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도 가난을 차별했다.
암 발생률과 이로 인한 사망률은 계층별로 뚜렷한 차이를 나타냈다. 손미아 강원대 교수(예방의학)가 2008년에 작성한 보고서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암 발생과 사망의 건강불평등 감소를 위한 역학지표 개발 및 정책개발연구’라는 긴 제목의 보고서는 지난 노무현 정권 당시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아서 제작됐다. 이번 정권 들어서 보고서는 완성됐지만, 무슨 영문인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다.
암 발생비 양극화
도서관에서 먼지만 맞고 있던 보고서를 펼쳐보면, 계층별 암 발생비와 사망비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우선 암발생위험비(표1 참조)를 보면, 월소득 100만~228만원의 중·하위 계층에서 암이 가장 드물게 발생했다. 이 계층의 암발생위험비는 0.76이었다. 월소득 335만원 이상 최상위 계층의 위험비 1.0보다 크게 낮았다. 두 집단의 연령대가 같다고 가정할 때, 최상위 계층에서 100명의 암환자가 나오면 100만~228만원 계층에서는 76명만 암에 걸린다는 뜻이다. 의료급여 대상자 계층의 암발생위험비는 1.22로, 모든 계층을 통틀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의료급여 대상자는 월수입이 최저생계비 이하에 해당하는 계층이다. 이렇게 중·하위 계층에서 암 발생 빈도가 가장 낮고, 빈부의 양쪽 끝 계층으로 갈수록 암 발생 빈도가 높은 독특한 ‘양극화’가 발생했다. 보고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기록이 있는 우리나라 국민 3259만여 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그렇다면 암으로 인한 사망비는 어떨까? 계층별 암사망 비율은 암발생 비율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표2 참조). 우선 월수입 335만원 이상 계층에서 암으로 100명이 사망할 때, 월수입 100만원 이하 계층은 160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조건에서 의료급여 대상자는 155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이미 암에 걸린 환자들 사이에서도 계층별로 생존한 기간이 달랐다. 보고서가 암환자들의 5년 동안 사망위험비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최상류층의 환자가 암에 걸리고 난 뒤 5년 동안 100명이 사망하는 동안, 소득 100만원 이하 계층에서는 같은 기간 125명의 암환자가 세상을 떠났다. 또 같은 조건에서 의료급여 대상자인 암환자는 147명이 사망했다. 가난한 암환자일수록 빨리 사망한다는 뜻이다.
주목할 점은 월수입 335만원 이상의 최상위 계층과 월수입 100만원 이하의 최하위 계층이 분명한 대조를 보인 대목이다. 최상위 계층에서 암이 자주 발생했지만, 정작 그 때문에 사망한 비율은 가장 낮았다. 반대로 월수입이 가장 낮은 100만원 이하 계층에서는 암이 드물게 발생했지만, 사망한 비율은 가장 높았다.
이를 어떻게 풀이할까? 손미아 교수는 “상류층은 꾸준한 건강검진 등을 통해서 암을 발견하면 초기에 수술을 받는 등 치료를 하지만, 반대로 최하위층은 암을 뒤늦게 발견해서 치료할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부익부 빈익빈, 암환자 진료비
계층별로 다른 치료비도 이런 현상의 일부를 설명해준다. 보고서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기준으로 계층을 5개 집단으로 나눈 뒤, 각 계층에 속한 암환자의 의료기관 이용량을 비교했다. 암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3개월 미만에 사망한 환자 가운데, 소득이 가장 높은 그룹의 평균 내원진료비는 61만8736원이었고, 최저층의 평균 내원진료비는 44만7289원이었다. 부유층이 빈곤층에 견줘 약 40%의 돈을 더 썼다. 평균 입원진료비도 최상층(507만8142원)과 최저층(387만4234원) 사이에 30% 정도 차이가 났다. 반면 입원 건수는 계층별로 1.81~1.90회, 내원 건수는 3.20~3.58회였다. 큰 격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평균 입원 일수에서도 최상층이 25.5일, 최하층이 25.0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의료 이용 행태에서, 계층 사이의 차이는 결국 ‘양보다 질’이었다. 보고서는 또 “(자료 분석 과정에서) 진료비는 비급여를 제외한 건강보험 총진료비로 한정했다”고 설명했다. 값이 비싼 비급여 항목를 포함하면 계층 간 진료비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암사망 비율의 양극화는) 상류층은 꾸준한 건강검진 등을 통해서 암을 발견하면 초기에 수술을 받는 등 치료를 하지만, 반대로 최하위층은 암을 뒤늦게 발견해서 치료할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손미아 강원대 교수
암 종류별로는 여성암(자궁경부암·유방암)과 위암, 폐암에서 최상층과 최하층의 격차가 도드라졌다. 최상류층과 의료급여 대상자 사이의 사망위험비를 비교하면, 유방암은 빈곤층이 최상층의 2.85배, 자궁경부암은 2.73배, 폐암은 2.06배, 간암은 1.89배였다. 위암은 1.69배였고, 대장암은 1.59배로 상대적으로 격차가 낮았다.
계층별 암사망비의 차이는 교육수준에 따라서도 뚜렷했다. 같은 보고서를 보면, 남성을 기준으로 대졸 이상 계층에서 100명이 암으로 죽을 때, 고졸은 122명이 죽었다. 또 같은 조건에서 중졸은 157명이, 초등학교 졸업 이하에서는 168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여성은 대졸 이상(1.0)과 초등학교 졸 이하(1.49) 사이에 사망위험비 편차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암은 직업도 차별했다. 남성은 직업별 암사망위험비가 비육체노동자(1.0), 육체노동자(1.03), 비경제활동인구(2.51)의 순이었다. 특히 여성은 비경제활동인구의 암사망위험비(2.83)가 비육체노동자(1.0)보다 크게 높았다. 여성 육체노동자의 위험비(0.72)가 이례적으로 낮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지역별 격차도 뚜렷해
지역별 격차도 뚜렷했다. 연구진은 먼저 전국의 시·군·구를 실업률과 세입자 비율 등의 수치를 종합해 5개 집단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5개 집단에서의 암사망률을 비교한 결과, 가장 부유한 지역의 남성이 암으로 100명 사망하는 동안, 가장 빈곤한 지역의 남성은 120명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지역의 연령별 인구분포는 동일한 것으로 가정하고 낸 결과였다. 여성은 가장 빈곤한 지역에서 암으로 94명이 사망하는 동안, 가장 부유한 지역에서 100명이 세상을 떠났다. 부유한 지역에서 오히려 암사망 빈도가 높았지만, 격차는 남성에 견줘 좁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암으로 사망한 인구는 6만9780명이었다. 전체 사망원인의 28.3%를 차지했다. 그 안에서 계급·직업·학력·지역의 차이는 망자들의 틈을 선명히 갈라놓았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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