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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난학을 시작하자

고베·삼풍 19년, 같은 세월 극과 극의 기억법…
세월호 참사가 교훈 되기 위해서는 한국만의 재난 연구 쌓아야

제1014호
등록 : 2014-06-05 13:51 수정 : 2014-06-0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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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17일 한신·아와이 대지진이 일어난 다음날, 일본 자위대 대원들이 무너진 집더미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다(왼쪽). 같은 해 6월29일 과도한 설계 변경 등으로 무너진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크레인으로 잔해를 걷어내고 있다. 한겨레
‘잊지 않겠다’고 되뇌었습니다. 전남 진도 앞바다를 향해 흔들리는 노란 리본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꼭 기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가라앉은 세월호를 바라보기만 했던 우리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슬픔이 가시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내건 약속이 헛되지 않기 위해 4·16 세월호 여객선 참사 이후를 그려보려 합니다. 정답도 없고 보기도 구할 수 없지만, 세월호 참사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작은 실마리나마 찾기 위해 <한겨레21>은 일본 재난을 주목해온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포스트 3·11과 인간’ 연구팀의 김영근 교수와 공동기획으로 일본 현지를 찾아 지난 20년 재난사를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우리만의 해법을 위해 ‘한국 재난학’ 연구를 제안합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 처절한 재난이 반복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_편집자


“우리는 그날의 일을 잊은 것처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일본 고베 시내를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펼쳐졌다. 화면 속 내레이션의 주인공은 1995년 한신·아와이 대지진(고베 대지진) 때 15살 중학생이던 고베의 한 여성이었다. 이른 새벽 지진으로 무너진 집 안에서 언니를 잃었던 그의 ‘재난 경험’은 중·고등학생 5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재현되고 있었다.


재난의 순간을 말해주는 물건들

지난 5월21일 오전 일본 효고현 고베시 주오구에 있는 ‘인간과 방재미래센터’(DRI·이하 방재센터)는 이곳을 찾은 일본의 중·고등학생으로 북적였다. 하얀 교복을 맞춰 입은 학생들은 1층에서 입장 순서를 기다린 뒤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영화관으로 향했다. 방재센터는 2002년 지진의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겠다는 목적으로 세운 거대한 박물관이다. 현재 일본 정부의 출자금으로 세운 공익재단인 ‘효고 지진재해기념 21세기 연구기구’가 운영을 맡고 있다.

“원래 이곳에는 고베정공이라는 큰 공장이 있었다. 이 일대가 대지진 때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기도 하다.” 방재센터 안내를 맡은 직원 다이시 요시하라가 말했다. 방재센터 4층 건물에는 대지진을 겪었던 피해자들이 직접 제공한 각종 자료 18만 점 등을 모아뒀다. 대부분 재난의 순간을 말해주는 물건들이다. 지진으로 부숴진 가게 간판, 지진 뒤 화재로 까맣게 타버린 카메라, 재난 이후 피난촌에서 발행했던 각종 소식지와 당시 신문 보도까지 다양한 자료가 있다. “전시가 주요 기능이자 목표다. 내방객 수는 처음 개관 때보다 줄어들고 있지만 매년 50만 명이 찾는다. 전체의 80%가 효고현 밖 사람들로, 외국인 관광객도 꽤 된다.”(마사히코 무라타 방재센터 연구부장)

일본 재난사에서 1995년 한신·아와이 대지진은 큰 의미를 지닌다. 1월17일 새벽 고베를 시작으로 오사카·교토까지 번진 지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강력한 진도 7 규모의 대지진이었다. 특히 진앙이 바다 밑이 아닌 대도시 바로 아래에서 시작한 ‘수도직하형 지진’인 탓에 피해가 컸다.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과 고속도로의 교각이 무너져내렸고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망자만 6300여 명에 달한 이 지진으로 인해 아시아 물류의 중심지였던 고베 시민들은 경제적·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5개월 뒤, 한국에서는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건물이 무너졌다. 건물은 순식간에 502명의 생명을 집어삼켰다. 부상자만 937명이고 실종자도 6명이나 됐다. 1995년 6월29일 오전 5층 식당가의 바닥이 갈라지면서 붕괴 조짐이 있었지만, 백화점 쪽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애초 상가 용도로 지어진 건물 위에 1층을 증설하고 옥상에는 냉각탑이 들어서 바닥판의 구조적 손상을 불러왔다. 1994년 서울 성수대교 붕괴에 이어 또다시 벌어진 대형 재난은 사회를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정부는 사고 직후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재차 확인하는 내용을 담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내놨다. 지방자치단체에는 재난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 조직이 생겼다.

간사이 지역 대학들, ‘재난학’ 이끌어와

20여 년이 지나면서 한국과 일본, 두 사회는 1995년의 참사를 각각 달리 기억하고 있다. 재난의 기억은 관점에 따라 변하기 때문일까. 한국 사회에서 삼풍백화점 붕괴는 ‘대한민국 성장 신화의 붕괴’로 각인됐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같은 해를 ‘자원활동가의 원년’으로 기억한다. 피해 중심지인 일본 고베 시내의 한복판에는 방재센터가 들어섰지만, 한국에선 사고 현장과는 거리가 먼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 안에 삼풍백화점 사고 희생자 위령비가 숨겨져 있다. 재난에 대한 두 나라의 기억은 어디에서부터 달라진 걸까.

일본 효고현 고베항 근처 한신·아와이 대지진 때 부서진 거리를 보존해놓은 ‘고베 메모리얼 파크’를 학생들이 구경하고 있다(왼쪽). 고베시 주오구 ‘인간과 방재미래센터’ 건물 앞에는 대지진으로 무너진 교각의 4분의 1을 보존해 전시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대한민국 성장 신화의 붕괴’로 각인됐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같은 해를 ‘자원활동가의 원년’으로 기억한다.


사실 고베 시내에서 대지진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고베항 근처에 대지진 당시 무너진 가로등 등 일부 현장을 보전해둔 ‘고베 메모리얼 파크’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재난으로 파생한 다양한 결과물은 방재센터뿐만 아니라 지역 대학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 고베·오사카 등 간사이 지역에서는 1995년 한신·아와이 대지진 이후 대학을 중심으로 재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다. 비록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가 원인이었지만 정부의 대처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으며, 소방 안전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했는지, 사고 초기 인력 투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등 재난과 관련해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해왔다. 교토대, 간사이대, 고베대, 간세이가쿠인(관서학원)대 등 지역 거점 대학들이 이른바 ‘재난학’을 이끌어오면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 복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일본도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다.” 5월20일 저녁 일본 간사이대 뮤즈 캠퍼스에서 만난 아베 세이지 교수가 말했다. 그가 속한 간사이대 사회안전학부는 토목·교통 등 공학자 14명과 사회학·철학 등 인문학자 14명이 전임교원으로 있는 학과로 2002년 처음 문을 열었다. 사람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재난 연구 분야에서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연계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학문은 횡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안전 분야가 그렇다. 복합적인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간사이대 사회안전학부가 세워진 가장 큰 계기는 2005년 서일본 쓰카구치역을 출발한 열차가 탈선해 아파트를 들이받고 승객 등 107명이 사망한 일본 JR 후쿠치야마선 사고였다. 아베 교수는 “후쿠치야마선 사고뿐만 아니라 일본 팔로마공업의 ‘가스 순간온수기’의 중독 사고(1985~2005년 생산한 가스 순간온수기가 모두 28건의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를 일으켜 21명이 숨지고 40명이 중경상을 입었던 사고)까지 벌어지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방재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았다”고 말했다.

1단계는 ‘규칙 준수’ 강조 조직

사회안전학부가 이끄는 핵심 연구는 바로 ‘안전 사상’이다. 재난 연구를 하려면 안전문화의 발전 양상까지 추적하면서 진단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전문화에도 발전 양상이 있다. 1단계는 ‘규칙을 잘 지켜라’를 강조하는 조직, 2단계는 적극적인 개입을 허용하고 안전 목표를 달성하도록 만드는 조직, 가장 높은 3단계는 이러한 안전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단계다. 대부분 사회가 2단계에 머무는데, 일본은 2단계에서 3단계로 향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은 1단계에서 2단계로 이동하는 정도로 보인다.” 이에 대해 요시아키 가와타 간사이대 교수이자 방재센터 소장은 “국가 재난의 축적된 지식을 살려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 이후 벌어진 핵발전소 사고는 첫 경험이기 때문에 시간을 고려해서 충분히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상자 기사 참조).

3년 전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로 방사능 유출 사고까지 겪은 동일본 지역에서도 지역 상황에 특화한 ‘재난학’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도호쿠가쿠인(동북학원)대 부총장인 기쿠치 유이치 교수(서양철학)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벌어진 뒤, 학생들과 함께 주변 지역의 재해 자원봉사자 본부 활동을 했다. 실제 도호쿠가쿠인대는 자원봉사 활동을 주도하면서 재난 이후에 벌어지는 지역 공동체의 복원과 구성원들의 정신적 부분의 회복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기쿠치 교수는 “재해 이후 공동체가 트라우마를 어떻게 녹이고 줄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의학적 대응과는 별도의 문제다. 이곳에서는 가설주택에 사는 피난민을 방문해 ‘아시유’(족욕)를 해주며 이야기를 들어줬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도 스스로 치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제3자의 개입이 필요한데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1995년 한신 대지진과 닮았다. 둘 다 관료에 대한 불신이 컸다. 일본은 이후 관료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서 변화를 끄집어냈다. 한국은 관료 외에 다른 변화를 못 끄집어내고 있다.” -가와무라 가즈노리 도호쿠대 교수

단순한 공학적인 틀에서 벗어난 재난학 연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 변화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정치의 역할에 대해 연구해온 가와무라 가즈노리 도호쿠대 교수(지방정치론)는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1995년 한신·아와이 대지진과 닮았다. 둘 다 관료에 대한 불신이 컸던 사건이지만 두 나라의 대응 방법은 다르다. 일본은 관료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서 변화를 끄집어냈다. 한국은 관료 외에 다른 변화를 못 끄집어내고 있다. 한국처럼 도시화가 빠르게 이뤄진 사회에서 주민은 유치원 수준으로 걷는데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에게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분명 또 다른 사회적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재간’ 체제에 집중한 연구 필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두 달을 향해 가고 있다. 국회에서는 여야가 지난 5월29일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뒤늦게 합의했다. 삼풍백화점 사고가 벌어진 지 19년이 지났지만 재난을 소화해내는 한국 사회는 ‘책임자 조사 → 국정조사 → 재난 백서 발행’이라는 반복적인 틀 속에 갇힌 채 사회적인 교훈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단순히 방재가 아닌 재난과 재난 사이를 뜻하는 ‘재간’ 체제에 집중한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영근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교수(국제정치경제)는 “지금까지 한국은 재해에 관한 미천한 연구 풍토에 국한돼왔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나라도 일본 내의 피해 상황과 복구 상황, 부흥정책 과정을 단순하게 소개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한국만의 연구를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연재해도 인간이 관련됐다면 모두 인위적인 재해라고 볼 수 있다. 재해와 인간 사이의 모든 분야를 연구해야 한다. 그 안에 있는 윤리·인간관이 재해의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요시유키 야마 간세이가쿠인대 인간과학과 교수(사회학)는 “한국이 재난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를 본뜬 게 아닌 한국만의 안전 사상·윤리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이는 문명의 최첨단을 겪고 있는 국가들에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라고 말했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 앞에 ‘한국 재난학’이라는 숙제가 남았다.

고베·센다이(일본)=글·사진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취재 기획 김영근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교수(국제정치경제)

취재 자문 송완범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교수(역사·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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