다 위헌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국가가 지나치게 침해해왔다는 것이 간통죄 폐지의 가장 큰 이유다. 다양한 유형이 있음에도 일괄적으로 징역형으로 응징하는 것은 ‘책임과 형벌 간 비례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것도 위헌 결정을 뒷받침했다.

세계적인 입법 추세 또한 간통죄 폐지와 맞닿는다. 일본은 1947년, 독일은 1969년, 프랑스는 1975년, 아르헨티나는 1995년 간통죄를 폐지했다.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터키 또한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서긴 했지만 2004년 간통죄 조항을 삭제했다.

한편에서는 부작용도 우려한다. 남성과 여성의 성규범 잣대가 비대칭적인 한국 사회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오히려 남성의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쪽으로 남발될 수도 있다. 예컨대 간통죄 폐지 직후 방영된 드라마 (SBS)에서 간통을 일삼는 인물로 그려지는 간동재는 “법이 인정을 해줬잖아. 마음껏 바람피우라고!”라고 큰소리친다.

간통을 둘러싼 성별 권력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간통죄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기혼 남성의 36.9%가 “간통 경험이 있다”고 답해 여성(6.5%)의 약 5.5배에 달했다. 남성보다 여성이 간통죄로 배우자를 고소하고 취하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간통죄 존치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은 여성들이 재판상 이혼 청구를 통해 재산분할이나 위자료를 청구해 혼인이 해소된 뒤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왔다. 간통죄가 일종의 보호 장치 역할도 해왔다는 얘긴데, 이를 보완할 제도는 간통죄 폐지가 논의되는 내내 제대로 궁리되지 않았다.

경제적 약자인 배우자 고려 필요해

간통은 민사상으로는 여전히 이혼 사유가 되고(민법 제840조 1호) 간통 행위를 한 사람은 배우자에게 이에 따른 재산상 및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를 질 수 있다(민법 제843조, 제806조). 하지만 현행 민법은 이혼시에만 재산분할 청구가 가능하다.

경력 단절로 경제적 자립이 쉽지 않은 여성 배우자나 가정 파탄에 책임이 없는 배우자, 자녀의 경제적 곤궁을 방지할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위자료 상향 조정, 부부재산제 개정 등 새로운 이혼 법제와 관련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심사위원 20자평


염형국  간통은 나쁘다. 이에 대한 처벌은 더 나빴다
양현아  시대적 판결. 하지만 배우자의 외도가 갖는 젠더적 성격에는 완전히 침묵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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