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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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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 미만 소득으로 3명이 생활


일일이 방문한 360가구 중 121가구 통계…
무직 48.9%, 장애인 47.1%, 노동력 상실 45.8%, 사실상 ‘영구 빈곤’의 상태
등록 2010-03-25 05:21 수정 2020-05-02 19:26

은 1989~1992년 조성된 전국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가운데 초창기에 건설된 서울 강북의 한 단지를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밀집한 수십 동의 아파트 중에서도 가장 오래전에 지어진 2개동을 골랐다. 입주민의 상당수가 15~20년 동안 이 단지에서 살아왔다.
지난 2월부터 6주에 걸쳐 2개동 360가구를 일일이 방문했다. 이 가운데 121가구의 승낙을 받아 1시간가량씩 면담조사를 했다. 가구현황·이주과정·주거환경·가족배경·사회의식·경제생활·복지현황 등에 대한 54개 항목을 물었다. 적극적으로 응답한 20가구는 다시 심층면접해 생애사를 취재했다.

하얀 눈이 세상을 뒤엎어도 가난의 풍경까지 가리진 못한다. 날선 바람이 불던 3월의 오후, 얇디얇은 옷을 걸친 노인이 낡은 유모차를 다리 삼아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안을 거닐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하얀 눈이 세상을 뒤엎어도 가난의 풍경까지 가리진 못한다. 날선 바람이 불던 3월의 오후, 얇디얇은 옷을 걸친 노인이 낡은 유모차를 다리 삼아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안을 거닐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조사에 응한 가구는 그나마 여유 있는 편

360가구 모두 2회 이상 방문해 조사를 시도했으나, 거절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집에 아픈 사람이 있어 외부인이 들어오면 곤란하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따라서 면담조사에 응한 121가구는 가족 중에 중환자나 장애인이 적고, 생계 해결에 그나마 여유가 있는 경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조사 결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구 총소득이다. 전체 응답 가구의 72.7%가 한 달 100만원 미만의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50만원 미만의 소득은 33%였다. 9.9%는 월 20만원 미만의 벌이를 가졌고, “소득이 아예 없다”고 답한 가구도 2.5%에 이르렀다. 이 액수는 기초생활급여, 자활근로 임금, 자식·친지가 주는 용돈 등을 모두 합한 것이다.

함께 사는 식구가 한 달에 버는 총소득

함께 사는 식구가 한 달에 버는 총소득

121가구의 총가구원(함께 사는 사람) 수는 313명이었다. 가구별로 나눠보면 1가구당 평균 2.59명이 사는 셈이다. 사실상 자식과 함께 거주하면서도 기초생활수급권을 박탈당할까봐 이를 숨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실제 가구원 수는 1가구당 평균 3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구간별’로 가구 총소득을 물어본 이번 조사에서 1가구 평균소득을 정확히 짚어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3명이 사는 가구가 한 달 100만원 미만의 돈으로 생활하는 것이 영구임대아파트 주민의 ‘평균치’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현재 정부가 발표한 2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85만8747원, 3인 가구는 111만919원이다.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가구 구성원의 직업/최대 가계 지출 항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가구 구성원의 직업/최대 가계 지출 항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계선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주거비였다. 가구당 월 20만~30만원에 이르는 관리비·임대료가 가장 큰 지출 항목이라고 답한 경우가 74.4%였다. 실제 면담조사 과정에서 거의 모든 주민이 “제발 관리비·임대료가 낮아지도록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 앞으로 개선되길 바라는 사항을 물었는데, 68.6%가 ‘보증금·임대료·관리비의 인하’를 꼽았다. ‘차별적 시선·사회적 소외’(4.1%), ‘범죄 단속’(5.0%), ‘주택 개선’(3.3%) 등에 비해 월등한 수치다.

가구주를 포함해 모든 가구원의 직업을 물었는데, ‘무직’인 경우가 48.9%에 이르렀다. 무응답자가 5.8%였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도 뚜렷한 직업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직업이 있다 해도 단순노무직(10.0%), 단기직 아르바이트(5.4%), 공공·자활근로(6.4%) 등 비정규직이 많았다. 무직, 단순노무직, 단기직, 자활근로 등을 더하면 70%가 넘는다. 한 달 100만원 미만의 소득을 올린다고 답한 조사 결과와 겹친다. 실직이 곧 가난과 연결된 것이다.

가구 구성원 가운데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가구 구성원 가운데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자주 이용하는 복지기관

자주 이용하는 복지기관

가난의 원인은 질병, 절실한 복지는 의료비 보장

가구 총소득 100만원 미만인 88가구 가운데 65살 미만의 성인이 포함된 가구(‘노인+성인 자녀 가구’, ‘성인 부부+자녀 가구’ 등)는 48.9%에 이르렀다. 노동능력이 있는 이들이 안정적·지속적 임금을 받게 된다면 이들의 가난에도 출구가 보일 것이다.

그러나 취업 알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빈곤층 가구의 특성 때문이다. 조사 대상 121가구 가운데는 ‘노인 단독’(14.9%), ‘노인 부부’(19.0%) 등 65살 이상 노인을 중심으로 가구가 구성된 경우가 많았다. 나이 분포를 봐도 조사 대상 가구원의 50.2%가 60살 이상으로 나타났다. 가구 총소득 100만원 미만인 88가구 가운데 ‘노인 단독’ 또는 ‘노인 부부’인 경우는 30%였다. 사실상 노동능력을 잃어가는 빈곤 노인 가구에 대해선 기초생활급여를 늘리는 것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장애와 질병은 이들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올무다. 가구 구성원 가운데 장애인이 있는 경우가 47.1%였다. 장애 등급별로 보면 중대 장애로 분류되는 1~3급 장애가 전체 장애인의 57.6%를 차지했다. 이들에겐 취업이 아니라 돌봄과 치료가 절실하다. 그러나 면담 과정에서 살펴본 바로는 중증 장애인의 대부분은 사실상 돌봄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상태였다.

장애 유형/만성질병 유형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장애 유형/만성질병 유형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자주 이용하는 복지시설’을 물었는데, 사회복지관(10.7%), 경로당(5.8%), 동사무소(5.8%), 종교·사회단체(4.1%)를 꼽은 경우보다 “아무 곳도 이용하지 않는다”(37.2%), “관심없다·모르겠다”(33.9%)는 응답이 월등하게 높았다. 현장에서 살펴본 바로는 종교·사회단체, 경로당 등은 무료급식과 반찬 제공 등의 공간이었고, 동사무소는 기초생활급여 수급 등을 상담하는 공간이었다. 장애에 따른 각종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사회복지관 이용률이 저조한 것은 빈곤 장애인의 처지를 웅변한다.

거의 모든 가구 구성원이 각종 만성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노동력 상실과 직결되는 ‘허리·관절 질환’(31.3%), ‘신체 손상에 따른 거동 불편’(6.5%), ‘암’(5.0%), ‘정신질환’(3.0%) 등이 많았다. 빈곤층의 질병은 평생 지속된 가난의 결과이자, 남은 인생까지 가난하게 살게 될 원인이다. ‘현재 가난의 원인’을 물었더니 34.7%가 “질병과 장애 때문”이라고 답했다.

‘가장 절실한 복지 서비스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25.6%가 ‘의료비 보장’이라고 답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면담 과정에서 살펴본 바로는 빈곤층의 질병은 그냥 방치될 뿐, 치료되지는 않는다. 주거비 등의 부담이 큰 상태에서 아파도 그냥 참는 것이다. 의료비 보장 다음으로 ‘소득지원금’을 절실한 복지 서비스로 꼽은 경우가 14.9%였다. ‘취업 알선’(13.2%)이라고 응답한 것까지 감안하면 이들이 원하는 복지는 안정적 소득을 확보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0년 된 입주자가 59.5%, 빈곤 탈출 실패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빈곤층은 사실상 ‘영구 빈곤’의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앞으로 잘살 것이라는 희망 없이 자녀 세대까지 빈곤을 대물림하는 구조에 갇혀버린 것이다. 121가구 가운데 59.5%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1989~90년에 입주했다. 입주민의 상당수가 빈곤 탈출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부모는 농사를 지었고(‘부모 직업은 농업’ 44.6%), 가난이 싫어 서울로 올라왔으나(‘서울·수도권 외 지방 출신’ 70.2%), 월세방에서 가난하게 살았던(‘입주 직전 월세·사글세 거주’ 66.1%)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가난할 것이라고(‘미래 빈곤 해결 가능성 전혀·별로 없다’ 39.7%) 스스로 생각한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곳은 어디일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집단’을 물었더니 정당·언론·기업·지방자치단체·종교기관 등을 제치고 중앙정부(28.1%)를 가장 많이 꼽았다. ‘가난을 해결하려면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물음에 대한 5점 척도 조사에서도 “매우 그렇다”(29.8%), “비교적 그렇다”(39.7%)는 응답이 많았다. 대한민국은 그 대답에 호응할 준비가 돼 있을까.

입주 직전 거주지 형태/가구주 부모의 직업/ 이사가고 싶은 이유/ 이사가고 싶지 않은 이유/단지 내 개선 희망 사항

입주 직전 거주지 형태/가구주 부모의 직업/ 이사가고 싶은 이유/ 이사가고 싶지 않은 이유/단지 내 개선 희망 사항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조사 자문: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조사 보조: 강보라·김민지·김옥진·김하나·김혜영·류다솜·민들레·백가희·윤현주·이수연·황단비(이상 동덕여대), 권혜미·김솔·박금지·이하늬·전수정(이상 중앙대), 손희경(건국대) 학생, 이선주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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