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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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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올해의 판결] 불투명 정권에 투명의 죽비를

국가 상대 소송 부문①
정보공개법 취지 따라 미국산 쇠고기 검역 불합격 작업장을 공개하라는 서울행정법원 판결
등록 2009-12-23 08:27 수정 2020-05-02 19:25
4년7개월 만에 수입이 재개된 미국산 쇠고기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실무진들이 검역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4년7개월 만에 수입이 재개된 미국산 쇠고기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실무진들이 검역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상식’을 법정에서 판가름하는 시대는 불행하다. 그것이 ‘올해의 판결’로 꼽히는 시대는 더 불행하다. 비상식의 시대 복판에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농림수산식품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장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낸다. 앞서 수입 검역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미국산 쇠고기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받은 자료엔 관련 작업장에 대한 정보가 통째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엔 준수사항을 위반할 경우 한국 정부가 수입 중단 등 대응 조처를 취하도록 돼 있어, 그 대상이 되는 작업장 정보는 불합격 내역의 알짬이다.

국민 알 권리보다 미국 업체 비호에 신경쓴 정부

그런데도 당시 검역원은 “자칫 미국산 쇠고기를 수출한 해당 작업장이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등의 엉뚱한 이유를 대며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국내 소비자의 식품 건강에 대한 염려나 알 권리보다 미국 사업자에 대한 ‘오해’나 ‘영업 방해’를 걱정하는 말이기도 했다. 실제 검역원은 “(정보공개 청구 내용은) 해당 작업장의 경영·영업상 비밀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 미국산 쇠고기가 괜찮다며 아예 광고·홍보하던 때다.

올 4월3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성지용, 배석판사 이창헌·강문희)는 민변의 손을 들어줬다. 검역원은 항소했지만 서울고법 행정4부(재판장 윤재윤, 배석판사 한정훈·이광영)의 판단도 1심과 마찬가지였다.

1·2심의 논거는 일관되고 상식적이다. “해당 작업장들이 기준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공개해 광우병 공포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크게 불안해하고 있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 해당 작업장이 특정되고 불합격 사유가 구체적·중립적으로 명시되므로, 오해의 소지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없음을 낱낱이 적시했다. 특히 이 모든 것이 논쟁이 되는 배경 자체를 꼬집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정보공개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에 비추어보면 (중략) 비공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성이 있는데….”

실제 이명박 정부 들어 ‘정보공개 원칙’이 쉽게 부정되고 ‘감수성’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2008년 정보공개청구 연차보고서’를 보면, 정보공개청구 대비 전부 공개 비율은 2007년 79%에서 지난해 68%로 크게 줄었다. 비공개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아들인 ‘인용률’도 같은 시기 43%에서 29%로 떨어졌다.

박상표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작업장 정보를 알게 되면 반복적 위반이 있을 때 정부의 대응 조처가 잘 지켜지는지, 외국에서 리콜이 있을 때 우리와도 관계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11월20일 검역원은 상고를 포기하면서 불합격 쇠고기를 수출한 미국의 작업장 정보를 주기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MB정부 출범 뒤 정보공개율 급락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 10월 내놓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9년 6월 말까지 1년간 쇠고기 수입 검역에서 불합격 처분을 받은 미국 수출 작업장 23곳 가운데 21곳이 2007년 최대 20회까지 불합격 사유로 적발됐다. 물론 아직도 그곳이 어디인진 알지 못한다. 실질적 공개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검역원 실무자는 “공개 범위, 서식 등을 현재 논의 중”이라며 “다른 파일로 주기적으로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심사위원 20자평
오창익 주인이 알겠다는데, 머슴들이 왜 이렇게 가리는게 많은지
김승환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정보는 감추지 말라잖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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