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진실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무감은 간혹 그런 멈칫거림을 이긴다. 의 의뢰로 천안함과 ‘1번 어뢰’ 부품의 흡착물질을 분석한 정기영 안동대 교수(지구환경과학)와, 언론 3단체의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 검증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동일한 작업을 진행한 양판석 박사(캐나다 매니토바대학 지질과학과 분석실장)가 그런 경우다. 두 과학자가 한 달여의 실험 끝에 도달한 결론은 같았다. 민·군 합동조사단과 국방부의 흡착물질 분석은 미흡했으며, 이 물질이 어뢰 폭발로 생긴 ‘비결정성 알루미늄산화물’이라는 결론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교수의 이번 실험 결과는 관련 학술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언론사 최초로 흡착물질 분석을 진행한 은 다소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지만 정 교수와 양 박사가 결론에 이른 과정을 자세히 싣는다. 아울러 두 과학자가 내놓은 답에 반론이 있다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고 언제든 반론을 게재할 계획이다. 특히 흡착물질이 폭발의 결과물인 알루미늄산화물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던 국방부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대한다. _편집자
천안함 사건을 조사해 지난 5월 중간발표를 한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과 9월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펴낸 국방부는 선체와 어뢰 부품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이 ‘비결정성 알루미늄산화물’(AlxOy)이라고 발표했다. 알루미늄 성분이 섞인 어뢰 속 폭약이 폭발하면서 고열과 고압으로 알루미늄산화물이 생겨 선체와 어뢰 부품에 흡착됐다는 결론이었다.
그런데 의 의뢰로 동일한 물질을 분석한 정기영 교수의 분석 결과는 달랐다. 정 교수의 결론은 ‘비결정성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Amorphous Aluminum Sulfate Hydroxide Hydrate·AASH)이라는 것이다. ‘아시’라고 부르는 이 물질의 화학식은 ‘2Al₂O₃·SO₃·9-10H₂O’ 또는 ‘Al₄(SO₄)(OH)₁o·4-5H₂O’이다. 화학식에서 알 수 있듯이, 알루미늄(Al)과 황(S)이 다량 함유된 물질이다. 그런데 이 물질은 순간적으로 고온이 발생하는 폭발 조건이 아닌, 100℃ 이하의 온도에서 알루미늄과 황이 결합해 만들어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천안함의 흡착물질은 폭발재가 아니다. 이는 합조단과 국방부의 결론과 180도 다르다. 참고로, 양판석 박사가 흡착물질을 분석한 결과인 ‘비결정질 바스알루미나이트’(Al₄(OH)₁o(SO₄)4H₂O)와 이름은 다르지만, 주요 성분을 보여주는 화학식은 거의 비슷하다(상자 기사 참조).
“폭발로 단정할 수 없는 구조”
정 교수는 이 입수해 건넨 천안함 선체 3곳과 어뢰 2곳 등 5곳의 흡착물질 시료를 가지고 주요 성분과 화학조성 비율을 분석했다. 전자현미화학분석(EMPA)을 통해 알루미늄과 황의 비율이 평균 3.91:1임을 확인했다. 또 원소분석(EA)으로 산소와 황의 원자 비율이 1:12~13정도라는 것 또한 밝혀냈다. 이 실험을 통해 흡착물질의 알루미늄·황·산소 비율이 아시에 존재하는 각 성분의 비율과 거의 일치함을 확인했다. 흡착물질이 ‘알루미늄산화물’(알루미늄과 산소로만 구성됨)이라는 합조단과 국방부의 결론은 황(S)의 존재를 무시한 것이었다.
비결정질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 즉 아시는 알루미늄과 황이 약 4:1로 섞인 비결정질 입자로 구성됐다. 천안함과 어뢰 부품 5곳에서 채취한 시료 모두가 화학적·구조적 균질성을 갖고 있어 동일한 환경에서 조성된 것으로 분석 결과 나타났다.
정기영 교수의 결론은 ‘비결정성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AAS · HAmorphous Aluminum Sulfate Hydroxide Hydrate·AASH)이라는 것이다. ‘아시’라고 부르는 이 물질은 순간적으로 고온이 발생하는 폭발 조건이 아닌, 100℃ 이하의 온도에서 알루미늄과 황이 결합해 만들어진다.정 교수는 이 흡착물질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됐는지 비밀을 풀기 위해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미세구조를 분석했다. 흡착물질의 내부 형태를 좀더 엄밀하게 관찰하기 위해 시료를 에폭시(응고제)로 고정한 뒤 단면을 잘라 살펴봤다.
을 보면, 5곳의 시료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중심부에 빈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중심으로 바깥쪽으로 조밀한 구조나 성긴 구조로 쌓여가는 형태다. 조밀한 경우에는 구의 형태를 띠고, 성긴 경우에는 선형으로 연결돼 가지를 치거나 그것이 집합체를 이루는 방식으로 물질이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투과전자현미경(TEM)을 통해 더 확대해보면 에서 보이는 것처럼 볼록볼록한 덩어리가 연속적으로 자란 형태가 나타난다.
정 교수는 이런 구조로 미뤄볼 때 분말 형태의 물질이 결정 상태로 흡착된 것이 아니라 바닷물 속에 녹아 있던 물질이 점액질 상태로 흡착됐다고 설명한다. 해수에 녹은 상태에서 침전됐다는 말이다. 중심부는 높은 농도의 용해 상태에서 물질의 침전이 이뤄졌고 외부로 갈수록 옅은 농도의 물질이 침전됐음을 알 수 있다. 정 교수는 “농도가 높은 젤 형태의 아시가 형성되고 나서 그것이 먼저 흡착된 뒤 시간이 흐르면서 농도가 낮은 아시의 선형 연결체 또는 망 형태의 집합체들이 결합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침전의 결과는 대체로 일정한 방향성을 띠면서 쌓였다는 점에서, 폭발의 결과로 볼 수 있는 ‘규칙성 없이 무질서하게 쌓이는 흡착’과는 양상이 다르다. 정 교수는 “한층 한층 쌓이면서 만들어진 구조로 볼 때 폭발을 단정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또 단면 관찰에서는 황과 알루미늄의 결합물인 아시 이외에도 장석·석영 등 광물 입자나 플랑크톤 파편이 나타났다. 플랑크톤 파편은 고열의 폭발 환경에서 나타나기 힘들다. 고열을 견디는 극히 제한된 종류의 플랑크톤 파편을 제외하면 대부분 타버리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의 기원은 확정 못해정 교수는 “아시는 알루미늄과 해수에 녹아든 황이 만나 결합된 것”이라며 “형태를 봤을 때 뭔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아시가 만들어진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폭발일까? 정 교수는 이 환경 변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100℃를 넘지 않는 상태에서 아시가 만들어졌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폭발은 3천℃가 넘는 고온을 발생시킨다. 폭발로 인해 아시가 만들어진다는 학계 논문은 아직 없다.
그렇다면 흡착물질의 주요 구성 성분인 알루미늄과 황은 어디에서 왔을까?
정 교수는 동위원소 측정을 통해 황의 기원을 확인했다. 바닷물이었다. 동위원소 측정은 하나의 물질이 존재하는 상태(원유·해수·지표 등)에 따라 달라지는 원소값으로 그 연원을 따져보는 방법이다. 정 교수는 “해수에는 황이 SO4 형태로 2700ppm(1kg당 0.27g)이 함유돼 있다”며 “알루미늄과 만나면 충분히 반응할 수 있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알루미늄이었다. 국방부는 알루미늄의 기원을 ‘1번 어뢰’라고 발표했다. 폭발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중무기 폭약에는 알루미늄을 넣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아시의 주요 성분인 알루미늄이 어디에서 왔는지에는 결론을 유보했다. “어딘가에서 다량의 알루미늄이 공급됐다”는 정도인데, 이 분석을 의뢰한 흡착물질 시료만으로는 알루미늄의 기원을 밝힐 수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알루미늄도 황처럼 바닷물에서 기원할 수 있을까? 정 교수는 “어떤 원인이 됐든 바닷물이 강산성으로 변한 상태라면 광물질 등 어디에선가 알루미늄이 녹아나와 아시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과학적 분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가정”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한 달여에 걸친 흡착물질 분석 과정에서 여러 차례 아쉬움을 토로했다. 직접 시료 채취 과정에 참여해 흡착물질이 선체와 어뢰 부품 어디에, 어떤 형태로 흡착됐는지 알 수 있었다면 분석에 도움이 됐을 텐데, 제한적인 조건에서 시료 분석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였다.
정 교수의 분석 실험은 논란의 핵심인 알루미늄의 기원에 대해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국방부가 내린 ‘흡착물질=폭발재’라는 근거를 부정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다.
지난 9월 발간된 국방부 보고서는 흡착물질이 폭발재, 즉 폭발의 증거물이라는 근거로 네 가지를 제시했지만 이번 실험을 통해 모두 반박이 가능하다.
국방부의 네 가지 결론 모두 반박 가능첫째, 국방부는 ‘외부로부터 유입된 흡착물질의 주성분이 비결정성 알루미늄산화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 교수의 분석 결과 아시였다.
둘째, ‘(2325℃ 이상의 온도에서 액체화됐다가 급랭하는 조건 또는 폭발 등의 급격한 산화 조건 등을 제외하고) 수중에서 비결정성 알루미늄산화물이 생성될 어떠한 요인도 없다’고 했다. 정 교수의 분석 결과, 흡착물질은 100℃ 이하에서 형성되는 아시이며 이는 폭발과 관련성을 갖기 힘들다.
셋째, ‘흡착물질 중에 흑연이 일부 검출됐다’고 했다. 정 교수의 분석 결과 ‘잠정적으로’ 흑연은 보이지 않았다. 정 교수는 “천안함 전체(의 흡착물질)를 들여다보지 않은 이상 흑연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에서 ‘잠정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또 보고서는 ‘일반 화약의 폭발시 비결정성 탄소, 흑연, 다이아몬드 등이 생성된다’고 밝혔으나, 이번 분석에서는 그 물질들이 보이지 않았다.
넷째, 보고서는 ‘알루미늄 첨가 화약의 폭발시 비결정성 산화알루미늄이 생성된다’고 했다. 이 문장만 떼어놓고 보면 참이다. 국방부의 논리대로라면, 정 교수의 분석 결과는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므로 알루미늄 첨가 화약의 폭발이 없었다는 결론도 성립한다.
“엑스선회절 분석과 에너지분광 분석은 실험 대상을 판단하는 가장 기초적인 실험입니다. 그다음 단계가 반드시 필요한 실험이죠. 그런데 이상하게 국방부 보고서를 보면 그 실험이 다음 단계로 진행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어요. 좀더 다양하게 분석했다면 중요한 정보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기영 교수그렇다면 국방부는 정 교수와 동일한 물질을 분석하고도 왜 폭발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까? 정 교수는 서둘러 결론을 내기 위해 시간에 쫓겼거나 예단으로 ‘눈’이 흐려졌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예를 들면, 국방부 보고서에 ‘흡착물질의 형상은 미세입자들이 마치 용융되어 뭉쳐져 있는 모습’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주사전자현미경(SEM) 관찰만 면밀히 진행했더라면 함부로 내릴 수 없는 결론이라는 것이다. 입자들이 바닷물에 용해돼 침전된 현상, 겹겹이 쌓여 있는 현상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엑스선회절 분석과 에너지분광 분석은 실험 대상을 판단하는 가장 기초적인 실험입니다. 그다음 단계가 반드시 필요한 실험이죠. 그런데 이상하게 국방부 보고서를 보면 그 실험이 다음 단계로 진행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번에 제가 실험하면서 사용한 주사전자현미경이나 투과전자현미경 등은 어느 대학, 어느 연구소나 다 갖추고 있는 일반적인 장비로, 웬만한 연구원이면 분석이 가능합니다. 시간이 모자라서였든, 아니면 다른 상황이 있었든 좀더 다양하게 분석했다면 중요한 정보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교수의 말이다.
이번 실험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번 실험의 결론은 명확하다. 천안함과 어뢰 부품의 흡착물질이 천암함의 침몰 원인을 직접 말해주지는 못한다. 흡착물질에 대한 수개월 동안의 논란은, 국방부가 그동안 과학의 이름으로 흡착물질을 침몰 원인과 무리하게 연결지으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측면이 크다. 언론사 최초로 흡착물질 분석을 시도한 은, 그리고 의 의뢰를 받아 분석 실험을 진행한 정기영 교수는, 이번 실험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여긴다. 정 교수는 “천안함 선체에 남아 있는 다량의 물질들에 대해 이번에 실시한 미세한 분석들을 해야 한다. 여러 가지 억측과 소문을 배제하고 과학적인 사실을 하나하나 모으는 신중하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천안함의 진실이 온전히 세상에 드러나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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