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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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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지보다 아름다움!

박지성의 질주와 이청용의 발놀림을 보며 당신이 느낀 쾌감에 대하여…
축구라는 경기가 창조해낸 무정형의 미학
등록 2010-07-02 07:40 수정 2020-05-02 19:26
포메이션 전술이 정착하면서 축구는 ‘공간의 경기’가 됐다. 필드 위의 플레이는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보인다. REUTERS/BENOIT DOPPAGNE · REUTERS/ MARCOS BRINDICCI

포메이션 전술이 정착하면서 축구는 ‘공간의 경기’가 됐다. 필드 위의 플레이는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보인다. REUTERS/BENOIT DOPPAGNE · REUTERS/ MARCOS BRINDICCI

그 시작은 외로운 매가 토끼를 발견했을 때와 다름없었다. 왼쪽 윙백이 중앙 수비수에게 공을 건네는 순간, 그의 질주가 시작됐다. 가련한 그리스의 포백은 박지성의 급강하를 진작 예측했어야 했다. 묵묵히 그라운드를 부유하던 박지성이 느닷없이 뛰어나가자 깜짝 놀란 마크맨은 발도 떼지 못했다. 아랑곳없이 박지성은 수비수가 설 건드린 공을 낚아챘다. 그리고 공을 길게 툭 밀었다. 푸른 공간이 새로 열렸다. 그곳에 공간이 있다는 걸 박지성 말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창조한 공간 속으로 30m를 드리블했다. 여섯 차례에 걸쳐 공을 만지고 다듬고 깎았다. 마지막 순간, 그는 공의 자유의지를 믿었다. 수비수의 백태클과 골키퍼의 팔이 악다구니처럼 달려들자 그는 공이 굴러가는 대로 잠시 내버려뒀다. 공은 손과 다리의 정글을 마치 제 의지인 것처럼 헤집고 나왔다. 참을성 있게 기다린 박지성은 마침내 왼발 등으로 공을 토닥이듯 밀어 찼다. 골문 왼쪽 구석으로 공이 굴러갔다. 그리스인들은 헝겊인형처럼 서 있었다. 축 처져 있던 골 그물마저 가볍게 몸을 떨었다. 박지성은 활개를 휘저으며 8만여 명이 들어찬 경기장을 홀연 포획해버렸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최고의 골 가운데 하나가 탄생하던 그때, 당신은 무엇을 느꼈나. 경기장을 횡으로 잘라 뛰면서 추적자를 떼어버리고 지구의 중력과 경기장의 압력을 거스르는 경쾌한 오른발 끝으로 공을 살짝 띄워 보낸 이청용의 슛을 보면서, 완고한 수비벽의 오른쪽으로 휘어지다 마지막 순간 골문을 향해 다시 왼쪽으로 꺾이는 슛을 의도하며 잰 발로 다섯 걸음 뛰어가 공의 오른쪽 아랫부분을 호되게 감아 차는 박주영의 슛을 보면서, 당신은 무엇을 느꼈나.

>> “쾌감은 아름다움에서 생겨난다. 아름다움은 형상에서 나고, 형상은 비례에서 나며, 비례는 수에서 난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축구의 기초는 몇몇 숫자다. 가로 64~75m, 세로 100~110m의 경기장(국제 규격)에서 둘레 68~70cm, 무게 410~450g의 둥근 공을 폭 7.32m, 높이 2.44m의 골문 안에 밀어넣으려 90분 동안 두 팀 22명의 선수가 팔을 제외한 신체 모든 부위를 사용한다. “축구는 유연한 긴장의 정밀한 세공”이라고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말했다. 근육·기예·승부의 팽팽한 긴장을 선수들이 정밀하게 다듬어갈 때, 사람들은 축구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낀다.

“마스체라노, 로드리게스, 소린, 리켈메, 소린, 마스체라노, 로드리게스, 아얄라, 캄비아소, 마스체라노, 로드리게스, 린, 로드리게스, 캄비아소, 리켈메, 마스체라노, 소린, 사비올라, 리켈메, 사비올라, 캄비아소, 크레스포, 캄비아소 … 오, 고오오올!” 2006년 독일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아르헨티나는 24차례의 중단 없는 패스 끝에 골을 넣었다. 아르헨티나 진영에서 시작된 패스는 그라운드 전체를 한땀한땀 파고들다 세르비아 골문에서 끝났다. 선수들은 공간·거리·속도의 함수를 직관적으로 계산해 정답을 얻었다. 아르헨티나 해설자는 정밀한 원투 패스의 주인공을 부르는 것으로 그의 ‘해설’을 마쳤다. 그 밖에 무슨 말이 필요했겠는가.

현대 축구의 정밀한 세공은 아름다움을 향한 축구 진화의 결과다. 그것은 거의 강박에 가깝다. 축구공이 대표적이다. 공을 다루는 여러 스포츠 가운데 축구만큼 ‘완전한 원’에 집착하는 종목은 없다. 고대 그리스 이래 ‘원’은 절대미의 표상이었다. 중세의 돼지 방광에서 시작한 축구공은 고무 축구공이 만들어진 1860년대부터 ‘절대 원’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1880년대에는 8개의 가죽 조각을 이어붙였다. 1940년대에는 공 안에 다시 공을 넣어 질긴 천으로 감쌌다. 1970년대에는 20개의 육각형 조각과 12개의 오각형 조각으로 흑백 무늬의 공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물에 젖어 모양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여러 층의 외피를 합성소재로 만들고, 공기 압력이 모든 면에 균등하게 가해지도록 최소한의 조각을 최소한의 이음새로 연결하고 있다.

‘완벽한 원’이라는 추상의 이데아를 갈구하는 것은 ‘아름다운 플레이’라는 미적인 가치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골문에는 300개 공이 들어갈 수 있는 18㎡의 공간이 있지만, 선수들은 300분의 1의 확률에 기대하지 않는다. 골이 들어가는 새로운 경로를 창조한다. 1997년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친선경기에 나선 프랑스 수비벽을 휘감아도는 ‘UFO킥’을 날렸다. 처음엔 공이 골대를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지독하게 빠른 공이 날아오자 골대 왼쪽 뒤편에 비켜 서 있던 볼보이가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공은 반대편으로 꺾어 골문을 향한 곡선 비행을 시작했고, 대머리 골키퍼 바르테즈는 비행이 골 그물에서 마무리되는 순간을 바라만 봤다.

허리를 축으로 삼아 대퇴부의 회전력에 정강이의 회전력을 보태어 킥을 할 때, 발목은 시속 80~90km로 대기를 가른다. 오직 1천분의 1초 동안만 발의 에너지가 공에 전달된다. 찰나의 충격에 문득 깨어난 공은 시속 120~150km로 날아간다. 정지시키지 않고 이를 맞받아 차면 다시 속도가 붙어 시속 180~200km가 된다. 가공할 속도는 주변의 공기 분자를 흩뜨리고, 급기야 주변 공기는 수많은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카를루스는 빠른 공에 따라붙는 기류 변화를 이용해 ‘UFO킥’을 창조했다. 오늘날 포르투갈의 호날두는 이를 더 진화시켰다. 그는 공을 회전시키지 않는다. 자전하지 않는 절대 원을 맞닥뜨린 공기는 당황해 어쩔 줄 모른다. 주변 기류는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공은 불규칙하게 요동친다. 호날두의 ‘무회전 킥’은 완벽한 원에서 무정형 운동을 창조했다. ‘카오스의 미학’이다.

축구공은 고무 축구공이 만들어진 1860년대부터 ‘절대 원’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6월25일 스페인-칠레 경기에서 칠레 골문에 들어간 자블라니. REUTERS/ DYLAN MARTINEZ

축구공은 고무 축구공이 만들어진 1860년대부터 ‘절대 원’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6월25일 스페인-칠레 경기에서 칠레 골문에 들어간 자블라니. REUTERS/ DYLAN MARTINEZ

>> “아름다움은 크기와 질서가 잡힌 배열에 근거한다. 아름다움 안에는 개별적인 요소가 결합하여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호날두의 무정형은 팀 전체의 질서 속에서 탄생했다. 축구의 아름다움을 이루는 배경은 일련의 배열이다. 세계적 축구 사회학자 리처드 줄리아노티는 축구의 미학적 진화를 전통-현대-탈현대의 단계로 구분한다. 그것은 낭만주의-계몽주의-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인류 이성의 진화와 맥을 함께한다.

1930년대 이전까지 축구를 지배한 스타일은 영국과 브라질에서 나왔다. 영국은 후방에서 길게 차고 전방 공격수가 골을 넣는 ‘킥 앤 러시’(Kick and Rush)를 구사했다. 반면 브라질은 현란한 드리블을 일삼는 ‘해피 고 러키’(Happy-Go-Lucky) 스타일을 즐겼다. 강력한 패스와 치명적 드리블의 영역으로 명확히 구분된 ‘전통의 시대’였다. 그 시절 선수들은 투지 또는 근육으로 승부했다.

1925년 오프사이드 규칙이 개정됐다. 축구에는 오직 17개 규칙밖에 없다. 이 가운데 가장 독특한 오프사이드는 골대 앞에 선수들이 옹송그려 모여 있는 ‘추한 모습’을 피하기 위해 고안됐다. 공간 전체를 아름답게 활용하는 것이 축구의 목적이다. 1863년 처음 제정된 것을 1925년에 새로 바꾸면서 그 원칙을 더 강화했다. 규칙 개정과 함께 잉글랜드 리그의 골은 4700골에서 6373골로 늘었다.

잉글랜드 아스널의 허버트 채프먼 감독은 ‘골 인플레이션’에 맞설 묘책을 궁리했다. 선수들을 W-M 모양으로 배치하는 포메이션을 만들어냈다. 독일의 축구 작가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은 이를 “현대 축구사의 최대 혁명”이라고 평가한다. ‘W-M 포메이션’의 핵심은 W와 M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4명의 선수가 사각형 모양으로 미드필드를 장악하는 데 있다. 이로써 축구는 ‘공간의 경기’가 됐다. 근육 싸움이 기하학적 경쟁으로 변모했다.

이후 반세기 동안 축구의 혁신은 포메이션의 변화와 함께했다. 이 시대의 축구는 이성적 기획의 힘을 믿었다. 주어진 길을 따르지 않고, 길을 변주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공격 능력을 극대화하는 헝가리의 4-2-4 포메이션은 브라질에서 꽃을 피웠다. 4명의 수비수 뒤에 1명의 스위퍼를 두는 스위스의 수비 진용은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빗장 수비)로 정착했다. 측면 선수가 공격과 수비를 넘나드는 4-4-2 포메이션으로 영국은 축구 종가의 자존심을 지켰다.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는 이런 모더니즘(현대)의 절정인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탈현대)의 출발이다. 스포츠평론가 정윤수는 토털 사커를 체현한 요한 크루이프를 “축구사의 인식론적 단절을 성취한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이전까지 각종 포메이션은 단순 분업 체계에 기초한 ‘포드주의’에 가까웠다. 반면 토털 사커는 다기능 다원주의로 나아갔다. 토털 사커는 공간을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롭게 해석했다. 최종 수비 라인과 전방 공격 라인의 폭을 좁혀, 그 공간을 압축했다. 수비수도 공격하고 공격수도 수비했다. 토털 사커는 포메이션 진화의 정점을 이룬 동시에 포메이션의 효용에 마침표를 찍었다.

1990년대 이후 축구는 모든 스타일이 서로 융합하는 ‘잡종성’의 시대로 들어섰다. 1998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는 현대와 탈현대의 경계에서 ‘아트 사커’의 진수를 보였다. 세네갈·가나·알제리·아르메니아·뉴칼레도니아 등에서 자란 선수들은 딱히 단정짓기 곤란한 스타일로 우승을 차지했다. 발바닥 아래 공을 숨긴 뒤 풀쩍 뛰면서 빠르게 360도 회전해 상대 수비 뒤로 넘어가는 ‘지단 스핀’은 사람들을 압도했다. 기존 개념으로는 설명할 도리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저 ‘예술 축구’라 불렀다.

그러나 ‘탈현대’의 축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복제·모사했다. 1990년대부터 유럽 명문 리그는 세계 각지의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동시에 유럽과 남미의 감독들이 전세계로 퍼져갔다. 브라질·유럽·아프리카·아시아의 스타일이 서로 침범하고 섞였다. 기계체조와 독일 축구, 포병 부대와 영국 축구, 삼바 리듬과 브라질 축구를 연관시키는 일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첼시는 프랑스적이고, 아스널은 스페인적이다. 일본은 이탈리아에서, 한국은 네덜란드에서 신문물을 수용했다. 공격 때는 브라질의 4-2-4, 수비 때는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 그리고 나머지는 토탈 사커의 압박 축구를 구사하는 것이 ‘탈현대’ 축구의 기본 전술이 됐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4-3-1-2 또는 4-2-3-1 등의 포메이션도 많이 등장했다. 4-4-2, 3-5-2, 4-3-3 등 ‘3열 포메이션’보다 더 세분화된 ‘4열 포메이션’이다.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4열 포메이션의 핵심은 상황에 따라 4-4-2 또는 3-5-2 등 다양한 포메이션을 소화하는 데 있다. 정해진 배열이 따로 없다는 뜻이다. 규정할 수 없는 정체성, 중심 없는 다양성, 예측할 수 없는 복잡성 등의 측면에서 오늘날 축구는 포스트모던의 절정에 이르렀다.

>> “아름다움을 제외하면 세상에 진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베네데토 크로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세계 축구의 ‘현대성’을 따라잡았다. 투혼으로 승부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배열의 조화를 이뤘다. 2006년 월드컵 때까지 한국은 3-5-2 또는 3-4-3 등 ‘스리백’ 포메이션을 구사했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가 ‘포백’ 수비를 끝없이 시도했으나 한국 선수들은 적응하지 못했다. 반면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은 4-4-2 등 시종일관 포백 시스템을 구사했다. 현대 축구의 기본 포메이션이다. 2008년 에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16강 진출팀의 포메이션 분포를 조사한 논문이 실렸다. 전후반·연장전을 통틀어 포메이션의 변화를 조사했더니 4-4-2가 전체의 55%를 차지했다. 4-3-3 등 ‘포백 계열’의 다른 포메이션까지 더하면 그 비중은 87%에 이른다. 반면 한국팀이 구사한 3-5-2는 13%에 불과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많이 발전했다”고 느끼는 쾌감의 이면에는 한국 축구가 ‘드디어’ 포백을 구사할 수 있게 된 사건이 놓여 있다.

축구 변방국가조차 포메이션의 현대성을 이룩하면서, 역설적이게도 월드컵의 역동적 아름다움은 감소하고 있다. 공간을 해석하고 창조하는 방식의 진화가 정체되면서, 체력과 규율이 승부를 결정하는 변수로 등장했다. 한국·터키·세네갈 등 축구의 변방국가들이 파란을 일으킨 2002 한·일 월드컵에 대해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위원들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압박의 중요성이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2010 월드컵에서 한국·일본·미국이 선전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80년대까지 토털 사커를 비롯한 현대적 포메이션의 소화는 출중한 선수가 있어야 가능한 것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경제력을 앞세운 변방국가들도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인 조련을 통해 포메이션 적응을 완수하고 있다. 축구 스타일의 차별성은 줄어들고, 근육과 정신의 ‘투쟁력’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학자이자 축구저술가인 이성형은 이에 대해 “축구 세계에서 종의 다원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표현한다. 풍요롭던 환상 축구가 빡빡한 경영학 축구로 바뀌고, 그라운드를 뛰는 예술가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노동자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망해가는 문명의 가장 일관된 특성은 표준화와 획일화”라는 아널드 토인비의 말을 인용한 그는 오늘날 축구의 상황을 “작가의 죽음”에 비유한다. 1930년 첫 대회 이후 1986년까지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평균 4.69골이 터졌다. 1990년 이후 2006년까지 그 평균은 1.6골로 크게 줄었다. 이번 대회에서 16강을 가리는 1라운드의 경기당 평균골은 2.1골이다. 골의 급격한 감소는 1990년대 이후 ‘탈현대 축구’의 위기를 웅변한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은 낡은 패러다임의 반복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의 예고다. 지루하거나 흥미진진하다. 아르헨티나의 메시, 포르투갈의 호날두가 진정으로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잡종성의 동질화’가 급속하게 이뤄진 탈현대의 축구 세계에서 특별한 창의성을 보여주는 ‘유이한’ 존재다. 그들은 빠르면서도 기교 넘치는 ‘템포 드리블’을 창조했다. 어떤 포메이션도 무력화하는 기예를 갖추고 있다. 2010 월드컵에서 대부분의 유럽팀이 몰락한 반면,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남미팀이 건재를 과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유럽과의 동질화에도 불구하고 남미팀에는 ‘창의적 개인에 대한 존중’이 남아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축구의 미래는 박지성과 이청용 사이에 있다. 투지와 스피드로 대표되는 박지성은 한국 축구가 세계 축구의 반열에 오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러나 기교와 센스를 갖춘 이청용은 한국 축구가 4-4-2의 지평을 넘어서는 동력이 될 것이다. “힘겹게 준비한 플레이가 여유롭게 흔들리는 공간예술로 변화할 때, 그 아름다움에 매혹된 관중은 팀의 패배에도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미적 쾌감은 보잘것없는 승부를 넘어 순수한 기쁨의 숭고로 이어진다.”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은 축구의 진정한 가치를 그 미학에 뒀다. 우리도 이제 축구의 미학을 즐길 때가 왔다. 축구는 애초부터 승부가 아니라 아름다움이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참고 문헌: (갈레아노·예림기획), (바우젠바인·민음인), (웨슨·한승), (줄리아노티·현실문화연구), (정윤수·사회평론), (쿠퍼·이지북), (최원창·동아일보사), (골드블랫·북스힐), (이형석·사커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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