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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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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알루미늄은 서해의 광물에서 왔다”



단독 입수한 양판석 박사의 ‘천안함 침전물 2차 보고서’…
연료탱크의 경유와 서해의 부유성 점토광물로 흡착물질 생성 설명
등록 2010-11-18 05:58 수정 2020-05-02 19:26

현재까지 국방부(민·군 합동조사단 포함) 이외에 천안함의 흡착물질을 분석한 과학자는 정기영 안동대 교수(지구환경과학)와 양판석 박사(캐나다 매니토바대 지질과학과 분석실장)뿐이다. 양 박사는 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이 참여한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 검증위원회’(이하 언론검증위)로부터 흡착물질을 건네받아 분석한 뒤 지난 10월 “전자현미경 분석 결과 알루미늄(Al)과 산소(O), 황(S)의 함량비로 볼 때 폭발재인 알루미늄산화물이 아닌, 상온 생성물인 비결정질 바스알루미나이트와 일치한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그는 1차 보고서를 낸 이후 전자현미경 분석과 적외선 분광 분석 등을 추가로 실시했다. 은 양 박사의 ‘천안함 침전물 2차 분석 결과 및 결론’ 보고서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정기영 교수가 남겨둔 공백 메워

» 지난 10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언론 검증위 기자회견. 이날 흡착물질이 ‘바스알루미나이트’라고 규명한 양판석 박사는 <한겨레21>에 보낸 2차 보고서에서 “주요 성분 가운데 논란의 핵심인 알루미늄은 서해의 광물에서 기원했다”고 밝혔다.한겨레21 정용일

» 지난 10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언론 검증위 기자회견. 이날 흡착물질이 ‘바스알루미나이트’라고 규명한 양판석 박사는 <한겨레21>에 보낸 2차 보고서에서 “주요 성분 가운데 논란의 핵심인 알루미늄은 서해의 광물에서 기원했다”고 밝혔다.한겨레21 정용일

양 박사는 의 의뢰를 받아 흡착물질을 분석한 정기영 교수가 공백으로 남겨뒀던 알루미늄의 기원에 대한 가설을 제기하면서 국방부에 공개적인 검증 실험을 거듭 제안했다. 국방부는 양 박사의 1차 보고서 발표 직후 흡착물질 분석에 대한 과학적 반론은 하지 않은 채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분석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만을 내놓았다. 국방부가 흡착물질을 넘겨줄 때 합조단 전문가의 입회하에 개봉·분석한다는 조건을 달았는데 일방적으로 양 박사에게 분석을 의뢰했다는 것이다. 국방부 조사보고서의 흡착물질 분석 그래프에도 등장하는 황(S)의 존재에 대해서는 여전히 설명이 없다. 국방부는 흡착물질이 알루미늄(Al)과 산소(O)로만 이뤄진 알루미늄산화물이란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천안함의 경우 침몰한 연료탱크가 유전지대 역할을, 침몰 해역의 부유성 점토광물이 유전지대 상부의 알루미늄이 풍부한 토양의 역할을 한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양판석 박사 2차 보고서

어쨌든 양 박사는 1차 보고서 이후 흡착물질 분석만으로 풀리지 않던 알루미늄의 기원 문제에 집중했다. 사실 흡착물질이 과연 어떤 물질인지 못지않게 중요한 대목이 여기에 다량으로 포함된 알루미늄이 어디에서 왔는지다. 알루미늄은 폭발 성능을 높이기 위해 폭약에 추가하는 물질이어서, 국방부는 줄곧 이 알루미늄의 기원을 ‘1번 어뢰’라고 설명해왔다. 이에 대해 양 박사는 2차 보고서에서 물에 떠다니는 점토광물이 많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한 서해 바닷물과 장석이 많은 해저의 펄에 주목했다. 2차 보고서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천안함 선체 및 어뢰 파편에서 발견된 백색 물질은 바스알루미나이트이다. 산성 광산 폐수, 석회암 동굴, 화산, 유전지역 등 지질환경에서 생성되는 바스알루미나이트는 모두 sulfate(황화물)가 sulfate(황산염)로 산화될 때 생성되는 황산성 수용액과 그로 인한 알루미늄이 많은 지질물질(고령토·장석·이암·셰일·화산재)의 용해와 연관되어 있다. 유전지대의 경우 석유를 분해하는 혐기성 박테리아의 활동으로 생성된 황화수소가 상승하면서 지표수를 만날 때 산화되어 황산성수용액을 만들고 이것이 알루미늄이 풍부한 토양을 용해해서 바스알루미나이트를 생성시킨다. 천안함의 경우 침몰한 연료탱크가 유전지대 역할을, 침몰해역의 부유성 점토광물이 유전지대 상부의 알루미늄이 풍부한 토양의 역할을 한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양 교수의 결론은 아직 가설 수준이다. 따라서 실험을 통해 검증되기 전까지는 논쟁이 불가피한 부분이다.

천안함 경유를 알루미늄 생성의 방아쇠로 지목

‘광물 분석 권위자’인 정기영 교수를 포함해 여러 과학자들은, 서해에 떠다니는 미세한 점토광물이 많다고 하더라도 천안함의 선체와 어뢰 부품에 흡착될 정도로 다량의 알루미늄이 나올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알루미늄이 자연상태에서 침전되지 않는 만큼 어떤 화학적인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또 서해의 거센 조류를 고려할 때 화학반응을 감안하더라도 침전될 틈도 없이 떠내려가지 않겠느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양 박사는 각각의 논쟁거리에 대해 답변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부는 2차 보고서에 담겼으며, 일부는 의 추가 취재를 통해 보충됐다. 물론 아직 가설 수준이며, 이 또한 실험을 통해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먼저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양 박사의 표현으로는 바스알루미나이트)이 침전된 화학반응과 관련된 부분이다. 양 박사는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에 각각 2개씩 있는 연료탱크를 황산수용액의 근원으로 추정했다. 연료탱크에는 디젤엔진과 가스터빈엔진을 돌리기 위한 경유가 가득 차 있었고 천안함 인양 당시에는 폐유로 변해 폐기처분했다고 국방부는 밝힌 바 있다.

양 박사는 적외선 분광분석을 통해 흡착물질에서 ‘지방족 탄화수소’(탄소원자와 수소원자만으로 구성된 화합물 중 탄소원자가 사슬 모양으로 결합한 것의 총칭)를 검출했다. 지방족 탄화수소는 디젤연료의 70%가량을 차지한다. 천안함 침몰 과정에서는 경유의 누출이 필연적이었다. 실제 천안함 사고 당시 경유가 유출되어 해경이 방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양 박사는 경유가 유출됐다는 점으로 미뤄 경유와 물이 만나 이른바 ‘디젤 버그’라고 불리는 경유 분해 미생물이 생겼고, 이 미생물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산성수용액(황화수소와 황산)이 고령토 같은 부유성 점토광물을 녹여 알루미늄이 공급됐다고 주장한다. 즉, 경유탱크에서 산성수용액이 만들어졌고,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의 주요 성분은 해수(바닷물) 속 부유성 점토광물에서 왔다는 얘기다. 정기영 교수는 동위원소분석을 통해 해수가 황의 기원이라고 밝혔으나, 알루미늄의 기원은 “현재의 조건에서 확인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반면, 양 박사는 황이 해수에서 나왔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천안함 연료탱크 내부에 경유 분해 미생물로 인해 산성수용액이 생성됐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 산성수용액 속으로 들어온 부유성 점토광물이 산에 의해 흔적 없이 부식됐고 이 산성수용액이 탱크를 나와 보통 해수와 만나 용해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침전이 일어난 것”이라고 흡착물질의 생성 과정을 설명했다.

“물밑 20일이면 침전에 충분한 시간”
» 양판석 박사의 ‘천안함 침전물 2차 분석 결과 및 해석’ 보고서(오른쪽)와 정기영 교수의 ‘<한겨레21>이 의뢰한 시료 분석 결과 요약’ 보고서.

» 양판석 박사의 ‘천안함 침전물 2차 분석 결과 및 해석’ 보고서(오른쪽)와 정기영 교수의 ‘<한겨레21>이 의뢰한 시료 분석 결과 요약’ 보고서.

바닷물 속 점토광물의 양도 주요한 논쟁거리다. 서해 바닷물에 부유성 점토광물이 많더라도 1ℓ당 수mg 수준이고, 이 중 알루미늄의 양은 더 적다. 그런데도 천안함 선체와 어뢰 부품에 흡착된 정도의 물질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양 박사는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천안함이 물밑에 가라앉아 있던 20일 가량의 충분한 시간과 무한정 공급되는 해수 속 고령토를 고려해야 한다”며 “게다가 해수에는 고령토뿐만 아니라 알루미늄이 풍부한 일라이트(점토물질의 일종)와 스멕타이트가 있고 해저 바닥엔 장석도 있다. 알루미늄의 공급원은 충분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천안함 인양 뒤 가스터빈실에서 수거한 수백 마대의 펄을 예로 들었다. 가스터빈실 속에 바닷물이 흘러들어 가라앉은 펄의 양으로 미뤄볼 때 유속이 떨어지는 곳에 침전된 부유성 점토광물도 적잖을 것이라는 얘기다. 양판석 박사는 ‘비결정질 바스알루미나이트’로, 정기영 교수는 ‘비정성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아시)로 표현한 물질이 서해의 부유성 점토광물과 펄 속 장석에서 왔을 가능성은, 국방부의 ‘1번 어뢰’ 폭약 기원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어서 앞으로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알루미늄 해수 기원 가설의 또 다른 맹점은 서해의 빠른 조류다. 유속 때문에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 침천되기 전에 쓸려가버릴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양 박사는 이 반론을 뒤집어 자신의 가설의 근거로 삼는다. 그는 2차 보고서에서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 유속이 감소하는 장소에 집중적으로 침전됐으며, 침전물에서는 전형적인 침전 성장 조직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실제 천안함과 어뢰 부품에 있는 백색 침전물은 연료탱크 주변과 빠른 물살의 영향을 덜 받은 곳, 예를 들면 갑판과 사병 식당 주변, 물리적으로 흡착이 힘든 부분인 연돌 내부와 어뢰 프로펠러 사이 등에서 주로 발견됐다. 어뢰 부품에서는 바깥쪽으로 노출된 쪽인 아닌 내부에서 주로 발견됐다.

양판석 박사의 가설을 알기 쉽게 종합하면 이렇다. 연료(경유)탱크 내부와 외부에서 경유 분해 미생물 활동→산성수용액 생성→서해 바닷물 속 부유성 점토광물 용해→점토광물이 용해된 산성수용액이 해수를 만나 용해도가 떨어지면서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 침전→유속이 느린 곳에 집중 침전. 이런 과정이 천안함이 가라앉아 있던 20일 가량 무한대로 공급되는 해수를 만나 진행되면서 천안함 선체와 어뢰 부품에 다량의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을 남겼다는 것이다.

양판석 박사의 가설을 알기 쉽게 종합하면 이렇다. 연료(경유)탱크 내부와 외부에서 경유 분해 미생물 활동→산성수용액 생성→서해 바닷물 속 부유성 점토광물 용해→점토광물이 용해된 산성수용액이 해수를 만나 용해도가 떨어지면서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 침전→유속이 느린 곳에 집중 침전. 재실험을 제3자가 검증해야

천안함 흡착물질을 두 과학자가 시차를 두고 분석한 결론은 대부분 일치했다. 우선 바스알루미나이트(양판석 박사)와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정기영 교수)이라는 이름은 달랐지만 △성분 구성비가 매우 흡사하고 △폭발의 증거라는 알루미늄산화물과는 관련이 없으며 △폭발과는 관련 없는(정 교수는 “적은”) 상온(정 교수는 “100℃ 이하”)에서 침전의 결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아울러 두 과학자 모두 지난 5월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이 흡착물질과 폭발의 연관고리를 밝힌다는 목적으로 실시한 수중폭발 모의실험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재조사와 재실험을 주장하고 있다.

차이를 보이는 대목도 있다. 정기영 교수는 알루미늄의 기원을 “현재의 자료로는 확정할 수 없다”며 공백으로 남겨둔 반면, 양 박사는 알루미늄이 해수 속 부유성 점토광물과 펄에서 왔다는 가설을 세웠다.

사실 정 교수와 양 박사의 분석실험 결과와 그 결과를 통해 세운 가설을 확인하는 작업은, 합조단이 수중폭발 모의실험에 쏟았던 노력의 일부만으로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백령도 앞바다의 해수에 알루미늄 분말을 넣을 경우 침전물이 생기는지 여부, 또는 부유성 점토광물이 많은 바닷물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수조에 누출이 가능한 경유통을 넣어둘 경우 산성수용액(황화수소와 황산)이 만들어지고 침전물이 생기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면 된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수조폭발 모의실험도 공개적으로 재실험을 하고 이때 만들어진 흡착물질을 제3자가 분석하도록 해 논란의 여지를 없앨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일부 실험 가운데 이 자체적으로 혹은 실험기관에 의뢰해 실시할 수 있는 기초적인 실험도 있지만, 양판석 박사의 1차 보고서 직후 국방부의 반응으로 미뤄볼 때 또 절차를 문제 삼아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 소용이 없다. 과학자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학자적 양심을 걸고 제기한 의문에, 국방부도 이제는 과학의 이름으로 답을 해야 한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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