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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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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꿨듯 음악은 세상을 바꾼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세계적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
한국 노동자를 위해 직접 작곡한 노래 선보여
등록 2010-02-05 02:46 수정 2020-05-02 19:25

그처럼 신념에 가득 찬 ‘가수’를 본 적이 없다. 한국의 예술인은커녕 정치인도 그를 흉내내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은 그래서 불운하다는 사대주의마저 스멀거린다. ‘개념 예술인’의 부재를 넘어, 그런 가수를 빌보드 차트 1위에도 올리는 풍토에 주억댄다.
음악에 문외한인 한국의 사회부 기자는 당황한다. 세계적 기타리스트와 단독 인터뷰를 하면서 전혀 애로가 없다. 음악까지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음악과 삶, 그리고 군살 없이 직조하는 그의 언어들이 하나인 덕분이다. 랩 메탈의 대표주자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의 리더, 톰 모렐로(46)다. 평단은 그를 ‘행동주의 음악가’라 이른다. 연예인으로서 ‘반경’을 좁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는 아예 자신을 “급진 좌파”라고 몰아세운다.
포털을 검색하면 “그의 공연을 직접 보는 게 꿈” “창의적 기타리스트” 따위 한국 팬들의 글들이 즐비하다. 그런 그가 150명가량 모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의 한 시민단체 강당을 찾았다. 지난 1월13일 저녁 7시께다.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한국 노동자들을 지지하기로 한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 공장에서 정의와 존엄성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접했을 때, 펜더 같은 여러 미국 브랜드의 기타들이 실제로는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에 놀랐다. 몇 주간 속성으로 공부를 했다. 미국에서 기타를 치는 대중이 알아야 할 사실이다. 나 같은 음악가는 메시지를 확대할 수 있다. 이런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 한국 노동자들이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착취 등에 대한 사실도 아는가.
=다국적기업, 부자기업이 이른바 ‘밑바닥 경주’(race to the bottom)를 벌이고 있다. 더 높은 노동자 권리나 환경보호 기준을 요구하는 나라를 떠나, 저임금에 노동자 권리나 작업환경 기준이 열악한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콜트·콜텍도 딱 그 경우다. 우리는 이걸 멈추고자 한다.

톰 모렐로

톰 모렐로

-그러나 노동자들로선 점점 더 권리를 주장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난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한다는 뜻을 밝히려 왔다. 기타는 자유를 표현하는 도구이지 착취의 수단이 아니다. 이번 투쟁은 국제적이다. 우리는 깊이 연관돼 있다. 여기 오는 것만으로 한국 노동자들이 중요한 한 발을 내디뎠다고 본다. 안 그러면 나도, 펜더도 이 문제를 알았을까. 여러 기타 소비자들도 몰랐을 것이다. 다국적기업이 세계적 수준에서 우리를 착취하려 든다면, 우리도 세계적 수준에서 맞서야 한다.

모렐로의 언어는 대개 “나”(I) 대신 “우리”(We)로 시작됐다. 그러면서 “한국 노동자들은 이제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 존재를 우쭐대는 게 아니다. 당장 해결을 호언하는 것이 아니다. 끝을 함께 지켜볼 ‘동무’로 있겠다는 약속이다.

-노동자들이 결국 펜더 같은, 콜트에 주문생산을 하는 업체를 직접 압박하게 된다. 누군가는 부당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틀 전(1월11일) 펜더 관계자와 직접 얘기했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타당하고, 사회정의 차원에서 앞장서려면 이 사건을 바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콜트·콜텍에서 만든 펜더·깁슨·아이바네즈(일본 브랜드) 등의 기타를 사지 말자고 주장하면, 많은 음악인과 젊은이들이 영향을 받을 거다. 기업들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불매운동을 말하는 건가.

=일터에서 정의를 쟁취하지 못한다면, 콜트·콜텍은 물론 그들과 사업을 하는 업체에 대해서도 불매운동을 펼칠 것이다. 펜더는 물론 다른 브랜드의 책임자와도 (관계가 있다면) 기꺼이 얘기할 거다. 펜더는 이 이슈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태를 안) 이후에도 일이 잘 전개되지 않으면 무지의 대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아주 큰 (미국) 국내 문제로 발전할 테니까. 단, 이런 운동은 노동자들이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펜더나 아이바네즈에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럼 우린 이런 요구사항을 기꺼이 제안해주고,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실제 펜더는 법률 자문과 홍보 책임자를 내보내 지난 1월17일 오후 1시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과 만났다. 1시간30분 동안의 긴 대화가 이뤄졌다. 이들은 “이 자리를 기점으로 진상 조사가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콜트·콜텍 경영진을 직접 만나볼 의향은 없는가.

=이 싸움에서 내가 갖는 강점이 있다. 내가 콜트와도 대화할 순 있지만, 그들이 신경을 쓸지 모르겠다. 그러나 펜더는 (나와 같이) 펜더를 연주하는 이들이 펜더를 사지 말자고 하면 창피해할 것이다.

-다른 예술인들의 사회적 관심은 적다.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동료들에게 콜트 문제를 얘기하니 다들 관심을 보였다. 자기 기타는 ‘착취 공장’(sweatshop)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예술가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긴 해야 할까.

=내가 할 말은 아니다. 난 관심을 갖는다. 예술가들에게 단 하나의 책임이 있다면, 그건 자신의 작품에 진실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진실로 느끼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 관심 있는 척해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 반면 평화든 환경이든 노동자 이슈든 간에, 관심이 있다면 예술과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

-처음 기타를 손에 쥔 때를 기억하나.

=(웃으며) 13살 때다. 50달러짜리 케이 기타를 선물받았다. 엄청 흥분했는데, 50달러짜리 앰프에 연결했지만 전혀 연주할 수가 없었다. 폴 매카트니의 (Live and Let Die)를 치려고 했는데, 그냥 줄을 튕기는 수준이었다. ‘두두두, 두두둣, 두두’ 소리를 내려고 했는데, 그냥 ‘앙앙’ 소리만 났다. 그게 첫 번째 연주였다.

-그냥 스크래치 아닌가.

=하하하, 소음이었다.

-당신에게 기타와 음악은 뭔가.

=난 기타를 선택하지 않았다. 기타가 나를 선택했다. 나는 내 신념을 예술로 엮어가야 할 의무를 느낀다. 음악은 세상을 바꾼다. 내 세상부터 바꿨다. 오늘 밤, 이곳 LA에서도 음악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음악가들은 세상을 더 정의롭고 공정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거다.

모렐로에게 어떻게 ‘진보주의자’가 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진보보다) 왼쪽으로 더 더”라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그러곤 어머니 메리 모렐로를 가리켰다. 이탈리아계 여성운동가다. 케냐의 독립전쟁을 이끈 은게테 은요로게가 모렐로의 아버지다. ‘좌파 유전자’란 게 있다면 모렐로의 몸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흑인계 혼혈이라는 ‘출신’과 하버드대 사회학과 졸업이란 ‘성분’이 유전자를 더 단련시켰다.

그의 언어는 중량감으로 넘쳤다. “(이런 성장 배경 덕분에) 사다리 맨 밑에 위치한 이들 편에 서는 것이 나의 정치적 지표가 되었다. 사회 변화를 이끄는 음악을 만들 수 있길 열망한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시민단체 강당으로 내려가 기타를 쥐었다. 한국 노동자들을 위해 직접 작곡해서 왔다는 노래를 맨 먼저 선보였다. (Worldwide Rebel Song)이었다. 취지를 미리 비쳤다. “한국이건, 아이티건, LA건 타인을 위해 타인과 함께해야 혼자일 때보다 목표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다.”

실제 이날 공연에 모렐로는 물론 미국의 유명 가수 부츠 릴리, 웨인 크레이머 등이 참석했다. 해고 노동자들을 돕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재미동포들, 그들의 다국적 친구들, 히스패닉, 아시아 노동자도 끼어 있었다. 터무니없이 작지만, 가장 국제적인 무대였다. LA 웨스트 8번가 3465번지에서 걸목 없는 지구 노동자의 세계 여행은 밤 12시가 넘도록 위무를 받았다.

로스앤젤레스(미국)=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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