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다”는 말이 반복됐다.
한국 사회를 충격했던 재난의 유가족들은 예외 없이 말했다. “우리 때와 너무 똑같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며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이 ‘똑같이’ 반복되는 데 한탄하고 분노했다. 참사가 되풀이되고, 죽음이 되풀이되며, 슬픔이 되풀이되고, 의문도 되풀이됐다. 초기 구조의 난맥, 관리·감독 부실, 진상 규명 불신, 정부 약속 불이행…. 그들에게 재난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진행 중인 현재였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충남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사고,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의 희생자 가족들을 개별 인터뷰했다. 그들이 견뎌온 ‘똑같은 일들’을 한데 모아 재구성했다. 세월호는 그들의 참사 때도 침몰하고 있었고, 그들은 세월호 침몰 때도 참사 속에 있었다. 이들은 6월 중 ‘재난안전가족협의회’ 출범을 추진하고 있다.
고석 1999년 6월30일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 유가족 대표
윤석기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희생자대책위원장
이후식 2013년 7월18일 충남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사고 유가족 대표
김판수 2014년 2월17일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유가족 대표
고통의 시간들고석- 6월30일이면 씨랜드 참사(*이 사고로 고석 대표는 하던 일을 버리고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가 일어난 지 만 15년이 된다. 6살 쌍둥이 딸을 한꺼번에 잃었다. 주위에선 시간이 지나면 상처도 아물 거라고 했다. 사고 넉 달 만에 인천 인현동에서 55명이 불타 죽었다(1999년 10월30일 ‘인현동 호프집 화재 사고’). 대형 참사는 계속됐고, 결국 세월호까지 왔다. 그 많은 아이들과 사람들이 죽을 동안 미진한 진상 규명과 유족과의 약속 미이행은 되풀이되고 있다. 분노가 솟는다.
이후식- 우리 병학이는 사망 학생 중 가장 늦게 찾았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중에 목 놓아 울면서 아들과 약속했다. 억울한 죽음이 제대로 밝혀질 때까지는 절대 울지 않겠다고 했다. 독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이미 유가족들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 사고 직후보다 더 큰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세월호 사고 다음날(4월17일)엔 해병대캠프 사고 유족들이 부실한 진상 규명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다. 4월16일 내내 뉴스만 보다가 17일 새벽에 견디지 못하고 진도로 내려갔다.
김판수- 5월27일로 딸 진솔이가 떠난 지 100일이 됐다. 그날 딸 친구들을 만나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 아이들이 나더러 “아빠, 술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그러더라. 진솔이는 가슴에 평생 묻고 살 수밖에 없는 아이다. 다음 생에라도 꼭 다시 내 딸로 만났으면 좋겠다.
윤석기- 농사짓고 살던 노인과 가정주부들이 11년 동안 대구시와 전쟁을 하고 있다.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얻은 것은 세상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다. 힘없는 사람들이 믿고 의지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와 검찰·경찰, 법원 등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증오만 남았다.
해소되지 않는 의혹들고석-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처럼 나도 방송으로 사고 소식을 접했다.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때 불탄 주검들은 이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겨져 있었다. 아이들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주검 상태가 너무 처참해 유전자 검사까지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 만에 확인됐다며 주검을 찾아가라고 했다. 우리는 유전자를 제공한 적도 없다. 병원기록이나 진료기록만을 근거로 발표해버렸다. 팔다리가 따로 흩어진 주검을 누구누구 아이라는데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화재 원인도 건물 상태를 보면 방화나 누전 가능성이 많았는데도 모기향으로 추정된다고 결론 냈다.
김판수- 마우나리조트에서 10명이 죽었는데 9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사인이 외상인 경우는 한 명밖에 없었다. 세월호처럼 빨리 구조하지 못해 죽었다는 뜻이다.
이후식- 우리는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고 있다. 수사 결과는 갯골(움푹한 유로)에 빠졌다는 건데, 사고 지역은 갯골이 형성될 수 없는 곳이다. 직접적인 사고 원인은 교관들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깊은 곳으로 학생들을 밀어넣었기 때문이다. 유족들이 강하게 요구했지만 현장검증도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업체에 하청을 줬던 안면도해양유스호스텔은 이름만 바꿔 영업을 계속했다. 청해진해운의 부도덕과 똑같다.
윤석기- 시간이 지나고 여론의 관심이 줄어들면 중앙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약속을 안 지킨다. 과거 대형 참사의 수습 과정을 보면 일선 근무자만 처벌하고 윗선의 책임자는 처벌하지도 않는다. 대구지하철의 경우 기관사 등만 죄를 뒤집어쓰고 사장과 임원에겐 책임을 별로 묻지 않았다.
고석- 불법 건축물을 허가해준 공무원들의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정부 공무원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막으려고 빨리 사건을 덮은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장례를 치를 수 없다(38일 만에 장례)며 싸웠다. 정부청사에서 국무총리 면담을 요청했고, 버스로 정문을 들이받으려는 계획도 세웠었다.
이후식- 태안 참사 때도 해양경찰이 초기 구조보다는 사고 원인 조사에 치중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 태안군에 가면 해경에 가라고 하고, 해경에 가면 태안군 관할이라고 했다. 서로 책임을 안 지려고만 한다.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처럼 우리 유가족들도 170일 넘게 청와대 앞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검찰이 4개월여의 수사를 끝내고 사고 관련자에게 솜방방이 처벌을 내린 다음날(12월3일)부터다. 생계활동은 거의 접었다. 수사 결과를 못 믿겠으니 유족들이 직접 조사도 한다. 몇 달 동안 기름값만 500만~600만원이 나왔다.
이행되지 않는 약속윤석기- 사고 12년째지만 약속받았던 추모사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희생자묘역도 위령탑도 없다. 유족들이 ‘대구시가 방화범보다 더 나쁘다’고 하는 이유다. 공익재단을 만들기로 하고 2010년 12월 창립총회를 했으나 대구시가 약속 이행을 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9년(전 한나라당 대표 시절) 희생자 추모식에 와서 재단 만드는 과정이 순탄치 않으면 서상기 당시 한나라당 대구시당위원장에게 부탁해 처리하라고 했다. 서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지시를 복명복창하듯 따라하며 나한테 명함을 줬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개죽음이 되고 만다.
고석- 우리나라의 대형 참사 수습 과정이 늘 똑같다. 책임 회피다. 일단 빨리 덮고 빨리 잊히기 바랄 뿐이다. 씨랜드 사고 뒤 청소년 수련시설 안전점검을 잠깐 하다 말았다. 몇 년 동안 업소 성적표를 매기다가 사업주들의 저항에 부딪혀 중단했다. 세월호도 국정조사를 합의해놓고 사람 이름(김기춘) 하나 넣지 못해 유가족들을 국회 바닥에서 사흘을 지내게 만들지 않았나. 가족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그들이 왜 직접 청와대 앞과 국회에서 밤을 새우며 진상 규명을 요구해야 하는가. 정부는 세월호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껴안는 대신 사복 경찰을 붙여서 감시나 하고 있지 않나. 우리도 당시 합동분향소였던 강동교육청에 정보과 형사들이 쫙 깔려 있었다. 시위할까봐 감시나 하는 게 정부 역할인가.
김판수- 처음엔 정부가 진상 조사를 약속하고 국회의원들도 내려와서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곤 아무 연락이 없다. 외상후 스트레스 치료 지원도 못 받고 있다. 하루 서너 번 약을 먹지 않으면 못 견딘다. 개인 돈을 들여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를 타먹고 있다. 사고가 났을 때는 서로 해줄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나니까 서로 너희가 해야 한다고 미룬다.
이후식- 교육부가 한 점 의혹 없는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추모공원 설립, 희생 학생 의사자 지정 등을 약속했는데 약속뿐이었다. 합의문도 ‘노력함’ ‘건의함’ 같은 표현으로 작성돼 있다. 사고 뒤 지금까지 보상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5개 부처의 장관 면담을 요청했고 대통령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썼지만 다 허사였다.
우리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윤석기- 국가 개조는 혼자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뒤 국가안전처를 만들겠다고 했다. 듣고 웃었다. 노무현 정부 때 대구지하철 참사 뒤 재난컨트롤타워로 만든 게 소방방재청이다. 그 기능을 안전행정부가 가져갔다가 사고 대처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았나. 세월호 참사를 보면 재난에 대한 책임 소재를 거꾸로 묻고 있다. 참사 원인의 첫 번째는 법·제도 미비, 두 번째는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 셋째는 청해진해운이나 세모그룹, 마지막이 선장이나 기관사 아닌가. 그래야 책임 있는 진상 규명이 가능하다. 지금은 정확히 거꾸로 가고 있다. 대통령과 장차관이 법·제도를 엉터리로 만든 책임을 가장 먼저 져야 한다.
김판수-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참사는 사고 한 달 만에 잊혔다. 자식 잃은 부모만 한스럽다. 국회의원이나 장차관의 자식이 죽었으면 이렇겠나. 세월호도 걱정스럽다. 왜 모두 유병언에게만 집중하나. 그 사람은 그냥 잡으면 된다.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 나는 마음을 다 비웠다.
고석- 세월호 사고를 보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뉴질랜드에 있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씨랜드 참사 때 자식 잃고 더 이상 한국에 살고 싶지 않다며 메달과 훈장을 반납하고 이민 간 전 필드하키 국가대표 김순덕(올림픽·아시안게임 3개 메달리스트)씨의 남편이다. 나에게 세월호 가족들을 도와주라고 했다. 동병상련인 참사 유가족들끼리 먼저 힘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어물어 연락을 드렸다. 참사를 먼저 겪은 사람들로서 세월호 가족들이 상처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정부의 사고 수습 과정을 감시하고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힘이 됐으면 좋겠다.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사건과 삼풍백화점 사고 가족, 태풍 ‘매미’ 피해 가족, 대구 가스폭발 사고 유족 등에게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
이후식- 모든 참사가 인재 아니었나. 거듭 사고가 나도 제대로 된 대책을 못 만드는 사회에서 유가족들은 숨죽이며 살아왔다. 먼저 고통을 겪고도 참기만 했던 우리도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에게 죄인일지 모른다. 정부는 참사 유가족들이 모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조언하는 게 꺼려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이 우리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고 싶다. 우리의 목소리가 모여서 억울한 죽음을 줄일 수 있다면 좋겠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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