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논밭이 모여 우리의 한 끼 밥상을 이룬다.
사장 가족이 돌려쓰는 ‘가노’
[돼지고기: 전남 장성엔 1천 두 이상 규모의 양돈 농가가 12곳 있다. 장성 돼지고기는 보통 ‘녹차 먹인 돼지’로 브랜드화해 판매된다. 육가공업체를 거쳐 대부분 서울에서 유통된다. 개별 판로를 가진 일부 농가들은 전북 남원 등지로 출하한다.]
돼지는 ‘연중 무휴’의 노동을 먹고 선명한 삼겹을 얻었다.
돼지가 먹고 남은 시간은 계약에 없는 양파·고추·고구마·마늘·죽순이 빨아들였다. 캄보디아 노동자 ㅌ(27·남)은 2013년 5월 한국에 왔다. 전남 장성에서 돼지 축사일을 하기로 계약했다. 고용주는 2천여 두의 돼지를 먹였다.
지난 6월8일 그는 아침 6시께 종부사(어미돼지를 인공수정하는 축사) 돼지들에게 사료를 줬다. 임신사(임신 대기 중이거나 임신 중인 돼지 축사)의 똥도 치웠다. 아침 8시엔 사장의 밭에서 마늘을 수확해 말렸다. 오전 11시께 돼지 축사를 방역했다. 오후 5시20분께 사장의 고구마밭과 콩밭을 제초했다. 6월9일 아침 6시께 축사에 사료를 넣었다. 오후 4시20분께 사장의 옥수수밭을 맸다. 저녁 7시50분께 사장 누나의 밭에서 양파를 출하했다. 6월11일 새벽 3시께 육성사(새끼 돼지를 35kg이 될 때까지 키우는 축사) 창문과 환풍 장치를 고쳤다. 6월17일 저녁 6시께 사장 아버지의 밭에서 양파를 거뒀다. 저녁 8시20분께 인공수정을 했다. 저녁 8시38분께 돼지를 도축했다. 6월13일 사장의 고추밭 제초 작업을 마친 뒤 저녁 8시 넘어 죽은 돼지를 옮겼다. 돼지가 축사 안에서 죽을 때마다 수레에 실어 퇴비장에 갖다버렸다. 6월26일 저녁 8시40분께 종부사 케이지를 용접했다.
그의 노동시간은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다. 계약서에서는 그렇다. 월 250시간이다. 약속된 월급은 110만원이다. 시간당 4400원꼴이다. 2013년(4860원)과 2014년(5210원) 최저시급을 훨씬 밑돈다. 계약과 실제는 달랐다.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 전후까지 일했다. 매일 13~14시간 노동했고 2시간 쉬었다. 한 달에 320~370시간씩 혹사당했다. 110만원에 대입하면 시급 2973원이다. 월 100시간에서 140시간치의 임금을 떼였다.
서류상 그는 사장의 양돈 노동자였다. 현실에선 사장 개인의 밭을 매는 인부도 됐다. 사장 식구들이 사적으로 부리는 ‘머슴’이기도 했다. 축사에서 짬이 날 때마다 고추밭으로, 콩밭으로, 고구마밭으로 불려다녔다. 대나무밭에서 죽순도 캤다. 그는 사장 가족이 돌려쓰는 ‘가노’(家奴)였다. ㅌ이 ‘정해진 일만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사장은 말했다. “이 모든 게 다 농업이야.”
그는 인간이었으나 인간의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일을 요구받았다. 1년여 동안 그는 단 하루의 휴일도 얻지 못했다. 계약서에 휴일은 ‘일요일’ ‘공휴일’ ‘매주 토요일’ ‘격주 토요일’을 모두 외면하고 ‘기타’에 표기돼 있다. 사장에게 휴일과 임금 인상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철근을 휘둘러 ㅌ의 어깨를 내려치는 것으로 사장은 거부했다. 다친 어깨로 이틀을 방에서 지냈다. 그가 농장에서 얻은 유일한 휴일이었다. 사장은 지난 5월 새로 데려온 캄보디아 노동자 2명을 8일 만에 내보냈다. ‘키가 작아 일을 잘 못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한국에 처음 온 그들은 사장에게 ‘불량 소’로 판정받고 초단기로 버림받았다. ㅌ은 7월 중순 농장을 빠져나와 경기도 안산의 ‘지구인의정류장’에 의탁했다. “빨리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장성의 어느 육질 좋은 돼지고기는 ‘ㅌ들’의 눈물로 길러져 소비자의 밥상에 오르고 있다.
안마시키며 “아빠라고 부르라”[복분자·양파: 전북 고창은 국내 최대의 복분자 산지다. 전국 재배면적의 36%를 차지한다. 지역 농협과 농가는 전국 소비자 15만여 명에게 직거래로 복분자를 공급한다. 관내 주류업체나 복분자즙 가공업체로도 납품된다. 농협이 수매한 고창 양파는 주로 서울에서 판매된다.]
복분자, 양파…. ㄹ(21·여)이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운 말. 아프고 두려운 말이다.
복분자 가시에 많이 찔렸다. 사람에게 찔린 것보다는 덜 아팠다. 2013년 6월 ㄹ은 전북 고창의 100여 개 비닐하우스에 떨궈졌다. 전국에서 복분자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사장은 비닐하우스에서 복분자, 블루베리, 양파, 수박, 고추를 키웠다. ㄹ은 농약을 칠 때마다 약에 취해 어지러웠다. 20kg 넘는 비료 포대를 옮기는 일이 힘에 부쳤다. 몸집이 작은 그는 매번 휘청댔다. 일요일·공휴일·격주 토요일 휴무라고 쓴 계약서에 사인하며 그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계약서는 계약을 하기 위한 형식일 뿐이었다. 한 달 내내 휴일이 없었다. 월 310~360시간 일했다. 월급은 115만원(평균시급 3203원)이었다.
쉬지 못해 힘들어할 때마다 사장은 말했다. “일 제대로 못하면 캄보디아로 보내버린다.” 무서운 것뿐인 한국에서 사장의 그 말이 가장 무서웠다(이 말을 하는 동안 ㄹ의 뺨 위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캄보디아 트러키어트에서 왔다. 시엠레아프 앙코르와트 서쪽 지방이다. 집에 돈이 없어 중학교를 중퇴했다. 한국에 오느라 3천달러(약 300만원)를 썼다.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이 많다.
“야, 밥 차려.”
저녁마다 사장은 ㄹ에게 밥을 차리라고 했다. 같이 일하던 사장 부인이 시내 집으로 돌아가면 60살쯤 된 사장과 ㄹ만 농장에 남았다. 그가 방에서 지친 몸을 누일 때마다 사장은 그를 불렀다. “넌 너희 부모한테도 밥을 안 차려주냐”며 소리를 질렀다. ㄹ이 먹지 않을 때도 사장을 위해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 사장은 농장에서 먹고 자며 그에게 자신의 수발을 들게 했다. 농장 주위엔 비닐하우스와 밭뿐이었다. 사장과 둘만 있어야 하는 농장의 밤이 ㄹ은 너무 공포스러웠다(앳된 얼굴로 그는 서럽게 울었다).
“으어~.”
사장이 무슨 뜻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누워 있는 사장 옆에 쪼그리고 앉아 팔다리를 두드리면 사장은 무릎을 가리키며 다음 안마를 지시했다. 사장은 ㄹ에게 자주(2013년 6월부터 7개월 동안 약 15회) 안마를 시켰다. “안 해요” 하면 “아빠라고 부르라”며 안마를 명했다. 술을 마시고 불러낼 때도 있었다. 나가지 않으면 방문을 열고 불을 껐다. ㄹ의 방에 누워 안마를 받는 날도 있었다.
사장은 성공한 농업인으로 불렸다.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됐다. 인터넷에서 그의 사진을 보자마자 ㄹ은 말했다. “복분자 사장님.”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곳, 도망치고 싶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곳에서, ㄹ은 사장의 복분자를 가꿨다. 사장은 성공했고, 그는 울었다.
“추우면 나를 안으면 돼”[호박·수박: 충남 논산 광석면은 ‘주키니호박’의 전국 최대 산지다. 오이처럼 길쭉한 모양의 주키니호박은 일반 애호박보다 육질이 단단해 칼국수나 된장찌개용으로 적합하다. 거의 전량이 서울 가락시장을 통해 유통된다. 광석면에선 5월부터 7월 말까지 비닐하우스 1천여 동에서 수박을 생산한다. 이곳 수박들은 대형마트(이마트)를 통해 전국 각지에서 판매된다. 4~6월에는 ‘씨 있는 수박’이, 7~8월에는 ‘씨 없는 수박’이 납품된다.]
호박과 수박은 그들의 모멸 속에서 영글었다.
캄보디아 여성 ㅅ(23)과 ㅂ(26)과 ㄷ(21)은 한국인 남성 A(30)와 고용계약을 맺었다. ㅅ과 ㅂ은 2012년 4월 계약서를 쓰고 6월 입국했다. 논산시 광석면에 위치한 A의 47개 비닐하우스에서 호박과 수박 재배 작업에 투입됐다. 47개 중 39개 비닐하우스가 계약서에 등록되지 않은 근무지였다. 그들은 1년여간 매월 290~320시간 일했다. 월급은 103만5080원만 받았다. 2013년 최저시급으로 계산했을 때 ㅅ과 ㅂ 두 사람의 임금체불액은 540만원이다.
ㄷ은 A와 2013년 2월 계약한 뒤 4월에 한국에 왔다. A는 ㄷ을 속이고 성동면의 B에게 넘겼다. ㄷ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B의 농장에서 일해야 했다. 유사 인신매매였다. 주소와 사업장을 확정할 수 없어 체류권 자체를 위협받았다. B는 ㄷ에게 665시간 동안 일을 시킨 뒤 200만원(시급 3천원)만 줬다.
“추우면 나를 안으면 돼.”
겨울이었다. 낮부터 술에 취한 A는 ㅅ이 일하는 비닐하우스에 들어와 말했다. A는 ㅅ을 강제로 안아 들어올렸다. ㅅ이 거부했으나 A는 듣지 않았다. 혼자 호박을 따고 있던 ㅅ을 덮쳐 쓰러뜨린 일도 있었다. A는 몸으로 ㅅ을 감싸며 끌어안았다. 수치스러워 얼굴을 가린 ㅅ을 안고 A는 즐겁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ㅅ의 엉덩이를 손으로 때리기도 했다. ㅅ은 유난히 자신을 혼자 일하도록 하는 A가 두려웠다. 막 입국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을 사장이 차에 태워 데려가는 곳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 마을이다. 그들의 노동 현장은 높은 건물 하나 없이 트여 있으나, 사람과 언어로부터 완벽하게 고립돼 있다. ㅅ과 ㅂ은 A의 아버지에게 아들의 행동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A의 아버지는 “한국 문화”라고 답했다.
동상 걸린 손으로 딴 잎채소[상추·열무: 경기도 고양시에서 재배되는 상추는 서울 강서시장과 가락시장 및 인천 경매장에서 주로 팔린다. 고양 농산물종합유통센터를 거쳐 대형마트에서 지역 소비자들과 만나기도 한다. 고양시는 대규모 하우스 농업으로 열무를 재배한다. 보통 서울과 수도권 도매시장으로 보내진다. 대형마트나 직거래 장터를 통해 고양·일산과 경기 북부 등지의 소비도 활발한 편이다.]
상추·열무·쑥갓·시금치·아욱·근대·파·배추는 ㅍ(31·여)의 손에서 차오른 고름을 먹고 자랐다.
ㅍ은 동상 걸린 손으로 웬만한 잎채소는 다 키웠다.
ㅍ은 홍수기에 메콩강 물이 사람 허리까지 차오르는 캄보디아 칸달주에서 살았다. 남편은 한국에서 1년 넘게 일하다 병을 얻고 귀국했다. 남편은 원래 호흡기가 좋지 않았다. 화훼농장에서 농약을 치다 폐가 악화됐다. 남편이 귀국하자 2013년 5월 ㅍ이 남편과 아이들을 남겨두고 한국에 왔다. 남편은 어릴 때 머리를 다쳤다. 매일 5알의 약을 먹었다. 캄보디아에선 남편의 약값도 댈 수 없었다.
계약서상의 사장을 ㅍ은 한두 번밖에 볼 수 없었다. 근로 장소로 기재된 경기도 파주는 가보지도 못했다. ㅍ은 경기도 고양시의 비닐하우스로 보내졌다. ‘종이 사장’의 동생이 그를 부리는 ‘실제 사장’이 됐다. 어떤 이유에서 이주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가족과 지인의 이름을 빌려 ‘사람을 도용’(외국인고용등에관한법률·출입국관리법 등 위반)하는 경우가 흔하다. 형 이름으로 고용해 동생이 쓰고, 서른도 안 된 딸 이름으로 아버지가 쓰고, 75살 늙은 어머니의 이름으로 아들이 썼다.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물건처럼 넘겨지며 그들은 우리의 밥상을 채우고 있다.
ㅍ은 비닐하우스에 살며 더울 땐 열무와 상추를 키웠고, 추워지면 시금치와 쑥갓 등을 재배했다. 열무 상자를 5단 높이로 쌓아올릴 때마다 일이 서툴다며 사장은 욕을 했다. 때로 열무 20~30단을 한데 모아 보따리로 싸기도 했다. 혼자 묶지 못해 누군가 거들려고 하면 사장은 “도와주지 말라”며 보따리를 발로 찼다. 월평균 308~319시간 일했으나 급여는 110만원(시급 3448~3571원)이었다. 사장은 최저임금법 위반의 책임을 낮은 상추 출하 가격에 돌렸다.
동상이란 병이 있는 줄 몰랐다. 더운 나라에서 온 노동자의 손은 늦가을 쑥갓을 수확하면서 붉게 달아올랐다. 빵처럼 부풀어올랐고, 하얗게 고름이 솟았다. 노동청은 산재 처리를 거부했다. “앞으로 채소밭 일은 무서워서 못할 것 같다”며 ㅍ은 손을 오므렸다.
받지 못한 돈 474만원, 소송 걸린 돈 473만원[딸기: 전남 담양은 전국 3대 딸기 생산지 중 하나다. 딸기를 형상화한 ‘딸리’는 담양군의 마스코트다. 담양 딸기는 병충해에 강하고 과즙이 많아 식감이 상쾌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생산량의 90%가 서울 도매시장과 전국의 대형마트로 납품된다.]
딸기밭에서 국내 이주노동 사상 첫 국정감사 증인은 태어났다.
전남 담양의 딸기 농장주 ㅇ씨는 딴 소푼(35·여·캄보디아)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ㅇ씨는 소장에 썼다. “피고인이 퇴직함에 따라 그동안(2012년 6월5일부터 2013년 6월15일까지 376일)의 임금과 퇴직금 전부를 지급했다. 그러나 피고인들은 위 기간 동안 식대 및 숙박대금을 지금까지 지급하지 아니하고 있다.” ㅇ씨는 딴 소푼에게 473만7600원을 청구했다.
ㅇ씨가 말한 “임금 전부”는 최저임금의 60% 전후를 뜻한다. 2012년 7월 딴 소푼은 330시간 일하고 90만원(시급 2727원꼴)을 받았다. 376일 동안 하루의 휴일도 얻지 않았다. 실제 노동시간에 법정 최저시급을 계산했을 때 그가 받지 못한 돈은 474만원이다. 2개월간 고용노동청에 진정해 인정받은 돈은 41만원뿐이었다. ㅇ씨가 청구한 식대·숙박비는 딴 소푼이 1년 동안 받은 1250만원의 3분의 1을 한참 넘는다. 딴 소푼은 2013년 10월14일 이주노동자로선 최초로 국정감사에 출석해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고발했다. ㅇ씨는 5개월 만에 ‘밥값을 달라’며 소송에 나섰다.
밥상의 근원, 그 눈물의 뿌리.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김연희 인턴기자 kyhbb72@naver.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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