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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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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올해의 판결] 소장 판사들, 헌재에 똥침을 놓다

올해 최고의 판결
야간집회 금지 규정에 헌재는 헌법불합치로 시한부 생명 줬지만 서울중앙지법이 규정 위반자들에 전격 무죄 선고
등록 2009-12-24 02:18 수정 2020-05-02 19:25

참여연대에 몸담고 있으면서 평소 집회와 시위를 자주 조직하거나 참가하는 안진걸 민생희망팀장에게는 늘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왜 해가 진 뒤에는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없을까”라는 것이다. 인류가 전기를 사용하면서부터 야간 활동 시간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같은 단체 공익법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박주민 변호사와도 종종 논의했다.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집시법)의 해당 조항이 헌법과 어긋난다는 데 두 사람은 의견을 함께했다. 박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자유권 문제와 관련해 이론적으로나 현장활동에서 모두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는 대표선수다.

밤이라고 거리에서 집회를 못 열 까닭이 없다. 집시법으로 금지된 탓에 이제껏 ‘문화제’나 ‘기자회견’이라고 감춰야 했던 한밤의 거리 집회가 이제는 제 이름을 찾게 됐다. 12월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전교조 교사에 대한 부당 징계를 규탄하는 촛불 기자회견.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밤이라고 거리에서 집회를 못 열 까닭이 없다. 집시법으로 금지된 탓에 이제껏 ‘문화제’나 ‘기자회견’이라고 감춰야 했던 한밤의 거리 집회가 이제는 제 이름을 찾게 됐다. 12월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전교조 교사에 대한 부당 징계를 규탄하는 촛불 기자회견.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신영철 대법관 재판 개입 불렀던 ‘그 사건’

그러던 중 안 팀장은 촛불의 열기가 절정에 이르던 지난해 6월25일 서울 광화문 경복궁역 앞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 고시 철회와 재협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청와대 쪽으로 행진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결국 그는 야간 옥외집회와 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집시법 10조 위반은 물론 일반교통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담당 판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 7단독 박재영 판사는 50여 일 만에 안 팀장의 보석 석방을 결정했다. 동시에 안 팀장은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0조가 위헌 법률임을 헌법재판소에 심판 제청해달라고 박 판사에게 신청했다. 직후 의 보복이 시작됐다. 기사를 통해 박 판사를 비난한 이 신문은 얼마 뒤 심지어 ‘불법시위 두둔한 판사, 법복 벗고 시위 나가는 게 낫다’는 생뚱맞은 사설까지 쓰기에 이르렀다. 박 판사는 그해 10월9일 헌재에 이 법률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계속 이어지는 보수 언론의 공격에 박 판사는 올해 2월1일 결국 사직서를 썼다. 당시 그는 “내 생각들이 현 정권의 방향과 달라서 공직에 있는 게 힘들고 부담스러웠다”면서도 “언론의 ‘공격’이 힘들었다거나 사직의 이유가 된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직후에 불거졌다. 지난해 박 판사가 안 팀장을 보석 석방한 뒤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신영철 대법관이 중앙지법의 형사단독 판사 등에게 “실속도 없이 가십거리나 제공하는, 또 그로 인해 당해 사건은 물론 관련 사건과 다른 판사가 담당하는 사건까지 미세하나마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언행은 삼가야 한다”는 내용의 전자우편을 보낸 사실이 지난 3월 초 밝혀진 것이다. 지난해 박 판사가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뒤에는 신 대법관이 이와 비슷한 사건을 맡고 있는 다른 판사들에게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무관하게 사건의 재판을 속히 진행할 것을 종용하는 전자우편을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대해 조사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올해 5월 신 대법관의 행위를 두고 “사법행정권 행사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외관상 재판 관여로 인식되거나 오해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위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지는 않았다.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여론이 끓어올랐지만 그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자리를 지켰다. 이용훈 대법원장까지 나서, 버티기하는 그를 두고 “대법관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신 대법관은 지금까지 ‘감내’하고 있다.

사법부에 대한 비판이 잦아들 즈음인 지난 9월24일, 헌법재판소는 박 판사가 제청한 집시법 10조 위헌법률심판 건에 대해 역사적인 결론을 내놨다. 해당 조항이 ‘헌법불합치’라는 것이다. 이강국 소장을 비롯해 이공현·조대현·김종대·송두환 재판관 등 5명은 위헌 의견을 냈고, 민형기·목영준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는데,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6명에 미치지 못해 헌법불합치라는 절충적 결론이 났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야간 옥외집회에 관한 일반적 금지를 규정한 집시법 10조 본문과 관할 경찰서장에 의한 예외적 허용을 규정한 단서 조항은 그 전체로서 야간 옥외집회에 대한 허가를 규정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고, 이는 헌법 21조 2항(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에 정면으로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최근 현안에 대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별 의견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최근 현안에 대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별 의견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법 날치기 심판처럼 내용·형식 따로

이에 덧붙여 조대현·송두환 재판관은 보충의견으로 “(해당 집시법 조항은) 야간 옥외집회를 일반적·전면적으로 금지해 합리적 사유도 없이 집회의 자유를 상당 부분 박탈하는 것”이라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 제한할 수 있지만 그 본질은 침해할 수 없다’는 내용의 헌법 37조 2항도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헌재의 결정은 같은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1994년의 판단을 뒤집는 것이다. 따라서 긍정적 의미에서 역사적인 판결로 받아들여진다. 헌재는 당시 결정에 대해 “집회의 자유에 대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의 현대적 의의와 기능 및 헌법 규정에 담긴 국민들의 헌법 의지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변경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결정문에는 곱씹어볼 만한 ‘문장’들이 있다. 헌재는 집회의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 조항이 5·16 군사쿠데타 직전인 1960년 개헌 때 들어갔다가 1972년 유신헌법 제정 때 사라진 뒤 6·10 항쟁 직후인 1987년 현행 헌법으로의 개헌 때 부활한 역사적 의미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1987년 개헌이 “언론·출판의 자유와 더불어 집회의 자유가 형식적·장식적 기본권으로 후퇴했던 과거의 헌정사에 대한 반성적 고려”와 “집회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한 자유민주주의적 헌정 질서가 발전·정착되기는 어렵다는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이뤄진 것임을 강조했다.

가장 빛나는 문장은 이렇다. 1987년 개헌 때 집회·시위를 허가제로 운영할 수 없다는 조항이 삽입된 바탕은 “집회의 허용 여부를 행정권의 일방적·사전적 판단에 맡기는 집회 허가제는 집회에 대한 검열제와 마찬가지이므로 이를 절대적으로 금지하겠다는 헌법 개정 권력자인 국민들의 헌법 가치적 합의이며 헌법적 결단”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헌법 개정 권력자로서, 이 시점에서 다시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헌재는 또 헌법을 통해 집회·시위에 대해 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가 전세계적으로 한국과 독일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그 까닭으로 “과거의 헌정사에 대한 반성”을 들었다.

이런 많은 미덕에도 불구하고 헌재의 결정은 부정적 의미에서 역사적인 판결이라는 비판도 샀다. 집시법 해당 조항이 내용적으로 분명 위헌임을 확인하면서도, 위헌 결정을 통해 당장 무효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헌재는 늘 그래왔듯 ‘입법권자인 국회의 재량을 인정하기 위해’ 2010년 6월30일까지는 해당 조항이 유효하다고 선언하는 우회로(헌법불합치)를 택했다. 이 결정에 앞서 미디어법 날치기와 관련한 권한쟁의 심판 사건 때도 “국회의 표결 과정은 위법하지만 그 결과물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애매모호한 결정으로 한 차례 욕을 먹은 바 있는 헌재가 또 내용과 형식이 맞지 않는 결론을 낸 것이다. 조대현 재판관만이 “헌법불합치 결정 선고 후 개선 입법 이전에 (이 조항을) 계속 적용하게 허용하는 것은 위헌 법률의 규범력을 제거하려는 위헌법률심판 제도의 본지에 어긋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즉각적인 적용 중지를 요구했다.

선배의 소극적 결정 뒤집는 파격적 선고

이렇게 헌재의 어정쩡한 결론이 나오자, 지난해와 올해 일어난 촛불집회 사건을 수십 건씩 맡고 있던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누구는 헌재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2010년 6월까지는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했다. 형식논리에 대한 존중이다. 또 누구는 해당 집시법 조항으로 기소된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를 내려야 한다고 봤다. 헌재 결정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다.

결국 헌재가 미뤄놓은 ‘미완의 찻잔’을 넘치게 만든 결정적 한 방울의 물은 서울중앙지법의 단독판사들에게서 나왔다. 이제식 형사 17단독판사가 먼저 총대를 멨다. 이 판사는 지난 10월28일 집시법 10조 위반과 형법상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된 권아무개씨에 대한 판결에서 집시법 관련 부분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 근거는 이렇다. 내용적으로 이미 위헌 판정을 받은 집시법 10조는 “(경찰권 발동의 근거가 되는) 행정법규로서는 2010년 7월1일부터 위헌으로 확정돼 법률로서의 효력을 상실하지만… 형벌법규로서는… 소급해 그 조항의 효력이 상실되고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심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2010년 7월1일부터는 이 조항이 무효가 되기 때문에 어차피 지금 유죄 선고를 해도 2010년 7월1일 이후 피고인이 재심 신청을 하면 유죄판결을 번복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지금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법적 안정성을 흔들 수 있는데, 그래도 유죄 선고를 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근거로 한 무죄판결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같은 법원의 서승렬 형사 3단독판사는 바로 다음날 이아무개씨의 재판에서 집시법 10조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날 원익선 형사 21단독판사도 유사한 사건에서 같은 결론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소장판사들이 헌재의 형식적 결론을 넘어 형벌법규로서의 집시법 10조는 이미 헌재 결정과 동시에 소멸했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놓자, 일부에서는 “헌재가 개망신을 당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단독판사들이 선배 재판관들의 소극적 결정을 뒤집어엎는 파격적 선고를 했다는 것이다.

‘올해의 판결’ 심사위원회가 헌재 결정보다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의 무죄 선고에 가중치를 더 준 이유다. 김승환 심사위원(전북대 법대 교수)은 “헌재가 해당 조항을 명백히 위헌이라고 해놓고도 계속 적용하라고 하면 판사들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헌재 결정의 문제점을 하급심 법원이 교정했다”고 말했다. 다른 심사위원도 소장 판사들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최고의 판결’ 선정을 두고 표결까지 갈 정도로 치열한 논쟁이 있었지만, 올해는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이 판결이 ‘최고의 판결’에 뽑혔다.

야간 ‘시위’ 금지엔 헌재가 어떤 결정 내릴까

헌재 결정 뒤 첫 무죄판결을 내린 이제식 판사는 12월7일 집시법 10조의 야간 ‘시위’ 금지 조항에 대해서도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이와 함께 일반교통방해죄도 헌재에 위헌법률심판 제청되면서 이 혐의들을 함께 받고 있는 안진걸 참여연대 팀장 재판의 공판도 멈춘 상태다. 헌재가 이번에도 내용과 형식이 괴리된 ‘따로국밥’을 내놓을지, 아니면 잘 배합된 ‘비빔밥’을 내놓을지 관심거리다.



■ 심사위원 20자평
오창익 상식을 확인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 용기낸 판사들에 박수!
김승환 헌재 재판관들의 어설픈 결정을 바로잡다
김남근 야간통금시대에 만들어진 조항은 통금 해제와 함께 진작 사라졌어야


첫 무죄판결 내린 이제식 판사 인터뷰
“용기라기보다는 판사로서의 양심”


이제식 판사

이제식 판사

위헌적인 집시법 10조를 한동안 계속 적용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서울중앙지법 소장판사들에 의해 가볍게 뒤집어졌다. 이 조항 위반자에 대한 잇따른 무죄 선고의 첫 테이프를 끊은 이제식(44·연수원31기·사진) 판사는 오로지 “판사로서의 양심”에 따른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 판사는 “앞으로 헌재가 처벌 조항이 있는 형벌 법규에 대해서는 위헌 아니면 합헌으로 단순한 결정을 내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법조계 선배들을 향한 고언도 잊지 않았다.

-제일 먼저 무죄 선고를 했다.
=나는 지금 무죄 선고하는 게 맞다고 봤다. 국가기관의 신뢰성 문제를 생각했다. 기다리는 것보다 선고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선고를 하지 않고 내년 6월 말까지 기다릴 수도 있었을 텐데.
=사건들이 쌓여 있는데…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침 사건이 있어서 선고한 것뿐이다. 나도 지식이 많은 것은 아니니까, 개인적으로는 내 결론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선고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지 않을까 싶었다.
-무죄를 선고하면서 가장 고민한 대목은.

=헌재 결정은 구속력이 있어 우리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죄를 선고하고 다음에는 무죄를 선고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이 비슷한 고민을 했을 텐데, 논의를 별도로 했나.
=구체 사건이 아니라, 법리적인 부분만 한 번 논의를 했다. 판사들 사이에서도 무죄다, 유죄다, 2010년 6월30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등 논의가 갈렸다. 결국 마지막엔 본인의 판단에 맡기는 것 아닌가.
-비슷한 사건에 대해 같은 법원 안에서 다르게 선고하기보다는 공동으로 논의하는 기구나 틀이 필요한 것 아닌가.
=법관 내부 통신망에서도 논의하곤 한다. 이론적으로 100% 맞다, 아니다, 결론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헌법 103조에 따라 판사는 법과 양심에 의해 판결하는 것이니 어느 한쪽으로 몰아갈 수 없다. 그걸 할 수 있는 게 대법원이다. 마지막 정리를 할 수 있다. 그래서 1심 판사들이 자유로울 수 있다. 자기 견해를 판결로 나타내고 그걸 대법이 받아들이면, 그게 법원 내의 일반적 견해가 된다.
-애초 집시법 10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박재영 판사가 법복을 벗는 등 사회 분위기가 좋지 않다. 그래서 부담이 컸을 것 같다.
=글쎄, 별 생각 없었다. 그런 생각이야 당연히 하는 건데… 특별한 건 없었다.
-헌재 재판관들이 법조 대선배들인데.
=상당히 죄송스럽다. 만약 뵌다면,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다.
-이번에 무죄판결을 내린 걸 소장판사들의 용기라고 표현하면 될까.
=용기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그냥 선고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판사로서의 양심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거다.
-헌재가 헌법불합치라는 이름 아래 내용적으로는 위헌인데 적용은 한동안 계속 하라는 결정을 너무 자주 내린다는 비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형벌 법규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는 게 맞지 않다고 본다. (우리처럼 헌법재판소가 있는) 독일에서는 그런 결정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형벌 사건을 그렇게 결정하면 오히려 더 법적 안정성을 해치거나 국가기관의 신뢰가 타격을 받게 된다.
-위헌 아니면 합헌, 이렇게 단순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런 게 좋겠다. 아니면 법을 개정해서 효력 내용에 대해서도 다시 규정할 필요가 있다. 헌법불합치 때는 재심이 안 된다든지, 소급 적용을 할 수 없다든지 같은.
-무죄판결 뒤 주변의 반응은.
=좋은 말 하더라. 수고했다고 하더라. 비난도 있었지만, 말하기는 좀 그렇다.
-이번에 야간 ‘시위’ 금지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까지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야간 옥외집회와 관련한) 무죄 선고 뒤 고민하고 있었는데 (야간 시위와 관련해) 다른 사건 피고인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들어왔다. 시위 부분에 대해선 그동안 나온 판단이 전혀 없다. 위헌이건 합헌이건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고 봤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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